본문 바로가기

주일예배

2014-03-02 주일 2부 예배

< 주일 2부 예배 >

일시:  2014년 3월 2일

제목 : 사람의 말, 하나님의 말

말씀 : 사도행전 4 : 13-22

설교 : 오승주 목사



2014-03-02 주일2부예배.hwp



아래 링크를 통해 메시지 음성 파일을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https://db.tt/IqGSpTJ6




오전예배에 여호수아말씀을, 오후에는 사도행전 말씀을, 금요예배를 통해 시편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을 말씀을 통해 찾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앞에서 회복해야 할 것들을 찾기 바랍니다.

Ⅰ. 종교생활을 하고 있나요?

설교준비는 일찍 했는데 어제 밤에 늦게까지 잠을 못 잤습니다. 저는 참 아직도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슨 말씀이냐고 할 수 있지만 제 신앙을 점검해 봤을 때 말씀에 비춰볼 때 그렇게 보였습니다. 사실 이 좋은 복음을 가지고 있었고 또 나름 전하는 삶을 산다고 하지만 사람들의 가슴을 움직여서 그들로 하여금 또 사랑을 나누는 변화된 삶으로 이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종교생활이 아닌가 싶습니다. 참 고민이 많습니다. 지금 정말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나 하는 마음입니다. 가스펠 교회를 시작하면서 굳게 먹었던 마음 속 기도제목이 있었습니다. 그 기도제목을 붙잡고 시작함에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환경을 보고, 사람들을 보고, 제 입장과 상황을 보고 있으니 내가 그리스도인이 맞나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저는 고등학생 때 복음을 받고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많은 응답을 받았고 그 응답 다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많이 받았습니다. 그 중 진짜 응답을 하나로 간증하자면 그것은 하나님 사랑입니다. 지금 하나님과 교제하고 살고 있는 것, 그 응답이 제일 큽니다. 주변의 환경이 바뀌고 문제들이 풀리는 것이 응답이 아니고 지금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변화입니다. 그런데 왜 종교생활이냐고 하는 것입니까? 그 교제를 하면서도 삶을 나누지 않고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종교가 아닐까 합니다. 저는 교회를 시작하면서 그 사랑 나누는 교회가 가장 큰 기도제목이었습니다. 사람들, 특히 후대들을 보면서 마음 아픈 것은 다들 정체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았는데 나누지 않습니다. 세계복음화를 외치고 수련회를 하고 거창한 기도제목, 언약을 붙잡고, 모여서 눈물로 은혜도 받지만 이를 나누지 않습니다. 지금 제가 그렇습니다. 집사를 세우고, 교회건물도 응답해주셨고, 조금 걱정도 되어서 헌금도 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뭐 여러 가지 교회를 위해 할 일들이 생겼다고 생각하는 찰나에 하나님이 마음에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이 어리석은 놈’이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 뜻 깊은 날 저는 여러분에게 고백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 교회는 나누는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나눔은 기적입니다. 힘이 없으면 나눌 수 없습니다. 박애주의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가난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안에 하나님이 머무를 수 있습니다. 우리 것은 없습니다.

대학생 때 선교현장에 가서 그 현장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목사가 된 후 누군가 알아 주는 것을 기대하고 있고 나누는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전 세계 3억 명의 아이들이 죽어가고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당장 이 서울에도 가정이 없어서 힘들어 하는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 것도 바쁜데 그런 것들을 할 수 있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단 한명이라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마음에는 교회건축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축복을 받게 하고 싶습니다. 저를 만나는 영혼들이 하나님 앞에 복된 인생을 살게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종교생활이 아닌 하나님과 교제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기브온 사람, 가스펠 사람으로 살게 하고 싶습니다.

무엇을 나누어야 할까요? 복음을 나눠야 합니다. 그런데 삶을 보면 나보다 못난 사람을 헐뜯고 무시합니다. 교회 안에서 권위를 세웁니다. 그래서 나누지 못합니다. 아깝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것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께 우리 인생을 올인 했을 때 어떻게 축복하시는지. 그것이 복된 인생이라 생각합니다.

어제 미국의 선교사님 만났습니다. 카렌사역을 하시는데 후원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강남구청에 연락을 해서 지역의 아이들을 도우려 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이야기 하지만 실제는 1%로 나누려 하지 않습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4월에 교회 이사를 가는데 그 교회 디자인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교회 디자인에 관련된 책도 샀습니다. 그런데 오늘 새벽에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멋진 공간을 생각하고 아름다운 예배 장소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바꿨습니다. 그 지역에 돈이 없어서, 부모님 없어서 어려운 어린 아이들이 와서 공부할 수 있고 책을 읽고 예배드릴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은 공간이지만 그렇게 만들어 보려 합니다. 그 지역의 소외된 아이들이 힘을 얻고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며 하나님의 사랑을 나눌 수 있길 바랍니다. 부자는 천국에 못 간다고 합니다. 어린아이처럼 되어야 천국에 간다고 하셨습니다. 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싶습니다. 정말 오늘 뜻 깊은 날에 모든 분들에게 그런 마음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가스펠 교회가 하나님께 특별한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조금 못하면 어떻고 조금 부족하면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면 나누면 됩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도 덮느니라.’ 우리가 그 사랑을 나누면 종교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기적으로 더 채워달라고 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 이웃은 돌보지 않습니다. 정작 소외된 현장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렘넌트들이 그렇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무엇이 여러분 신앙 생활의 가치관입니까?

Ⅱ. 어리석은 사람들

1. 종교인의 삶

오늘 말씀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잡혀가고 산헤드린 공회가 소집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것이 40년 된 앉은뱅이나 일어나고 변화 되었는데 그곳에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소문이 났는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기적을 베풀지 말고 나가라고 합니다. 우리가 자칫 그렇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훈련받고, 신앙생활 오래 했지만 종교생활로 갈 수도 있습니다. 복음이 아닌 전통과 관습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해 왔던 경험이 ‘이렇게 해야되지’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 성령의 역사는 제한이 없습니다. 우리가 많은 것들을 제한한다면 사단은 복음을 놓치게 자꾸 다른 것을 만들어 넣습니다. 예배와도 멀어지게 됩니다.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놓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종교인의 삶으로 가고 있다면 빨리 돌이키고 회개해야 합니다. 예배의 형식이 중요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닌 직책과 증거에만 신경 쓰고 있다면 바꿔야 합니다. 지금 예배의 형식이 복음운동에 유익하지 않다면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떤 행동들을 합니까? 사람들을 함부로 평가합니다. 자기는 오래 신앙생활을 했고, 직분도 좋고 해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은연중에 무시합니다. 교회 안에서 그렇습니다. 세상에서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혼해서 교회에 오면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정죄합니다. 공부 못해서 교회에 오면 마음속으로 손가락질 합니다. 종교인이 그렇습니다. 자신의 죄는 보지 못하고 남의 죄를 정죄하는 것이 종교인 입니다. 인간적인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지 말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바꾸실지 모릅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선입견을 가지고 베드로와 요한을 깔보았습니다. 그들이 담대히 말함을 보고 학문이 없는 범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사용하셨습니다. 부자가 아닌 가난한 자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부자는 돈이 많은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심령이 가난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인생의 축을 두었습니다. 그들은 변화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저 사람은 절대 변화될 수 없어.’라고 굳어버린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은 바꾸시려 하는데, 하나님은 간음한 여인을, 도적질한 도적을 바꾸려 합니다. 그런데 종교지도자들이, 교회가 그것을 막고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무시합니다. 그러니 기도의 응답도 무시합니다. 모든 것이 자신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외식하는 기도를 한 것입니다.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_사도행전4:13a'

2. 종교 지도자들의 갈등

그러다 종교지도자들이 해결책이 없으니 서로 갈등을 합니다. 남탓만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의 증거 앞에서 할 말이 없는데 감사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왜 안될까 나는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까’라고 회개하지 않고 서로 갈등합니다. 어쩌면 그런 역사가 교회 안에 역사가 안 일어났으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귀찮기 때문입니다.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서 성령의 능력으로 교회가 들썩들썩 해야 하는데 그 변화가 귀찮습니다. 그냥 그대로 살았으면 합니다. 이정도면 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얼마나 악한 마음입니까? 자기들의 위치와 자리만 변함없으면 그것이 평화라고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화목입니까? 다른 사람들이 변화되고 주께 돌아오는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도전하지도 않습니다. 서로 갈등만 하고 있습니다. 후대들이 일어나도록 교육 준비를 해야 하는데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믿지 않고 신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도전할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사실 가을을 맞춰 준비했지만 응답을 앞당겨주셨습니다. 아직 가진 것이 없고 준비도 안 해주셨지만 저는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우리교회를 꾸미고, 예배공간을 아름답게 준비하여 불신자들을 초청하여 복음을 듣게 할 수 있는 것에 설레입니다. 귀찮지 않습니다. 기대가 되고 설레이며 제가 그 성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곳에 가득차 또 다른 도전이 빨리 시작되길 바랍니다. 저는 하나님의 역사에 관심이 있습니다.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_사도행전4:14’

3. 어리석은 사람들

오늘 종교인들은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했다고 했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경고하고 협박도 합니다. 복음은 그렇게 막아질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은혜가 막아집니까? 그런데 오히려 그들을 정죄하지 못함에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이런 종교인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 인생이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너무 웃긴 것은 산헤드린이 이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어서 겨우 협박하고 돌려 보냅니다. 그들이 힘 있다고 똑똑하다고 자랑하던 그들이었지만, 결국 어떻게 하지 못했습니다. 할 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 앉은뱅이가 와 있었습니다. 그것은 당장 자신들에게 돌아올 불이익 을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불이익을 당할 것 같기 때문에 진리인줄 알면서도 부정했습니다. 우리는 불이익이 올 것을 알지만 진리를 붙잡아야 합니다. 다른 불이익을 받아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상대의 장점을 이야기한 순간 자신이 패배했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진짜 은혜를 받은 사람, 하나님과 화목한 자들은 겸손합니다. 겸허하게 회개하여 진리를 받아들이면 축복과 용서를 받게 됩니다. 구원을 받게 됩니다. 참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고작 생각한다는 것이 예수님을 전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입니다. 생명은 자라고 퍼지게 되어있습니다. 생명가진 자는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하니_사도행전4:17-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_고린도전서1:18’

Ⅲ. 성령의 사람들

1. 명확한 증거

저와 여러분은 성령의 사람들이 되어야 겠습니다. 오늘 장면을 보면 명확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앉은 뱅이는 위험한 줄 알면서도 법정에 나왔습니다. 종교인들이 불리한 증인을 못 오게 막았을 텐데 목숨을 걸고 그것을 뚫고 왔습니다. 대단한 용기입니다. 구원받아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병이 나은 앉은뱅이가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산헤드린의 재판은 명분을 잃어버렸습니다. 할 말이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이 낫고 영혼의 구원을 받은 사람이 거기 있었기 때문에 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것 자체가 증거입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심이 지식이 아니고 말이 아니고 삶으로 확실히 나타나는 증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옛날을 이야기 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삶이 바뀌어야 합니다. 말로만 신앙생활이 아니고, 말로만 하나님 최고가 아니고, 말로만 복음이 아니고 삶으로 해야 합니다. 말보다 증거가 중요합니다.

예배가 힘듭니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우리는 듣기만 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정말 예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토요일이면 예배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준비합니다. 여러분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받을 사람이 있다면 저는 화를 내지 않습니다. 그들의 구원의 역사를 기대하기에 참고 양보합니다. 성령의 사람은 달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 병 나은 사람들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_사도행전4:14’

2. 사람의 말, 하나님의 말씀

오늘 베드로와 요한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 가 판단하라고 합니다. 스스로 판단하라는 것은 각자 알아서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종교의 틀 안에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살다보면 세상의 기준, 문화가 여러분을 에워쌉니다. 당장 교수님의 이야기, 불신자 친구들의 이야기, 부모님의 이야기가 옳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도를 놓치게 됩니다. 그것이 세상의 기준으로 맞는 것이지만 저와 여러분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많고 많은 교회 중에 정말 복음전하는 교회, 하나님만 의지하는 교회, 그래서 소외되고 어려운 저 영혼을 위해 헌신하는 교회가 되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의 축으로, 기준으로 가는 교회이길 바랍니다. 다른 행정보다도 이 말씀하는 것이 고민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저를 싫어할 지라도 비난할 지라도 바른 복음을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대중성을 위해 진리를 말하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잘못된 길을 하고 있는데 괜찮다고 합니다. 자녀가 고등학교 3학년이라고 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된다고 말을 합니다. 정말 상황이 되지 않아서 현장에서 홀로 예배 드리고 아픈 마음으로 드리지 못한 예배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이야기 하는 기준을 맞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인생의 축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고통 속에 빠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로 결단했다면 그것은 하나님보시기에 최고의 결단입니다. 사실 인생을 내 맘대로 사는 것 같고 내가 계획세운대로 살아지는 것 같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허황된 꿈을 꾸고 있습니다. 계획 세운대로 마음대로 살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배도 소홀히하고, 말씀도 들리지 않는 영적인 흉년의 때를 살면서도 자꾸 자존심만 세웁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존심을 세웁니다. 평생 사람들의 말에 휘둘립니다. 말로 은혜를 다 소멸합니다. 가스펠 교회는 그런 모임과 만남이 없길 바랍니다. 매스컴과 인터넷, 심지어 사람들의 호사다마까지 영향을 받아 잘못된 각인이 됩니다. 말씀이 들리지 않는 인생이 됩니다. 그것이 최고의 저주입니다.

말씀이 안 들리면 그때부터 종교생활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냐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내 주변 사람들에게 잘 보일까? 그들을 만족하게 할까? 고민합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냐 라고 합니다. 주변의 좋은 분들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결정해야 합니다. 하나님만 말씀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말에 대해 책임지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을 책임지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저는 목회자로써 늘 이 부분과 싸우고 있습니다. 늘 결단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목회자가 되려 합니다. 저도 사람인데 여러분이 신경 쓰이지 않겠습니까? 비난을 하고 오해를 살지라도 저는 말씀에 확신이 들어야 결정을 하고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제가 답답해도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여기서 사람은 다른 사람도 되겠지만 내 자신도 될 수 있습니다. 내 자신의 판단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말씀대로 산 국가, 개인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식민지로 살았던 대한민국에 복음이 들어와 하나님이 경제 대국으로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내가 잘해서 열심히 해서 이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누지 않습니다. 종교로서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말씀이 들리는 기준에 평생 맞추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바꿉니다. 나라와 민족도 바꿉니다. 가정도 바꿉니다. 왜 인줄 아십니까? 우릴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말씀 즉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살게 됩니다. 여러분 힘이 들어도 예배에 나와야 합니다. 힘들수록 더 들으셔야 합니다. 그래서 예배가 소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등불입니다. 생명입니다. 절대 사람들의 말에 속지 않기 바랍니다. 혹시 교회안에 말로 사람들을 속이는 사람들이 있다면 불쌍히 여겨주시고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함께 예배가 되고 말씀이 들리는 신앙생활이 되도록 기도해주기 바랍니다. 그것이 공동체가 다 같이 사는 길입니다. 이 말씀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옮은 가 판단하라_사도행전4:19’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_요한일서1:1’

Ⅳ.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사도행전을 계속해서 보고 있습니다. 말씀을 보며 묵상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말씀을 듣고 읽으면서 제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 70%는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하루에 10끼를 먹는 사람이 있습니까? 집을 10채를 가지고 돌아가며 살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많이 먹으면 오히려 병에 걸립니다. 종교는 그런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비만으로 죽지 않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6끼를 먹을 축복을 주셨으면 나누시기 바랍니다. 섬기는 것, 낮아지는 것입니다. 돈을 나누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을 나누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신앙생활을 사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바로 보고 들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갈등 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 저사람 복음전해주면 좋겠는데.’ 용기를 가지시길 바랍니다. 내가 복음을 전해주지 않으며 저 사람 날 평생 원망하게 됩니다. 반대로 내가 이 복음을 전해주면 저 사람이 살겠다는 확신을 갖기 바랍니다. 나를 만나는 사람은 진짜 축복을 받게 됩니다. 핍박하면 어떻게 합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상관없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협박을 받을 때 담대했습니다.

우리의 수고가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할 자들에게는 미련하지만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에게 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늘 이런 관심과 관점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늘 이런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한 생각이 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인간관계의 교제로 있어야 합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늘 그래야 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복음을 위탁해주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복음이 내 복음이 아니고 위탁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전해주는 것 뿐 입니다. 예비된 자, 충성된 자, 갈급한 자에게 전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해야 할 사명입니다.

저는 죽어도 이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그런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결론은 교회는 이 역사가 계속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멈추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가 프로그램으로 유지되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가 친목회가 되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가 운동하기 위해 모인다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가 성령의 역사가 멈추고 기도가 멈추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가 수준 있는 종교인들만 오게 된다면 이미 끝난 것입니다. 교회는 앉은뱅이도 오고, 구원 받을 사람들이 계속해서 오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영적인 병원입니다. 우리가 그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시대를 담자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 교회에는 늘 회개의 기도가 끊이지 않아야 합니다. 늘 감사의 찬송이 끊이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곳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스펠 교회 성도들을 보고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는 구나 정말 하나님의 사랑이 저 교회 안에 있구나’하는 응답을 함께 받길 기도합니다.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 함이라_데살로니가 전서 2:4’

'주일예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03-09 주일 2부 예배  (0) 2014.03.09
2014-03-09 주일 1부 예배  (0) 2014.03.09
2014-03-02 주일 1부 예배  (0) 2014.03.02
2014-02-23 주일 2부 예배  (1) 2014.02.23
2014-02-23 주일 1부 예배  (0) 2014.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