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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7-03-26 주일예배

 

2017-03-26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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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6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사귐

본 문 :

요한일서 1:1-4

오승주 목사

 


. 유사품 사랑에 병든 교회

 

주님과 사귐 속에 살아가나? 저는 한동안 이 질문으로 심각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정통 보수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흔히 정통 보수 신학을 공부했거나 그런 교회를 다니면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제 경험상 그것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왜 위험한가요? 잘 정리된 말씀들은 지식적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경의 진리를 부인하고 본질적인 복음의 핵심 교리들 일부나 전체를 부인하면서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정통 보수 신앙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잘 알고 있다고 해서 그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받는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을 가졌다고 해도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직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니지 않나요? 직분으로는 목사, 장로, 훈련 받은 사람이라 하고, 지식으로는 신학박사라면서도 명예욕이나 이기적인 욕심을 해결 받지 못하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닐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본인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사귐이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에베소 교회가 그런 교회입니다. 그들은 이단들과 치열하게 싸운 것에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에게 버림을 받을 수 있다는 무서운 책망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_요한계시록2:4’

 

에베소교회는 정통 교리만 있었지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사귐이 없었습니다. 대신 유사품 사랑이 자리를 대신 자리 잡고 있습니다. 유사품 사랑이 뭘까요? 우리 신앙을 무너뜨리는 것은 죄나 이단이 아닙니다. 그들의 거짓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탐욕이 아닙니다. 탐욕은 점점 더 가지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참 사랑은 내어주는 사랑, 희생하는 사랑입니다. 사랑과 희생이 하나님의 정품사랑입니다. 악한 세력은 유사품사랑으로 우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나를 섬기라는 메시지는 유사품입니다. 하나님 사랑은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 희생하는 사랑, 기꺼이 버리는 사랑입니다.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사랑, 자기 유익함을 추구하는 사랑, 이게 유사품 사랑입니다. 옛날 우리 선배 목사님들은 설교를 못 했지만 눈물로 부르던 찬송과 말씀을 잊을 수 없습니다.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시고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겠습니다.’ 이게 정품 사랑 아닌가요. 우리가 진짜 주님을 사랑하나요. 오늘 날 교회는 너무 변질되어서 유사품사랑을 좇아갑니다. 달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복 받고 싶다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과 예수 능력 팔아서 물질을 모으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는 것, ‘예수님 한 번만 죽어 달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 앉아 있는 동기가 무엇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잘못된 관행, 시스템을 갱신해야 합니다.

 

. 사귐

 

1.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_요한일서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_요한일서1:3’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님과 사귐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일에 예배드리는 것, 헌금하는 것, 약간의 사역을 하는 것으로 예수님을 믿는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보통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표현합니다. 경외는 공경과 두려움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계십니까?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두려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가요? 내 일이 잘 안 풀린다고 불신앙이 됩니까? 저 사람이 나를 공격한다고 나도 같이 공격할 수 있습니까? 정말 하나님을 공경한다면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말입니다.

요한 사도를 통해 믿는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기록한 성경이 요한서신입니다. 그래서 아직 믿지 않는 분들은 이 성경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 그렇죠? 신앙은 사귐이기 때문입니다. 상담을 하다보면 많이 물어보십니다. ‘행복 하고 싶어요. 축복받고 싶어요. 재앙과 저주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그래서 제가 답변을 합니다. 이 문(믿음)을 통과하시면 됩니다. ‘다른 방법은 없나요?’ 대부분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의 제대로 된 의미를 모른 채 종교 활동을 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평생 교회를 다니면서도 임종 때 예수님을 찾지 않는 분들을 많이 봤습니다. 복음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사역을 하지 않았던 분도 아닌데 말입니다. 평소에 주님과 사귐을 가져본 것이 없어서 그렇겠지요.

 

2. 사귐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_요한일서1:3-4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_요한일서1:3-4’

 

그런데 요한사도는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라고 합니다. 이것은 교회나 가족관계가 예수님과 사귐과 연결되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어떤 사귐이든 예수님과 더불어 사귀어야 합니다. 성도 간에 문제가 생기면 주님과의 사이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적어도 한주는 주님과 사귐을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해결 안 될 문제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기초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세계복음화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 힘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세상과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는 나가서 세상을 변화시키라, 변혁시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먼저 주님과 사귐을 가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런 우리를 사용하셔서 주님이 세상을 변화시키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도래합니까?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하면 됩니까? 말씀을 많이 읽으면 됩니까? 그것들이 매우 중요한 요소는 맞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말한다면 주님과 사귐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합니다.

양화진 선교사 묘역 거기에 가면 척박한 조선 땅에 와서 복음을 전한 선교사님들과 가족들의 묘지가 있습니다. 당시 조선은 성경을 들고 온 선교사들을 심하게 배척했습니다. 그리고 어린 자녀들이 함께 와서 이 땅에서 이질에 걸려 죽기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조선 땅을 사랑했습니다. 왜 그렇죠? 주님과 사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주님을 모르는 조선 땅을 마음 아파했습니다.

 

나는 사역을 하러 왔고 내가 해야 하는 일에 대해 불안이 전혀 없습니다. 그렇지만 일군이 좀 더 있었으면 합니다. 이 가련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줄 사람들이요. 그들을 어서 보내주십시오. 이 땅의 사람들이 영생을 모른 채 죽어가지 않도록 해주세요. 내가 매일 만나는 이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이 가엽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영광과, 죄에 물든 병든 영혼을 구원해 주시는 그의 능력과 그가 어떻게 우리가 고통과 슬픔과 역경을 견디어 내도록 도와주시는지도 모릅니다. _헤론의 편지 1889.12.18’

헤론은 죽기 전 자신을 향해 눈물 흘리고 있는 부인의 손을 잡고, 두 딸과 한국인 환자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위해 그의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주님을 믿으십시오!’ 그의 묘비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여러분 무엇이 하나님의 나라입니까? 저는 목회를 시작하면서 함께 비브릿지도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 한 것 아닙니다. 우리가 받은 사랑을 돌려주려고 한 것 뿐 입니다. 생색내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누구와도 비교하며 살지 말라는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전부 하나님께 놀라운 축복을 받았지 않습니까? 요한만 십자가의 사랑을 받았나요? 요한만 구원의 은혜를 받았나요? 우리도 모두 받았지 않습니까? 주님과 사귈 수 있는 축복을 우림 모두가 받았습니다. 그 사귐이 우리의 가족, 교인들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척박한 땅, 복음을 모르는 저 현장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귐이 시작될 때 그 땅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3. 사귐의 길_요한일서1:1-2, 누가복음24:32, 요한복음1:1-3,12-14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_요한일서1:1-2’

 

우리가 주님과 사귐을 가지려 할 때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사귐이 말씀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교제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미혹을 받기 쉽습니다. 그래서 신비주의가 나오기도 합니다. 영국을 살린 웨슬리목사님은 1783524일 집회에서 로마서 말씀을 들을 때 가슴이 뜨거워졌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웨슬리 목사님을 만나주신 것입니다. 고아의 아버지 죠지뮬러는 일평생 2천명의 고아를 먹여 살렸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엄청 방탕한 질이 나쁜 청년이었지만, 한 가정예배에 참석하여 말씀을 듣다가 평안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청소년집회에 참석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때 놀라운 경험을 하였습니다. 제 마음이 너무 뜨거웠습니다. 그 이후 저의 삶에 말씀을 빼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_누가복음24:32’

 

제가 신학교 다닐 때 많은 목사님들이 성경을 300구절 정도 암송하면 교인들에게 인정받고 존경한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의도로 하신 말씀인지 알지만 저에게는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말씀을 암송하는데 존경받고 인정받으려고 하나? 마치 우리 신학교에서 복음을 전해 영접을 많이 시키면 상을 주던데 그런 것과 같지 않습니까? 말씀을 그렇게 쓰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것은 보이지 않는 주님과 사귀고 동행할 수 있게 해주시려는 것입니다. 말씀을 진실하게 대하는 순간이 주님을 만나는 순간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_요한복음1:1-3’

 

저는 전도학교나 신학원 같은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사실 그것이 훈련의 전부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의존하며 살았습니다. 서울이라는 큰 도시에 와보니 그것이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는 그곳은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을 요구합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윤리적이며 신학적 이슈들까지 대면하게 됩니다. 서울에는 솔로들이 많습니다. 지방에서, 해외에서 대가족을 뒤로하고 혼자 생활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성공에 대한 스트레스, 외로움 등을 느끼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우리 가스펠 성도님들이 정말 멋지게 그리스도인으로 살려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 모든 환경 속에서도 의를 위해, 또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짜 훈련해야 것은 말씀으로 주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길이 생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_요한복음1:12-14’

 

하나님의 자녀는 혈통과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접입니다. 말씀으로 찾아오신 주님을 우리 가운데 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때 영광이 보입니다. 세상이 보지 못하는 영광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이 영광을 본 자를 말합니다. 그 영광을 보면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게 됩니다. 우리가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을 피해야 하는 것은, 그게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는데 필요한 사항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내면의 음행과 부도덕한 것들이 우리를 유혹할 때 그것을 이겨내는 강력한 무기가 무엇입니까? 바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입니다. 그 소망은 우리에게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게 해줍니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분들이 2-3시간씩 자고 예배 보러 와도 눈빛이 살아 있습니다. 그것은 입학 후에 누리게 될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소망이 없는 학생은 하루 10시간을 자도 힘들어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막 사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귐의 길은 말씀으로 소망을 가지는 것입니다.

 

. 이 책을 먹으라_요한계시록10:9-10, 요한복음6:48-50, 시편118:19-20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어라_요한계시록10:9-10’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때 천사가 직접 말씀을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밧모섬에서 유배할 때입니다. 그런데 천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말씀을 먹으면 우리 배에서는 씁니다. 왜 그럴까요? 고침을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병들이 치유를 받고, 우리 안에 죄악들이 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입은 달고 답니다. 말씀을 들을 때는 달콤합니다. 이제 내 배에 들어가도록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_요한복음6:48-50’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 했습니다. 먹으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먹는 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예수님과의 사귐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24시간 주님을 바라본다는 말이 이해가 됩니다. 모시고 살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여러분은 말씀을 먹도록 애쓰셔야 합니다. 얼마나 애써야 할까요? 얼마나 노력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살아 있어야 합니다. 저는 차에, 집 시디에, 제 핸드폰에 말씀들을 준비해놓습니다. 언제나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하기 위해 기록을 합니다. 그것이 묵상일기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나눕니다. 나눌 때 제 삶이 그 말씀 앞에 진실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면 주님과 사귐이 됩니다.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놓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대면할 때 다시 되돌아옵니다.

사실 우리 교회에 대학교 1학년들이 많습니다. 여러 지방의 교회에서 왔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반드시 확인하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정말 예수님을 믿을까? 예전에는 부모님 밑에서, 익숙한 문화에서 교회를 다녔고 훈련들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혼자 이 큰 도시에서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데 지금이 주님과 사귀고 있냐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 주님과 사귐이 있냐는 것입니다. 저들이 말씀을 들릴까?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까? 말씀에서 기쁨을 얻을까? 안 그러면 예배 말고 다른 곳에서 답을 얻으려 합니다. 돌아다녀야 합니다. 사람들의 말에 기웃거려야 합니다.

 

내게 의의 문들을 열지어다 내가 그리로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_시편118:19-20’

 

시편기자는 내게 의의 문들을 열지어다기도했습니다. 의인이 들어가는 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죗값을 대속하셔서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설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 문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게으릅니다. 세상살이는 부지런하면서, 여호와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은 못합니다. 왜 그렇지요? 영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으며, 사랑이 있습니다. 그 안에 들어가면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집니다. 저는 그 안에 들어갔기 때문에 망콴마을도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부자여서 돕는 것이 아닙니다. 의인이기 때문입니다. 그전에는 세상길을 좇아가느라 열심히 살았지만 의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제가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섬길 수 있고 가장 낮은 곳에서 섬길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 주님과 사귐이 시작되길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희망입니다.

 

주님 죄인들의 속제제물이 되어주셔서 우리를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설 수 있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과 사귐을 위해 말씀으로 오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날마다 말씀을 통해 주님과 사귐이 있게 하시며, 그 사귐의 열매가 내 교회와 가정, 삶의 현장에 하나님의 나라로 드러나게 하옵소서.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의 거짓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 하나님과 참 사랑의 교제가 시작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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