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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9 주일예배

2017-04-09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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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9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하나님을 사랑하세요?

본 문 :

요한일서 2:1-6

오승주 목사

. 나의 자녀들아_요한일서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_요한일서2:1’

 

오늘 짧은 설교 한편이지만, 사도요한의 마음 그리고 그를 통해 드러내신 하나님의 마음을 여러분이 느끼길 원합니다. 정말 사랑하는 자녀들이 범죄 하는 것을 원하십니까? 그렇지 않죠? 그것 때문에 주님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고난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젊은 목회자이지만 저 역시 벌써 신학교에 입학한지 20년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도 벌써 10년째입니다. 그런데도 사도요한의 마음이 제게 없었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고 속상했었습니다. 종교개혁시대 다시 말해 중세시대를 기독교역사에서 암흑기라고 합니다. 그 시대만큼 종교가 발전되고, 교회가 발전된 시대가 또 있을까 할 만큼 번창했습니다. 그런데 왜 암흑시대였을까요?

저는 한 목사님에게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시골 오지에 개척한 후배 전도사님을 돕기 위해 방학 때 마다 청년들을 보냈습니다. 그 지역은 교회를 가면 벌금을 물릴 만큼 유교적인 사상이 강해서 전도사님이 전도를 하려고 가면 소금부터 뿌렸습니다. 그런데 서울의 큰 교회에서 청년들을 간다고 무슨 문제가 해결이 될까요? 목사님은 처음 가는 청년들에게 절대 교회 이야기하지 말고, 절대 집회도 하지 말고 가서 인사드리고 농사일을 돕고 오라고 했습니다. 처음 가서 인사드리고 농사일을 돕는다 했지만 교회에서 온 청년들을 문전박대하여서 그냥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 또 보냈습니다. 이번에도 또 농사일 도우러 왔다니 마을 사람들이 골탕이나 먹으라고 제일 힘든 일인 고추 따기를 시켰는데 엄청 넓은 밭이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는 일도 못하고 갔는데 이게 응답이다 생각하고 청년들이 얼굴이 다 타도록 그 넓은 밭이 고추를 다 땄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 갔더니 이제 집집마다 연결되어 집에서 자면서 일손을 돕고 그렇게 3년을 했더니 마음을 열더랍니다. 그리고 그 지역의 농산물을 직거래로 서울의 성도들과 연결해서 판매를 하였고 그렇게 신앙생활 하는 분들과 시골 분들이 1:1로 연결되어져서 기도하기 시작했더니 지금은 마을의 90%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장애인, 쪽방촌, 탈북자들을 위한 NGO만 여러 개를 운영하고 계십니다. 비브릿지를 통해 망콴마을에도 희망을 전하고 있습니다. 가보신 분들은 벽돌 한 장이 왜 중요한지 알 것입니다. 그곳에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만이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혼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복음을 전하지만 그런데 실상 정말 사랑하는가 생각해봅니다. 복음을 전해서 듣지 않으면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이 아니라고 버립니다. 그것이 사랑인가요? 가만 보면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중세교회는 지도자들이 힘겨루기를 하려고 화려한 건물을 세우고, 더 많은 것으로 치장했습니다. 그러느라 가난하고, 병든 성도들을 이용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런 사람들이 교회에 오면 교회의 수준이 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교회당은 화려하고 대단했지만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에게 수차례 기회를 주었지만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저는 사실 주님과 사귐을 시작하고 제 마음이 변화됨을 너무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주님이 주인이 되시니 생각하고 사고하는 것들이 달라짐을 느낍니다. 오늘 말씀은 목회자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계시는 중직자분들에게도 정말 중요한 질문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다 중요한 질문입니다.

 

.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

 

1. 우리의 대언자 되신 예수님_요한일서2:1-2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_요한일서2:1-2’

 

십자가는 완전한 용서입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죄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걸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구원받았으니 마음대로 살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구원파 같은 이단이 나온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교리라며 완전한 용서를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노력하겠냐?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틀린 말입니다. 서커스를 보면 안전그물이 있습니다. 실수해서 떨어지라고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물 때문에 훨씬 더 안정감을 느끼고 기술을 구사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보혈의 피는 우리의 모든 죄를 다 해결해주신 완전한 은혜입니다. 그런데 이제부터 편안하게 죄짓고 살아라. 그 말인가요? 죄를 짓고 살지 않게 하시려고 완전한 용서의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근거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대언자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만일 구원받았다고 해놓고 이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면 틀린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안 되는 이유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정확한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래 걸려도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힘들어도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들이 이 부분에 대해 대충 넘어갑니다. 지금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한가요? 직분이 중요한가요?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 중요한가요? 뭐가 중요한가요.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여러분 인생의 대언자가 맞습니까? 그걸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죄인은 하나님 앞으로 갈 수 없습니다. 의인이 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그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인이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을 경력으로, 사회적 지휘로, 지식으로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회자들이 꼭 그렇습니다. 교회가 성장하면 그런 오류에 빠집니다. ‘내가 기도 많이 해서, 내가 전도 많이 해서, 내가 열심히 해서 교회가 성장했으니 내가 대단한 사람이야.’ 그래서 사울과 같이 되거나 중세교회처럼 됩니다. 우리는 다윗과 같은 마음이어야 합니다. 항상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2. 그의 계명을 지키면_요한일서2:3-4, 히브리서12:14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_요한일서2:3-4’

 

예수님이 대언자가 되신 은혜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어떻게 주님과 사귐을 알 수 있습니까? 바로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계명을 꼭 지켜야 해? 너무 불편하고 거북해. 그것이 우리의 생각입니다. 심지어 이 말씀을 보면 더 불편합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_히브리서12:14’

 

그런데 계명을 지키지 않거나 거룩함을 따르지 않으면 진리와 상관없고,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한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실 이 부분이 중요한 말씀입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 거룩함을 따르는 것 이것을 왜 하라고 하셨을까? 바로 진리를 우리 속에 주시 위함입니다. 주를 만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사실 우리는 계명을 지키고 거룩하게 사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이따금 죄짓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볼 때 무서운 느낌이 듭니다. 그런 분위기가 무섭습니다. 항상 감시하고, 비판하고, 지적하고, 야단칩니다. 왜 그렇게 되어버렸을까요? 겉으로는 죄짓지 말아야 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켜야 한다고 말하지만 마음에 기쁨과 감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사귐이 빠져있고 교리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들은 주님을 아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주님을 보는 것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계명을 지키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거룩함을 따르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3. 예수님과 사귐이 없기 때문에_요한일서2:5-6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_요한일서2:5-6’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나님은 이 질문을 끊임없이 하십니다. 그런데 그 고백을 못한다면 우리 여전히 병든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가? 왜 예수님이 첫 번째 계명으로 주 너희 하나님을 온 마음과 정성으로 사랑하라고 했나요? 우리 인생은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우리 인생을 잘 만들어서 잘 살아보려고 하지만 불가능합니다. 죄는 하나님과 단절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고 유혹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 대단하게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서 인생은 저주가 시작되었습니다. 간섭받기 싫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살고 싶다고 합니다. 그런 인생의 끝은 어떨까요? 여러분이 아시겠지요?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결정됩니다. 돈을 사랑하면 돈을 벌게 되겠고, 학문을 사랑하면 학자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나라와 연결되지는 못합니다. 영원한 행복은 주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 사랑을 넣어주길 원하십니다. 언제 가능하지요? 말씀을 지킬 때입니다. 다시 말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됩니다.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율법적으로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말씀을 사모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인생이 그때부터 온전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제대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 인생이 제대로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그전에는 불가능합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할 때 우리 인생이 온전해지기 시작합니다. 보는 것,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살아가는 것, 모든 것이 그 안에서 온전해집니다. 비뚤어진 사고가 온전해지고, 이기적인 삶이 온전해집니다. 세상의 유혹들로 물든 영혼이 온전해지고, 상처투성인 영혼이 온전해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들어오면 그때부터 제대로 된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결정됩니다_마태복음22:36-38,욥기42:5-6,12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_마태복음22:36-38’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의 사랑과 만나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들이 성취됩니다. 정말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헌금, 찬양, 예배 뭘까요? 단지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과 사랑이 만나면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첫 번째 계명으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렇게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말씀을 아무리 암송해도, 아무리 잘 적어도 사랑이 없으면 내 마음에 말씀이 담기지 않습니다. 기독교가 타락하면 교리만 남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회개도, 변화도 없습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진짜 타락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바꾸는 유일한 방법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은 무엇을 사랑하는 가로 결정되고 그 길로 가게 됩니다. 여러분 누구랑 결혼합니까? 사랑하는 사람이랑 하지요. 그런데 누가 그러더라구요.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술 먹고 실수로 사랑한다고 했는데 그래서 결혼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고생합니다. 우리 인생은 무엇을 사랑하느냐로 흘러갑니다. 그리고 결정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데 틀린 것을 사랑합니다. 제일 틀린 사랑이 무엇일까요? 자기 사랑입니다.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행복하지 못합니다. 결혼을 해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에 방향이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결혼 초기에는 안 그러잖아요? 상대방을 행복하게 해줘야지. 그런데 살면서 본색을 드러냅니다. 상대방을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마음만 분명하면 진짜 가정이 행복하겠지요. 그런데 왜 문제가 많죠? 그 마음이 진짜 마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자기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끊임없이 요구합니다. 나밖에 모르니 어렵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왜 우리에게 대언자로 오셨지요? 기독교가 이기적인가요? 왜 이기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가요?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참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하나님을 사랑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공부를 하든, 돈을 벌든, 뭐든 하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 계명입니다. 권력을 사랑하면 정치가, 돈을 사랑하면 사업가, 학문을 사랑하면 학자가 되겠지만 저급한 것을 사랑하면 저급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나는 왜 이렇지? 내 인생은 맨날 이렇지? 그렇다면 여러분 빨리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 봐야합니다. 그러니 다 뒤틀려 있는 것입니다. ‘자기만 사랑한 사람.’ 그것이 죄입니다. 서서히 망가져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 그것이 기적입니다. 그것이 인생을 바꿉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드신 것 그것이 원래 창조의 목적입니다. 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인생을 바꾸게 되는지 아시겠지요. 인생이 이제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 우리는 우리의 존재 가치를 찾게 됩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면서 하나님 자체를 잃어버렸습니다. 다른 것을 사랑하기 시작했고, 죄의 종노릇하는데 죄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마음대로 살고, 간섭도 받기 싫고 살게 했습니다. 이것이 망하는 길입니다. 타락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자기를 행복하게 해준 것처럼 생각했지만, 결과는 불행한 것입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_욥기42:5-6’

 

그러나 이 사랑이 마음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셔야 합니다. 욥을 보십시오. 욥기의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도 잘하고, 삶도 그렇게 살았지만 그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요? 고난이 올 때입니다. 평소에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나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나 진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언제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저에게도 고난을 통해서 질문을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왜 이런 어려움이 올까? 왜 이런 문제가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도할 때 알게 되었습니다. 아니 성령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는 것이 목적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결국, 어려움은 나를 고치는 하나님의 사랑이구나. 하나님만 온전히 사랑하는 경험을 하게 하시는 것이구나. 그런 깨달음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저는 그때 정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저의 소원은 한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저의 삶은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온전해짐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이 일이 여러분에게도 일어나길 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아지지 못합니다. 묵상? 새벽예배? 선교? 교사?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게 되면 말씀대로 살게 되요. 그것이 같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인생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우리 인생이 온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도, 거룩함도 좇아 살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_욥기42:12’

 

정말 하나님이 복 주시는 인생이 됩니다. 하나님은 내 것을 뺏어가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내가 더 얻게 되는 유일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독생자를 주셨잖아요. 무엇을 빼앗아가겠습니까? 사람들이 생각해요. 하나님을 사랑하면 뭔가 잃을 것 같고 뺏길 것 같고,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잘못된 것입니다. 한국 교회, 한국사회가 뭔가 잘못되었습니다. 마치 중세교회처럼 너무 병들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보시지 않겠습니까? 그 사랑을 알았던 루터나 칼빈은 말씀을 좇았습니다. 그래서 무지한 백성들을 위해 성경을 번역하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 우리의 인생은 온전해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계명이라 말씀하셨지만, 사실 초청이자 부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온전하게 살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방법이 무엇이냐? 말씀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 가운데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랑 안에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주님을 사랑한다고 해놓고 말씀과 상관없이 살거나, 혹은 말씀대로 살면서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다 거짓입니다. 두 가지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을 확인하길 원하십니다. 왜 그렇죠? 그 사랑의 결과가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그럽니다. 사랑했는데 왜 내 인생이 이 모양이냐고 합니다. 말씀대로 살았는데 왜 이러냐고 합니다. 정말 사랑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에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우리 인생은 달라집니다. 우리 그렇게 살아봅시다.

 

주님 거짓된 신앙에서 벗어나 이제 주님의 온전한 사랑을 깨닫길 원합니다. 말씀을 통해 그 사랑이 내 마음에, 내 삶에 들어오길 원합니다.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주님만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길 원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신앙생활이 시작되어 우리 인생의 결론이 하나님의 사랑이길 원합니다. 내 일생이 하나님을 사랑합니다고 고백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