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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7-05-28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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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8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본 문 :

요한일서 4:7-16

오승주 목사

 

.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_사사기2:7-10,사무엘상2:17,3:1

 

제 모교를 세우신 한상동 목사님께서는 항상 성경을 읽으면 그것을 자신의 현장에서 그대로 적용하시기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한번은 제자 중에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당시에 목사가 신사참배를 하면 감옥에 갔고 공무원이 신사참배를 하면 강제 퇴출되던 법이 있었는데 청년이 애써 들어간 학교에서 신사참배를 하자니 신앙에 걸림돌이 되고 하지 않으려 하니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 난처하다는 것입니다. 그때 목사님께서 마태복음 6장을 읽어주면서 자매도 이 말씀을 믿나요? 하나님께서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책임지시는 것을 믿으시나요? 예 믿습니다. 그럼 되었네요. 그렇게 하면 되겠네요.

또 한 번은 신사참배를 반대하여 감옥에 있을 때 형사가 몽둥이를 여러 개 준비해서 왜 신사참배를 하는지 말해보시오.’ 그때 목사님께서 마태복음 10장의 말씀을 떠올리며 진실하게 답변을 했습니다. 그 내용이 첫째, 계명을 어기게 되니 하나님이 노하시므로 할 수 없다. 둘째, 인생의 본분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인데 그렇게 못하니 할 수 없다. 셋째, 결국 교회가 없어지게 될 것이니 할 수 없다. 넷째, 강요하는 개인도 망하니 남의 망하는 꼴을 볼 수 없으므로 할 수 없다. 다섯째, 신사 참배하면 국가도 망할 것이므로 할 수 없다. 여섯째, 나 자신이 지옥 갈까 두려워 할 수 없다. 그랬더니 형사가 화난 얼굴을 바꾸어 당신의 입장을 들어보니 당신은 신사참배를 할 수 없겠군요.’ 하고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한상동 목사님께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항상 두 가지 원칙이 있으셨는데 한 가지는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감격스러워 항상 겸손했습니다. 그 사랑의 은혜를 갚기 위한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그 사랑하는 은혜를 갚는 삶은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라고 확신하셨습니다. 그는 미련하리만큼 말씀에 순종 하셨습니다. 그가 학교를 세우고, 교회를 세워 그런 신앙을 후대에 전달했는데 얼마나 많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이 그 신앙을 배워 하나님의 나라에 쓰임 받았는지 모릅니다.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_사사기2:7-10’

 

우리는 지금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요? 우리가 겪는 수많은 문제들일 수도 있겠지만 정말 두려운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대입니다. 그걸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제목을 살펴봐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가? 정말 하나님의 뜻인가? 사사기를 시작하면서 기록된 말씀입니다. 여호수아와 그 세대가 얼마나 하나님을 잘 섬겼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걸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_사무엘상2:17’

 

사무엘상에도 기록되어있습니다. 가스펠 편지로 여러분과 나누었던 내용입니다. 아버지가 대단한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래서 별 노력 없이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멸시했습니다. 그 결과는 참담합니다. 권력을 이용해 부정과 부패를 일삼았고, 세상의 죄악을 그대로 받아드렸습니다. 더 큰 죄는 백성에서 전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희미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지식이 없었을까요? 제사장 가문인데 자녀들에게 그것도 제사장을 물려받을 후계자인데 훈련을 하지 않았을까요? 정말 많은 훈련을 받고, 많은 말씀을 전해 들을 것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빠졌을까요?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_사무엘상3:1’

 

말씀이 희미하면 이상이 보이지 않습니다. 말씀은 살아 있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말씀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통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의 생명력을 잃어버리면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얼마만큼 말씀과 가까우신가요?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잃어버렸기에 이렇게 말씀과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는가요?

 

. 무엇을 잃어버렸을까요?

 

1. 하나님은 사랑이시라._요한일서4:15-16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이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_요한일서4:15-16’

 

요한서신을 통해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당신이 누구신지 정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이 말씀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구원하기에 너무 타락했습니다. 흠이 너무 많아 하나님과의 관계도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근본적인 은혜의 개입이 없으면 회복할 기회조차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의 증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독생자 다시 말해 외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오심, 죽으심, 부활하심을 복음이라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그 사랑을 알고 그 사랑 안에 거할 수 있게 된다고 하십니다. 누구든지 말입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사랑으로 찾아와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작정된 사랑입니다.

그런데 왜 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지 못할까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실제로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그런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하나님은 사랑스러운 사람만 사랑하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착하게 살고, 공부도, 사역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하면 하나님이 더 사랑해주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더 황폐해져갔습니다. 우리는 평생 이렇게 자기 의를 믿으며 삽니다. 남보다 뛰어나고, 남보다 잘나고 실력 있어야 쓰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은 무능해라, 미련해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오해해서 경험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야만 하나님이 만나주실 것이라 생각하시나요?

 

2. 진정한 구원의 역사_요한일서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_요한일서4:8’

 

진정한 구원의 역사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떤 사역의 결과, 교회의 숫자적인 부흥, 우리가 열심히 해서 얻어지는 결과 같은 거라 생각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은 것이 아닌가요? 그러나 진정한 구원의 역사는 사랑의 역사가 있는가 입니다. 무슨 말인가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무섭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해봅시다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것은 명령한다고, 강요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결심도 아닙니다. 사랑은 저절로 되어야 사랑입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셔야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처럼 사랑하게 되는 것을 구원의 역사라고 합니다.

성령을 받았다고, 기도의 능력이 있다고 하시는 분들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진짜 하신 일인지 분별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것을 봐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교만해지거나 남을 비판하고 욕심을 부리면 그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진정한 구원의 역사의 기준은 사랑입니다. 1907년 한국교회에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지금 같으면 날마다 데모해야 할 환경입니다. 너무 가난하고, 정치적으로도 문제가 많았던 시절입니다. 불평과 불만이 가득했던 시절입니다. 질병과 고난이 함께 오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하인이 주인의 돈을 가로챘다고 공개적으로 회개하기도 했으며, 주인이 그 하인에게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못했다고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구박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미워했던 것을 고백하고 회개하기도 했습니다. 요나단 고우포스 선교사님이 직접 목격하고 그의 책 [1907년 한국을 휩쓴 성령의 불길]에 상세하게 기록해놓았습니다. 제가 그 책을 읽으면서 지금은 이런 일이 왜 일어나고 있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어둠이 빛으로, 절망이 소망으로_요한일서4:9-10, 고린도전서1:27-2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_요한일서4:9-10’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나타나는가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율법주의나 형식주의에 기대어 하려는 경향이 매우 강합니다. 그것이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무언가를 드려서 즉, 윤리적 선함, 고의적인 범죄에 대한 회피, 교회와 성경에 대한 신실함 같은 것을 가지고 하나님과 협상하려고 합니다. 자세히 살펴야 합니다. 내가 하는 모든 선한 일은 나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그것들을 이용해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칭송과 부러움을 얻어내어서 결국 하나님을 움직이려는 조종간을 확보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 생각합니다. 그것이 자기 의입니다. 궁극적인 우상숭배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날마다 회개가 왜 필요한지, 왜 날마다 은혜가 필요하고 공의와 사랑이 필요한지 이해를 못합니다. 내 모습을 끊임없이 감추고 벽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_고린도전서1:27-29’

 

저는 열등감이 매우 심한 사람이었습니다. 전도사가 되어 사역을 시작했을 때 한번은 박성진 목사님께서 저를 렘넌트 대회 회의에 오라고 하셨습니다. 가슴이 뛰고 드디어 쓰임을 받는구나 생각에 밤을 새고 새벽 일찍 버스를 타고 서울 사무실 앞까지 갔습니다. 그런데 문득 지나가는 말로 하신 것이 아닌가?’ 그래서 문자를 드렸습니다. 목사님 저 이 모임에 가야 해요? 그랬더니 아니 안와도 된다. 이렇게 답변이 와서 제가 사무실 문 앞에서 되돌아 광주로 다시 내려갔습니다. 제가 열등감에서 좀처럼 회복이 되지 않을 때 고린도전서를 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 미련한 자, 천한 자, 멸시받는 자를 일부러 택하셔서 강하고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처음에는 안 믿어졌습니다. 왜 일부러 약한 자를 택해서 쓰시겠습니까? 그것도 사도바울이 쓴 편지입니다. 능력 있고 유능하고 잘난 사람을 택하면 더 크게 쓰실 수도 있잖아요. 말씀을 아무리 읽어도 은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며칠을 이 말씀을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평생 남과 비교하느라 평생 짐을 지고 삽니다. 남보다 잘나고, 남보다 실력 있어야 하고, 남보다 뛰어나야 쓰임 받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 말씀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내 안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내 성품이 아니라 예수님의 성품이 내 안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바울이 그걸 알았습니다. 자기가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을 알고 나니 완전 죄인이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곤고한 사람이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어둠속에서 빛이 보이고, 절망이 소망으로 바뀌는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말씀으로 내게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 사랑이 부흥입니다._요한일서4:12-13,사무엘상2:18,26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_요한일서4:12-13’

 

여러분 저는 별의별 기도를 다 해보았습니다. 돈 달라고, 하는 일 잘되게 해달라고, 건강 달라고, 제가 사역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잡아달라고 별의별 기도를 다 해봤습니다. 그런데 사랑을 달라고 기도하지는 않았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달라고 기도하지는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오면 미워하는 아버지를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오면 무시하던 저 사람을 존중해야 합니다. 1907년 그들은 교회에 모이면 회개하고 은혜를 구했습니다. 사랑을 구했습니다. 말씀을 사모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그럴 수 있는 힘도 주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이 내게 오면 우리는 온전하여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랑을 바라지 않습니다.

저는 요즘 저의 목회관에 대해 다시 정리하고 있습니다. 저는 굉장히 젊고 잘 갖춰진 시스템을 두고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틀리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하실지를 보아야 합니다. 그 보는 기준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님들뿐만 아니라 깨어지고 어그러진 이 세대를 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으면 저 역시 타락한 목사가 아닐까요. 우리 성도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애써 태연한 척 하지만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바닥에 엎드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이 귀한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도록 인도해주세요.’ 여러분 우리 교회가 부흥했다는 증거가 무엇일까요? 숫자일까요? 건물일까요? 아닙니다. 사랑이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는 것은 모든 가족들이 다 똑같이 동시에 우리 사랑하자, 우리 행복하자 그러자 그것일까요?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이, 예수님을 누구보다 사랑한 그 사람이 가족들을 사랑하는 일이 시작될 때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는 그것이 우리에게 너무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엘리 제사장은 아들들에게 무엇을 전해주지 못했을까요? 여호수아와 그의 세대는 다음 세대에 무엇을 전해주지 못했을까요? 율법인가요? 조직인가요? 교회 건물인가요? 풍요로운 삶인가요? 무엇인가요?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 섬겼더라_사무엘상2:18’

 

하나님 앞에 고난 중에 기도하였던 한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축복이란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무엘을 주셨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여호와의 전으로 보냅니다. 엘리 제사장 곁으로 보냅니다. 무슨 말인가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예배와 멀어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율법으로 강요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무엘이 은혜 받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쓰임받기를 너무 간절히 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후대들에게,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내 삶의 터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살아가는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간절히 기도해야 할 제목이 아닌가요.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_사무엘상2:26’

요즘 심방을 다니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예배가 너무 소중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우리 젊은이들에게 제대로 된 신앙관을 심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청년부 심방이 끝나면 청년들 중심으로 말씀학교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이 학교는 기간과 시간을 정하고, 신청을 받아 제대로 된 수업으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강사도, 수업내용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전 성도님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신청을 받아서 할 예정입니다. 말씀을 배우고, 또 그 말씀으로 살아내는 삶을 배우려 합니다. 저는 우리 다음 세대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대가 되길 원치 않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같은 목회자가 되고 싶지도 않습니다. 우리 교회가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 하나님께, 사람들에게 은총을 받길 원합니다. 점점 자라길 원합니다. 여러분 이번 한주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가 있길 기도합니다.

 

주님 주님의 사랑 앞에 서게 하옵소서. 연약하고 날마다 실수하여 넘어져도 주님 사랑 앞에 서게 하옵소서. 내 자신에게 실망하고, 세상에 실망해도 주님 사랑 앞에 서게 하옵소서. 주님의 사랑만이 완전한 사랑이며 그 사랑만이 어둠이 빛이 되고, 절망이 소망이 되기에 그 사랑 앞에 서게 하옵소서. 주님의 사랑을 깨달은 우리가 주님께 할 수 있는 유일한 고백은 주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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