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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7-06-04 주일예배

2017-06-04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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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4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심판 날과 세상에 대해 담대하라

본 문 :

요한일서 4:17-21

오승주 목사

. 사랑이 왜 중요한가요?

 

저에게 어떤 청년이 고민을 상담해왔습니다. ‘목사님 저는 복음을 듣고 정말 은혜를 많이 받고 있는데 교회에 가면 수준이 안 맞아서 못 견디겠어요. 그래서 함께 하기 너무 힘들어요.’ 정말 이 청년은 예수님의 은혜를 받고 있는 것일까요? 또 제가 전도사 시절에 가르쳤던 여학생은 항상 앞자리에서 총명하게 말씀도 듣고 노트에 빼곡하게 기록하였을 뿐 아니라 교회에서 하는 일에 빠짐이 없는 친구였습니다. 늘 저에게 와서 전도사님 제 기도수첩 좀 보세요.’ 신앙이 너무 좋아보였던 그 친구가 변화되었습니다. 예배에도 늦기 시작하더니 늘 불평하고 우울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기도수첩 자랑도 더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와 만나 대화를 하는데 충격적인 이야기를 저에게 하였습니다. ‘, 저는 예수님이 저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아요. 그렇지만 학교에서는 남자 애들이 저한테 눈길조차 주지 않는 판국에,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 이 친구는 그리스도에 대해, 복음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근사한 남자아이들의 관심이 그리스도의 사랑보다 자기에게 더 위로가 되고, 더 힘이 되고, 삶의 기쁨과 자기 가치에도 더 근본적이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제 설교와 사역의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몇 명이 모인다든지, 어떤 모습을 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구나. 아이들의 마음이 중요하구나.’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있는가요? 그리고 사랑하고 있는가요? 처음엔 사랑에 대한 설교가 무척 부담스러웠습니다. 계속해서 사랑타령 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사랑하길 원합니다. 사귀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과 사귀지 않으면 우리가 변화될 수도 없고 열매를 맺을 수도 없습니다. 다른 것은 다 포기해도 사랑은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우리 인생은 무엇을 사랑하느냐로 인생이 흘러갑니다. 우리는 이성적으로는 이렇게 살아야지 하면서도 실제로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 따라 인생이 흘러가고 열매를 맺습니다. 수박 씨앗을 심었는데 나중에 호박이 열리나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수박씨앗을 심어놓고 호박이 열리길 바라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가요? 너무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그 소녀와 대상이 다를 뿐이지 명예, 성공, 물질, 더 나아가 내 의로움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심판 날도, 세상에서도 담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단 주님을 믿음으로 의로운 자만 그걸 면하게 됩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만 면하게 됩니다.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신앙에 대한 확신조차 없이 살고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 심판 날과 세상에 대해 담대하라.

 

1. 거짓말하는 자 때문에_요한복음5:24, 요한복음1:12, 요한일서3:14, 요한일서4: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_요한복음5:24’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님의 복음을 들을 때 하나님께서 믿음을 선물로 주셔서 그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처음 복음을 들은 사람들에게 믿음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는 믿음에 대해 계속 강조하였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_요한복음1:12’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똑똑해도, 아무리 세상에서 잘나가도 믿지 않으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 것 즉, 이 땅에 오셨고 죽으셨으며 부활하심을 믿어야 그분을 마음에 영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이 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믿음에 대해 강조하던 요한 사도가 요한 서신에 와서는 믿음이란 단어를 거의 쓰지 않습니다. 갑자기 믿음을 사랑으로 바꾸어버렸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랑에 대한 설교가 쉽지 않잖아요? 그냥 계속해서 형제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는 설교가 여러분에게 별 은혜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요한일서 설교가 다 똑같지 않나?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저는 요한서신이 우리 신앙에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들과 같이 형식적이고, 말뿐이고, 죽어버린 신앙인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이 말씀 앞에 직면하시는 축복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지난 주 설교는 그런 의미에서 정말 중요한 설교입니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_요한일서3:14’

 

오늘 왜 믿음에서 사랑이란 단어로 바꾸었을까요? 거짓말하는 자 때문입니다. 믿는다 믿는다 하면서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 하는데 실제로 사랑하지 않으니 그런 사람을 거짓말하는 자라고 합니다. 왜 이것이 거짓말인가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제부터 내 생명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내 생명이시고 그분이 나의 주인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면서 마음은 여전히 미움이라는 말이 성립이 될 수 없습니다. 아직 예수님을 영접한 게 아니란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거짓말쟁이라고 사도요한이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_요한일서4:20’

 

우리가 전도할 때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믿기만 하세요.’ 라고 전하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믿기만 하면 된다는 말은 입술로 인정하거나 동의한다는 것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을 믿는 증거가 나와야 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성경에 1만 달란트 빚 진 종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즘 돈으로 환산하면 5조 정도 되는 엄청난 돈이 된답니다. 그런데 그것을 탕감 받은 사람이 100데나리온, 약 천만 원 빚 진 자를 용서하지 못합니다. 그럴 수 있나요? 그런데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내가 아무리 많은 빚을 탕감 받았어도 당장 천만 원이 아쉬울 수 있습니다. 세월이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지식적으로만 아는 사람, 그저 몇 번 들어본 사람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반드시 마음이 메말라집니다. 그 은혜에 대해 무감각해집니다. 그래서 두렵습니다.

 

2.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_요한일서4:18-19, 고린도전서13:2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_요한일서4:18-19’

 

어떤 권사님이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기는 편안하게 죽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주일 예배드리고 월요일에 죽었으면 좋겠다. 늘 그런 말씀을 저에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정말 몰라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잘 죽기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두려움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어떤 청년이 교회에서 단기선교를 가는데 부모님이 반대를 했습니다. 그래서 엄청 싸우고 갔습니다. 단기선교 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왜 부모님과 싸우고 가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러 가면서 사랑이 깨어진 채로 가는 모순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떤 분은 여전도회 회장이 상식적으로 일처리를 하지 못해 화가 나서 대판 싸웠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하나요? 물론 문제가 있으면 바로 잡아야 합니다. 그러나 싸워서 바로잡으려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오히려 싸움만 더 커집니다. 결국, 그 부모님은 구원을 멀리하고, 그 집사님은 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_고린도전서13:2’

 

교회에서 직분자를 세울 때 여러 가지를 확인하고 세웁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하나님처럼 사랑하는지는 고려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처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해요라고 아예 못을 박아버렸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헌금을 많이 하는 것도, 교회 봉사를 많이 하는 것도, 성경을 많이 아는 것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스데반집사님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죽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향해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_사도행전7:60’하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라 이것은 하나님은 구원이시라와 같은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평가하실 때 보시는 한 가지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그 사랑으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 사랑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하십니다. 그 구원을 바라보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천국을 바라보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3. 하나님을 사랑하면 사랑할 수 있습니다._요한일서4: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_요한일서4:21’

 

우리가 그 사랑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랑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저는 그 일에 간증자입니다.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 같이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게으르고 규모 없습니다. 실수투성입니다. 너무 실수를 많이 해서 익숙할 정도입니다. 가정 배경, 부모님 배경?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리 봐도 하나님께 사용될 만한 조건이 하나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때 부터 전도사가 되기까지 항상 하나님 앞에 엎드려 매달렸습니다. 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문제도, 가정문제도, 미래도 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런데 엎드려 기도해도 응답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니 하나님이 저의 마음을 바꾸어놓으셨습니다. 은혜를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새벽에 기도하러 나오면 얼마나 눈물이 나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그만 좀 울어라. 맨날 감사만 하냐? 뭐가 그리 감사해서 맨 날 찬송을 부르냐고 합니다. 네 처지가 그럴 처지가 아닌데. 그런데 새벽기도하고 나오면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커서 너무 풍성함을 느낍니다. 그런 날들이 쌓여 교회도 사랑하게 되고, 지체들도 사랑하게 됩니다. 가족들을 사랑하는 것은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니까 양보도 할 수 있고, 사랑하니까 손해 봐도 괜찮았습니다. 그 힘이 다 어디서 나오지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에서 나옵니다. 다 빼앗겨도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그 고백만큼은 빼앗기지 않으려 합니다.

 

. 하나님을 사랑함에 담대하라._요한일서4:17, 고린도전서12:31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_요한일서4:17’

 

우리가 담대한 이유는 그 사랑 때문입니다. 불신자 남편을 볼 때, 자녀들을 볼 때 어떤 마음이 드시나요? 가슴이 아프고 답답하기도 합니다. 어찌해야 할지 사실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저 그 환경에 익숙해져버립니다. 하나님이 하시겠지 하면서 기도를 놓아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진짜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구원에 있습니다. 구원이 하나님의 전부이십니다. 그래서 전부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구원을 위해 사랑하신 것이고, 사랑이시기 때문에 구원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참 많은 것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지만 사랑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신앙에 사랑이 빠져있다면 여러분 그것이 영적인 위기입니다. 사탄은, 세상은 그것만 못하게 합니다. 다른 것은 다하게 하지 않습니까? 교회를 멋지게 건축했다고 합시다. 그럼요? 우리 개인들이 성공을 했다고 합시다. 그럼요? 별것을 다해도 꿈쩍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사랑하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심판 날에 담대할 수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않을 이유입니다. 사랑하십시오. 사랑하는 일에 담대하십시다. 우리 주님을 사랑하는 일에 담대하시길 원합니다. 그러면 그 사랑 안에 거하게 되니 형제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은 역사하는 힘이 큽니다. 반드시 열매가 있습니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_고린도전서12:31’

 

사도바울이 정말 중요한 사역에 관해 12장에 말씀을 하면서 마지막으로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하였습니다. 큰 은사가 무엇이죠? 그러면서 13장에 사랑에 관해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큰 은사는 사랑입니다. 그걸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것이 없으니 편을 가르고, 그것이 없으니 분열되는 것입니다. 무조건 밥을 같이 먹어라가 아닙니다. 그런 하나 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구원을 보게 만듭니다. 구원의 은혜가 있어서 그것을 위한 삶이 됩니다. 큰 은사를 사모하기 위해 때로는 포기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저는 아내를 만나고 예전 그대로 살지 않습니다. 한빈이가 태어나고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만일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했는데도 혼자 사는 것처럼 자유를 선택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지 않나요? 무슨 말씀인가요? 더 큰 자유를 위해서 지금의 자유(방종)를 절제해야 합니다. 건강한 삶을 살기위해 기름진 음식을 절제해야 합니다. 만일 큰 병에 걸리면 강제로 그런 삶을 살게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와 사귀길 원하십니다. 사귀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 한주동안 점검해보셔야 합니다. 자녀들의 마음을 들여다보셔야 합니다. 지금 아무리 잘하고 있더라도 결국 마음에 사랑하는 대로 인생이 흘러갑니다. 그래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다른 것으로는 그 마음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으로 오신 것입니다. 말씀을 들으십시오. 은혜를 달라고 진실 되게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그저 안 된다고 포기하면 안 됩니다. 다른 것은 다 포기해도 하나님 사랑합니다.’ 만큼은 포기하면 안 됩니다. 사탄이 그걸 노리고 있습니다. 세상이 그것만 못하게 하지 않습니까? 다른 것은 다 포기해도 구원은 포기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가면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과 사랑하시는 방향으로 가면 됩니다. 심판 날에 담대하기 위해, 세상에 담대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 심판 날을 두려워하고, 세상에 속절없이 흔들리는 믿음이 아닌 주님을 사랑하는 믿음으로 담대하길 간절히 원합니다. 주님을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이제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길 원합니다. 주님과 사귈 때 담대함이 생겨나고 세상에서 승리할 힘이 생겨남을 알기에 날마다 말씀으로 내게 오신 우리 주님을 만나길 소망합니다. 주님과 사귀길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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