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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7-06-18 주일예배

2017-06-18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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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8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본 문 :

요한일서 5:6-12

오승주 목사

. 예수는 그리스도, 나의 증언_요한일서5:6-7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 했을 때 대부분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매주 예배를 성실하게 드린다든지, 헌금을 한다든지, 모임에 참석하여 은혜를 나눈다든지, 아니면 교회에 등록을 해서 맡은 역할을 다 한다든지 이런 기준들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유익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지난 주 너무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7년 전에 제가 상담을 공부할 때입니다. 그 수업에는 거의 대부분 박사과정에 있는 분들이 계셨고 또 전부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반의 대표를 맡았던 진안이라는 자매가 지난주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2년 전에 결혼도 했습니다. 사실, 그때 자매에게 신앙생활을 잘하냐고 물었을 때 교회에서 교사도 하고 청년부 회장도 한다고 해서 더 이상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너무 후회가 됩니다. 하다못해 가스펠편지라도 보내줄 걸 얼마나 후회가 되는지 모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 되셨다는 말의 뜻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실제로 그것을 체험하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사탄은 그것을 놓치도록 끊임없이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대에도 그랬습니다. 헬라 철학자들은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자들을 무시했습니다. 신이 사람이 되었다는 종교는 그들의 철학에 의하면 가장 낮은 수준의 종교였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하찮은 신이기에 사람이 되어서 십자가에 죽었단 말인가?’라고 말했습니다. 로마 정권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로마 황제 말고 그리스도, 주가 있다는 고백은 그들에게는 반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핍박과 공격에서 흔들림이 없었고 오히려 세상을 이기었습니다. 이처럼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고백은 엄청난 고백입니다. 요한 사도는 물과 피를 거쳐서 오신 분으로 묘사합니다.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_요한일서5:6-8’

 

예수님이 물로 오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신데 완전한 인간이 되셨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사람이 되셔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우리 모두의 죄를 짊어지고 죽을 수 있는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죄인입니다. 스스로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찾아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피로 나셨습니다. 이 말은 십자가에서 실제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수많은 이단들이 일어났기 때문에 피로 나신 것을 강조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기 전에 하나님의 영이 떠났다고 이단들이 속였습니다. 하나님은 죽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확하게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위해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이것을 믿는 사람이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증언으로 성령 하나님의 증언입니다. 성령께서 직접 이는 내 아들이다 라고 증언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를 고백할 때 우리 안에 내적 증거를 주십니다. 믿음을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때 영원한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옵니다. 예수님 안에 그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곧 예수님이 생명이십니다. 이 사실을 모르면 평생 육신의 생명에 묶여서 종노릇하고 살아가게 됩니다. 평생 환경과 세상에 짓눌려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복음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면 환경을 만났을 때 환경에 갇히게 되고, 상황에 직면하면 상황에 갇히게 됩니다. 사단은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속입니다. 마음도, 눈도 가려버립니다.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마치 전부인 것처럼 속입니다. 자살도 그렇지만, 반대로 성공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같은 예배 때마다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 우리가 회복해야 할 신앙

 

1. 하나님의 증거_요한일서5:9-10,고린도전서12:3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_요한일서5:9-10’

 

우리가 증거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증거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하신 것입니다. 곧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꾸 헷갈리는 것이 무엇인가요? 기적인가요? 능력인가요? 교회에서 일어나는 부흥인가요? 거기에 헷갈려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놓치면 안 됩니다. 이것은 너무 당연하고 너무 중요한 진리입니다. 교회가 다 하면서 예수님을 놓친다면 얼마나 웃긴가요? 교회는 예수님이 세우셨고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기적과 현상을 좇느라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에 대한 증언을 놓친다는 것이 말이 되나요? 그것이 타락한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교회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습니다. 세례를 베풀려고 떠놓은 성수에 파리 한 마리가 빠져버렸습니다. 사실, 별일이 아닙니다. 물을 버리고 새 물을 떠오면 되는데 그걸 가지고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한쪽에서는 파리 때문에 성수가 오염되었다고, 한쪽에서는 거룩한 성수에 파리가 빠졌으니 파리가 성화되었다고 싸웠습니다. 그냥 싸운 것이 아니라 끝없이 싸워서 성수 오염파, 파리 성화파가 생겼습니다. 그렇게 싸우는 동안 회교도의 침공을 받아 멸망했습니다. 1910년 러시아가 공산화가 될 때도 그랬습니다. 바늘 하나를 손에 들고 바늘 끝에 천사가 몇이나 앉을 수 있는지 몇이나 설 수 있는지 그런 것들을 연구했다고 합니다. 그런 와중에 공산화가 되었고 하나님은 없다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무지할 때 이렇게 됩니다. 저런 황당한 일들이 우리에게는 없나요? 세상살이에 빠져 영적으로 눈이 어두워지면 하는 이야기가 뭐죠? 전부 옛날이야기입니다. 지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_고린도전서12:3’

 

세상의 논쟁에 쉽게 흔들리는 이유는 예수는 주라 시인하는 것을 놓치는 것입니다. 본질을 놓치게 만드는 비본질에 생명을 겁니다. 그러니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하고, 또 자신을 죄를 해결하러 찾아오신 예수님을 보질 못합니다. 예수님의 증언을 듣지 못하니 그럴 수 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증언을 통해 날마다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2. 풍요로운 신앙으로_요한일서5:11,요한일서1:3,요한복음10:10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_요한일서5:11’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그것들로 풍요롭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영생과 그 생명이 예수 안에 있는 것을 깨달아 풍요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오해합니다. 마치 예수를 믿으면 세상에서 성공하는 그런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반대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세상을 보지 않게 됩니다. 거들떠보지도 않게 됩니다. 왜 그렇지요? 세상이 중요치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 그 영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_요한일서1:3’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_요한복음10:10’

 

은혜를 모르면 세상적인 풍요로움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기독교가 타락하면 그렇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풍요로움은 은혜를 말합니다. 예수님과 사귈 때 생기는 은혜입니다. 그 은혜가 우리 마음과 영혼을 살립니다. 그 은혜가 우리 삶을 지탱해줍니다. 그 은혜로 가정과 세상을 섬기게 됩니다. 그 은혜로 모든 것을 극복합니다. 그래서 더욱 풍성해집니다. 생명이 풍성해지면 어떻게 되지요? 드러나고 나누게 됩니다. 풍성하면 표현하게 됩니다. 기쁨이 있고, 감사와 찬송이 나오게 됩니다. 생명이 풍요로워지면 논쟁하지 않습니다. 생명이 풍요로워지면 생명 없는 곳이 보이기 때문에 예수님처럼 현장에 대해 안타까움이 생깁니다. 생명으로 풍요롭게 되도록 함께 기도해야겠습니다.

 

3. 구체적인 나의 신앙생활_요한일서5:12,마태복음9:10-13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_요한일서5:12’

 

우리는 이제 풍요로운 생명을 위해 구체적인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 생명이 있고 없는 자에게 생명이 없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구체적인가요? 매일 이것을 확인해야합니다.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_마태복음9:10-13’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은 그걸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신앙의 규범, 규율, 규칙은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영적인 것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오셨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잘하고 있다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식사하는 것을 보고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유대인인 예수님이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느냐?’ 예수님께서 건강한 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냐? 병든 자에게만 필요하다. 너희는 건강하다고 생각하냐? 나는 제사를 원하지 않고 긍휼을 원한다. 그것을 배워야 한다.’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제사가 중요한가요? 긍휼이 중요한가요? 부모님께 집도 사드리고, 용돈도 주는데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보세요. 내 자녀가 그렇다면 정말 슬픈 일이고, 끔찍한 일입니다. 우리의 예배가 정말 보기 좋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께 은혜를 받으려는 긍휼함이 없다고 생각해보세요. 그것은 죽은 예배나 마찬가지입니다. 은혜를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이 없으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는데 우리가 그런 간절함이 없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주지 않을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지금 자신들이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지 그 이유조차 몰랐습니다. 영생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영혼구원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영적으로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위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우 이 부분에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왜 그렇지요?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몇 가지 제안을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 영적 무지를 떨쳐야 합니다. 영적으로 무지하면 계속해서 다른 것에 마음과 생각을 빼앗깁니다. 마치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래서 말씀을 가까이 하시길 바랍니다. 영적인 무지를 떨치는 방법은 말씀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신앙은 성숙해집니다. 말씀이 여러분을 풍성하게 하도록 주변을 에워싸게 하십시오. 모르면 물어보시길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신학교수를 준비하는 목사님도 계십니다. ‘호질기의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병이 있는데도 의사 앞에 보여 치료받기를 꺼린다는 뜻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구원이 중요합니다. 체면이나 지위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가정에서도 아이들에게 말씀을 읽어주고 설명해주길 바랍니다. 서로 포럼 해야 합니다.

두 번째, 영적 예배를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예배는 영화한편 보는 것, 동호회 모임 하는 것, 커피 한잔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경배하는 시간입니다. 영과 진리로 드려야 합니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드려야 합니다. 그랬더니 그것을 겉모양으로 해석해서 바리새인처럼 예배합니다. 예배를 회복한다는 것은 예배에 은혜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예배를 항상 준비해야 합니다.

 

. 예수를 나의 구주삼고_로마서8:15, 요한복음10:27-28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_로마서8:15’

 

F.J. 크로스비는 매일 주님을 찬송했습니다. 그것이 뭐가 대단하냐? 라고 반문하실 수 있습니다. 겨우 찬송 좀 한다고 삶이 변화될 것 같은가? 겨우 구원에 감사 좀 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네 확실하게 달라집니다. 우리가 양자의 영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찾으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_요한복음10:27-28’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한다는 것은 오늘 내 삶에서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음성을 듣는 것에 매우 구체적이고 사실적이어야 합니다. 다른 것은 사실 대충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생과 관련이 있는 영적인 일은 대충 하면 안 됩니다. 멸망과 관련이 있고, 내세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 그것이 알고 싶다에 어린 아이를 살해한 여고생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여고생이 대범하게 계획을 세우고 어린 여자 아이를 납치해 처참하게 살해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상한 커뮤니티에 가입하여 활동한 사람입니다. 그곳 세계가 진짜 세계인줄 알고 그 사랑스러운 아이를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살인한 것입니다. 마약중독 된 사람들, 음란에 중독된 사람들, 돈에 중독된 사람들, 성공에 중독된 사람들, 멸망인지 모르고 가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네 인생에 무서워하는 종의 영이 아닌 양자의 영을 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자녀의 자리로, 하나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구원으로, 멸망으로 가는 인생이 아닌 생명의 길로 갈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여러분 복음을 쉽게 생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크로스비는 그것을 알고 매일 찬송을 했습니다. 어려움이 왜 없었겠습니까? 눈이 안 보이는 장애인이었는데요. 그런데 그가 뭐라고 찬송을 했는지 아시지요. ‘예수를 나의 구주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온전히 주께 맡긴 내 영 사랑의 음성을 듣는 중에 천사들 왕래 하는 것과 하늘의 영광 보리로다 주안에 기쁨 누리므로 마음이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곳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아멘.’ 이런 사람을 세상이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주안에 기쁨 누리므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곳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런 간증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일들이 매일 내게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상황과 환경에 빠져들지 않고 기쁨과 감사가 내 삶을 에워싸게 될 것입니다.

2013년에 블랙가스펠이라는 기독교 다큐멘터리 영화가 나왔습니다. 가수 양동근씨도 나와서 보게 되었는데 동갑내기 친구 세 명이 뉴욕의 할렘으로 가면서 흑인음악의 뿌리가 되는 블랙가스펠을 배우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뉴욕 할렘에 도착해서 거기서 나름대로 마이크 좀 잡았다고 자부하는 한국 청년들과 합류하여 할렘 사람들과 콘서트를 준비하게 됩니다. 다들 노래 꽤나 하는 사람들인데 블랙가스펠의 대가인 위다 하딩을 만나면서 변화가 됩니다. 첫 수업부터 엄청 깨집니다. 선생님이 한 사람씩 예수를 나의 구주삼고를 불러보라고 하는데 노래를 하다가 중간에 노래를 딱 끊고는 무섭게 혼을 냅니다. ‘당신은 노래를 너무 잘하고, 목소리도 좋네요. 그런데 그게 다예요! 노래만 잘해요!’ ‘내 반주는 듣지 않고 자기 노래만 집중하잖아요? 반주자와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이런 식으로 한 사람씩 혼을 냅니다. 또 한 사람은 노래를 부르면서 손을 흔드는데 신경질적으로 지적합니다. ‘손을 왜 흔드는 거예요? 당최 그 손짓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겠어요?’ 하딩 선생님의 지적은 그들이 겉멋만 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딩 선생님은 헛 멋이 든 제자를 가르치는 스승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여러분은 노래를 정말 잘해요. 테크닉은 완벽해요. 그러나 그게 잘못된 점이예요. 잔기술로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는 없어요.’ 그러면서 그들이 깨달아갑니다. 나중에 그들이 나 같은 죄인을 부르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저도 같이 울었습니다. 그들의 태도가 달라지고 영감 있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영화를 보면서 제 모습, 또 우리 단체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딩 선생님 같은 지도자가 있을까? 겉멋이 들어 손짓하는 것은 가르치면서 진실 되게 믿는 것은 가르치지 못하는 교회. 저는 우리 교회가 정말 영적인 부흥이 있는 교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힘들고 어렵다는 말은 아직도 예수를 나의 구주삼고가 내 영혼에서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래 걸려도, 꾸중을 들어도 그 영화의 주인공들이 눈물로 불렀던 찬송을 우리도 부르는 인생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그렇게 저는 생각했습니다. 저라고 얼마나 거룩하고 얼마나 제대로 살겠습니까? 그래서 매일 단 하루도 주님이 아니면 안 되기 때문에 주님을 붙잡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가정에, 우리 교회와 예배에 이런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매일 나의 구주 삼길 기도합니다.

 

주님 예수는 그리스도의 증거가 내 안에 항상 일어나길 원합니다. 이론적인 신앙생활이 아닌, 겉모양의 신앙생활이 아닌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구주가 되며, 내 생명이 되며, 내 능력이 되어 내 영혼이 그 은혜로, 그 생명으로 풍요롭게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을 따라 생명의 길 가는 살아있는 신앙생활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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