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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6 주일예배

2017-08-06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2017-08-06 주일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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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6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본 문 :

마가복음 1:12-15

오승주 목사

. 성령이 내모시는 광야_마가복음1:12, 디모데후서2:1-7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_마가복음1:12’

 

성령이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셨습니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것은 이 세상에서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시절 태권도 도장에 가게 되었습니다. 운동을 워낙 좋아했기에 열심히 했습니다. 그렇게 중학교에 입학할 때 태권도 선수가 되어보라는 권유를 받고 선수생활을 잠시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는 그런 운동이 아니었습니다. 선수생활은 너무 달랐습니다. 학교 수업 전에도 기초체력을 위해 운동을 했고 마치면 6-7시간 기본발차기, 겨루기 같은 것들을 계속 반복했습니다. 너무 괴롭고 지루한 훈련으로 많은 친구들이 그만두기도 했습니다. 다 알고 다 할 수 있는 발차기를 왜 매일 반복하여 시키는지 불평하고 있을 때 사범님이 해주신 이야기를 잊지 못합니다. ‘승주야 태권도 시합에 가면 할 수 있는 것이 앞차기, 돌려차기, 뒤차기, 내려찍기 겨우 4가지 기술뿐이지만 매일 반복하는 이 훈련을 하는 너희들과 체육관에 와서 놀다가는 저 친구들과는 다르단다. 1단의 발차기와 9단의 발차기가 다르듯이 지금은 힘들게 반복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시합에 가면 느낄 수 있을 거야.’

저는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도, 복음운동을 할 때도, 제게 맡겨진 일을 감당할 때도 결코 타고난 재능이 아닌 성실함으로 반복할 때 제 것이 된다는 것을 그때 배웠습니다. 그것은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쉽게 복음을 안다고 말합니다. 깨달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를 만나거나 인간관계에 갈등이 생기거나 이익과 손해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봤습니다. 그뿐인가요?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았다고 흥분하고 소리를 지르고 그랬던 사람들이 지금은 예수님과 상관없이 살기도 합니다. ‘안다고, 알고 있다고 그렇게 쉽게 말해버립니다. 은혜도 받아봤다. 복음도 경험해봤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다 안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런 분들은 늘 새로운 답을 찾아다닌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주신 예배, 말씀, 기도는 하찮게 생각하지요. 얼마나 사랑하고 있을까요? 그 은혜를 얼마나 경험하고 또 사모하며 살아갈까요?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안에서 강하고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_디모데후서2:1-7’

 

바울은 제자 디모데에게 은혜 안에서 강하라고 하면서 군사나 경기하는 자, 농부를 비유로 들었습니다. 모두 성실하게 훈련한 사람들입니다. 성실하게 훈련하여 열매를 맺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훈련시키십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승리하며 살길 원하십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그 길을 스스로 가신 것입니다.

 

. 광야에서 사십일

 

1.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_마가복음1:13,마태복음4:1-10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_마가복음1:13’

 

마가는 당시 독자들이 잘 아는 구약 성경의 역사와 예수님의 삶을 서로 교차시키고 있습니다. 저도 설교를 하면서 자주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저는 이번 주 디모데후서와 교차하여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주 본문에 창조세계를 교차시켰다면 이번 주는 사탄의 유혹입니다. 사탄은 에덴동산에서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습니다. 그런 사탄이 이번에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셨고 성령은 비둘기 같이 내려오셨으며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 뒤로 창세기와 같은 패턴이 이어집니다. 하와에게 그러했듯이 광야에서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며 유혹을 견디셨습니다. 특히 마가는 예수님이 들짐승과 함께 한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실제로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붙잡히면 들짐승의 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겨우 살아남은 자들이 신앙을 버리고 싶은 유혹에 시달렸습니다.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실패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과 깊은 관계 속에서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은 그리스도인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광야는 곧 전쟁터입니다. 광야에서 받는 유혹은 비인격적인 힘이 아닙니다. 유혹의 배후에는 실질적인 적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마가는 사탄을 가공의 인물이 아닌 실존하는 인물로 다룹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사탄을 상징적인 존재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초자연적이고 영적인 실제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악에 대한 개인적인 책임을 사탄에게 미루는 모순적인 태도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사탄은 믿지 못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실패하도록, 멸망하도록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합니다. 온갖 유혹을 다 동원하여 성삼위일체 하나님에게서 떨어트려 놓으려 합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예수님은 친히 사탄의 유혹을 받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에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 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으니라 하시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으니라 하시니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으니라 _마태복음4:1-10’

 

에덴동산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 그것만큼은 내 말에 따르거라. 따먹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그런데 사탄의 유혹을 받은 하와는 왜? 라고 질문합니다. 하나님은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저 나무의 열매만큼은 먹지 말아라. 저 나무에 대해서는 순종하거라 그러면 너는 살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유혹에 넘어가 실패했습니다. 인간에게 끊임없이 찾아오는 유혹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에게도 같은 시험을 합니다. ‘아버지만 영광을 받고 너는? 너의 실속을 챙겨. 너도 창조주인데 왜 십자가의 길을 너 혼자만 가야 하는 거야.’ 신기하게 유혹이 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시험당하는 분들의 첫 번째 특징은 말씀을 듣지 못합니다.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혹을 어떻게 물리치셨나요? 철저하게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부분을 기억해야 합니다. 당장은 손해 볼 것 같고, 당장은 이익을 놓쳐버릴 것만 같은 유혹들 앞에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나요? 말씀입니다. 말씀이 영혼과 마음, 삶에 각인되어 있으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말씀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2. 천사들이 수종들더라_마가복음1:13,마태복음4:11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_마가복음1:13’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_마태복음4:11’

 

그 이후에는 천사들이 수종을 들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광야의 시험을 거친 신앙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깊이가 생겨나고 성숙함이 생기면 그렇습니다. 천사가 수종을 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천사가 수종을 드는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입니다.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예수님께서 하셨던 모든 사역이 천사가 수종을 드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광야를 거쳐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광야를 거치지 못하니 항상 제자리걸음입니다. 마치 태권도 도장을 한 달 다니고 배울 것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독서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읽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반짝하는 사람들은 다 아는 것처럼 말합니다. 다 해본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그 깊이를 모릅니다. 신앙은 깊이가 생명입니다. 스스로 나는 깊이 있어한다고 깊이가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정말 왕으로 내 삶에 자리 잡는 것이 깊이입니다. 그런 깊이를 가지면 우리의 삶은 자연스럽게 변화됩니다. 수많은 유혹이 와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영적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보는 눈도 달라집니다. 영적인 눈이 열리기 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말도, 행동도, 무엇보다 삶의 가치관이 바뀌게 됩니다. 천국을 사모하며 살게 됩니다. 앞으로 예수님의 공생애를 살펴보면서 우리의 삶도 바뀌길 기도합니다.

 

3. 요한이 잡히신 후에_마가복음1:14,이사야9:1-2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_마가복음1:14’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_이사야9:1-2’

 

더 놀라운 것은 요한이 잡힌 후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것은 많은 신학자들의 의견을 비추어볼 때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의 사역을 귀히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촛불과 같았던 요한이 잡히고 다시 말해 구약의 촛불들이 다 꺼지고 흑암이 덮일 때 예수님께서 빛을 비추기 시작하십니다. 이사야의 예언에 보면 멸시를 당하였던 땅 후에는 그것보다 더 못한 해변 길, 이방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나신 땅입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들은 큰 빛을 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됩니다. 참 놀랍지 않습니까? 요한이라는 촛불마저도 사라질 때 빛 되신 그리스도를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아직도 세례요한을 붙잡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요한을 붙잡고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가끔 세례요한과 같이 내 뒤에 오시는 분들 만나라고 외치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교회이든, 사람이든, 단체든, 무엇이든 말입니다. 정말 그것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문제인 것은 예수님을 너무 잘 전했지만 예수님을 전해준 목사나 교회, 단체가 우상이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여야 합니다. 오직 예수일 때 우리 인생에 빛이 비추기 시작합니다.

 

.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_마가복음1:14-15,

디모데후서3:1-5,14-17,4:1-8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_마가복음1:15’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며 사는 인생이 되는 것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오직 예수가 되는 삶입니다. 그것이 아니면 우리가 훈련 받을 이유도 없을 것이며, 성령께서 우리를 광야로 내모시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 삶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군사, 경기하는 자, 농부로 훈련 받아 은혜 안에 강해야 하는 이유를 사도바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여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_디모데후서3:1-5’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분명 죄로 물든 세상입니다. 그 배후에 사탄이 조정 하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항상 깨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깨어 있기 위해 우리는 분명 훈련이 필요합니다. 세상이 저렇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그렇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막상 세상에 살다보면 유혹이 스며드는데 막을 힘이 없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부인하는 것입니다. 다들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성경도 읽지만 믿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실제로 영혼이나 마음이 변화되지 않는 것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훈련해야 할까요?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_디모데후서3:14-17’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계시지요? 그런데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순종입니다. 믿음이지요. 많은 분들이 예배를 드려도 거기서 끝나버립니다. 깊이가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시나요? 사도바울은 말씀이 구원과 관계있다고 합니다.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말씀이 주인이 되는 삶입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광야로 우리를 내몰아 훈련시키십니다. 오직 예수, 오직 말씀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때부터 천사가 수종을 드는 인생이 됩니다. 사도바울이 말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할 것이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할 것입니다. 선한 일이 무엇인가요?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_디모데후서4:1-2’

 

이것이 천사가 수종을 드는 삶입니다. 말씀을 전파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힘쓰는데 오래 참고 가르쳐서 권해야 합니다. 왜 그렇지요? 그것이 하나님 나라에 입성할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지 못하는 삶이 오래 지속되지 않으시나요? 그건 분명 문제가 있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광야에서 유혹을 당하고 물리치시며 40일을 보낸 후 첫마디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입니다. 우리가 이 증인으로 살아야 하는데 어쩌면 우리는 여전히 광야 이전의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는 마가복음의 설교를 시작하면서 정말 중요한 기도제목을 붙잡아야 하겠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_디모데후서4:7-8’

 

그렇게 산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제 주변에 어떤 분은 저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살면 뭐가 이익인가요? 정말 뭐라고 답변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어있는데요. 그런 분들은 뭐든지 물질적으로, 뭐든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대가를 원합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훨씬 더 사랑하니 아무리 의의 면류관을 이야기해줘도 이해를 못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들이 말하는 축복도 받지 못합니다. 신앙생활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에 다 태권도 한 달 다닌 사람처럼 살기 때문입니다. 불평, 불만, 비교, 원망 이런 마음이 가득합니다. 사탄의 유혹이 가득한 광야를 통과하지 못하면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멋지고 아름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공생애 기간 내내 영혼을 살리는 발걸음을 걷고 싶지 않으십니까? 우리가 갈릴리처럼 연약해도 예수님을 모시면, 바라보면 빛나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주님 우리는 연약해서 아담과 하와처럼 사탄의 유혹을 쉽사리 물리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로 직접 가셔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시고 천사가 수종을 들어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을 가지길 원합니다. 예수님을 가까이 모시고 따르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인생에 펼쳐진 광야의 훈련을 통과하여 깊이 있는 신앙, 믿음을 지켜 의의 면류관을 바라는 신앙을 가지게 하옵소서. 오직 예수가 되어 하나님의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축복된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