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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3 주일예배

2017-08-13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2017-08-13 주일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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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3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예수님을 따르라

본 문 :

마가복음 1:16-28

오승주 목사

. 알지 못하면 행할 수가 없습니다_마가복음1:15,호세아4:6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_마가복음1:15’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_호세아4:6’

 

어떤 잡지에 올린 기고문에 보니 요즘 스승만 있고 제자는 없는 시대라고 하였습니다. ‘부모도, 선생님도 필요없다 인터넷이면 된다이런 식의 문제를 지적하는데 좋은 글이라 생각하면서 읽었습니다. 저는 참 좋은 스승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불량한 친구를 만나 나쁜 길로 간다면 마음이 어떨까요? 잘못된 사상을 가진 스승을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에 방송에서 남편이 달라졌어요이런 프로에 보니 동남아시아에서 시집온 아내의 이야기가 그려졌는데 남편이 평소에는 얼마나 자상하고 좋은지 모르는데 술만 먹으면 화를 참지 못하고 때리고 폭언하고 그래서 아이도 폭력적이게 되고 보다보니 화가 났습니다. 아이를 보면서 부모도 잘 만나야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사이비교회에 갔다고 생각해보세요. 좋은 교회를 만나는 것도 매우 축복입니다. 저는 부끄럽지만 우리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도록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처럼 큰 축복이 어디 있을까요? 사실 우리교회는 이상한 분들이 좀 많으신데요. 정말 멀리서 교회에 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제일 멀리서 오시는 분은 반주하고 계시는 송이자매인데요. 처음에 연락이 오셨어요. 교회에 오시겠다고. 생각 없이 오세요. 했는데 지역을 보니 천안이라는 거예요. 좀 심하잖아요. 그리고 너무 멀어서 몇 번 오시다 말겠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학생들이 천안에 있으니 그 친구들 사역하러 가면서 송이씨도 만나봐야겠다고 하고 간 거예요. 갈 때 이렇게 송이씨에게 할 말을 정해놓고 갔습니다. 가까운 교회 가시라고. 그런데 그날 송이씨가 목사님 저는 좋은 교회를 다니고 싶어요. 목사님 말씀에 은혜를 이미 받고 있어요. 그러니까 오지 말라고 하지 마세요.’ 미리 선수 쳐서 대답을 하시는데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날 윤전도사님이랑 차타고 오면서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까운 교회가 좋은 교회라 한다면 대학도 집 옆에 대학 가면 좋은 건가요. 그건 아니잖아요.’ 맞다. 제주도에서도 시골에서도 서울에 있는 대학 오려고 얼마나 열심히 합니까. 왜 그렇죠? 좋으니까. 좋은 건줄 아니까 가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면 못가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면 절대로 행할 수가 없습니다. 맛집도 마찬가지잖아요. 제가 새벽마다 일어나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을 왜 가지는지 아세요? 좋으니까요. 너무 좋으니까 그 시간에 하나님께 모든 축복과 힘을 공급받으니까 그걸 경험해서 잘 아니까 행하는 것입니다.

 

.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면

1. 나를 따라 오너라_마가복음1:16-20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_마가복음1:16-20’

 

예수님께서 몇몇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 오라고 하셨습니다. 과연 제자들이 무엇을 보고 예수님을 따랐을까요? 그냥 따른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생업도, 삶도 다 내던지고 따랐잖아요. 완전 제자가 되기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그들이 예수님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례요한을 통해서 전해들은 예수님이야기, 광야생활을 하셨던 예수님을 알았던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그 당시에 세례요한이 잡혀가고 어쩌면 예수님이 유일한 소망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이면 이 나라를 해방시켜주실 것이다라는 큰 기대감이 아닐지라도 최소한 내가 이 생활에서 벗어나 조금 더 나은 수준의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이 그들에게 직접 나를 따라오라 하였을 때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던 것은 예수님의 권위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마음속에 세례 요한이 해준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인생 최고의 선택을 한 셈입니다.

 

2. 왜 따르지 못할까요?_마가복음1:21-24,호세아4:8,10,6:1-3,4,6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_마가복음1:21-24’

 

예수님께서 회당으로 가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십니다. 사람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입니다. 다른 제자들처럼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분명하게 나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단지 귀신 들린 한 사람의 이야기 아닙니다. 마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를 표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귀신들린 사람이라 흔히 생각하면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모시지 않는 사람들은 누구를 모시고 살아갈까요? 복음을 듣고서도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요?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반문한 귀신들 때문은 아닌가요.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백성들 마음과 삶에 귀신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요.

 

그들이 내 백성의 속죄제물을 먹고 그 마음을 그들의 죄악에 두는도다_호세아4:8’

 

호세아에 보면 조금 더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속죄제물을 먹으면서도 그 마음은 죄악에 두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이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며 음행하여도 수효가 늘지 못하니 여호와를 버리고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니라_호세아4:10’

 

그래서 오는 재앙이 무엇입니까?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음행을 하여도 수효가 늘지 않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여호와를 버리고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늘 축복만 받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재앙을 내리시면 원망부터 합니다. 제가 아는 분이 강아지를 키웠는데 강아지가 너무 예뻐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밥 먹을 때, 간식 먹을 때마다 강아지가 와서 애처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면 안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먹는 것을 다 줬는데 나중에 이 강아지가 아팠습니다. 사실 강아지는 온통 먹을 생각뿐이잖아요. 강아지가 인생을 설계하고 그런 거 할 줄 아는가요? 오직 먹을 것 때문에 사람 앞에서 알짱거리잖아요. 그래서 병원에 갔더니 위암이 걸린 것입니다. 강아지가요. 그래서 그분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뭘 먹이면 안 되는지, 뭘 먹여도 되는지 지식이 없이 내키는 대로 사랑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 사랑이 강아지를 죽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재앙을 내리시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힘써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_호세아6:1-3’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를 합니다. 재앙이 왔다고 문제가 왔다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자 그런 것입니다. 이 성경구절은 정말 유명한 성경구절입니다. 수련회 때 암송하는 성경구절로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은 그저 말뿐이었습니다.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해놓고 그들은 제사만 드렸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 있으면 예배드리고 또 괜찮아지면 다시 돌아가고 그렇지요.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요?

 

에브라임아 내게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같도다_호세아6:4’

 

하나님께서 탄식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이게 무슨 말씀인가요? 너희가 지금 제사도 드리고, 번제도 드렸는데 내가 너희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왜 인줄 아느냐? 너희 마음이 여전히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전혀 변화되지 않았어. 너희는 지금 말로만 하고 있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안개)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_호세아6:6’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은 인애입니다. 그리고 말이 아닌 정말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렘넌트대회를 하면서 두렵고 떨리는 순간이 정말 많았습니다. 걱정스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관심 가지고 있는 것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이구나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자신들의 삶으로 돌아가 여전히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살아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당한 재앙 때문에 제사를 드렸지 하나님이 자신들을 향해 정말 무엇을 원하시는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3. 누가 나의 왕인가_마가복음1:25-27 호세아4:6, 7:1-3, 8:4, 14, 아모스8:11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_마가복음1:25-27’

 

예수님께서 귀신을 꾸짖으십니다. 그리고 더러운 귀신에게 나오라 명하십니다. 예수님은 귀신과 동급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왕이십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아는 척 하면서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서로 수군거립니다. 그리고 그뿐입니다. 거기서 멈춰버립니다. 그들은 여전히 귀신을 섬기고 살아갑니다. 우상을 섬기고 살아갑니다. 왜 그럴까요? 당장은 귀신이 주는 것이 더 좋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_호세아4:6’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할 때에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이 드러나도다 그들은 거짓을 행하며 안으로 들어가 도둑질하고 밖으로 떼 지어 노략질하며 내가 모든 악을 기억하였음을 그들이 마음에 생각하지 아니하거니와 이제 그들의 행위가 그들을 에워싸고 내 얼굴 앞에 있도다 그들이 그 악으로 왕을, 그 거짓말로 지도자들을 기쁘게 하도다_호세아7:1-3’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하나님을 잘 안다고, 아는 척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치료하시려고 할 때 그들의 악이 드러났습니다. 그들의 진짜 모습입니다.

 

그들이 왕들을 세웠으나 내게서 난 것이 아니며 그들이 지도자들을 세웠으나 내가 모르는 바이며 그들이 또 그 은, 금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었나니 결국은 파괴되고 말리라_호세아8:4’

 

하나님께 돌아가자고 제사도 드리고 번제도 드렸지만 실제로는 자기들 마음대로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이 땅을 회복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실제는 자기들의 우상을 세워갔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이를 잊어버리고 왕궁들을 세웠으며 유다는 견고한 성읍을 많이 쌓았으나 내가 그 성읍들에 불을 보내어 그 성들을 삼키게 하리라_호세아8:14’

 

결국 하나님을 멀리합니다. 하나님의 치료가 아프니 그것을 거부하고 하나님이 주신 축복인지도 모르고 그것들을 가지고 왕궁을 세우고 견고한 성읍을 쌓습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_아모스8:11’

 

어떻게 예수님을 직접 만났으면서 따르지 못하냐 그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나 오늘 말씀은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아름답고 거창하게 꾸민 교회당을 지어놓고 거기서 예배드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헌금 좀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줄 아는가 봅니다. 교회가 숫자적으로 부흥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줄 아는가 봅니다. 그래서 어려울 때, 힘들 때 그렇게 눈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찾던 그 마음을 다 잊어버립니다. 우리에게 기근이 있음을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물이 있다고, 양식이 많다고 기근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없는 것이 곧 기근입니다. 아무리 집이 부자고 잘 살아도 사랑이 없으면 그 집에 기근이 있는 것 아닌가요?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기근입니다.


. 오늘 살 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라_마가복음1:17,시편42:1-2,3,잠언8: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_마가복음1:17’

 

지금 만왕의 왕 되신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저는 신학교에 입학하고 늘 불렀던 찬양이 있습니다. ‘목마른 사슴 시냇물을 찾아 헤매 이듯이 내 영혼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새벽에 기도할 때도, 수업에 들어가기 전 교실에 앉아 있다가도 이 찬양이 떠오르면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의지하는 가족과 떨어져 홀로 부산에서 공부를 했던 터라 더 하나님의 은혜가 갈급했던 것 같습니다. 2절은 더 순수합니다. ‘금보다 귀한 나의 주님 내게 만족 주신 주 당신만이 나의 기쁨 또한 나의 참 보배 주님만이 나의 힘 나의 방패 나의 참 소망 나의 몸 정성 다 바쳐서 주님 경배합니다.’ 이 가사의 배경은 시편 42편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_시편42:1-2’

 

시편 기자가 왜 이렇게 절박한 마음으로 노래하는지 그 이유가 3절에 나와 있습니다.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_시편42:3’

 

바로 이 상황이 딱 오늘 한국 교회의 현실이 아닌가요? 아니 우리네 현실이 아닌가요? 부흥의 시대와 영적인 기근 시대를 무엇으로 분별할 수 있을까요? 건물인가요? 숫자적인 부흥인가요? 그런 것들이라면 중세시대가 가장 부흥하는 시대가 아닌가요? 그렇다면 호세아에 나오는 것처럼 왕궁을 짓고 견고한 성읍을 지어 제사를 드리는 시대가 부흥의 시대가 아닌가요? 지금 우리 교회들은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사람이 더 중요한 형세 아닌가요? 눈에 보이는 목회자를 귀히 여기는 것도 좋지만 그것이 지나쳐 하나님의 말씀보다 목회자를 더 사모한다면 그것이 병든 것이고 기근입니다. 인간은 모두 연약해서 믿을만한 존재가 못됩니다. 누구든 자꾸 떠받들어주면 100% 변질됩니다. 인간은 긍휼의 대상이지 존경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_잠언8:17’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얼마나 유명하고 얼마나 큰 교회의 목사인지, 얼마나 성공한 사람인지로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주어진 삶이 작고 보잘 것 없을지라도 그 속에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사모하는 자를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영적으로 기근 시대에 정말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온 맘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땅을 고칠 길이고, 우리 가정을 살릴 길이며, 교회를 회복할 길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 말입니다. 그것이 더디 보이고 어리석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 따라 가는 것이 결국 사람을 살리는 인생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