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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0 주일예배

2017-08-20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2017-08-20 주일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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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0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본 문 :

마가복음 1:29-45

오승주 목사

.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_마가복음1:29-33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 여자에 대하여 예수께 여짜온대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_마가복음1:29-33’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왜 모였을까요? 예수님께서 시몬 곧 베드로의 장모를 고쳤기 때문입니다. 열병에 걸려서 오랫동안 누워있었는데 예수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니 열병이 떠나버렸습니다. 얼마나 확실하게 고치셨는지 곧바로 그들에게 수종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다 예수께 데려오게 되었습니다. 그 숫자를 가늠할 수 없지만 성경은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다고 합니다. 귀신을 내쫓으시고 병을 고치시니 사람들이 모인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귀신을 내쫓으시고 병을 고치신 것을 당연하다고 믿으시는가요? 창조주 하나님이이시기 때문에 당연하죠!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온전해지게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시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예수님을 올바르게 믿고 따르면 우리의 마음과 육신이 온전해진다는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을 믿고서도 여전히 그대로 일까요? 변화되지 않을까요? 지난 주 말씀이 그 답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뒤로는 우상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저는 요즘 건강에 대해서 많은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권사님의 도움이 매우 컸습니다. 저는 제 몸에 맞지 않는 음식 즉, 제 몸에 해로운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건강에 좋다고 하니 확인도 해보지 않고 계속해서 먹었습니다. 비싼 거니까, 몸에 좋은 거니까 좋을 거야 그런 고정관념으로 살아온 것입니다. 심지어는 그런 잘못된 정보를 남에게 확신 있게 강요하기 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깨달음이 중요합니다. 육신적인 것만 그럴까요?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산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내 마음에 영향을 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음이 예수님의 말씀에 영향을 받아야 하는데 대부분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들만의 우상이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상처일수도 있고, 환경일수도 있습니다.

고침을 받는다는 것은 온전해진다는 뜻입니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떠나 살았는데 다시 그 품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단지 생각뿐이 아닙니다. 마음도 육신도 다시 말해 삶도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말씀을 주셨습니다. 말씀에 대해 깨달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깨닫지 못하면 늘 하던 대로 살게 마련입니다. 깨달음이 곧 회개입니다. 그리고 증거입니다. 매일 내 삶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해보세요. 분명 여러분에게 소망이 생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놀라운 것은 온 동네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온 동네가 전부 귀신과 질병의 영향을 받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란 말입니다.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들입니다.

 

.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들

 

1.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_마가복음1:34-35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_마가복음1:34-35’

 

그렇게 병이 든 많은 사람들을 고치시고 귀신도 내쫓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른 새벽에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이 본문을 기억하고 계셔야 합니다. 지쳐서 쉬러 가셨다고 표현하면 맞을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내 쫓으셨기에 지치셨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이런 장면을 우리에게 많이 보여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완전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을 찾으셨습니다. 단지 육신이 지쳐서가 아닙니다. 영적인 위로가 필요했고, 힘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도 깨달음이 필요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가면 반드시 약속된 것을 주십니다. 세상의 거짓 우상()과 하나님의 차이를 아시나요? 그들은 많은 것을 약속하지만 막상 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거짓 우상을 끊임없이 열정적으로 쫓아갑니다. 그것을 멈출 수 없다면 이미 중독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재물이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우리가 주일에 이렇게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내 인생에 도움이 될까?’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더더욱 그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누구신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지만 더이상 생생히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의 영적인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머리로는 진짜라고 아는 것이 우리 마음과 전 존재에 진짜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이 진실이라고 지적으로 동의하지만, 그것이 내면 깊은 곳에서 우리 마음을 사로잡거나, 우리 마음 깊이 다가오거나, 우리를 통제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깨달음의 시간이 없이 하루하루를 그저 저들과 같이 살아갑니다. 그러면 내가 중대한 병으로 가고 있는지, 환난으로 가고 있는지 더더욱 알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 있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예배를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주일 하루라도 온전히 그런 시간을 가지셔야 합니다.

 

2. 예수의 뒤를 따라가_마가복음1:36-37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_마가복음1:36-37’

 

제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새벽 밝기도 전에 혼자 조용히 가셨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러니까 제자겠죠. 여러분, 우리가 무엇을 따르고 있습니까? 그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보기도 합니다. 다른 것을 따르니 다른 결과를 얻게 됩니다. 우상을 따르니 환난과 우환이 오게 마련입니다. 정말 예수님을 따르길 바랍니다. 자꾸 문제를 묵상하고, 염려를 묵상하니 그 결과가 오겠지요. 예수님을 묵상하고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살게 됩니다. 살리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주를 찾기 때문입니다.

목사인 저는 항상 사람들이 저를 찾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잘못된 깨달음인가요? 마치 내가 답을 주는 것처럼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위험한 유혹임을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다가 멈추는 것입니다. 돈을 따라가면 어떻게 될까요? 명예를 따라가면요? 돈도 벌고 명예도 얻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예수님을 놓치면 다 놓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사람들이 없는 한적한 곳에서 그것도 이른 새벽에 기도하러 가셨을까요? 가야 할 길을 확인하고 다시 가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다가 다른 길로 빠질 수도 있습니다. 멈출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따르면 됩니다. 예수님을 따를 때 우리가 이 땅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알게 됩니다. 사람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축복된 삶을 살게 되죠. 왜 예수님을 따라야 하나요? 그것이 왜 축복된 삶인가요?

 

.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1.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_마가복음1:38-42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_마가복음1:38-42’

 

제자들을 만나시고 예수님께서 가까운 다른 마을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예수님께서 오신 명확한 이유입니다.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귀신들을 내쫓으셨습니다. 나병환자를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위해 오셨습니다. 다시 말해 살리기 위해 오셨습니다. 고치기 위해 오셨습니다. 치료하기 오셨습니다. 결코 죽이거나 병들게 하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많은 분들이 병들어갈까? 고침을 받지 못할까? 왜 그런 예수님을 따르지 못할까? 그것은 예수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자기를 부인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_마태복음16:24’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면서도, 예수님이 찾아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을 가지려 하지 않습니다. 예배마저도 그 감동과 은혜가 우리에게 멀어지는 이유는 우리 마음이 마치 추운 겨울날, 양동이에 담긴 물과 같기 때문입니다. 얼음이 생길 때 꾸준히 저어 주지 않으면 꽁꽁 얼어붙어버립니다. 예수님에 대해 알지만, 그것이 우리 마음에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을 금방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알긴 알지만 맛보거나’ ‘보거나’ ‘느끼지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것, 즉 우상들이 우리 마음에 점차 더 생생해져서 결국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그 치료법이 무엇일까요? 마음을 잊어버리는 과정을 거꾸로 하는 것입니다. 즉 저어주는 것입니다.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 그리고 구원이 내게 생생하면, 분명 인격과 삶에서 실행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아는 것도 다시 되새겨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진리들이 머릿속에서 이해될 뿐 아니라 마음속에서도 역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것조차, 성령이 계시는 것조차 잊어버릴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게 왜 오셨는지 분명하게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2.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_마가복음1:43-45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중하라 하셨더니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_마가복음1:43-45’

 

그러나 대부분 기억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치료받고, 고침을 받을 때는 간절합니다. 누구보다 간절합니다. 그러나 왜 고쳐주셨는지, 왜 내게 찾아오셨는지는 금방 잊어버립니다. 그것을 깊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고침 받은 것이 너무 신나서 자랑하기 바쁩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제사장에게 가서 모세가 명한 것 곧 말씀이 성취된 것을 입증하라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잊어버립니다. 치료받고 고침을 받는 것에만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은 더 이상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요? 하나님은 나를 고치신 이유가 분명하게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나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 크고 선한 계획이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걸 보기도 전에 복음을 깨달았다. 다 깨달았다.’라고 말해버립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알기도 전에 말이지요. 그래서 함부로 말하고, 행동합니다. 다시 자기가 중심적인 상태로 돌아갑니다. 결국 예수님은 동네에 다시는 드러나게 들어가지 못하시게 됩니다.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쫓았기 때문에 정말 꼭 만나야 하고 고침을 받아야 하는 자들을 만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흥분하거나 낙심하거나 둘 중에 하나에 빠집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말씀 묵상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왜 오셨는지를 다시금 깨닫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흥분이 될 때도, 내 마음이 낙심이 될 때도 그러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살리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기 위해 몇 가지 여러분에게 부탁을 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항상 삶에서 말씀이 떠오르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하려면 말씀이 학문적, 추상적으로만 아니라 실용적으로 적용하고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신명기 6장에 말씀의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갈 때에든지 누워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는 일상생활의 구체적인 일과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강의시리즈나 수업이 아닙니다. 말씀이 우리 삶 깊이 들어오게 하여 말씀의 영향력 아래에 있어야 합니다. 그 방법은 여러분이 찾으셔야 합니다. 오늘 바이블 스쿨훈련에 참석하시는 분들은 그것 때문에 하는 훈련임을 잊지 않으셔야 합니다.

두 번째, 말씀을 묵상하면 반드시 깨달음이 올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 행동에 적용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요즘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의 믿음에 등을 돌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과 행동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바로 비일관성, 비진정성 때문입니다. 행동이 위선적이거나 일관성이 결여되었기 때문입니다. 강단에서 나오는 말씀과 교회의 행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 젊은이들이 많지만 저들에게 진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부족합니다. 그 부분에 있어 솔직해야 합니다. 그리고 함께 말씀을 더욱 의지하고 사모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받은 말씀이 늘 우리 삶에 일어날 구원과 연결되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것 때문에 우리에게 말씀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구원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병 고침 받은 것에 흥분하여 전도의 문을 막아버리는 경우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말씀을 통해 깨달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환경이 막히면 다른 방법으로, 문제가 생기면 기도하시면서, 어려움이 찾아오면 힘을 내어 극복하면서 다시 영혼을 찾아가셨습니다. 영혼을 살리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연약합니다. 그러나 나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 구원을 위해 살 수 있다면 우리 인생은 정말 축복된 인생으로 바뀔 것입니다. 여러분 살리는 인생이 되어보십시오. 그것을 위해 우리는 어떻게 속박에서 자유로 이끄셨는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개인적으로 간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경험하고 살아가는지 말입니다. 사랑하는 가스펠 가족 여러분, 날마다 말씀을 통해 깨달음이 있으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참된 지혜가 있으시길 기도합니다.

 

주님 날마다 말씀으로 깨달음이 있는 신앙생활을 하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날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따라 성령의 인도받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말씀으로 치유되고, 온전한 삶으로 변화되며, 무엇보다 영혼을 살리는 가장 축복된 삶이 되게 원합니다. 나를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만 따라 살 때 그 인생이 가장 축복되다는 것을 오늘도 깨닫게 하셔서 우리 인생이 축복된 제자의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