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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5 주일예배

2017-11-05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2017-11-05 주일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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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5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열두 해, 열두 살

본 문 :

마가복음 5:21-34

오승주 목사

. 깨달음이 필요해요

 

인간은 깨달음이 꼭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제대로 된 올바르고 정확한 깨달음을 가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깨달음이 아닙니다. 바벨탑을 쌓아보자, 돈을 모아보자, 기술을 개발해보자, 정복해보자, 라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영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자신의 길이 어떤 길인지 조차 깨닫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길을 주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죄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서만 영원을 깨달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말씀을 가까이 할 때 비로소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교회를 다니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교회를 다니지만 대부분 말씀의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저는 잔소리를 잘 못합니다. 싫은 소리는 더욱 못합니다. 그런데 제가 대학생들에게는 가끔 싫은 소리를 하기도 합니다. 싫은 소리라 해봤자 예배드려라, 말씀을 놓치지 말라.’ 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싫어서 저를 멀리하는 친구들도 더러 있습니다. 스스로 만든 기준이 있으면 더 깨닫기 힘듭니다. 목표가 있으면 그 목표 때문에 더 힘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무너뜨리기도 하십니다. 그런 모든 것보다 구원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깨닫지 못하면 모든 것이 무용지물입니다. 아무것도 필요가 없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깨닫지 못하게 하나요? 우상은 결코 우상의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진리 역시 비진리의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이 멸망한 이유는 하나님을 완전히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진리 속에 산다고 착각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그들이 가진 종교심, 종교의 형식 안에 온갖 우상을 가져다 놓고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마치 하나님처럼 섬겼습니다. 하나님 비슷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고, 신앙 비슷한 것은 신앙이 결코 아닙니다. 집단사고의 오류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것이 맞는 것처럼 그 안에서 살아갑니다.

히스기야가 종교개혁을 했을 때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만들었던 놋뱀을 부스고 그것을 놋조각(느후수단)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에게 놋뱀은 모세와 같았고, 감히 손도 댈 수 없었던 귀한 것, 우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풀기 위한 은혜의 매개체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에 하나님을 가두고 하나님인양 섬겼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을 섬기지는 않았습니다. 그걸 깨달아야 합니다. 루터는 집단 사고의 오류에 빠져있는 중세교회의 사제였습니다. 그런데 은혜로 성경을 연구하다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히스기야 역시 그런 두려움을 뒤로 하고 말씀을 펴고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구원을 베풀고 계시는 구나.

신앙은 정확합니다. 구원이 정확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 정확은 오직 말씀뿐입니다. 인간의 의가 결코 아닙니다. 인간의 풍습과 전통도 아닙니다. 과거의 어떤 영광도 아닙니다. 여러분 무엇을 해야 할까요?

 

. 무엇을 해야 할까요?

 

1. 회당장 야이로의 열두 살 딸_마가복음5:35-42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_마가복음5:35-36’

 

이 이야기는 샌드위치 형식의 이야기입니다. 이야기가 연결되어있습니다. 배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오셨습니다. 거기에서 회당장 야이로를 만납니다. 회당의 장입니다. 그 당시에도 회당은 종교적으로 중요한 거점입니다. 어떤 면에서 사람들을 치유하고 가르치는 곳이며 그곳의 책임자입니다. 그런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을 가장 먼저 찾아왔습니다. 이유는 열두 살 딸 때문입니다. 죽을병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신기하고 놀라운 것은 이 이야기 사이에 열두 해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회당장 야이로를 따라 가다가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인을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 다 12년이란 시간을 강조합니다. 12라는 숫자는 유대인에게 완전한 숫자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숫자적인 의미가 아니더라도 12년 동안 인간의 노력을 다해보았던 때에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회당장 자신의 딸이 그런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모시고 가는 길에 또 하나의 사건을 만나게 됩니다.

 

2. 열두 해 혈루증을 앓은 여인_마가복음5:25-34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이러라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_마가복음5:25-34’

 

열두 해 혈루증을 앓은 여인입니다. 혈루증은 만성 자궁 출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 여인들은 인구수에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생리기간에는 불결하다하여 집밖에도 돌아다니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만성 자궁 출혈을 12년 동안 겪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이 병을 고치고 싶었는지 수많은 의사를 찾아갔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는데 아무 효험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도리어 더 중하였는데 예수님이 이 마을에 오신다는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어둠이 심하면 빛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법입니다. 가난이 심할수록 작은 것에 감사하게 됩니다. 이 여인은 오로지 예수님의 옷자락만이라도 만지면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하여 그 많은 무리들 속에서 예수님의 옷을 만졌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 그랬겠지요. 마가가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24절에 보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그런데 예수님은 그 여인을 찾았습니다. 그냥 만진 것이 아니란 것이죠. 예수님에게서 능력이 빠져나간 것을 아셨습니다. 절망의 끝에 이 여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어쩌면 세상으로부터 모든 조롱과 핍박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때 그는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3. 은혜의 믿음_마가복음5:33-34, 마가복음5:40-4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_마가복음5:33-34’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_마가복음5:40-43’

 

이 사건의 핵심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혈루증을 고치는 것입니까? 야이로의 딸을 살린 것입니까? 사람들은 혈루증 여인을 고치신 예수님을 놀랍게 여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은 설마 어떻게 하겠냐? 혈루증은 고칠 수 있으실지 모르지만 죽은 소녀는 어떻게 하지 못할 거야.’ 그래서 비웃더라고 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혈루증 여인을 고치고 있는데 사람들이 옵니다. 당신의 딸이 죽었습니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그를 살리겠다고 하시니 사람들이 비웃더라.

저는 목회를 하면서 비슷한 느낌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나이가 어리고, 배경이 없고, 배우지 못해 못할 거야. 큰 교회도 아니고, 설교를 잘하는 것도 아닌데 안 될 거야.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을 많이 해봅니다. 과연 저들은 무엇을 믿고 있을까? 나이인가? 배경인가? 지식인가? 큰 교회인가? 뛰어난 설교인가? 마치 모세의 놋뱀을 수백년동안 신주단지 모시듯이 모셔놓고 그것이 하나님인양 섬기는 이스라엘 같지 않습니까? 우리는 지금 은혜로 주시는 믿음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매 순간 사건을 따라 믿는 신앙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오늘 내게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고 내게 주신 말씀을 듣지 못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믿음은 은혜로 주어집니다. 은혜를 받을 때 믿음이 생기고 또 자라게 됩니다. 믿음은 과거의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게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지금 말씀으로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어떤 사건이라도 거기에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숨겨져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은혜를 받지 못하니 믿음이 없습니다. 그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모세의 놋뱀을 우상삼아 살아가듯합니다. 자신들의 하나님이 없는 것입니다.

 

. 달리다굼_호세아2:14-23,히브리서12:1-13

 

예수님께서는 혈루증 앓는 여인에게도, 죽은 소녀에게도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인간이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주님을 바라볼 때 찾아와주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는지 호세아 2장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내가 응답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답하리라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면 내 백성이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_호세아 2:14-23’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상을 섬기는 것이 망하는 것임을 알고 축복의 땅으로 데리고 가서 타이릅니다. 마치 어린 아이를 타이르듯이 타이릅니다. 우상 바알에서 벗어나게 해주려고 축복을 쏟아 부어줍니다.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하시면서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을 외면합니다. 그것이 죄에 빠진 인간입니다. 축복을 받아놓고도 세월이 흘러 하나님을 모른다 합니다. 엄청난 구원을 받아놓고도 더 좋은 것을 주시지 않아 더 좋은 것을 주는 거짓 신을 섬기는 것이 인간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놀라운 축복을 넘어 기적 같은 일입니다.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 아닌가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_히브리서12:2-13’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너희 인생이 틀린 것 같으냐? 너희 인생이 어그러진 것 같으냐? 너희 인생이 실패 같으냐? 히브리서 11장을 보았느냐?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인생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결코 틀리지 않습니다. 실패가 아닙니다.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살았다면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에게 책망하시는 것은 믿음으로 살려고 하지 않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징계도 주시고, 그래서 책망도 주시는 것인데 그것이 그때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심지어 슬퍼 보이나 후에는 그로 말미암아 연단을 받아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니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워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는 것입니다. 달리다굼.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절망 속에 있지 말고, 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 있지 말고, 허울 좋은 종교와 관습 속에 있지 말고 지금 예수님 앞으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라는 것입니다. 달리다굼. 이제 내 말을 듣고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지금 말씀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일어나서. 열두 해, 열두 살에 빠져 있지 말고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어 저들을 살리고 살리라는 것입니다. 다음 주 추수감사절을 맞아 특별 새벽예배를 합니다. 매 순간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은혜의 믿음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달리다굼.

 

주님 예전에 믿었던 과거, 그리고 믿어왔던 습관, 내 의, 종교에 빠져 있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징계나 책망이라 생각하고 원망하고 있네요.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다 주셔서 구원하셨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여전히 잘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 내게 말씀으로 찾아오신 주님을 믿길 원합니다. 매 사건마다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계획이 있음을 믿길 원합니다. 더 이상 과거나 습관, 종교심에 빠져 주저 앉아 있는 신앙이 아니라 일어나서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달리다굼. 주님의 음성을 듣고 일어나길 원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주시는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어 저들을 살리는 복된 인생이 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