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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6 주일예배

2017-11-26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2017-11-26 주일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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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6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본 문 :

마가복음 6:45-56

오승주 목사

. 약자를 위한 예수님의 마음_마가복음6:45-46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_마가복음6:45-46’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기입니다. 오늘 당회를 거쳐 2018년도 행정과 조직, 예산이 전부 마무리되고 제직회와 공동의회를 통해서 최종 결정됩니다. 제직과 공동의회가 매우 중요합니다. 건강한 교회라고 말만 하면 안 되잖아요. 교회의 모든 행정과 예산, 조직이 건강하도록 성도님들 모두가 함께 살펴봐주셔야 합니다. 우리교회 정관은 다른 교회에서 가져갈 정도로 잘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건강한 교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교회는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요? 제가 우리 교회를 두고 갈 때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약자에 대한 마음입니다. 사실 우리 자신이 교회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건강해야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지요? 그런데 건강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제 상태가 좋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럼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아픔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마다 완벽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것이 항상 고민스럽습니다.

저를 가르쳐주신 박이석목사님은 목회자는 항상 언행을 조심하라 일러주셨습니다. 그때마다 복음이면 되지?’ 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은 그 말씀이 얼마나 와 닿는지 모릅니다. 특히, 목회자 지도자는 더욱 그렇겠지요. 목사님께서는 항상 약자를 생각하셨습니다. 심방을 가도 늘 약자가 우선이었고, 목회를 하셔도 항상 약자를 우선으로 결정을 하셨습니다. 한번은 공휴일인 수요일에 체육대회를 하는데 수요예배를 쉬어도 되잖아요. 그런데 굳이 본인 혼자서라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힘들게 일하고 예배드리러 오는 성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나로 인해 누군가 시험에 들었다면 사과해야 할 것입니다. 왜 시험에 들어? 아닙니다. 약자를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은 엄청난 죄입니다. 연자 맷돌을 목에 걸로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하셨습니다. 복음은 결코 지식이 아닙니다. 결코 마음만이 아닙니다.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아 라고 하는데 그게 틀린 말 아닌가요? 행동과 말까지 복음이어야 합니다.

본문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재촉해서 먼저 배를 태워 보내십니다. 그리고 많은 무리들과 작별하십니다. 사실 저는 이 부분을 쉽게 보지 않았습니다. 보통은 이렇지 않습니다. 엄청난 기적을 베푼 지도자가 무리를 직접 보내고 있습니다. 만 명이나 되는 무리를 친히 보내고 계십니다. 보통 교회가 커지고 숫자가 많아지면 변질된다 합니다. 어떤 부분이 변질 됩니까? 마음입니다. 약자를 위한 마음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보통 교회를 시작하면서 약자를 섬기는 것이 목회자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점차 교회가 성장하면서 약자에 대한 돌봄과 마음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거기서부터 변질이 시작됩니다. 물론 사역이 커지고 해야 할 일들이 늘어나면 조절이 필요하겠지요. 저는 그것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오승주목사 변했네? 이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기 힘들어졌네?’ 그럼 끝이 아닌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목사님이 바쁘니까 죄송해서 말 못하는 것과 마음이 불편해서 말 못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약자에게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그들이 언제나 마음을 오픈하도록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그들이 틀린 것을 이야기해도, 답답하면 예수님이 더 답답하지 우리가 더 답답한가요? 우리는 답을 너무 쉽게 줍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은혜 받도록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 현재 사역을 잘 못하고 있다는 뜻이지요. 저는 저와 함께 일하시는 분들이 특별한 재능이 없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최소한 성도들에게 함부로 하는 분들이 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이것은 모든 중직자나 리더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는 우리 스스로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가장 큰 교만입니다.

 

. 무엇을 믿고 있나요?

 

1. 바람에 힘겨운 제자들을 보시고_마가복음6:47-48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_마가복음6:47-48’

 

예수님께서 오랜만에 홀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 대해 설교할 시간표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홀로 뭍에 계셨는데 저는 이 부분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왜 예수님이 제자들을 먼저 바다로 보내셨을까? 바람이 심하게 불 줄 모르셨을까? 아니지요? 이런 사건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잖아요. 전부 알고 하셨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은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여전히 바다 가운데서 바람으로 인해 힘겹게 노를 젓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계시다가 밤 사경쯤에 제자들에게 가신 것입니다. 바다 위를 건넌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밤 사경은 우리 시간으로 새벽 3-6시 정도를 말합니다. 히브리적 개념으로 이 시간은 새벽 오기 전 시간을 뜻합니다. 가장 어두울 때입니다. 아무것도 안보이고 바람마저 심하게 부니 제자들이 얼마나 힘겨웠을까요. 그들 중에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어부들도 어찌 하지 못하는 상황가운데 빠져버렸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십니다. 마치 제자들의 믿음을 확인해보시려고 말입니다.

 

2.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_마가복음6:49,아모스2:4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지르니_마가복음6:49’

 

그런데 물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이 일제히 유령인가 하여 소리를 지릅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더 정확하게 묘사되어있습니다. 유령이다. 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런데 제자들 중 수제자인 베드로가 나서서 당신이 유령이 아니고 예수님이라면 저를 오라 하십시오. 그래서 걸어갑니다. 한발, 두발 걸어갑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바람이 심하게 부니 베드로의 발이 바다에 빠집니다. 여기서 바람은 무엇을 뜻합니까? 시험입니까? 세상입니까? 유혹인가요? 그 모든 것입니다. 바람을 만난 우리 인생은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내게 찾아오셔도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를 뿐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인 것을 확인한 베드로는 바다 위를 걸어가다가 다시 빠져버립니다. 우리는 이렇게 연약합니다. 우리 인생 자체가 약자가 아닌가요?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유다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며 그 율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그의 조상들이 따라가던 거짓 것에 미혹되었음이라_아모스2:4’

 

아모스에 읽으면서 특이한 점을 발견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서너 가지 죄라고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서너 가지 죄 때문에 벌을 내리시겠다고 하십니다. 지도자도, 백성도, 교회도, 나라도 서너 가지 죄 때문에 벌을 내리시겠다고 합니다. 여러분 서너 가지 죄를 가지고 계신가요? 그럼 우리는 당장 회개해야 합니다. 서너 가지 정도로 왜 그러세요? 라고 하면 안 됩니다. 서너 가지 죄 정도야 뭐가 문제가 되겠어? 라고 생각하는 순간 변질이 시작됩니다. 지도자들이든, 교회든, 백성이든 그렇게 변질이 시작되면서 교만하기 시작합니다. 자기 주제 파악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정도가지고 왜 그러세요? 그런 사람들은 남의 죄는 많아 보입니다. 그래서 함부로 정죄하고 판단합니다. 그러면서 나는 괜찮다 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보시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무리들을 보고 얼마나 불쌍하게 생각했을까요? 그리고 그들을 먹이고 가르쳤다고 얼마나 의기양양했을까요? 그런 제자들을 바다로 먼저 보내신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3.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_마가복음6:50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_마가복음6:50’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랍니다. 예수님이 오실 것을 예상하지 못했나요? 바다 위를 걸어서 오신 것을 놀랐나요? 아마도 잊어버렸겠지요. 그 짧은 순간 바다를 건너면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어떤 분이신지 잊어버렸습니다. 누가요? 제자들입니다. 순간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들었는데 막상 바람이 부니, 막상 어둠이 밀려오니 잊어버립니다. 내 능력으로 해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 또 내 능력으로 노를 젓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조차 모르고 노를 젓고 있습니다. 그냥 가면 되는 줄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시스템도 좋고, 세력도 커지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수준이 높아지면서 뭘 잃어버린 줄 아십니까? 기도를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부르짖는 기도를 잃어버렸습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가장 큰문제가 아닐까요? 영혼 구원을 위해, 내 죄를 회개하기 위해 부르짖던 기도,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밤마다 차디찬 바닥에 엎드려 하는 기도를 잃어버렸지 않습니까? 우리 스스로 약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변질되고 교만해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디에 태어나셨습니까? 말구유입니다. 말밥통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왕궁에 태어났으면 우리는 예수님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왕궁에 살고 있습니까? 기독교인은 전부 왕궁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만이 하늘을 찌릅니다. 저는 지금 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도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어떻게 전도했습니까? 어떻게 사역했습니까? 같이 울어주고 같이 이해해주고 오히려 미안하다 하였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을 보고 놀랍니다. 유령이라고 소리칩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시지요?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우리의 신앙이 어디를 향해야 합니까. 예수님입니다. 우리를 안심시킬 수 있고, 우리의 두려움을 사라지게 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우리가 가장 힘들고 연약할 때 오십니다. 가장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되시는 분들 예수님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목사나 교역자가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도 아닙니다. 그저 예수님입니다. 혹시 예수님을 유령처럼 생각하고 사시는 분이 계시다면 회개하셔야합니다.

 

.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라_마가복음6:51-52,53-56,아모스6:1-2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_마가복음6:51-52’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라. 우리가 이렇게 연약합니다. 깨닫는 것 같지만 금방 또 바람 불면 마음이 둔해집니다. 이게 우리입니다. 인간입니다. 그래서 항상 깨어있으라 말씀하셨습니다. 깨어있어야 합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예수님과 항상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깨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께 깨어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려움이 참 많습니다. 갈등도 많습니다. 고민도 많습니다. 시험도 많습니다. 박영선 목사님께서 그것을 성도의 클래스라 표현하셨습니다. 그것은 정말 멋진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맞다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수능이라고 교회에서 하는 기도 들어보셨습니까? 우리 아들, 우리 딸 시험 성적 잘 나오게 해주세요. 좋은 대학가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해주세요. 그게 기도입니까? 절에서도 그렇게 양심 없게 기도는 안합니다. 공부를 안했는데 어떻게 시험 성적이 좋게 나오는가요? 기독교의 수준이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우리 교회 부흥하게 해주세요. 그러면 됩니까? 우리 집 잘살게 해주세요. 그러면 됩니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기도하면 안 되지요.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하나님 우리 아들이, 딸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도록 인도해주세요. 그렇게 기도해야 하겠지요. 우리 마음이 점차 둔해지고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 시온에서 교만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백성들의 머리인 지도자들이여 이스라엘 집이 그들을 따르는도다 너희는 갈레로 건너가 보고 거기에서 큰 하맛으로 가고 또 블레셋 사람의 가드로 내려가라 너희가 이 나라들보다 나으냐 그 영토가 너희 영토보다 넓으냐_아모스6:1-2’

 

화 있을 진저. 시온에서 교만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백성들의 머리인 지도자들이여.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교만하지요. 마음이 든든하니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지도자들을 이스라엘 집이 따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도자들을 광야로 내모셨습니다. 칠흑 같은 어두운 바다로, 바람이 심하게 부는 바다로 제자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때 하나님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거기서 깨닫습니다. 갈레로 가보고, 큰 하맛으로 가보고, 가드로 가보라. 다시 말해, 세상에 가보라, 세상으로 가보라. 너희가 이 나라들보다 나으냐, 그 영토가 너희 영토보다 넓으냐?

믿음의 사람들이 자꾸 착각합니다. 조금 깨달으면 교만해집니다. 조금 마음이 든든하면 변질됩니다. 세상의 왕궁으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정신 차려라. 너희가 그것으로 살아갈 사람들이 아니지 않냐? 너희가 지금 세상을 그것으로 변화시킬 것이 아니지 않냐? 정신 차려라!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할 때 세상에서 빛이 되고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그들에게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닙니다.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자랑하고 살아야 진짜 축복된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내 기준으로 성도에게 시험을 줍니까? 왜 내 마음대로 말을 하고 해석을 합니까? 예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것에 있어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지 않습니까?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수준입니다.

 

주님 예수님은 항상 약자를 먼저 생각하셨습니다. 그들을 먼저 찾아가셨고, 먼저 보살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약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복음 좀 안다고, 말씀 좀 듣고 깨달았다고, 기도 좀 한다고 어느 순간부터 교만하기 시작합니다.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기 시작합니다. 놀라운 것은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을 찾지도 않습니다. 내가 할 수 있다고 교만합니다. 그래서 점차 세상 왕궁 안으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우리의 죄악을 회개합니다. 예수님이 찾아오셔도 유령이다라고 소리치며 깨닫지 못할 만큼 마음이 둔하여졌습니다. 오늘도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말라하고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만나길 원합니다. 우리의 둔한 마음을 고쳐주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만을 의지하길 원합니다. 험한 세상에서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거룩한 성도가 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