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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3 주일예배

2017-12-03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2017-12-03 주일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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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3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예수님이 화나신 이유

본 문 :

마가복음 7:1-30

오승주 목사

. 게네사렛을 보게 하시려고_마가복음6:52-56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대고 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곧 예수신 줄을 알고 그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 다니며 예수께서 어디 계시다는 말을 듣는 대로 병든 자를 침상째로 메고 나아오니 아무 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지방이나 도시나 마을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께 그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_마가복음6:52-56’

 

왜 제자들에게 그토록 힘든 훈련을 시켰을까요?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하시는 훈련입니다. 게네사렛의 일을 보면서 우리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게네사렛은 과일이 많이 나는 곳이었고 이스라엘에서 보기 드물게 비옥한 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순례자들이 그 유혹을 참지 못하고 게네사렛으로 빠진다고 합니다. 순례는 매우 힘든 여정인데 절기를 지키기 위해 시간을 지켜야 하는 순례자들이 게네사렛의 유혹으로 지키지 못하기도 한답니다. 그러나 게네사렛의 이면에는 수많은 병든 자들, 심지어는 걷지도 못해서 침상 째로 메고 올 정도의 심각한 문제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 그 옷 가에라도 가려고 모여들었는지 그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도 샌드위치 형식의 말씀입니다. 게네사렛과 두로와 시돈에서의 사역 중간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논쟁하는 장면이 자세히 설명됩니다. 마가가 유대인들의 실상 그리고 제자가 되기 전의 자신들의 모습을 고발하는 장면입니다. 사실 예수님이 이방 땅에서 사역을 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입니다. 그것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찾아왔을 수도 있습니다. 온갖 소문을 다 듣고 있을 텐데 예수님이 이방으로 갔다는 소리에 더 놀라 찾아왔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무엇을 봐야 합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보게 하시고 계시나요? 예수님이 이 땅에 왜 오셨는가요?

저는 이 교회를 개척할 때 하나님 앞에 진실 되게 기도한 제목이 있습니다. 사실 저는 불신자였습니다. 불신자 가정에서 살았습니다. 여러분, 불신자라는 단어가 마음에 얼마나 와 닿으신가요? 저는 우리 집이 불행한 것이 돈이 없어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희 어머니는 열심히 살았습니다. 아마도 게네사렛 같은 곳에 태어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거기에서는 배불리 먹을 수 있잖아요. 그런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이 불신자입니다. 그렇죠? 그런데 성경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런 곳에 살아도 안 되는 것입니다. 돈을 쓸어 모아도 안 되는 것입니다. 마치 삶이 뒤틀린 것 같았습니다. 밖에서 볼 때 순례자들 곧 신앙의 사람들은 게네사렛에 와서 과일도 먹고, 타락도 하고, 순례를 포기하기도 하는 곳인데 막상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온갖 질병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육신의 질병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하지 않은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불신세계가 그런 곳입니다.

그런 곳에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찾아가셨을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이 달랐습니다. 타락하려고 간 순례자들과 달랐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우리 신앙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교회가 홍보팀 같은 것을 두어 마켓팅을 한다고 합니다. 저는 교회는 그렇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온들 진짜가 아니면 어떻게 합니까? 게네사렛의 사람들을 치유하시자 마자 바리새인들이 찾아옵니다.

 

. 예수님이 화나신 이유

 

1.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고발_마가복음7:1-23

 

이 내용을 잘 보셔야 합니다. 잘 읽어보셔야 합니다. 왜 예수님이 화를 내고 계십니까? 게네사렛에서 사역하신 뒤에 이렇게 자세한 내용을 기록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손을 씻지 못하고 식사를 했는 모양입니다. 빵을 손도 씻지도 않고 먹었다는 것입니다. 게네사렛에서 그럴 여유가 있었을까요? 없었습니다. 그럴 정신이 없었습니다. 원래 이스라엘의 전통 중에 하나로 빵을 먹고 그 더러워진 손을 빵 부스러기로 닥아 상 아래에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개들이 그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그걸 고발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을 주십니다.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었다고 너희들이 더럽다 하느냐? 먹는 것이 더럽나? 먹는 것은 뒤로 그대로 나온다. 진짜 더러운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바로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22절에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들 더럽게 하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적으로 아무리 깨끗해서 마음이 더러운데 어찌 깨끗하다 할 수 있습니까요? 예수님을 믿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예수님을 만나면 변화됩니다. 무엇이 변화됩니까? 마음입니다. 본질적으로는 영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법이 없어도 한결 같습니다.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됩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보나 그렇지 않나 상관이 없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도의 삶 아닌가요? 오히려 바리새인처럼 마음은 악하고 겉만 깨끗한 사람들이 남을 정죄합니다. 남을 비난합니다. 왜 그렇지요? 그것은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도 될 수도 없습니다.

 

2. 숨길 수 없었더라_마가복음7:24-27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_마가복음7:24-27’

 

예수님이 그들을 떠나 이방 땅 두로 지방으로 갑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살짝 집에 들어가서 조용히 지내시려고 하셨는데 숨길 수 없었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리새인과 반대의 행보입니다. 바리새들은 외식하고 알리는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항상 숨으려고 하셨습니다. 송곳도 주머니에 숨길 수 없습니다. 냄새도 숨길 수 없습니다. 결국, 향기 나는 사람에게 사람들이 찾아오게 됩니다. 향기 나는 사람은 외적인 변화를 말하는가요? 아니죠. 마음이 변화된 사람, 영혼이 변화된 사람을 뜻합니다. 정말 예수 믿고 변했구나! 그런 사람을 말합니다. 교회는 그런 곳이어야 합니다. 신앙은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두로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바로 더러운 귀신 들린 딸을 둔 한 여자입니다. 더러운 귀신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더러운 것에 대해 바리새인들과 논쟁한 것을 기억하시죠? 마가는 그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더러운 것 곧 여전히 예수님을 만나지 못해서 변화 받지 못한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여자는 헬라인입니다. 그리고 수로보니게 족속입니다. 다시 말해, 귀족출신이고, 힘 있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께 엎드렸습니다. 이유는 자기 딸이 더러운 귀신에 들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거절하십니다.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냐? 여기에서 자녀는 유대인들입니다. 그리고 개들은 이방인들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이 지키는 전통을 들어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들에게 떡을 줄 수 없다. 즉 내 몸을 줄 수 없다. 나를 줄 수 없다.

 

3.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인 여인의 고백_마가복음7:28-30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_마가복음7:28-30’

 

그런데 이 여자가 하는 대답을 보세요. 주여 옳습니다. 그런데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 나는 상 아래 개와 같습니다. 손을 닦고 버린 그 부스러기라도 먹겠습니다. 여러분 이해가 되시나요? 지금 이 여자는 모든 것을 다 버렸습니다. 사실 여기에서 자녀문제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청소년 사역을 정말 오래했습니다. 대학생들, 청년들과 가깝게 지냈습니다. 부모님들이 그들의 문제를 가지고 많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나 저의 대답은 항상 한결같았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예수님을 믿으세요. 아이들은 하나님께 맡기세요. 그것이 제일 빠른 방법입니다.’ 그런데 절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여전히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고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여전히 자식이 귀신에 들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멀쩡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 여인의 고백을 원하셨습니다. 그때 네 딸에게서 귀신이 나갔다 하셨습니다. 집에 가보니 이미 아이는 정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딸은 만나지도 않았습니다. 여인이 고백하는 순간 문제가 해결 되었습니다. 우리는 신앙을 굉장히 이상하게 하려고 합니다. 나는 믿지 않고 다른 사람은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는 괜찮으니 내 자녀들은 문제가 많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나와 주님의 이야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내 자존심 때문에 나는 주님께 엎드리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너는 엎드려야 하지 않겠니? 라고 말합니다. 귀신 들린 딸이 문제였을까요? 이 가정의 문제는 이 여인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 뒤틀린 삶을 바로잡는 힘 경외’_마가복음7:25,마태복음15:22,아모스9:8-9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_마가복음7:25’

 

여기에서 엎드리다는 단어 프로스퀴네오라는 단어는 예배하다는 단어와 같게 쓰입니다. 여자가 정말 딸 때문에 그냥 엎드린 것일까요? 그런 고백을 했을까요? 마태복음을 보면 그 이유가 나옵니다.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_마태복음15:22’

 

주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고백합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오실 메시야 즉,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재물이 많고, 힘이 있어도 영원 앞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숨기고 싶었던 딸의 문제가 주님 앞에서는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 찾아와 엎드렸습니다.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경외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수많은 전통을 만들었으나 그것은 경외가 아니었습니다. 결국 자기들 자랑하려고, 자기들 잘살려고, 자기들 만족하려고 만든 것들 아닌가요. 자기들은 그것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이라, 예배라 이야기했지만 주님은 그것을 저주하셨습니다. 경외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축복을 받으려고 예배하는 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행여 문제가 있어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더라도 점차 하나님을 알게 되면 경외하게 됩니다. 내가 어떤 상황에 있느냐, 어떤 문제 속에 있느냐가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알게 된 순간, 믿게 된 순간, 깨닫게 된 순간 경외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영혼이 변화되고 마음이 변화됩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을 세상이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뒤틀린 삶을 바로 잡는 비밀은 경외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왜 죄인이야?’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왜 죄인이야?’라는 말에서부터 십자가에서 멀어집니다. 우리는 모두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십자가는 그 죄를 해결하기 위한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이자 사랑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십자가가 필요 없다고 합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상 아래 개처럼 부스러기라도 먹겠습니다. 이 고백이 죄를 깨달은 자의 고백입니다. 뒤틀린 인생의 문제를 내가 해결 할 수 없는 거구나.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들은 십리길 비바람, 눈보라에도 예배를 생명처럼 여겼습니다. 불신남편 몰래, 부모 몰래 은혜를 받으러, 말씀을 들으러 그렇게 예배드리기 위해 몇 배나 더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인생의 끝이 세상이 아니구나를 깨달아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얼마나 눈물로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생을 하나님께 드린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양화진 선교사묘역에 꼭 가보십시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축복을 받기 위해서나, 내 자녀가 잘 되기 위해서나, 어떤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서 예배한다는 것과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깨달아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한없이 작다는 것을, 먼지와 같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삶이 변화됩니다. 하나님을 깨달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찾아 살아가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내 삶을 바르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구나, 하나님의 은혜만이 내 인생을 온전케 하시는 구나, 나는 죄인이어서 십자가가 없으면 안 되는구나. 그런 사람을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보라 주 여호와의 눈이 범죄한 나라를 주목하노니 내가 그것을 지면에서 멸하리라 그러나 야곱의 집은 온전히 멸하지는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명령하여 이스라엘 족속을 만국 중에서 체질하기를 체로 체질함 같이 하려니와 그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_아모스9:8-9’

 

예수님은 바리새인을 향해 엄청난 화를 내셨습니다. 예수님을 보면서도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전통 때문입니다. 그들의 경험과 지식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고 있는 외식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예수님 앞에 엎드리는 축복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수로보니게 여인을 보면서 불쌍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체질하십니다. 시골에서 예전에 쓰던 방법입니다. 껍데기만 바람에 날려버리고 알맹이만 남겨놓게 하는 방법입니다. 야곱의 집은 온전히 멸하지 않으십니다. 믿음의 공동체, 하나님의 교회는 멸하지 않으십니다. 환난처럼 보이고 고난처럼 보여도 그것이 체질이라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믿음인가요? 어떤 교회인가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교회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불쌍히 여겨달라고 엎드려 기도하는 교회에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런 신앙인에게는 향기가 있습니다. 그렇겠죠? 거짓된 삶이 아닌 은혜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바리새인들은 전통과 외식이 예배인 줄 알고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그런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깨끗하고 대단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그들의 마음은 타락하고 병들었음을 아시고 화를 내셨습니다. 우리 역시 점차 그들처럼 십자가의 은혜가 멀어지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라고 주님 앞에 엎드리길 원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깨달아 경외하길 원합니다. 응답을 받기 위해,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인 나를 구원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깨달아 두렵고 떨림으로 예배하길 원합니다. 경외하길 원합니다. 그래서 내 온 삶이 예배하는 삶으로 변화를 받아 게네사렛과 같은 세상에서 빛으로 소금으로 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