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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8-01-07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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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7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산위에 올라

본 문 :

마가복음 9:2-13

오승주 목사

 

.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_마가복음9: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_마가복음9:2’

 

엿새 후에 산위로 올라가셨습니다. 우리도 지금 엿새 만에 예배를 드리러 왔습니다. 사실 매일 매시간 예배만 드리면 좋은데 그럴 수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늘 수련회만 하면 좋겠다고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라고 고백한 베드로의 고백에 대한 답변으로 십자가 고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깨닫든지 못 깨닫든지 고난은 왠지 우리에게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엿새 만에 산위로 올라가셨습니다. 누구를 데리고 가셨죠? 제자들 전부인가요? 아닙니다. 베드로,요한,야고보를 데리고 갔습니다. 흔히, 베드로를 수제자라고 합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에 비해 깨달음이 더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 항변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3명의 제자는 특별해서 데리고 간 것이 아니고 잘 깨닫지 못해서 데리고 간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본격적인 고난을 앞두고 이들에게 가장 변화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난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 앞에서 예수님께서 변형되셨습니다. 그런데 수동형 동사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변화하신 것이 아니라 제 3자의 힘 즉, 하나님께서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그곳은 낮은 산이 아닙니다. 2시간이나 올라가야 하는 높은 산입니다. 이 산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고난을 앞두고 하나님께서 영적인 힘을 주시려는 장소입니다. 바로 오늘 이 예배의 자리가 우리의 산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힘을 공급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도 저 제자들처럼 죄로 인해 영적인 감각이 무뎌졌습니다. 무뎌진 것이 아니라 무감각해졌습니다. 육신도 감각이 사라지면 힘이 듭니다. 그런데 영적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감각이 무뎌지면 문제가 오게 마련입니다.

 

 

. 산위에서의 깨달음

 

1. 예수님은 누구신가_마가복음9:3-4.마태복음17:2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_마가복음9:3-4’

 

예수님이 변화되셨는데 세상에서 빨래 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다 합니다.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_마태복음17:2’

 

천국에서의 모습으로 변화되셨습니다. 우리가 장차 천국에 입성하면 변화될 모습이기도 합니다. 엘리야와 모세와 함께 대화도 하십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정확하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우리를 구원하신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새벽별과 같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어둠속에 있는 우리를 찾아오신 빛이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_로마서13:14’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으로 하나님께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옷을 어떻게 입습니까? 요한 계시록에 보니 세마포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_요한계시록19:8’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_요한계시록19:13’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_요한계시록22:14’

 

세마포 옷을 옳은 행실이라 했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도가 천국에 가기 위해 입어야 할 옷은 하나님의 말씀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늘 잊어버리고 다른 길로 가려는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더럽고 어두운 세상에 살면 옷은 곧장 더러워집니다. 그래서 산에 올라가 옷을 빨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시간으로 예배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옷을 빨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개입하시는 시간입니다. 말씀을 주셔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깨닫게 하시는 시간입니다.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새 은혜를 주셔서 다시 세상에서 살아가게 하십니다. 우리가 스스로 변화될 수 없다는 것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천국을 보여주시고 또 영적인 새 힘을 주시는 시간입니다.

 

2. 세상을 살아 갈 수 있는 힘_마가복음9:5-8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하니 이는 그들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_마가복음9:5-8’

 

베드로는 여기에서도 대단합니다. 또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습성대로, 체질대로 말합니다. 변화되기 전의 베드로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살면 좋겠다. 본인의 마음이기도 하겠지만 예수님께 잘 보이기 위한 동기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렇지 않습니까? 여기가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짓고 그렇게 살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진짜 뜻인 십자가의 길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고난은 피하려고만 합니다. 이번 주에 저는 정말 기분 좋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제 모교회가 예배당을 건축할 계획이라고 하시는데 건축위원회에서 예산을 세워서 가지고 온 것을 뒤집었다 하셨습니다. 예배당을 화려하게 짓지 말고 예배드릴 수 있도록 만 짓고 나머지는 선교사를 파송하고 더 많은 목회자를 키우자 하셨다 합니다. 제가 너무 기분도 좋고 마음에 피곤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점차 쉬운 길로만 가려고 합니다. 초막 셋을 짓고 살면 세상은 누가 살립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십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이것이 우리가 어두운 세상을 살아가는 힘입니다. 천국도 보이지 않습니다. 모세도 엘리야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주일마다 이렇게 예배드릴 때 하나님께서 음성을 들려주실 뿐입니다. 오직 예수와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의 힘입니다.

 

3. 제자들의 의문_마가복음9:9-13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이에 예수께 묻자와 이르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_마가복음9:9-13’

 

제자들은 산에서 내려올 때 의문을 가집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천국을 보고서도 이런 질문을 합니다. 영적으로 무감각하기 때문입니다.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성경은 메시야가 오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와서 안내하겠다고 예언 되었는데 엘리야가 누구입니까? 라고 질문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엘리야가 이미 왔다고 답하셨습니다. 바로 세례요한입니다. 세례요한이 왔는데 사람들이 함부로 대하지 않았느냐? 그 말씀은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살펴서 너희 삶에서 너희 역사에서 적용하지 않고 있지 않느냐? 분명 하나님은 구원의 계획을 가지고 역사를 움직이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것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난이나 축복이나 우리에게 큰 상관은 아니어야 합니다. 우리는 구속사의 언약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음 주 본문부터 본격적으로 고난의 길을 걸어갑니다. 십자가의 길입니다. 십자가가 주는 축복을 오늘 이 높은 산에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보았기 때문에 이 고난을 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늘 의문을 가집니다. 왜 내게 이런 사건이 생겼을까? 왜 내게 이런 고난이 올까? 왜 나는 가난할까? 왜 나는 불신가정에 태어났을까? 그런데 구속사의 계획을 가지고 살펴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부도, 직장도, 살아가는 모든 선택도 그것을 살펴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엄청난 축복을 놓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는 구속사의 역사를 향해 가야 합니다.

 

 

. 우리가 살아갈 산 아래 세상_마가복음9:18-19,이사야59:9-15,60:1-3

 

이 산은 나중에 사람들이 이름을 붙였습니다. 변화산입니다. 우리의 예배입니다. 우리는 산에서 천국을 맛보고 힘을 얻어야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사실 천국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믿어지지도 않습니다. 모세도 엘리야도 사라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함께 합니다. 그의 말씀을 들으라 하셨습니다. 왜 그런가요? 우리가 산 아래에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엿새는 산 아래의 삶입니다. 뒤에 산 아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음 주에 설교하겠지만 오늘 조금 살펴봐야 합니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_마가복음9:18’

 

귀신들린 세상입니다. 너무 심한 표현인가요? 그렇다면 영적인 감각을 깨워야 합니다. 정말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먹는 것으로 행복할 수 있나요? 좋은 집으로 행복할 수 있나요? 어찌 자기 아들, 딸들을 집어 던지고 자기 몸을 투신 할 수 있습니까? 그만큼 살기 힘들어졌다는 말이지요. 경제 성장은 지난 100년간 수백배, 수천배 했지만 말입니다. 어찌 어둠의 일을 쉽게 할 수 있습니까? 사탄은 그것을 화려한 모습으로 감추지만 우리는 실상을 알고 봐야 합니다. 세상은 치유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정의가 우리에게서 멀고 공의가 우리에게 미치지 못한즉 우리가 빛을 바라나 어둠뿐이요 밝은 것을 바라나 캄캄한 가운데에 행하므로 우리가 맹인 같이 담을 더듬으며 눈 없는 자 같이 두루 더듬으며 낮에도 황혼 때 같이 넘어지니 우리는 강장한 자 중에서도 죽은 자 같은지라 우리가 곰 같이 부르짖으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정의를 바라나 없고 구원을 바라나 우리에게서 멀도다 이는 우리의 허물이 주의 앞에 심히 많으며 우리의 죄가 우리를 쳐서 증언하오니 이는 우리의 허물이 우리와 함께 있음이니라 우리의 죄악을 우리가 아나이다 우리가 여호와를 배반하고 속였으며 우리 하나님을 따르는 데에서 돌이켜 포학과 패역을 말하며 거짓말을 마음에 잉태하여 낳으니 정의가 뒤로 물리침이 되고 공의가 멀리 섰으며 성실이 거리에 엎드러지고 정직이 나타나지 못하는도다 성실이 없어지므로 악을 떠나는 자가 탈취를 당하는도다 여호와께서 이를 살피시고 그 정의가 없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공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공의를 갑옷으로 삼으시며 구원을 자기의 머리에 써서 투구로 삼으시며 보복을 속옷으로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으로 삼으시고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원수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 서쪽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 돋는 쪽에서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강물 같이 오실 것임이로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_이사야59:9-21’

 

공의가 사라지고, 성실도 사라졌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공의와 성실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모함을 말합니다. 세상은 그러나 그것을 싫어합니다. 세상은 사탄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존재가 분명하게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길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할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_이사야60:1-3’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어야 합니다. 엔돌핀은 웃을 때 나온답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말하기를 바이돌핀이라는 성분이 우리 몸에서 나온다고 하죠. 그 힘이 엔돌핀의 2천배라고 합니다. 깨달을 때, 감동할 때, 공감할 때 생기는 것들입니다. 의사들도 최고의 항암제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말 특별하게 창조하셨지요. 남자보다 여자가 더 오래 살고 성직자가 여자보다 더 오래 산다고 합니다. 왜 그런가요? 남자보다 여자가 여자보다 성직자가 영적인 희열을 더 많이 느끼고 살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많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주일마다 영적인 희열을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가 그런 예배가 되길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또 더러워진 옷을 빨아 입고 천국을 향해 가는 길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운 높은 산에 오르는 시간입니다. 힘이 듭니다. 2시간동안 땀을 흘리며 예수님은 올라가셨습니다. 예배가 그럴 것입니다. 산위에 올라가보십시오. 거기서 산 아래를 쳐다 보면 키가 170인지 190인지 구분도 안갑니다. 잘생겼는지 못생겼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잘못하다가는 세상의 기준으로 살 수 있습니다. 영적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을 경험하고 살면 세상이 사실 별거 아닙니다. 은혜의 산 위에 오르는 2018년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산 아래를 살리는 힘을 얻길 원합니다.

 

주님 깨닫지 못한 제자들처럼 저희들도 산 위로 데리고 가셔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또 천국을 경험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귀신 들린 세상에서 십자가의 길을 가야하고 믿음의 인생이 되기 위해 우리는 매주 예배마다 영적인 새 힘을 얻어야 함을 고백합니다. 그때마다 천국을 소망하게 하시고 무엇보다 주님의 말씀으로 영혼이 치유되어 어두운 세상에서 빛으로 살아야 할 힘을 얻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배하는 인생이 되어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 속에 살아가는 축복의 사람이 되고 축복의 교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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