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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8-02-04 주일예배


2018-02-04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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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4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사도 요한,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

본 문 :

마가복음 9:38-50

오승주 목사

. 우레의 아들, 요한_마가복음9:38,마가복음3:17

 

요한은 어떤 사람인가요? 요한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모습도 진실 되게 살펴보길 원합니다. 사람들은 남에 대해 잘 알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는 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승리하며 사느냐 그렇지 않고 사느냐를 결정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릅니다.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적용이 되지 않고,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께 올바른 기도도 드리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요한과 야고보를 처음 볼 때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아셨습니다.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_마가복음3:17’

 

요한에게 보아너게라는 별명을 붙여주셨습니다. 우레의 아들, 곧 천둥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토르인가요? 신의 아들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성격이 불같다는 뜻입니다. 성격이 너무 급하고 불같아서 붙여주신 별명입니다. 오늘 본문도 이렇게 시작합니다.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_마가복음9:38’

 

사실 본인도 은혜로 구원받고 권세도 얻었는데 다른 사람에겐 금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우리는 이전 설교에서 알고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해서 자존심이 상한 적이 있습니다. 자존심만 상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믿음이 없다고 혼까지 났습니다. 그런데 이름도 없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다니요? 성격이 불같은 요한은 그것을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너희가 허락도 없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아?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그런 요한에게 예수님은 몇 가지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 깊이 들어오셔서 우리를 변화시켜주시길 원하십니다.

 

. 우리 인생에 개입하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

 

1.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라_마가복음9:41,요한일서1:3,갈라디아서4:6

 

먼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_마가복음9:41’

 

은혜를 받으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불변의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강팍한 요한의 마음을 보시고 너희가 그리스도에 속한 자면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저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데 무엇이 문제인 것이냐? 이 말씀입니다. 꼭 너희를 따라야 하느냐? 정말 귀신들려 고통당하는 자들을 고쳐주는 것이 중요하지 않느냐? 그런데도 너희들은 왜 배가 아파 뒤틀려 있느냐?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어쩌면 이렇게 배배꼬여 있을까요.

저는 예전에 사람들 보기에는 엄청 착하고 순한 사람 같았지만 속으로는 욕심이 엄청 많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을 제가 해야만 했습니다. 제 손으로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을 죄다 혼자 했습니다. 나는 좋은데 하나님은 그걸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포스터를 하나 붙여도 저는 신경을 썼습니다. 남들 보기에 좋아야 하는데 그런데 그런 것 하나 시키면 제대로 못했습니다. 저는 그러면 화를 냈습니다. 왜 화를 냈는지 사람들은 잘 몰랐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은혜가 아니었습니다. 은혜 아니면 자격도 없는 것이, 은혜 아니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은혜 아니면 그저 세상에 속하여 살았을 저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이 차가워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_요한일서1:3’

 

요한은 사도들 중에 가장 오래 산 사람입니다. 그의 형제였던 야고보가 제일 먼저 순교했습니다. 동료들이 순교하는 것을 다 지켜봤습니다. 그는 나이가 들어 순회사역을 마치고 에베소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요한서신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유배지인 반모섬으로 유배되어 계시를 받아 요한 계시록을 기록합니다. 그가 기록한 성경은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과 사귐을 강조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그것을 경험했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우레의 아들이었던 그가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은혜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따듯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_갈라디아서4:6’

 

하나님께서 요한을 사랑하셔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을 마음에 보내주셨기 때문입니다.

 

2.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_마가복음9:42-43,고린도후서4:4,요한계시록21:1-5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_마가복음9:42-43’

 

예수님께서 이 무서운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요한에게 그리고 제자들에게 은혜를 모르면 시험주는 자로 살아야 함을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요? 자신의 의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곧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잃어버리면 사람들은 반드시 행위로 가게 됩니다. 저는 은혜로 시작한 사람들이 행위로 넘어지는 것을 많이 봐왔습니다. 은혜가 넘쳐 마음이 따뜻했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은혜를 하찮게 생각하고 소홀히 여기면서 자기 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행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남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기도 하고 정죄하고 비교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시지요. 그런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의 올무가 됩니다. 더 잘해야 하고 더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마음이 차가워집니다. 결국 자신이 그 올무에 걸려 넘어집니다. 놀라운 것은 그러는 동안 은혜에서 멀어진다는 것을 잘 모릅니다.

 

그 중의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_고린도후서4:4’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혼미하면 아무리 빛을 비춰도 살아날 수 없습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자리에 앉아있지만 말씀이 들리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나중에 하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을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_요한계시록21:1-5’

 

하나님은 요한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천국입니다. 정말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천국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천국을 향한 신앙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누가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은혜 속에 거하는 자입니다. 이 일에 신실하고 참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그것을 대체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행위가 아닌 은혜를 구하라_마가복음9:45-49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_마가복음4:45-49’

 

유대인들은 은혜가 아닌 행위를 드러내며 사는 인생이었습니다. 오늘 요한이 딱 그 모습이었습니다. 그토록 오랜 시간 예수님과 함께 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예수님이 화가 나신 것입니다. 행위를 드러내고 사는 것은 구원이 아니라 남을 시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매우 경직되어 있습니다. 완악하죠. 사전적으로 보면 억세게 고집스럽고 모질다 라고 표현되어있습니다. 은혜를 놓치면 시간 갈수록 고집불통이 되고 모질게 됩니다. 자기 의와 행위를 좇아 살다보면 따뜻한 마음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차가운 마음만 남습니다. 남을 평가하고 정죄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야 내가 돋보이니까요. 그러다가 서서히 죽는 것입니다. 자기가 죽는 줄도 모르고 죽습니다. 은혜에서 멀어지면 그렇게 됩니다. 처음 받은 은혜와 사랑을 잊어버립니다. 고마운 줄 모르게 됩니다. 불쌍한 사람들 봐도 눈물도 없고 안타까운 마음도 들지 않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부흥하고 많이 모여도 은혜가 없으면 십자가 복음이 설교가 되지 않으면 맨날 싸우고 갈등하는 교회가 됩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서로 행위로 정죄하기 바쁩니다. 시험 들기 바쁘지요.

은혜는 우리의 호흡입니다. 은혜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특징은 내가 잘해서 응답받았다 생각합니다. 내가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가정이 행복하다. 내가 열심히 해서 경제가 나아졌다. 맞는 말 같은데 틀린 말입니다. 기도를 많이 했기 때문에, 헌금을 많이 했기 때문에 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내가 목회를 잘해서 교회가 부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상한 짓도 하시고 세습도 하시고 그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리면 호흡이 멈춘 것과 같습니다. 은혜가 필요 없다고 하는 것은 곧 하나님이 필요 없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사가 증명하듯 성공하고도 무너진 사람들, 부흥하고도 타락한 교회들, 축복받고도 저주받은 사람들을 보면 한결같이 은혜를 하찮은 것으로 생각한 사람들입니다. 은혜는 행위가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처럼 행위로 알고 철저히 지키면 되는 줄 알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행위를 기뻐하시지 않았습니다.

 

. 은혜를 사모하는 인생_마가복음9:50,고린도후서12:8-9

 

은혜는 마음입니다. 은혜를 사모하는 인생이 축복된 인생입니다. 언제까지 은혜를 사모해야 하나요? 기한이 없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직분이 올라갈수록, 목회를 오래 할수록 그리해야 합니다. 요한처럼 말입니다. 요한은 나이가 들어 그 은혜를 맛보았습니다. 그가 오래 산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레의 아들로 죽지 않게 하셨습니다. 차가운 사람으로 계속 살게 두지 않으셨습니다. 요한이라는 이름의 뜻은 히브리어로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는 뜻입니다. 그는 제자 중에 나이가 가장 어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에게 그의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합니다. 다른 사도들이 다 대단한 역사를 일으키고 순교할 때 그는 마리아를 돌봐야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기록에 보니 심하게 좌절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울이 순교한 후 에베소에 와서 아시다시피 성경 중에 가장 중요한 성경을 기록하게 됩니다. 만일 그가 반모섬에서 요한 계시록을 기록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종말론을 알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폴리캅이나 파피아스, 이그나티우스 같은 제자를 남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은혜 중에 은혜를 깨달았던 그는 사랑의 사도로 살다가 순교 당했습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_마가복음9:50’

 

은혜를 잃어버리지 않으셔야 합니다. 소금이 맛을 잃어버리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나 소금은 좋은 것입니다. 맛을 내는 소금이어야 서로 부패를 막아주고, 상하지 않게 하며 도움이 됩니다.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은혜가 있어야 서로 화목할 수 있습니다. 은혜를 가진 한 사람이 세상을 살립니다. 그런데 은혜 받은 사람들은 바보 같아 보입니다.

제가 군에 갔는데 그 때 정말 은혜를 많이 받을 때입니다. 눈물이 마르지 않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군대 문화 아시지요? 등치는 산만한 게 같이 어울릴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니까 얼마나 구박을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담배도 안피지요? 욕도 할 줄 모르죠? 선임들이 구박하면 후임들에게 구박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까요. 그럼 군 생활이 꼬인다 합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새벽에 일어나 근무 설 때 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구원받은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요. 힘든 후임들 마음 돌봐주고, 선임들 챙겨주고 나중에는 대장이 부릅니다. 너는 아예 신병들 들어오면 상담부터 해. 선임들이 자기 이야기 잘 못하잖아요. 와서 다 이야기합니다. 가정문제, 미래문제, 그래서 복음을 전합니다. 한명도 교회 안간 저희 부대에서 나중에서 전부 함께 주일이면 교회에 갔습니다.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_고린도후서12:8-9’

 

사도 바울은 괴로운 질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 번이나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네 은혜가 족하도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울을 태도를 보십시오. 따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합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깨달은 것입니다. 이 질병이 있어야 은혜를 놓치지 않는 거구나. 하나님을 놓치지 않는 거구나. 안 그러면 대단한 사역을 다해놓고 넘어질 텐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거구나.

약장수는요 약을 팔면서 절대 그 약을 먹지 않습니다. 왜 그렇죠? 가짜니까요. 목사가 그러면 안 되는 거예요. 내가 은혜를 받지 못하고 남에게 은혜를 받으라고 하는 것은 약장수나 마찬가지입니다. 요한은 자신의 연약함을 절대 자랑하지 못했었습니다. 바리새인 보세요. 자신의 연약함을 어찌 자랑합니까? 불가능한 사람들입니다. 신앙을 행위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행위가 아니고 은혜입니다. 은혜로 사는 것이고 은혜를 향해서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 연약함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넘어져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다시 은혜를 향해 일어서기 때문입니다.

 

주님 은혜와 멀리 떨어져 살았습니다. 내 의가 중요했고 행위가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남을 정죄하고 비교하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내 자신도 행위의 올무에 걸려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마음은 차가워졌고, 강팍해졌습니다. 은혜를 소홀히 여기고 하찮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은혜와 상관없는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점차 평안이 없어지고, 오히려 분쟁과 분탕만 남는 것 같습니다. 주님 은혜는 하나님이십니다. 은혜는 우리가 이 땅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며 사는 유일한 길이요 힘입니다. 은혜는 우리의 호흡입니다. 은혜를 회복하게 하옵소서. 은혜를 회복시켜주옵소서. 우리 마음이 은혜로 다시 새롭게 되어 따뜻하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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