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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1 주일 2부 예배


2018-02-11 주일2부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2018-02-11 주일 2부 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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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11일 가스펠교회 주일 2부 예배

제 목 :

제자의 가정으로

본 문 :

마가복음 10:1-12

오승주 목사

. 예수님을 시험하여 묻되_마가복음10:1-2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 강 건너편으로 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시더니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_마가복음10:1-2’

 

저는 오늘 본문 말씀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습니다. 사실, 설교를 한편을 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야 하지만 시간을 투자한다고 무조건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본문의 내용을 잘 헤아리고 거기서 주시는 정확한 교훈을 찾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제가 은혜를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늘 은혜를 경험하고 체험하는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는 저에게 생명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설교를 듣고 계시지만 저는 듣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일 저녁이든 월요일이든 꼭 예배를 다시 드립니다. 홀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마음에 꼭 담아 한주를 시작합니다. 거기에서 기도제목도 나오고, 한주를 살아갈 힘도 얻습니다. 그렇게 말씀의 은혜 속에 제 마음과 삶이 들어가 있도록 애를 씁니다. 그것은 주님과 함께 하는 삶입니다. 주님을 모시고 살기 때문에 제 마음대로, 제 감정대로 살지 않게 됩니다. 때론 실수도 하고 마음을 빼앗기기도 하지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은혜의 시간이 있기 때문에 회개하고 마음을 돌이킵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저는 금요예배를 두고 많은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우리 교회 중직자, 젊은이들과 함께 기도할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갈수록 기도시간이 없어지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우리 삶을 그렇게 만들어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빼앗을 것입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은혜의 모임을 폐하고 기도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괴롭힐 목회를 하지 않을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임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금요일 밤 만큼은 세상에 빼앗기고 싶지 않습니다. 찬양팀에게 부탁드립니다. 주일 찬양보다 금요예배 찬양을 훨씬 더 많이 신경써주시길 바랍니다. 금요일만큼은 많은 전문인들이 예배를 섬기길 원합니다. 그래서 불신자들, 주일에 오기 힘든 전문인들을 초대해서 은혜를 나누고 함께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길 원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왜 시험합니까? 왜 율법을 가지고 예수님을 공격합니다. 그것은 자기들이 율법을 잘 지키고 있다는 이유가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은혜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악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악하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고, 뒤에서 말도 하고, 자기 패거리도 만듭니다.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예수님을 어렵게 한 질문이 무엇입니까?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이 말씀은 유대사회의 배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유대 사회는 이혼이 흔한 일이었습니다.

 

. 세상이 기준이 되어버린 가정

 

1.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_마가복음10:3-4,신명기24:1

 

대답하여 이르시되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 이르되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_마가복음10:3-4’

 

바리새인들은 이혼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어렵게 하려고 했습니다. 이혼에 관한 모세의 율법입니다.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_신명기24:1’

 

이 내용만 봤을 때는 성경이 이혼을 허용하는 구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율법은 그 반대입니다. 그 당시 유대사회는 이혼이 너무 많았습니다. 족장시대입니다. 그래서 남자가 여러 여자들과 결혼하여 살았습니다. 그래서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렸습니다. 버렸지만 정확하게 그 남자와 결별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다시 시집을 갈 수가 없었습니다. 여자의 인생이 너무 비참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막고자 이혼 증서를 만들었습니다. 이혼 증서를 써주어 다시 결혼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혼이 불가피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차선책으로 이혼 증서를 만들어주라는 것인데 사람이 얼마나 악한지 보십시오.

이 율법을 해석하는 데 두 학파가 다르게 해석했습니다. 보수학파인 샴마이학파는 수치스러운 일을 간음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리고 자유학파인 힐렐학파는 수치스러운 일을 남자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라 해석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여자가 음식을 해왔는데 손님들입에 맛이 없는 것도 수치라 생각했습니다. 그런 것으로도 이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내용이지만, 사람들이 얼마나 악한지 힐렐학파의 내용이 더 많은 지지를 받은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힐렐학파가 많다는 것을 알고 예수님을 함정에 빠트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을 가지고 너희의 마음의 완악함을 지적합니다.

 

2.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_마가복음10: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의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더니와_마가복음10:5’

 

어쩔 수 없이 이혼해야 하는 경우를 위해 마련된 율법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한 것입니다. 모세는 너희의 완악함 때문에 이 율법을 써준 것인데 너희가 또 그 율법을 완악하게 해석하여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많은 생각을 해야만 합니다. 이혼을 해야 되느냐 마느냐가 아닙니다. 우리가 왜 완악합니까? 캔터베리 대학교 사회학 교수이신 프랭크 푸레리 교수님께서 결혼은 계약관계가 아니다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결혼을 할 때 여러 약속들을 합니다. 경제권은 누가 가지냐, 가사는 어떻게 분담하느냐, 이런 저런 계약을 하고 결혼을 합니다. 그러나 막상 결혼하면 그런 계약들이 이행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화가 납니다. 견디지 못하고 싸웁니다. 그것은 결혼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결혼은 계약관계가 아니라 애정관계여야 한다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은 신뢰를 만듭니다. 누가 더 일을 많이 하고 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더 할 수도 있고 사랑하기 때문에 이해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계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이 인격적인가? 그걸 봐야 합니다. 그런데 악한 유대 남자들은 그 법을 이용하였습니다. 이혼증서를 낙엽 같은 것에 써주기도 했습니다. 낙엽은 마르면 부서지고 사라지잖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그 죄로 말미암아 악합니다. 악한 사람이라 함은 진리가 아닌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제가 청소년 사역을 하는데 진짜 열 받을 때가 언제인줄 아십니까? 장로님들이, 목사님들이 시설에서 일하시는데 청소년을 돈으로 생각할 때입니다. 수련회를 하고 집회를 하는데 다들 돈밖에 모릅니다. 그렇게 악할 수가 없습니다. 악한 일을 해서 악한 것이 아닙니다.

 

3. 제자의 가정으로_마가복음10:6-9,에베소서5:19-33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_마가복음10:6-9’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을 가지고 공격한 그들에게 창세기의 말씀을 주십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희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만나 변화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죄를 가진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 성령의 능력으로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변화된 사람도 항상 은혜가 필요합니다. 은혜가 사라지면 죄가 다시 사람을 사로잡기 때문입니다. 그런 변화 그런 은혜를 가장 느끼는 곳이 어디입니까? 가정입니다. 아내이고 남편이며 자녀들입니다. 가정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가장 어려운 전도가 가정전도입니다. 말로 전도 할 수 없는 곳입니다. 전도는 삶이어야 하고, 마음이어야 합니다. 바리새인은 단지 이혼 문제로 예수님을 시험하려 했지만 지금 예수님은 신앙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바라볼 때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 인간답게 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신앙입니다. 부부는 더욱 그렇습니다. 함께 하나님을 바라볼 때 비로소 온전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상식이나 법, 교리가 중요하지만 십자가의 은혜가 없으면 도리어 그런 상식과 법, 교리가 사람을 더 어렵게 하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있는 사람은 이익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합니다. 에베소서가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시와 찬송으로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_에베소서5:19-32’

 

에베소서 몇 가지 중요한 내용을 찾아야 합니다. 부부관계 즉 가정을 교회로 비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많은 성공과 대단한 일을 해야 하지만 가정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다시 말해, 교회를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부부관계도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시와 찬송으로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는 것,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고 찬송하는 것,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감사하는 것, 무엇보다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으로 교회가 그리스도를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부부관계가 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공한다고 죽어라 일하면서 영적으로 가정과 교회에 구멍이 생기면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이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제자가 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제자의 가정, 제자의 교회가 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 제자가 되라고 하십니다_마가복음10:10-12,시편102:1-3,야고보서1:27

 

집에서 제자들이 다시 이 일을 물으니 이르시되 누구든지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가면 간음을 행함이라_마가복음10:10-12’

 

이 말씀은 단지 부부사이의 간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 대한 메시지로 주신 말씀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우상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기도를 이용하고 하나님을 이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많은 대책을 세우고 있습니다. 가정문제, 자녀문제, 경제문제, 정신문제 수많은 문제들을 앞두고 교회들이 전략을 짜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제자가 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제자는 어떤 사람인가요? 변화된 그리스도인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두 가지 기준을 가진 사람입니다. 첫째, 경외를 회복한 사람입니다. 경외는 하나님의 권위, 거룩함에 압도된 것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공경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두려움은 건강한 두려움입니다. 죄가 다가올 때에 절대자 앞에 서 있다면 이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교회와 가정의 문제는 절대자를 경외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중세시대에 계몽주의가 생기면서 하나님과 결별을 선포했습니다. 그 때문에 세계대전도 일어났고 이념전쟁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온갖 질병과 부정부패로 인간 삶이 회복불능사태에 접어들었습니다. 저는 목사로써 항상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까불지 마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습니다.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하게 하소서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내 날이 연기 같이 소멸하며 내 뼈가 숯 같이 탔음이니이다_시편 102:1-3’

 

시편102편에 보면 내 날이 연기같이 소멸하며 라고 시편기자가 말하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내 존재를 자각하는 자만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연기 같이 사라질 인생을 깨달아야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습니다. 절대자가 없어지니 자기들 마음대로 삽니다. 애플이나 삼성이 영원할 것 같은가요? 정치 경제 의료가 영원할까요?

두 번째는 경건함을 회복한 사람입니다. 경외가 하나님을 향한 태도라면 경건은 밖을 향한 태도입니다. 경건은 내 마음을 지키고 다스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_야고보서 1:27’

 

야고보서1:27에 보니 세속에 물들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더 말씀하고 계시죠? 고아와 과부를 환난 중에 돌보라고 하십니다. 두 가지는 하나로 연결이 됩니다. 내 마음을 지키는 것이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과 연결이 됩니다. 마음을 지키기 위해 우리의 눈을 밖으로 돌려야 합니다.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향해 눈을 돌려야 합니다. 그것이 경건입니다. 이런 제자가 가정도 살리게 되고, 교회도 살리게 됩니다. 경외와 경건의 비밀이 우리에게 있길 원합니다. 어떤 특별한 사람이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세상을 향해 경건이 있는 올바른 사람입니다. 우리가 제자가 되고 또 제자의 교회, 제자의 가정이 되도록 함께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깨닫기 원합니다. 연기처럼 소멸한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절대자 하나님을 경외하길 원합니다. 또 주신 은혜와 사랑으로 내 마음을 지키고 이웃을 향해 은혜를 나누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은혜가 없으면 주신 율법도, 축복도 악용하여 악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처럼 말입니다. 그저 율법을 잘 지키고, 뒤에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는 바리새인이 아니라 내 부족함을 깨달아 오직 은혜를 구하는 주님의 제자가 되길 원합니다. 제자로 살길 원합니다. 내 가정이 제자의 가정이 되고, 내 교회가 제자의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