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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8 주일예배

2018-02-18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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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18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잘난 청년의 한 가지 근심

본 문 :

마가복음 10:17-31

오승주 목사

.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_마가복음10:17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_마가복음10:17’

 

목사가 가장 힘들 때는 사람에 대한 기다림입니다. 사람마다 다 시간표가 다르기 때문에 더욱 그럴지도 모릅니다. 무엇을 기다립니까? ‘저 성도님이 언제 구원에 대한 확신이 생길까? 저 성도님은 언제 은혜를 경험할까? 언제 말씀이 들릴까?’ 무슨 문제를 겪어도 구원에 대한 확신과 자유함이 있으면 마음이 편합니다. 그러나 아무 문제가 없어도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마음이 평안하지 못합니다. 저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훈련이나 모임을 할 때도 늘 그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많은 청년들이 저에게 질문을 합니다. 그러나 질문 자체가 틀릴 때가 참 많습니다. 그것은 질문을 할 때 자기 것(자기의 기준)으로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뀌지 않으면 질문도 바뀌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청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청년은 오늘 본문에는 부자로 설명됩니다. 마태복음에는 젊은 사람으로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관원이라는 지위를 가졌다고 설명이 됩니다. 종합해보면 젊은 사람이 일찍 출세해서 권력도 가졌고 재물도 많습니다. 그리고 예의도 바릅니다. 한마디로 엄청나게 잘난 청년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보통 세속적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모든 것을 갖춘 청년의 질문은 영생에 관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이 잘못되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 잘난 청년의 한 가지 근심

 

1.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_마가복음10: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_마가복음10:18’

 

이 내용은 신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된 주제입니다. 예수님도 자신을 스스로 선하지 않다 하지 않았다고 하여 예수님의 신성에 시비를 걸 때 이 질문을 이용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선하지 않단 말인가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청년의 질문의 의도를 간파하고 답한 것이지 하나님과 예수님은 하나이기 때문에 선하십니다. 이 청년의 질문은 이미 구원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만 구원을 받는 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행함은 곧 선행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답변을 피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

사실 이 청년은 자신의 선함을 자랑하기 위해 예수님에게 나왔습니다. 그가 정말 영생을 고민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영생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에 대해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자신은 구원받는다고 그릇된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하게 살면 구원받는 거야.’ ‘직분을 가지면 구원받는 거야.’ 그렇다면 저 같은 목사라면 구원에 대해 생각해볼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자신의 입장과 상황, 그동안 배워왔던 지식으로 구원을 생각합니다.

 

2.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_마가복음10:19-20

 

청년에게 예수님이 되물어봅니다. 정말 네가 선한 것이 맞느냐? 그러면서 그 청년에게 물어본 항목입니다.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_마가복음10:19-20’

 

6개 항목은 십계명에 담겨진 내용입니다. 십계명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있습니다. 1-4계명까지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 관한 계명이고 나머지 6개 계명은 우리 삶에 관한 계명입니다. 예수님은 십계명의 두 번째 부분에 대해 말씀을 하셨는데 놀랍게도 이 청년의 입에서 선생님이여 내가 이것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라고 합니다. 저것들을 다 지키었음에도 그는 영생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3. 한 가지 부족한 것_마가복음10:21-22,23-25,디모데전서6:3-12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_마가복음10:21-22’

예수님은 청년의 고백을 다 듣고 말씀하십니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이 말씀을 결코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재물을 다 팔고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줘야 하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됩니다. 이 말씀은 우선순위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그 청년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정말 나를 따를 수 있느냐입니다. 인간이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인간이 할 수 없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합니다. 내 삶도 그렇게 살아갑니다. 선함이 기준이라면 그 기준으로 평생 살아야 합니다. 재물이 기준이라면 돈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살아갑니다. 구원도 그것으로 해결 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예수께서 둘러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_마가복음10:23-25’

 

예루살렘성에는 큰 문이 있는데 정해진 시간이 되면 닫힙니다. 그러면 성 밖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들이 장사를 하다보면 늦게 올 수 있는데 그들을 위해 큰 문 옆에 바늘귀처럼 생긴 문을 만들어두었다. 문 이름이 바늘귀입니다. 바늘귀처럼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낙타 등에 있었던 짐들을 풀고 내려놓아야 그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은 유물론적 관점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이 땅의 어떤 것을 사랑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물질을 바쳐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씀이 아니고 삶의 우선순위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청년은 영생에 대해 목마름과 질문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재물에 더 관심이 많았고 사랑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은 율법을 다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네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물질적인 가치관을 내려놓고 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청년은 근심하며 떠났습니다.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_디모데전서6:3-5’

 

끊임없이 율법화되는 신앙을 주의해야 합니다. ‘신앙이 좋다는 것은 갈수록 은혜가 넘친다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 청년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이 청년에게 질문한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인가 득도하거나 행위적인 측면이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행위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차이점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이 청년이 한 가지 모르고 있었던 것은 마음입니다. 그 청년은 모든 것을 다 지켜 행하였지만 그의 마음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의 마음을 한 번도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그가 왜 예수님을 따르지 못했습니까? 마음에 근심하고 떠난 이유가 무엇입니까? 재물이 삶이 아닌 마음에 있었습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이 마음에 있으면 결코 예수님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은혜를 받을 수가 없고, 말씀도 들리지 않습니다. 욕심이 마음에 있으면 그렇게 됩니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_디모데전서6:6-12’

 

저는 바울사도가 제자 디모데에게 남긴 유언과 같은 메시지를 늘 되새깁니다. 제가 항상 제 삶의 기준으로 가지고 있는 말씀은 수많은 유혹에서 벗어나는 경건입니다. 그런데 이 경건의 핵심은 모양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유혹의 핵심도 마음이지요. 그래서 마음을 흔드는 그것, 오늘 성경은 그것을 돈이라 표현을 합니다. 그것이 근심하게 하고 자기를 찌릅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으로 자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경건도 무의미합니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많은 사람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 믿음의 사람들_마가복음10:26-31,디모데전서6:16-19,시편23:1

 

제자들이 매우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_마가복음10:26-31’

 

사랑하는 가스펠 가족들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현장을 선교의 현장이라 생각해야 합니다. 돈벌이 하러 나왔다면 그 순간부터 인생은 비참해집니다. 돈을 벌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공하지 말라는 말씀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면 비참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영혼이 보이지 않을뿐더러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지도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치열하고 유혹 많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요즘은 복음전도가 필요 없는 시대라고 합니다. 어떤 시스템과 이미지로 전도하는 시대라고 합니다. 맞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지가 매우 중요하고, 시스템도 매우 중요합니다. 저희도 비브릿지를 통해 그리고 깨끗한 이미지를 통해 전도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는 전도는 미련한 전도라고 했습니다. 복음에 대한 고백이 그들에게 전해질 때 성령께서 역사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정확한 복음을 말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그릇된 구원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질이 많으면 괜찮을 거야, 선하면 괜찮을 거야, 인맥이 좋으면 괜찮을 거야. 그러나 구원은 그것들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회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_디모데전서6:16-19’

 

구원은 믿음으로 받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언제 믿음이 생기지요?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될 때입니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신다고 사도 바울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 때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두려움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심을 깨닫는 다면 우리는 이 세상의 재물로 근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라고 하십니다.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것으로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항상 성경을 가까이하려는 이유입니다. 오직 성경만이 구원의 기준이 됩니다. 31일에 바이블스쿨을 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청년들과 앞으로 모든 프로그램을 할 때 성경공부에 방향을 맞추려고 합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우리 마음이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 순복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음을 재물이나 성공, 그 어떤 것에도 빼앗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두기 위함입니다. 그것만이 참된 생명을 취하는 좋은 터가 될 것입니다.

 

주님 내 기준으로 구원을 생각하고 살고 있지는 않았나요? 어릴 때부터 율법을 완벽하게 지켜 스스로 선하다고 생각한 젊은 청년처럼 선함이 구원의 기준이지 않았나요? 그러나 예수님은 청년의 마음을 들여다보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게 하는 재물의 욕심이 그의 마음에 가득했습니다. 그 욕심으로 인해 예수님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구원은 우리 마음이 오로지 예수님을 사랑하며 그의 음성을 듣고 온전히 따르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그것이 우리 힘으로 할 수 없기에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함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있는 세상 욕심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은혜가 채워지기게 하옵소서.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율법화 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가 넘치게 하옵소서.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인생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열매가 넘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