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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0 주일 2부 예배

< 주일 2부 예배 >

일시:  2014년 4월 20일

제목 : 만남의 축복

말씀 : 사도행전 8 :26-40

설교 : 오승주 목사


2014-04-20 주일2부예배.hwp



아래 링크를 통해 음성 메시지 파일을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https://db.tt/92u2uGRD


아래 링크를 통해 영상으로 메시지를 다시 볼 수 있습니다.

http://youtu.be/Mtb5YSt1ju4



Ⅰ.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17세기 프랑스가 낳은 위대한 과학자요 철학자이며 일찍이 프랑스 학계와 귀족계의 스타로 등극했던 파스칼은 하늘을 찌르는 교만과 귀족사회의 향락문화에 젖어 살았습니다. 그가 31세가 되던 해 어느 겨울밤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그 시간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 그의 영혼을 덮었습니다. 훗날 그는 팡세에 그날의 감격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은총의 해, 1654년 11월 23일 월요일, 밤 10시 30분 경부터 자정 12시 30분 정도까지 그 짧은 시간에 나는 하나님을 만났다. 철학자의 하나님도, 인텔리 학자들의 하나님도 아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확신, 가슴 속 깊숙이에서부터 터져나오는 기쁨과 평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그리고 당신의 하나님. 하나님외에 세상 모든 것들은 뒷전으로 사라지고 있다. 오직 복음을 통해서만 그 하나님은 알아질 수 있다. 의로우신 하나님, 세상은 당신을 모르지만 이제 나는 당신을 압니다. 환희, 환희, 환희, 눈물, 눈물, 눈물 너무나 달콤하고 완전한 포기. 내 인생의 감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완전히 항복합니다. 나의 기쁨은 영원하다’

파스칼이 어떤 경유로 하나님을 만났는지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후로 그의 인생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오늘 빌립와 에디오피아 내시와의 만남은 정말 특별합니다. 빌립 집사는 사마리아의 전도운동을 주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갑자기 광야로 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좌천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보기에는 불합리한 것처럼 보입니다. 사마리아에서 복음운동을 주도했는데 갑자기 광야로 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전략적으로 볼 때도 효율적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좌천된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저 권역을 맡으면 편할 텐데. 저 장로님을 모시고 사역하면 좋을 텐데.’ 그러나 빌립집사는 즉각 순종하였습니다. 그 광야에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신앙생활은 타이밍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실 때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무력한지 하나님이 주시는 그 말씀을 놓칠 때가 많습니다. 오늘 날 기독교인들이 무기력한 것은 매우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결정만 하기 때문입니다. 영리하고 계산적이어서 힘든 일, 손해 보는 일, 이해할 수 없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고집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한 책을 보니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야반도주를 한다고 합니다. 중국의 인건비도 올라가다보니 사업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전략적으로 인건비가 싼 중국의 내륙으로 갔다고 합니다. 중국은 아직 시골에는 부락으로 연결이 되어 있어서 그 지역의 촌장 같은 사람들이 힘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그 지역에 가서 동네 어른들을 챙기고 섬겼습니다. 그리고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어 출하 할 때는 항상 함께 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직원들과 함께 매주 월요일마다 공장 앞을 깨끗하게 청소를 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에 한번은 마을 청소를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는 주민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공장에서 만드는 물건을 선물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이 하시는 구원사역에 대하여 본질을 가지고 있다면 나머지 것들은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장은 싼 인력을 위해 마을에 봉사했습니다. 우리가 나중에는 소외계층을 돕고 3세계를 돕는 사역을 해 나가야 하는데 그것을 대가 없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영리하고 계산적이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에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Ⅱ. 내 인생의 사마리아

빌립집사가 순종하게 된 이유는 그가 제대로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빌립집사는 최초의 평신도 사역자입니다. 그는 사마리아 끝부분인 가이샤라 지방에 정착하여 25년 동안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1. 빌립의 체험

빌립집사가 무엇을 체험하였을까요? 그는 성령을 체험하였습니다. 어떻게 그가 사마리아로 가고, 어떻게 이방 선교를 하였으며, 오늘 본문에서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을까요? 그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매주 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저는 매일 영접을 합니다. 저에게도 아직 사마리아, 고집, 아집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우리 인생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빌립집사는 자신의 사마리아를 내려놓았습니다. 자신의 고집대로 살아왔고 유대의 전통대로 살아왔는데 그것으로는 구원받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생을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것 없이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여주옵소서라고 한 것입니다.

2. 빌립이 본 현장

그런 빌립이 사마리아를 체험한 것입니다. 그 현장은 빌립에서 충격이었습니다. 평생 유대 땅에서 믿는 자들과 종교생활을 하던 빌립집사가 사마리아를 그리스도인의 눈으로 보고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 땅에는 앉은뱅이, 귀신들린 자들이 있었고 마술사와 같은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초대교회 사도들에게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런 땅에 예비된 영혼이 있어 그리스도를 전하니 회개하고 믿고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저주받은 땅이 변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기쁨이 넘치는 것을 보고 ‘아, 정말 그리스도만이 인생의 참 해답이고 소망이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체험하고 보아야 합니까? 신앙생활을 하면서 영적인 눈을 뜨고 보는 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의 사마리아를 해결한다면 비로소 영혼들이 보일 것입니다. 그들을 살릴 수 있는 것은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복음뿐입니다. 빌립집사는 이것을 보았기 때문에 광야로 가라는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Ⅲ. 사마리아를 지나 응답으로

저와 여러분도 빌립처럼 사마리아를 지나 응답으로 가기 바랍니다. 한국교회 최초의 목사 중 한 분인 서경조 목사님이 있습니다. 기독교가 국법으로 금지되어 있던 시절에 만주에서 선교사들을 도와 한글 성경번역에 참가했던 서상륜장로(새문안교회 초대 장로)의 동생이기도 합니다. 이 목사님이 어려서 형을 따라다니다가 성경공부를 하고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향인 황해도 소래에서 한국 최초의 개신교 교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북녘에서 많은 복음운동이 일어나는데 목사이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남쪽으로 내려와 언더우드선교사를 만났습니다. 그 간청으로 언더우드 선교사가 북쪽으로 전도여행을 떠났습니다. 의주와 정주, 강계 등지에 이미 성경공부로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서 미조직된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서경조가 섬기는 황해도 소래는 거의 마을 주민 전체가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비겁함을 회개했습니다. 자신이 그 곳에 오지 않았던 것을 회개 했습니다. 이들에게 믿음을 가르치고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기독교가 국법으로 금지되어 있던 때라 언더우드는 세례를 받을 사람들 수십명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중국 땅에서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이처럼 영적 결단을 가진 사람들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의 결단이 이 민족의 운명을 바꾼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에디오피아 내시 같은 국가 고위층도 세례를 받을 때 격식을 따지지 않고 눈에 보이는 물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내시가 얼마나 기뻤던지 그 이후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것이 아프리카 복음의 시작이었습니다. 땅 끝으로 가라고 하셨는데 땅 끝이 빌립집사에게 온 것입니다. 세례는 믿음을 결단하기만 하면 그 즉시, 어디에서든지 받을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기독교는 그런 것입니다.

1. 빌립과 에디오피아 내시의 만남

사마리아를 지나 응답받는 신앙생활으로 가는데 중요한 첫 번째는 만남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한 사람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에디오피아 즉, 북 아프리카의 고위 관리가 예배하러 예루살렘까지 왔다가 돌아가고 있다는 것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에디오피아의 내시라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문을 듣고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왔지만 초대교회가 핍박으로 흩어지고 난 후였기 때문에 그에게 해결된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신앙에 대해 갈급했고 그래서 수레를 타고 가는 동안 내내 성경을 읽었습니다. 만약 빌립집사가 사마리아 사역을 조금만 더 하다 떠났다면 에디오피아의 내시를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내시가 중요하기에 사마리아 도시 전체 사역을 섬기는 사역을 잠시 내려두게 하고 빌립을 광야로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영혼을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한 영혼을 위해 모든 것을 멈출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다 같이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이럴 수 있어야 합니다. 그가 마차를 타고 유대와 사마리아를 지나고 있을 때 하나님이 빌립집사를 보낸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표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타이밍에 우연은 없습니다. 직장, 가정에 보내신 이유가 모두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건물에 갇혀 있거나 사마리아 사역에 만족하고 머물러 있었다면 북아프리카에 복음이 전해지는 이 만남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잘하고 있는 사역이라도 영혼구원의 본질에서 벗어나면 멈출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가라하신 그 길이 좁더라도, 축복의 길이 아니더라도 찬송하며 가야 합니다. 그곳에 한 영혼과의 만남의 축복이 예비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땅 끝을 빌립에게 보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큰 계획을 이루고 계신 것입니다.

2. 그리고 내 인생의 스토리

하나님은 이것을 인생의 스토리가 있는 자에게 주십니다. 빌립은 자신이 체험한 성령세례와 사마리아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정확하게 가지고 있는 자신의 스토리를 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만나든 스토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복음을 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빌립은 조급하지 않았습니다. 그와의 첫 만남에 그를 배려하고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내시가 이사야를 읽고 있으니 읽는 것을 이해하냐고 물어본 것입니다. 내시도 고위 관료였지만 정직하게 말했습니다. ‘지도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겠느냐?’ 그래서 마차에 올라오게 하여 질문을 했습니다. 이를 쓴 사람이 선지자 자신을 가리킨 것인지 타인을 말하는 것인지 물었습니다. 그러니 그 가리키는 자가 그리스도임을 말하여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내게 스토리가 있고 은혜를 받으면 여러분에게 예비된 영혼을 붙여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그것이 인생의 진짜 전도입니다. 내시는 빌립에게 성경 배우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배우는 데에는 사간을 드리고, 나의 삶에 초대하고, 정성을 드려서 배워야 합니다. 말씀이 달콤하게 내 것이 될 때는 말할 수 없는 인생의 축복을 받게 되는 데 우리는 늘 핑계 속에 살게 됩니다. 전도란 내가 억지로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미 택하시고, 준비하신 사람을 데리고 오십니다.

중요한 것은 빌립집사가 준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은 예비된 영혼을 붙이십니다. 영혼에 관심이 있는 자들에게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빌립집사는 복음의 스토리 즉, 자신이 만나 변화된 자신의 인생스토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환경이나 자신의 직책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해도 그 속에서 관심은 영혼구원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에 있으나 광야에 있으나 환경이 중요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관심 갖고 있는 것은 한 영혼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꼭 다수가 아니고 황금어장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그 한 사람이 아프리카에서 복음운동을 했습니다.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거지에게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베풀 때 그것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때 판단을 합니다. 빌립집사는 그런 곳에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영혼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내시가 말씀을 듣고 바로 세례를 주라고 했습니다. 아마 빌립집사가 고민했을 것입니다. ‘바로 세례를 베풀어도 되나? 그는 완전히 이방인인데?’ 그러나 내시는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라고 강하게 이야기합니다. 확신이 있었습니다. 예비된 영혼은 확신이 있습니다. 교회가 엘리베이터가 없고 김밥만 먹는 것에 시험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반대로 저와 여러분이 시험에 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이 아니고 구원이 아닌데 싸움을 합니다. 자리 때문에 싸우기도 하고 그런 것들 때문에 시험에 들어 본질을 놓치기도 합니다. 늘 본질로 돌아가는 개혁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빌립집사와 내시의 만남은 저와 여러분의 인생의 결론입니다.

Ⅳ. 내 인생 만남의 축복

여러분 인생에서 만남의 축복은 무엇입니까? 만남은 의미가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가스펠교회와의 만남도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러분이 인정하지 않는 그곳이 여러분에게 중요한 만남의 현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인생이 누군가에게 만남의 축복이 되는 중직자가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를 만날 때 가장 좋은 것, 중요한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것이 제 인생의 제1의 기도제목입니다. 저를 만나는 누군가는 저를 인해서 복을 받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인생에 무엇을 더 원하고 살 것입니까? 그것 때문에 성공도 해야 하고 치열한 삶 속의 싸움터로 가야 합니다. 그것 때문에 소외계층, 제3세계, 엘리트 현장으로 갈 것입니다.

이런 인생의 스토리가 미션홈에서 나눠져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각자에게 주신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 인생의 모든 만남은 축복이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런 역사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교회가 시스템과 제도, 합리적이고 눈에 보이는 프로그램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정작 우리 삶에 성령인도를 받아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사역은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 삶에 이런 역사가 사라지고 있는 것에 안타까워해야 합니다. 현장에서 이런 만남이 일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한국교회가 어려운 것입니다.

가스펠 교회 성도님들이 이런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_이사야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