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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8 주일예배



2018-03-18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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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318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무엇이 신앙생활일까?

본 문 :

마가복음 11:1-11

오승주 목사

 

. 예수님이 우시는 이유_누가복음19:41-42,이사야43:21-24

 

사회학자 찰스 쿨리가 제시한 개념인 거울 자아 이론이 있습니다.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보듯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모습이나 기대하는 모습대로 나의 자아가 형성되어간다는 것이 주된 핵심입니다. 내 자아가 주변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부모나 타인들에게 너는 그것밖에 안 되는 아이라고 항상 혼나고 정죄당하면 그것이 자존감 낮은 자아를 형성해서 커서도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든 좋은 사람을 만나 너는 참 귀하구나, 너는 참 아름답구나라고 들으면 건강한 자아가 형성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론은 성경 안에 가장 많이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우리가 하나님을 거울삼아 살 때 놀라운 일들이 우리 인생에 기적처럼 일어납니다. 소경이 예수님을 만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하였을 때 그의 인생은 바뀌었습니다. 나는 못한다 못한다 했던 모세에게 하나님은 너는 이 백성을 인도할 자로 내가 선택했다고 하셨습니다. 평생을 소경 따위라고 들었을 텐데, 평생을 살인자요, 배반자 소리를 들었을 텐데 만일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면 그들은 그렇게 살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음성으로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곳에 불러주셨습니다. 세상은 자꾸 안 된다, 너 같은 죄인이, 너 같은 것이 이러면서 하나님과 멀리 하게 만듭니다. 결국 허망한 인생으로 실패하게 만듭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할까요?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_누가복음19:41-42’’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롭게 여겼으며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제물로 말미암아 너를 수고롭게 하지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말미암아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하였거늘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하게 하지 아니하고 네 죄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_이사야43:21-24’

 

고독과 외로움은 내 안에서 나옵니다.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을 만나지 못할 때 고독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많아도 외로움을 느끼고 반대로 혼자여도 전혀 외롭지 않기도 합니다. 아직도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시나요? 신뢰하지 못하면 그분이 하시는 말씀도 들리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이 우시는 이유입니다. 내 백성이 내 음성을 듣지 못하고 우상 곧 사탄의 음성을 듣고 살아가고 있음을 탄식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우리가 분명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 무엇이 신앙생활일까?

 

1. 말씀대로 가시는 예수님_마가복음11:1-6,스가랴14:4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_마가복음11:1-6’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 산은 그 한 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_스가랴14:4’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무엇이든지 결정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철저하게 말씀대로 가고 있습니다. 스가랴의 예언대로 오늘 이곳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나귀 새끼를 구하십니다. 철저하게 말씀대로 가십니다. 우리는 말씀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나요?

저는 사실 농사꾼의 자식이고,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선생님 한분이 저에게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승주야 넌 공부하면 되게 잘할 것 같아. 머리도 매우 좋고, 의지도 있어. 공부를 도와줄테니 공부해볼래?’ 그래서 제 친구랑 저를 집으로 불러서 본인은 힘이 드시니 의대를 다니는 오빠에게 부탁해서 공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형님도 저를 예쁘게 보셔서 승주 되게 잘한다.’ 이러는 겁니다. 제가 그때부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나도 잘할 수 있구나. 그런데 제가 실업계학교를 다녀서 그런지 공부를 하기 시작하니까 금방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첫 시험에서 반에서 7등을 했습니다. 그리고 점차 올라가더니 졸업할 때 1등으로 졸업을 했습니다. 놀랍지 않으세요?

이게 단지 사람의 말로도 이렇게 되었는데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배 시간마다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지명하여 선택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축복의 사람으로 살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축복의 사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반복해서 그러시는 것입니다. 너를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축복의 사람으로 불렀다고 하셨습니다. 믿고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믿음의 사람들에 관해 책도 읽고, 말씀을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제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공부도 못하고 가난하고 모자란 제가 그런 말씀을 받았으니 그런 사람이 될 것이다 하면 믿기나 했을까요? 그래서 말도 못했습니다. 가정 복음화가 얼마나 어려운가요? 불가능하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주 예수를 믿으라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하신 거예요. 지금은 비록 어둠의 가정, 무너진 가정이지만 반드시 네 손에 증거로 주겠다. 그러니 너는 매일 기도해라. 진짜 매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니까 믿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인생의 거울이 되길 원합니다.

 

2. 나귀 새끼를 타시는 예수님_마가복음11:7,스가랴9:9,이사야53:1-3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_마가복음11:7’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_스가랴9:9’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고대 근동의 전쟁 중에 적장이 만남을 요청하는데 적장이 나귀를 타고 오면 평화조약을 맺겠다. , 싸우지 않겠다. 말을 타고 오면 너희를 정복하겠다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대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십니다. 무슨 말인가요? 평화의 왕, 화평의 왕으로 입성하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실 때 우리를 멸하려고, 벌주시려고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정죄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_이사야53:1-3’

 

우리는 예루살렘성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셨는데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 참 많이 모르는 것 같습니다. 내가 믿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르니 예수님과 동행하거나 예수님 안에 거하지 못하고 주일에 교회만 겨우 나오지 않고 있나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볼품없이 우리에게 오셨기 때문인가요?

 

3. 다윗의 나라를 구하는 백성들_마가복음11:8-10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앞에서 가고 위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_마가복음11:8-10’

 

이스라엘 백성들이 환호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다윗의 나라를 구합니다. 이것도 성경에 예언된 대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찬송하지 않으면 돌들로 찬송하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찬송은 다른 의미의 찬송이었습니다. 다윗의 나라, 즉 강력한 왕국을 꿈꾸는 찬송이었습니다. 그들은 후에 예수님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자 돌변하여 십자가를 지게 하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돌을 던지고 침을 뱉었습니다. 자신들이 원하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새가족이 오시면 꼭 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교회를 정할 때 말씀이 자신과 잘 맞는 교회를 선택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잘 맞는 다는 말은 듣기 좋은 설교가 아니라 나의 마음과 삶을 변화시켜줄 말씀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십니다. 그런데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타락한 백성이 원하시는 것입니까? 강력한 나라입니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죄에서 벗어나는 것 아닌가요. 구원이 아닌가요. 그런데 오랫동안 기다렸던 메시야가 오셨음에도 그들은 눈치조차 채지 못했습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인가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도 바울의 서신서를 읽으면 아시겠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가 정말 많이 나옵니다. ‘In Christ’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법적으로 죄에서 벗어나게 해주셨습니다. 더 이상 정죄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가는 것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과 동행하지 않고,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지도 않습니다. 존귀하신 이름, 영광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것이 이 시대 교회의 문제가 아닌가요.

 

. 신앙생활을 합시다_마태복음5:38-48,이사야55:1-3,야고보서2:18

 

우리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 말은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은 무엇일까요? 첫째, 항상 예수님을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중심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제가 이번 새벽 기도회 때 짧지만 산상수훈을 강해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죄로 인해 생각과 마음이 변질되었고, 눈이 가려져 버린 것입니다. 세상에 대해서는 밝아졌지만, 반대로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의 나라를 외쳐 부른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예언된 십자가사건을 잊고 살았습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_마태복음5:38-42’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십자가가 중심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화를 내는 이유도 생각 해봐야 합니다. 내안에 나도 모르는 욕심 때문입니다. 이기심 때문입니다. 무엇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았습니까?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거기에 은혜가 있습니다. 안식도 있습니다. 평안도 거기에 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욕심 부리면 진짜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놓치면 인생 전체를 놓치는 것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영원한 언약으로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은혜를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와서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_이사야55:3’

 

그런데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중요하다가 아닙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주일에 설교 다 듣잖아요. 그게 아닙니다. 말씀이 내게 하나님의 음성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우리의 영혼과 마음 육신까지 살린다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래서 설교 듣기 이전에 반드시 준비단계가 있어야 합니다. 내 인생이 하나님의 흐름 속에 있는가 살펴야 합니다. 그러면 예배에 집중하게 됩니다. 집중해서 말씀을 받을 때 나도 모르게 내 영혼이 살아나고, 치유가 되고, 내 삶까지도 변화가 일어납니다. 말씀을 받는 시간에 사실 모든 일들이 다 일어납니다. 그리고 말씀을 받았으면 말씀을 두고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묵상입니다. 왜 집중하지 못하는가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지 그 진짜 내용을 모르고 있으면 불신자보다 더 못하게 됩니다.

세 번째, 믿음입니다. 믿음의 행함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착한 일을 하거나 단순히 그런 행동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을 말합니다. 믿음은 순종이 포함된 단어입니다. 예수님처럼 순종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용기를 가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그냥 세상에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지 못하니 두려워하고, 걱정하고, 좌절합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믿지 못하니 불의를 부러워합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계산하면서 사는 것이 편안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평안은 없습니다. 믿음으로 살 때 평안함이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 모든 순간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하고 그분을 높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이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우리는 그 순간에 우리를 높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_야고보서2:18’

 

우리는 믿음으로 우리의 작은 삶과 이 시대를 살아야 하는 사명이 있어야 합니다. 크고 대단한 사역을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이 아닙니다. 내 생, 내 작은 삶에서 믿음을 살아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이 아닌가요?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담겨지고, 어떤 선택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화도다.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 속에 이뤄지니 날로 날로 가깝도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