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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7 주일 2부 예배

< 주일 2부 예배 >

일시:  2014년 4월 27일

제목 : 택한 나의 그릇이라

말씀 : 사도행전 9 :1-19

설교 : 오승주 목사



2014-04-27 주일2부예배.hwp




아래 링크를 통해 음성 메시지 파일을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https://db.tt/OxdzrJNh


아래 링크를 통해 영상으로 메시지를 다시 볼 수 있습니다.

http://vimeo.com/93063108


가스펠교회 주일2부예배 20140427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 새로운 가치관

 

모든 일이 그렇듯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명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도 반드시 조건이 필요로 합니다. 사명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은 무엇일까요? 사도행전의 본문을 통해 그것을 여러분과 나누길 원합니다. 바울에게는 본래 자랑할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바울은 태어난 지 팔일 만에 율법에 따라 할례를 받았습니다. 철저하게 율법을 준수하는 유대교인의 자녀로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또 바울은 이스라엘 족속이었습니다. 당시 유대교인 중에는 개종하여 유대교인이 된 이방인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태어날 때부터 선민인 이스라엘 형통이었고 무엇보다 베냐민지파였습니다. 사울왕도 에스더도 다 베냐민 지파이니 긍지가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인중의 히브리인으로 당시 세계의 공용어인 헬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였고 바울은 그 히브리어까지 완벽하게 구사한 엘리트였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는 바리새파였습니다. 율법에 관해 가장 엄격한 종파였습니다. 십일조를 할 때 쌀 한톨까지도 세었습니다. 때문에 자부심은 하늘을 찌를 정도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이야말로 율법적으로 흠이 없는 의인이라 믿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당대 최고의 율법학자 가말리엘의 제자였고 태어날 때부터 로마시민권자 였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2천년전 유대 사회에서 바울만큼 스펙을 갖춘 젊은이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대로 시간만 흐른다면 유대교 최고 지도자 반열에 오르는 것은 당연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모든, 많은 자랑거리, 선천적으로 얻었거나 노력으로 쌓아온 화려한 스펙들을 모두 배설물로 미련없이 버려버리고 말았습니다.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본문에 나온 것처럼 다메섹도상에서 시력의 상실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시력이 상실이 되면 인간의 바닥까지 내려가게 됩니다. 쌓아온 스펙, 지식, 돈이 의미 없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에 사로잡힌 바울은 그 자리에게 맹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조금 전까지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연행하기 위해 당당하게 걸어갔던 바울은 시력을 상실한 채 겨우 남의 손에 이끌려서야 다메섹에 입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바울이 추구하던 인생이 주님 앞에 철저하게 무효였음을 의미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영적인 맹인으로 한심한 인간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이런 깨달음이 있길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빛에 사로잡히고 보니 자신이 흠 없는 의인이기는커녕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죄인중의 괴수였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시력을 잃음과 동시에 바울의 옛사람은 죽었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안좋은 것들이 죽었다는 뜻으로 사용하지만 바울은 과거의 모든 것이 죽은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시력을 되찾음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새로운 삶이 되었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행위나 경력 스펙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죗값을 대신 치르게 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제물 삼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써만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복음을 온몸으로 체험하다 보니 바울 자신은 새로운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다 더 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가치관이 180도 바뀐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그 과정 속에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해 우리의 가치관이 바뀌는 은혜가 있길 바랍니다.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히는 교회를 박해하고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_3:5-9’

 

. 사명자 아나니아

 

1. 점진적인 구원의 계획

 

점진적인 구원의 계획은 신학적인 단어입니다. 사도행전이 어렵다보니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현대 중국이 오늘날과 같은 강대국으로 부상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덩샤오핑은 생전에 낙관주의자로 유명했습니다. ‘나는 하늘이 무너져도 걱정하지 않는다 하늘이 무너지면 키 큰 사람의 머리에 먼저 부딪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도 하였습니다. 그의 낙관적인 가치관 때문에 개인은 물론 중국 전체가 새롭게 바뀌게 되었습니다. 덩샤오핑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공산주의자였지만 중국이 그 정도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입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희망과 미래를 두고 살아가는 사명자인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이 근심하고 있습니까? 요즘 기독교인에게서 희망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 소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점진적입니다. 환란이 있으나, 문제가 계속되나 구원의 계획은 계속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메시지가 사라진 요즘의 한국교회에서 우리의 믿음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 다시 말해 하나님의 셈하심과 상 주심을 믿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믿는 사람만 그날에 대비하여 자기 삶 속에서 끊어낼 것을 미련 없이 끊어내고 포기할 것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에 많은 학생이 다니지만 시험의 결과를 의식하는 학생만이 놀고 싶은 마음을 제치고 공부에 열중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좋은 결과를 얻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구원받은 자의 삶은 점진적이어야 합니다.

2. 핍박자, 이방인 사울

 

바울은 원래 핍박자였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이방인이었습니다. 대단한 사람이지만 그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교회를 핍박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나니아에게 사울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시력이 회복되도록 안수를 해달라고 했지만 아나니아가 거부감을 표시했을 정도입니다. 하나님의 점진적인 구원의 역사를 믿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인정하기 싫고 만나기도 싫고 너무 미운 사람이 있습니다. 지긋지긋한 가정의 역기능자가 있고 회사와 만남 속에 생각도 하기 싫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혹시 예수 믿는 다고 놀리거나 핍박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택한 그릇이라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그래서 우리는 보편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3. 보편적 그리스도인인 아나니아

 

오늘 아나니아는 거부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우리는 아나니아에게 가르치셨던 주님처럼 보편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보편적 그리스도인이 무슨 말입니까? 보편적인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데 무슨 말일까요? 당시 사회는 지금보다 더 심한 빈부격차, 신분의 격차가 있었습니다. 감히 종이 교회에 와서 자기가 모시는 상전과 같이 예배드릴 수 있겠습니까? 초대교회, 예루살렘 교회가 그것으로 계속 문제를 삼자 하나님은 바울을 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묵상할 안디옥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보편적 그리스도인이 모이면 보편적 교회가 됩니다. 무릇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생명의 삶을 살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교회 안으로 들어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에는 사기꾼도 들어올 수 있어야 합니다. 술주정뱅이, 살인자, 거지, 독재자도 들어와 함께 예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회개하고 복음을 받으면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려운 과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만민을 위한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특정 부류의 사람들만 모이기 원하는 교회는 주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그것은 타락한 교회입니다. 아무리 은혜가 있고 사람이 많이 모여도 주님의 교회라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교회라면 반드시 남녀노소, 빈부귀천이 주님 안에서 차별 없이 한데 어울리는 보편적 교회여야만 합니다. 교회가 건물이나 제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신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우리 또한 보편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나니아 그리고 초대교회에게 그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분명히 교회의 원수, 살인자, 핍박자였지만 주님께서 그 바울을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선포하십니다. 그래서 아나니아는 자신의 뜻 자신의 신앙의 논리를 접고 바울을 찾아가 그가 다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안수해준 보편적 그리스도인이 된 것 입니다. 여러분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는 사람은 누구든지 복음을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_신명기14:29’

 

. 택한 나의 그릇이라

 

1.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_사도행전9:3-9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도하는 현장은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정, 주신 현장, 하나님이 주신 만남, 하나님이 주신 직장으로 인정되어야 합니다. 우리 집에 역기능자가 있고 병든 자가 있고 장애인이 있어도 하나님이 그 현장을 주신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 사마리아가 인정이 되어야 기쁨과 감사의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삶의 터전인 예루살렘이 멸망당하고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당한 환난은 재앙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재앙이 아니라 평안을 주기 위함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새로운 미래와 희망을 주시기 위한 섭리였습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외면하고 욕망의 눈이 멀어 한번밖에 없는 소중한 생명을 허망하게 갉아먹던 그들을 꺾으심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인생의 가장 소중한 사명자로써의 삶, 전도자로써의 삶, 가치 있는 삶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아나니아의 삶이었고 바울의 삶이었습니다.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_로마서6:22-23’

 

2. 사명자의 삶_사도행전9:15

 

사명자로 살아간다고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고 무병장수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천국의 소망을 가진,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인생의 엄동설한과 폭염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사명자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모든 것이 배설물로 여기고 이제 주님과 교제하면서 이 복음을 전하며 사는 것이 너무 큰 기쁨이고 행복이라고 여겼던 바울처럼 말입니다. 사명자로 산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유일하게 제 기분을 표하는 사람이 아내입니다. 좋은 감정은 표현을 하지만 나쁜 감정은 나타내지 않습니다. 아내에게는 가장 가까우니 감정이 드러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아무리 기분이 나빠도 표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첩경을 평탄케 하는데 짐이 된다는 생각에 참고 인내 하는 것입니다. 기분이 나쁘더라도 그날 주님 앞에 서면 그 은혜가 배가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저들에게 복음을 전하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하더라도 그를 보듬는 것이 사명자일 것입니다.

 

. 강건한 그리스도인

 

저와 여러분이 강건한 그리스도인이 되길 바랍니다. 무엇 때문에 강건해야 할까요? 힘이 있어 남에게 힘을 자랑하기 위함일까요? 지식이 있어 남을 은근히 무시하기 위함일까요? 새로운 가치관을 가진 사람은 완전히 변화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놀라운 섭리에 모든 방향을 맞추었기 때문에 항상 그것으로 갱신하고 그것을 위해 준비하는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성도이고 사명자입니다. 그리스도인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말씀 속에서 무슨 음성을 들으셨나요? 미션홈에서 그리고 개인이 중요한 기도제목을 찾고 나누시길 바랍니다. 살아가는 길이 다른 길이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 하나님이 내게 보내주신 바울은 누구일까? 그것이 우리의 삶이고 신앙의 목표, 방향입니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_사도행전9:1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