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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8-04-29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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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429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본 문 :

마가복음 12:38-44

오승주 목사

 

. 예루살렘 성전의 모습

 

결혼생활은 관계의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관계를 위해 애쓰는 일을 그만둘 수 없고 그만두어서도 안 됩니다. 마치 우리가 이미 도달한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흘러가게 내버려두면 가정은 심각한 문제가 옵니다. 결혼기념일 한번 잘 챙겼다고 해서 그 효력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매일 사랑한다, 미안해요, 용서해요라고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사랑을 기억하고 서로에서 그것을 깨우쳐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부족하다는 인식입니다. 멋진 결혼 생활을 원한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결혼생활을 보면서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그 부러운 결혼생활은 분명 매일 해야 할 수고를 끊임없이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주일에 예배 한번 드렸다고 그 관계에서 오는 놀라운 은혜와 위로, 찬송을 기대한다면 그것은 무리입니다. 결혼기념일이나 생일 등을 잘 챙겼지만, 일상에서 필요한 수고를 해야 하듯, 매일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예루살렘이 왜 이렇게 생명이 없는, 은혜가 없고 구원이 없는 죽어버린 공동체가 되었는가요? 예수님은 바리새인, 헤롯당, 사두개인 그리고 오늘 서기관을 만나시면서 예루살렘 성전의 모습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 우리와 우리 교회의 모습을 보게 하십니다. 그들은 무엇을 잃어버렸을까요?

 

. 과부의 헌금을 통한 예수님의 메시지

 

서기관들을 삼가라_마가복음12:38-40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_마가복음12:38-40’

 

예수님은 서기관의 모습을 정확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놀라운 것은 서기관들은 자기 자신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서기관과 같은 모습을 동경하거나 그런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을까요? 서기관들은 단지 성경을 필사하는 전문인일 뿐만 아니라 지금으로 말하면 법률가와 같은 일을 했습니다. 그들은 남편이 죽으면 재산을 분배하여 과부와 고아들을 지켜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과부들이 어떤 서기관을 찾았을까요? 당시에 기도를 오래 하는 서기관이 능력 있는 서기관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외식하며 더 오래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이상한 옷을 입고 다닌 것도 더 눈에 잘 보이기 위함입니다. 골방에서 기도해야 하는데 의도적으로 사람들이 보는데서 오래 기도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그러면서 과도한 세금을 땐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사람들이 그것에 속았다는 것입니다. 이벤트에 속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서기관을 삼가라고 하셨습니다.

2. 과부의 헌금_마가복음12:41-44

 

예수께서 헌금함에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_마가복음12:41-44’

 

이 성전은 헤롯성전입니다. 헤롯이 성전을 지어서 유대백성에게 마음을 산 것입니다. 에서의 혈통인 헤롯은 정통 유대인들에게 호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집안대대로 로마정권에 붙어서 분봉왕 자리를 계속 한 것입니다. 그랬던 그들이 성전을 지어서 인기를 얻어야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 돈으로 성전을 지었습니까? 헤롯이 돈을 냈나요? 로마에서 지어줬나요? 성전을 짓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헤롯성전은 불순한 동기가 가득합니다. 예수님이 태어난 이 당시에는 백성들이 대부분 어려웠습니다. 보리떡으로 연명하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돈을 걷어야 하니 종교지도자들이 신앙교육한다는 차원에서 주시한 것입니다. 말씀을 전할 때도 그런 동기를 가졌기 때문에 말씀을 전하는 것이 변질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속겠지요.

서기관을 주의하라 하시고 헌금함 앞에 앉으셨습니다.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 보신 것입니다. 그러다가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주목하셨습니다. 여기서 가난한이란 단어는 생존도 할 수 없는 정도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왜 주시하셨을까요? 정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생계도 어려운 과부의 헌금 두렙돈이라고 하면 당시 한 끼 식사 정도의 금액입니다. 순수한 헌금, 하나님 앞에 감격해서 드리는 헌금이 변질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은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것은 단지 돈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크고 작음의 기준은 우리의 기준과 매우 다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헌금을 하는데 과부의 헌금에서 멈추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과부의 마음을 본 것입니다. 얼마나 감격했으면, 얼마나 감사했으면 그렇게 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정말 걱정할 것은 이 가난한 과부가 아니라 서기관일 것입니다. 정말 걱정할 것은 심판이 아닐까요?

 

3.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_사도행전2:44-47, 요한일서4:14-16, 4:7-8, 로마서15:1

 

교회를 향해서 하나님은 두 가지를 꼭 해야 한다고 명령하셨습니다. 교회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가난한 자들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교회공동체가 존재하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_사도행전2:44-47’

초대교회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교회는 이런 곳이야라고 본보기로 보여주시는 곳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과부와 고아들을 도운 것입니다. 요세푸스가 기록한 책에 보니 그런 내용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다시 말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짜 삶의 이유를 찾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 세대의 교회들이 구제헌금을 했고 그것으로 지역의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가 돕고 섬겼습니다. 그런 일을 통해서 가난하고 병든 자들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예수님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주에 네팔의 따루목사님께서 급하게 연락이 오셨습니다. 아내가 병원에 입원했는데 병원비가 없어서 퇴원을 못한다고 합니다. 네팔 같은 가난한 나라에서 더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목사님에게 가장 힘든 것은 바로 경제입니다. 단돈 10만원이 없어서 퇴원을 못한다고 합니다. 저는 우리가 정말 병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당장 우리교회에 그런 성도님들이 계시지는 않겠지만, 저는 우리 교회가 과부와 고아가 올 수 있는 건강한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돕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두 번째는 복음을 전하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_요한일서4:14-16’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그랬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는 일들이 벌어져야 합니다. 이것은 교회뿐만 아니라 동시에 우리 개개인들의 중요한 이야기여야 합니다. 십자가의 비밀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증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이것이 없다면 더 이상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이유가 없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냥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사는 정도의 종교인이 될 뿐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이 메시야를 잃어버렸습니다.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을까요? 말씀을 통해 메시야를 전해야 하는 그들의 사명을 잃어버리니 당연히 그들의 삶은 변질되고 타락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_로마서15:1’

 

믿음이 강한 우리가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해야 합니다.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정말 믿음이 전달되는 역사가 일어나길 원합니다. 그런데 왜 이 두 가지가 사라지고 있을까요? 이 두 가지를 지탱하는 원동력을 상실해버렸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를 지탱하는 원동력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_요한일서4:7-8’

 

우리는 이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우리도 저 종교지도자들처럼 세상에 마음을 빼앗겨 시야를 잃어버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_고린도전서1:5-7, 11-13, 3:1-3, 12:4-7, 13:1-13

 

예루살렘성전에서 종사하는 그들을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입니다. 부부사이에 이 질문이 없다면 왜 수고해야 하는지, 왜 인내해야 하는지, 왜 용서해야 하는지, 왜 고마워해야 하는지 모르게 됩니다.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엄청나게 똑똑한 사람들이 많았나봅니다.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_고린도전서1:5-7’

 

고린도 교회의 특징입니다. 모든 일을 하는데 언변과 지식이 풍족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증거가 견고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또 다른 면을 말합니다.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_고린도전서1:11-13’

 

그들은 심각한 분쟁 속에 있었습니다. 서로 미워하고 다투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과 같지 않습니까?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_고린도전서3:1-3’

 

바울은 그들을 어린아이를 대함과 같이 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어린아이는 젖먹이 아이를 말합니다.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늘 신경을 써야 합니다. 고린도 성도들에게 엄청 자존심상하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지식은 대단한데, 언변도 뛰어난데 젖먹이 어린아이처럼 미숙한 사람이구나. 왜냐면 사랑도 못했고, 용서도 못했고, 용납과 수용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그 무엇을 초월하게 만듭니다. 배우고 못 배우고의 차이가 아닙니다. 사랑하면 현명해집니다. 남편이 지옥에 간다고 생각하시면 어떻게 하십니까? 자녀가 지옥에 간다면 어떻게 하십니까? 온 생을 다해 쉬지 않고 기도하고 그를 섬기겠지요. 그 섬김을 멈춥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렇습니다. 그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결코 자신의 언변이나 지식을 가지고 자랑하거나 그것 자체를 위해 살지 않습니다. 왜냐면 별거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질 즉 진짜 해야 할 것을 합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_고린도전서12:4-7’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_고린도전서13:1-13’

 

사람들은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른다고 쉽게 말합니다.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이나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혹은 내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진짜 할 일이 없습니까? 사랑하면 현명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할 일이 없지요? 사랑이 아니라 이름을 드러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알아주길 원해서 그렇습니다. 그런 것들이 사라지면 일을 안 하시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일은 이름 없이 섬기는 일, 기도하는 일, 한명 한명 섬기는 일입니다. 정말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교역자들이 영혼을 사랑한다면 할 일이 보일 것입니다. 신앙이 장성하지 못하면 어린이아와 같습니다. 어린 아이 때 생각하고 말하던 것을 장성하면 버립니다. 왜 그렇죠? 부끄럽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지식을 이야기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쉽사리 판단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장성하면 알게 됩니다. 사랑이 제일이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주시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진짜 축복이 하나님께 나옵니다. 사랑이 없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시길 바랍니다. 그 사랑이 우리에게 화목과 평안 용서를 선물해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때 우리도 서로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라 영혼을 사랑하게 됩니다. 더 이상 우리끼리 좋은 공동체가 아니라 고아와 과부가 올 수 있는 공동체가 되고, 생명을 살리는 복음의 증거가 있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이 사라지지 않도록 우리에게 질문하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 타락한 헤롯성전의 종교지도자들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관심 없는 그들을 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관심 없는 그들을 봅니다. 부패하고 타락한 성전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들처럼 이기적이고, 자기 밖에 모르고, 인기와 명예, 세상의 것들을 쫓는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사랑할 때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나는 것을 알면서도 이제 사랑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게 하옵소서. 우리 마음에 밝은 빛을 비춰주셔서 다시금 그 마음을 회복시켜주옵소서. 초대교회처럼 가난한 자들을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는 마음을 주셔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고 성도가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