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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8-05-20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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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20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본 문 :

마가복음 14:1-9

오승주 목사

 

. 참된 교회로 돌아오라_마가복음14:1-2,고린도전서6:19-20

 

지난주에 청년들과 제자훈련을 하면서 성경읽기에 대해 많이 강조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읽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제 경우를 봐서 그것은 신앙의 퇴보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이 퇴보하는 여러 가지 징후들이 있지만 가장 먼저 말씀에서 멀어지는 것만큼 확실한 징후가 또 있을까요?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것이 많습니다. 우리가 마음대로 우리 뜻대로 사는 것이 뭐가 문제가 되냐고 말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생각해보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겠지만 하나님은 말씀으로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말씀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런데 교회들이 타락한 세상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마케팅이니, 프로그램이니, 그래서 온갖 형태의 예배들과 프로그램을 만들어냅니다. 그런 것들이 어찌 필요 없다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말씀이 희미해졌습니다. 성도들도 그렇지만 심지어 목사들도 그렇습니다. 설교가 어려우면 안 된다 합니다. 설교가 길면 안 된다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25분 설교니, 예화설교니 그런 식으로 설교에 대한 마케팅이 많이 나옵니다. 더 쉽고 더 재밌어야 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성경을 읽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굳이 읽지 않아도 된다는 식으로 말을 합니다. ? 성경을 굳이 읽지 않아도 된다고요? ‘복음만 알면 된다, 내게 은혜 되는 성경구절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몇 구절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는 식입니다. 마치 이것은 내 삶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지 않아도 된다. 일부분만 드리면 된다. 아니면 하나님을 전부 알지 않아도 되잖아. 내게 필요한 하나님만 알면 되지 그런 것과 같지 않습니까? 성경이나 역사 속에 타락한 징후들과 같습니다. 학교 다닐 때 저는 요약본만 가지고 시험공부를 한 적이 있습니다. 평소에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치곤 좋은 결과를 얻었지만 결코 어떤 수준을 넘어서지는 못했습니다. 책을 읽어도 목차만 읽고 관두는 사람은 결코 그 책의 전체 줄거리와 작가가 주는 의도를 알지 못합니다. 목차만 읽고 아는 척을 하는 사람들이 많죠?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이르되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_마가복음14:1-2’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구체적으로 계획합니다. 그런데 저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데 유월절을 피하자 합니다. 저들은 유월절의 행사는 하지만 유월절의 의미는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잘못을 하면 회개해야 하는데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항상 정치나 권력에 관심이 있으면 즉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잘먹고 잘사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말씀을 듣기 싫어합니다. 내 믿음이 확인되고 부족하면 자라야 하는데 자라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쪽팔리니까요. 그러니 영원히 종교인들처럼 살아갑니다. 저들이 유월절을 피해서 예수님을 죽이려는 의도는 유월절이 거룩한 날이어서도 아닙니다. 민란이 일어날까 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많이 좋아하고 따르니 그것을 피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유월절을 피했나요? 예수님이 언제 십자가에서 죽으셨죠? 유월절입니다. 참 인간이 어리석습니다. 자기들의 계산과 생각으로 마치 다 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계획한 것과 상관없이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희미해졌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_고린도전서6:19-20’

 

저는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그러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몸을 드려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부분에 관심이 없습니다.

 

.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벌어진 일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_마가복음14:3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_마가복음14:3’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들어가셔서 식사를 하고 계십니다. 여기가 어디입니까? 예수님이 문둥병을 고쳐주신 사람 시몬의 집입니다. 다시 말해, 은혜를 입은 사람의 집입니다. 지금 구원받은 사람에 대한 상징을 보여줍니다. 유대인들에게 식사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단순히 밥 먹는 작업이 아닙니다. 식사시간이 매우 깁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식사가 중요합니다. 반드시 하루에 한번 온 가족이 모여서 식사를 합니다. 그때 주님에 대해 감사하고 은혜를 서로 포럼합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문둥이었던 시몬의 집에 초대되어 함께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요? 성경에서 문둥병은 죄인을 상징합니다. 죄인인 우리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놀라운 사랑을 받아 우리의 신분이 바뀌어서 예수님을 모시고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한 여자가 나타납니다. 사실 오늘 본문은 4복음서에 모두 같은 맥락으로 거론될 정도로 중요한 본문입니다. 다른 복음서에 이 여자가 마리아라는 것을 밝히고 있지요. 그런데 마가는 한 여자로 표현을 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제 추측이지만 마리아에 대해 부각시키지 않으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 말은 마리아의 헌신 그 자체를 부각시키지 않으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마리아는 마르다와 자매입니다. 마리아가 갑자기 나드라는 향유를 들고 나옵니다. 정말 값비싼 물건입니다. 왜냐면 이스라엘에 나드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인도산입니다. 다시 말해 수입품입니다. 정말 아껴서 한 방울씩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당시 여성들은 주로 머리를 손질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닦아주기도 하였습니다. 얼마나 귀한 물건이냐면 당시에 화폐가치로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일 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수천만원이 넘겠지요. 그런 향유를 통째로 들고 오더니 예수님 머리와 발에 다 부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아주었습니다.

 

2. 한 여자와 어떤 사람들_마가복음14:3-5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_마가복음14:4-5’

 

그때 제자들을 비롯한 사람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주로 유다라고 추측합니다. 유다는 제자 중 가장 똑똑하여 재정을 맡았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따르는 목적이 달랐습니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고 능력이 대단했기 때문에 저분을 따르면 인생이 바뀌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따랐는데 인생이 바뀌긴 바뀌었지요. 큰길로 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좁은 길이고,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인기 좀 얻고 수입 좀 되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핍박을 받았습니다. 산에만 올라가서 이상한 비유만 들려주시는데 아무리 봐도 이 양반 따라가면 남는 것이 없겠다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이 사건 이후로 행동에 옮깁니다. 예수님을 팔아버리려고 계획을 이 때 세웠다 생각합니다. 유다가 선동하자 제자들도 이 비싼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면 얼마나 좋겠냐고 합니다. 맞습니다. 그것이 정상적이고 합리적이며 당연한 말입니다. 무엇보다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이 유월절을 앞두고 율법의 중요한 실행항목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여인의 일을 가만 두어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죠? 예수님 주변의 사람들 중에 유일하게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이해하고 깨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 사건도 마찬가지의 맥락입니다. 음식을 준비하는 것도 좋고, 행사를 준비하는 것도 좋습니다. 마치 마리아는 버르장머리도 없는 것처럼 나오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지속적으로 십자가에 대하여 말씀을 하시지만 그것을 주의 깊게 들었던 사람은 마리아 한 사람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그는 값비싼 향유를 들고 예수님 앞에 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대로 십자가에 죽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주신, 사랑을 주신 예수님이 이제 완전한 사랑을 위해 가시는 십자가 죽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다녀도, 아니 예수님을 믿는다 해도 우리는 무엇이 중요하고 그렇지 않는지 잘 모릅니다.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홀로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3.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_마가복음14:6-8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_마가복음14:6-8’

 

사실 이 본문을 가지고 이런 설교를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값비싼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해.’ 이 본문에서 그런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일을 좋은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마리아가 한 일이 옳은 일이 아니라 좋은 일(선한 일, 칼론 에르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옳고 그른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칼론 에르곤이란 뜻은 적절한 아름다움입니다. 다시 말해 원래 제자리에 있던 아름다움을 말합니다. 타락한 세상, 폐허가 된 인간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다시 제자리로 찾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여인에게 칭찬한 것은 정말 최고의 칭찬입니다. ‘너 정말 아름답구나!’ 입니다. 옳은 개념과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고 그러셨을까요?

마리아는 자신을 위해 예수님이 고난당하고 죽으실 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세상의 것을 드려서 드러낸 것입니다. 사랑에 찬 행동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면 여인의 행동은 너무 감동적인 행동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도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당시에 여인이 머리를 푼다는 의미는 철저하게 자신이 죄인이라는 뜻입니다. 당신은 나의 주인입니다. 머리에 대해 정말 의미 있게 생각을 합니다. 기름을 붓는 다는 것은 아시다시피 선지자 제사장 왕을 세울 때 기름을 붓습니다. 그리고 귀한 손님에게 기름을 붓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의 의미가 다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 여인의 행위는 자기 신앙고백이면서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직접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여인은 메시야의 죽음을 통해 나 같은 죄인이 구원을 받습니다.’ 라는 옳은 가치보다 훨씬 큰 가치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직접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진실로 알고 주님의 사랑에 대한 은혜에 이끌려서 하는 행동을 봐야 합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이해하고 깊게 사랑해서 온 마음과 정성으로 주님의 뜻을 좇거나 섬김과 헌신을 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제자들마저도 이 마음을 따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자고 소리친 사람이 바로 가룟유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확인하고 가야 합니다. 감사와 사랑의 행위를 가지고 가난한 자를 돕지 않으면 그냥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은 세속적인 행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옥합을 깨드릴 수 있어야 한다. 어떤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이것은 분명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가룟유다를 보세요. 30을 받고 예수님을 넘겨주게 되는 사건이 연결이 되지요. 이제부터 예수님이 재판장에 호출되었을 때 예수님을 거스려서 증인으로 서겠다는 행동을 하지요. 어떻게 이렇게 바뀔 수 있을까요? 그렇게 가난한 자를 위해 소리를 치던 가룟유다입니다. 정말 예수님에 대한 죽음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신앙생활이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옥합을 깨뜨리지 못하면 나중에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_마가복음14:9,고린도전서9:12,16-19,24-2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_마가복음14:9’

 

예수님은 오늘 마리아의 사건을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꼭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마리아의 사건을 복음을 전파될 때 마다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의미하지요? 예수님은 이 여인이 행하는 일을 기억하리라 했습니다. 이 여인이 행한 행위 속에 복음이 다 포함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 부활, 자기부정을 통한 죄인의 고백이 다 담겨져 있습니다. 다시 말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이런 역사가 계속 됩니다. 다른 성경에는 이런 표현으로 마무리됩니다. 온 집에 나드 향기가 가득하도다. 마리아가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알고 그 은혜를 받아 자신을 내어드린 일을 말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자신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지요. 자신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가 자랑되어야 합니다. 그런 복음은 정말 예수님을 믿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머리로 그 발을 닦는 다는 것은 정말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 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_고린도전서9:12’

 

바울에게는 엄청난 권리가 있었으나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입니다. 옮고 그른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만일 그것을 놓치면 무슨 의미가 있나요? 지난주에 해외에서 한통의 문자가 왔습니다. 깨어있으라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항상 차안에서 듣고 싶은데 CD를 보내줄 수 있냐는 것입니다. 제가 그 문자를 받고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꽃을 꺾으려고만 합니다. 예쁜 꽃만 보려고 합니다. 열매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뿌리도 없고 그 과정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인지 아니면 종교를 가지려고 하는지 구분이 되질 않습니다. 마리아인지 마르다인지, 마리아인지 가룟유다인지 말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_고린도전서9:16-19’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_고린도전서9:25’

 

십자가를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그들이 십자가를 경험했다는 증거는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그 사랑의 모습이 저는 감사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져서 감사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하는 일이 잘 풀려서 감사하다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깨달은 마리아는 향유 옥합을 깨뜨렸습니다. 시집을 가려고 모아둔 것이겠지요.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 것, 내 미래, 이 땅에서의 삶을 여지로 남겨두고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것이 매우 옳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가치로는 복음이 전해지지 않습니다.

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난을 겪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제 또래 중에 저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할 때 까지 좋아하는 사람을 사귀어보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한가지였습니다. 돈이 없었습니다. 대학 때 제가 도서관에서 성경을 읽고 신앙서적을 읽었던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다가 전도사로 부임하였습니다. 그래서 첫 사례로 60만원을 받았습니다. 어머니에게 내복 한 벌 사주는 것이 얼마나 마음 좋은 일인지 한 달 동안 그 기쁨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복음을 받고 우리 가족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 더 큰 축복이라는 것을 알기에 새벽에 기도하는데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모릅니다. 60만원 헌금봉투에 그대로 담았습니다. 그 다음 달에도 받았습니다. 또 그대로 담았습니다. 제가 제 모 교회에서 전도사를 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 감사가 또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헌금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그때 믿은 하나님은 저의 전부였습니다. 예수님 한분이면 끝이었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었습니다. 가난한 제 삶마저도 그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어둠의 길을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그 흐름을 따라 갈 이유가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제가 하는 일은 함께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저를 보내신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옥합을 깨뜨리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옥합은 무엇입니까? 시간입니까? 물질입니까? 아니면 어떤 가치관입니까? 구원의 은혜와 감격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셔야 합니다. 그 헌신으로 교회를 섬기셔야 합니다. 그때 우리의 그 사랑이 복음을 전하는 곳에 전해집니다. ‘우리 어머니가 나에게 믿음을 가르쳐주셨어, 우리 아빠가 나에게 예수님을 믿도록 삶을 사셨어, 저 장로님이, 저 집사님이 우리가 어릴 때 믿음을 알려주셨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우리의 인생이 빛나는 것은 우리로 인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때입니다. 제자들은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모면할까 하여 유다는 아예 다른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사실적으로 믿었습니다. 그 여인만 상황과 환경을 떠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마리아로 살아가야 합니다. 유다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이 십자가 사건을 말씀하셨는데 종교인들은 예수님을 죽일 의논을 했습니다. 자신이 가진 권력과 이익을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몇몇 제자들은 향유옥합을 예수님께 부은 마리아를 향해 분개했다고 합니다. 십자가 사건을 말씀하셨는데도 믿지 않았던 제자들입니다. 그런데 배경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아무 힘도 없는 한 여인만이 십자가 사건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주님 우리도 종교인과 제자들처럼 환경과 상황이 더 중요했고, 관계나 내 계획이 훨씬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려도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았고, 나를 향하신 그 십자가 사랑을 외면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의 영역에서는 적용하지 못했습니다. 주님 말씀을 통해 십자가 사랑을 깨닫기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께 받은 구원의 사랑에 감사하여 가장 귀한 향유옥합을 깨뜨렸던 마리아처럼 주님만 온전히 사랑하는 은혜를 주시길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복음이 증거 되는 일에 귀히 쓰임 받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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