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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8-06-03 주일예배

 

2018-06-03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2018-06-03 주일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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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63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베드로를 통한 깨달음

본 문 :

마가복음 14:27-31

오승주 목사

 

. 목표만 있고 과정이 없는 신앙생활의 위험_베드로후서2:22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_베드로후서2:22’

 

사람들이 가장 읽지 않는 책이 건강에 관한 책이라고 합니다. 건강에 관한 책은 주로 아프면 찾아 읽는데 사실 무의미합니다. 엄청난 것을 다 소유한 스티브잡스가 가장 후회한 것이 건강에 대해 사람들이 경고할 때 그것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영적인 것은 그것보다 훨씬 심하지 않나요? 천국에 대해 그렇게 말해도 사실 잘 믿어지지 않습니다. 영적인 축복에 대해 그렇게 말해도 정말 믿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더 심하게 이야기하면 하나님에 대해 그렇게 말해도 잘 와 닿지 않는 모양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사용하겠다해도 잘 믿지 않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제자가 되겠다, 전도자가 되겠다 교회를 세우겠다 선교를 하겠다등 멋진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과정이 없습니다. 제자는 되고 싶은데 과정은 싫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싶은데 그 과정은 싫다 합니다. 실상은 그 목표가 허언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신자들은 그런 과정을 두고 항상 기도합니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 과정을 성실하게 해내는 믿음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교회는 다니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지 않습니까? 교회에서 하는 훈련도 참석하지 않고, 강단 말씀의 흐름에도 관심이 없고, 기도생활이나 전도생활도 하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뚜렷한 목표가 없기 때문입니다. 과정이 없는 목표는 목표가 아니지 않습니까? 목표가 있다고 하나 중도에 탈락하는 사람들은 목표가 잘못된 것이겠지요. 우리 교회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그러니 과정도 분명합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목표가 분명하겠지요.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목표가 얼마나 정확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 목표를 위한 과정을 생략하려고 합니다. 신앙생활이 과정이 없으니 한국교회의 오늘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 거룩을 놓쳤을까요? 왜 진짜 빛 되신 주님의 영광스러운 이 축복을 놓쳤을까요? 그것은 과정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의 편리성을 위해 성경공부를 생략했고, 성도들의 입장을 위해 권징도 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양적 성장을 위해 예배의 본질도 바꿔버렸습니다. 그런 과정들이 생략되어 현재 많은 성도들이 어떤 상황에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나 복음을 모르는 자들이 많고, 중직자라고 하나 교회를 사랑하고 헌신하는 중직자가 없습니다. 너무 큰 그림이라고 하실지 모르나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늘 과정을 충실하게 이행해야 합니다. 당장 우리 교회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 어떤 방향으로 갈지 강단에서 말씀을 통해 듣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그런 과정을 준비해야 하고 그 과정에 참석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이 부분을 베드로를 통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분명한 목적이 있으셨습니다. 그 과정도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과정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목표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것에 대해 예수님이 예언하는 장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베드로가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았을까요?

 

. 하나님의 일꾼이 되는 자격 조건

 

1. 십자가를 따라가고 계신가요?_마가복음14:27-28,베드로전서1:3-12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_마가복음14:27-28’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입니다. 목자 되신 예수님의 죽음 때에 제자들이 흩어질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런데 28절에 보니 내가 살아난 후에 먼저 갈릴리로 갈 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고난 부활을 암시하는 장면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사건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2-23에 보니 예수님은 갈릴리에 나사렛이란 동네에 사셨습니다. 그런데 갈릴리는 마태복음4:15-16에 보니 사망의 땅, 그늘진 땅으로 묘사합니다. 고난과 고통 눈물의 땅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먼저 갈릴리로 간다고 하십니다. 단지 지역을 말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여기서 갈릴리는 우리의 삶, 세상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합니다. 요한복음7:41에 보니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합니다. 어떻게 갈릴리 같은 저주의 땅에서 메시야가 나오겠느냐 입니다. 조롱, 멸시, 천대의 상징이 갈릴리 땅이 갖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과하시고 다시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그곳에는 누가 있었죠? 바로 베드로와 일행들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제자들 중에서 가장 열심히 있었던 수제자였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항상 얼마나 더 열심히 해야 하는가. 세속적인 야망이 있어서 예수님을 통해 무언인가를 이루려고 합니다. 언변도 뛰어나고 리더쉽도 좋아 사람들도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음을 당하자 바로 고향 갈릴리로 낙향을 해버렸습니다. 사람들을 이끌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이 되는 자격 조건의 첫 번째는 십자가를 통과하는 사건입니다. 십자가의 사건을 통과하지 않으면 일은 잘하고 잘 처리도 할 수 있고 효과도 있을 수 있지만 그 사람을 통해 구원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변화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성도들의 신앙생활 패턴을 살펴보세요. 그리고 우리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말씀 앞에서 질문해보셔야 합니다. 십자가 사건을 통과한 경험이 있는가.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_베드로전서1:6-7’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사람이 좋고, 모이는 것 즐거워하고, 인격도 좋고 그러면 때 되면 선거에 의해 일꾼도 되고 마음에 감동이 없이 얼마든지 종교적인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십자가의 예수님이 내 죄를 해결하셨다는 것을 고백되어진 것이 없습니다. 신앙의 적은 역설적으로 상식적이고 교양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무서운 종교인들이 많습니다. 생활도 건강하고 윤리적입니다. 그런데 거듭난 경험이 없습니다. 십자가가 앞에 절망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그것이 없으면 다시 예전 애굽으로 돌아가려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2. 하나님이 날 먼저 사랑한 것을 깨달았나요?_마가복음14:29, 요한복음21:15-17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_마가복음14:29’

 

이렇게 확신했던 베드로가 예수님이 죽자 바로 낙향을 합니다. 그리고 손 놨던 그물을 다시 잡습니다. 밤새 고기를 잡았는데 아무것도 잡지 못하는 아침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낙심했을까요.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해변가로 왔는데 예수님이 숯불 위에 떡과 고기를 굽고 있었습니다. 어서 와서 밥 먹자. 그 자리에서 주님이 세 번을 물었습니다. 사랑을 질문했습니다. 잘 준비했어? 라고 준비를 물은 것이 아니라 주님에 대한 사랑을 물었습니다. ‘근심하여 가로되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십니다.’ 이 말은 그때서야 베드로가 깨달은 것입니다. 자신이 주님을 사랑할 수 없구나, 주님이 날 사랑하지 않으면 내가 주님을 사랑할 수 없구나. 베드로는 여기에서 꺾어진 것입니다.

신앙이 어릴 때는 자기가 붙잡은 것이 신앙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대로, 자기 혈기대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해변에서 주님께 붙들림을 당합니다. 자기는 완전히 없어집니다. 이 단계를 거치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수많은 사건을 통해 수많은 기도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스킬이나 은사를 물어본 것이 아닙니다. 어떤 능력을 물어본 것이 아닙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다시 말해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눈을 뜰 때 진짜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사랑받아 본 적이 없는데 누굴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자녀도 그렇지 않습니까? 맨날 욕먹고 학대받는 아이들은 커서 절대 남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부자냐 가난하냐와 상관이 없습니다. 사랑을 많이 받으면 마음이 열려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실패한 제자를 다시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사명 즉 베드로가 가야할 길을 알려주신 새벽입니다. 주님을 몰랐을 때는 끔찍한 새벽이었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에 눈을 뜨고 신앙이라는 것은 주님의 사랑을 깨달아 변화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후서를 읽어보세요. 얼마나 순하고 순한지 모릅니다. 완전 주님만 드러나는 글입니다. 사랑을 얼마나 받았는지 모릅니다.

 

3. 영적인 축복을 알고 계시나요?_마가복음14:30-31,출애굽기3:1-1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_마가복음14:30’

 

그런데 주님은 네가 완전히 나를 배신할 것이다. 세 번 부인은 그런 의미입니다. 모세를 보면 40세의 나이에 정말 아름다운 나이에 문무를 다 겸비했다고 기록합니다. 한 나라를 책임 질 만큼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에게는 영적인 축복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필요합니다. 나라의 운명을 짊어진 대단한 모세였지만 실수로 살인하게 되어 무려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보내게 됩니다. 그는 생각했을 것입니다. 내가 이 광야에서 썩는구나, 완전히 망했구나. 사람들도 다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광야에서 자신의 언어를 잃어버릴 정도가 되어버렸습니다. 완전 남의 집 식객 노릇하면서 양떼를 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_출애굽기3:1-2’

 

그러던 어느 날 그것도 80세가 되어 가시떨기나무를 보는데 불이 붙어있는데 나무가 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초자연적인 현상인 것입니다. 그것을 살피려고 가까이 가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족자로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_출애굽기3:5-8’

 

모세야 네 발에 신을 벗으라. 그 말은 내 종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사용하겠다. 지금 어둠가운데 고통당하는 내 백성을 애굽 땅에서 건지겠다. 그런데 모세가 아닙니다. 지금 내가 80세인데 모든 기능을 다 잃어버렸는데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기능, 너의 스펙, 너의 실력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이 열심히 준비해서 나라를 살리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더 큰일을 계획하고 계셨습니다. 베드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베드로를 통해서 하실 일이 따로 있으셨습니다. 그것이 영적인 축복입니다. 그런데 모세도 그렇고, 베드로도 그렇고 자신이 못한다 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것이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영적인 축복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영혼을 살리고, 양육하며,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은 믿음으로 할 수 있는 영적인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 일꾼을 찾으십니다.

 

. 베드로를 통한 깨달음_마가복음14:31,베드로후서3:14-18

 

베드로가 힘 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_마가복음14:31’

 

베드로를 통해 우리는 몇 가지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힘 있게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본심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만의 고백도 아니었습니다. 모든 제자들도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고백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오직 세계복음화가 저의 고백이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저는 화도 많이 냈습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죽어라 뛰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서울에 와서 진짜 많이 느끼는 것은 서울 사람들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지방에서는 제가 무슨 일을 할 때 저와 함께 일하는 팀과 제자들에게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수련회에 대한 메시지를 주면 알아서 했습니다. 그런데 서울에서는 그러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이 물어봅니다. 그거 왜 하는데요? 그럼 저는 뭘 해야 하는데요? 제 역할은 무엇인가요? 그래서 설명해주면 고민해 볼께요. 그리고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그릇을 깨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의 수준으로 하는 다짐이나 열심 같은 것으로 행정은 깔끔하게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어떤 모임은 잘 만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생명을 살리는 일, 정말 교회를 통해 하나님이 세상에 빛을 비추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은혜로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진짜 해야 할 일은 십자가를 통과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날마다 받아 누리며 그 안에서 영적인 축복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짜 은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나를 사용하시려고 다듬어 가시는 구나.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_베드로후서3:14-18’

 

그래서 우리는 몇 가지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주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주 앞에서 살아야 점도 없고 흠도 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 앞에서 살아야 구원을 향해 갈 수 있습니다. 주 앞에서 살아야 하나님의 지혜로 살 수 있습니다. 주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두 번째, 주 앞에서 사는 방법이 말씀입니다. 말씀의 은혜가 항상 있어야 합니다. 말씀의 은혜에서 멀어지면 굳센 데서 떨어집니다. 무법한 자의 미혹에 이끌리게 됩니다. 자기 마음대로 성경을 풀기도 합니다. 자기의 지식으로 성경을 해석하다가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함께 예배를 드리고 교회에서 말씀에 관한 훈련들을 합니다. 성실하게 그 과정을 따라 신앙이 자라야 합니다. 그때 지혜가 생깁니다. 어떤 지혜입니까?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입니다. 그의 은혜를 아는 지혜입니다. 세상에서 그것보다 귀한 지혜가 어디 있나요? 그것을 놓쳐 멸망의 길로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과정을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떤 과정입니까? 우리의 과정은 새 은혜입니다. 아침마다, 저녁마다 말씀을 통해 주시는 새 은혜입니다. 그런데 보통 은혜를 하찮게 생각합니다. 예전에 받았어, 옛날에 받았어 라고 생각되는 그 은혜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은혜의 통로가 우리 삶에 없으니 은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은혜의 통로가 무엇입니까? 그래서 시편 1편에 복 있는 사람은 주야로 여호와의 말씀을 묵상한 자라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그냥 쓴 말씀인가요?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냥 하신 말씀인가요? 구원이 이루어지는 일은 십자가를 통과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을 통해서, 영적인 축복을 사모하는 자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런 과정을 겪어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바로 주님입니다. 주님을 떠난 모세, 주님을 떠난 베드로, 주님을 떠난 사람들이 성경에 나옵니다. 주님은 다시 찾아와 주셨습니다. 예배를 통해 찾아와 주시고, 말씀을 통해 찾아와주십니다. 은혜의 종착역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은혜는 흘러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지금도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 은혜가 흘러가도록 사는 삶이 복의 사람입니다. 베드로가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별 볼일 없어 보인다고 낙심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잘났다고 자랑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은혜가 우리 인생의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목표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우리 인생이 하나님 목표 가운데 있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오늘도 그 과정을 지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십자가의 사건이 오늘도 내게 놀라운 사랑이 되며, 주님이 날 사랑하심으로 날마다 내 삶이 다시 새롭게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며, 무엇보다 영적인 축복을 갈망하며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젊을 때의 혈기, 세월이 흘러 모은 지식과 경험, 우리의 소유들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를 놓치지 않길 원합니다. 예배의 은혜를 놓치지 않기 원합니다. 새 은혜가 떠내려가지 않길 원합니다. 정말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이 주님임을 깨닫기 원합니다. 주님을 붙잡을 때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목표를 향하게 되며, 우리의 모든 삶이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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