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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8-06-17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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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617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진정한 사랑

본 문 :

마가복음 14:43-50

오승주 목사

 

. 진정한 사랑_이사야53:4-6, 요한복음12:24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라는 자서전으로 유명한 전혜린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1950년대에 활동했던 유명한 작가입니다. 그녀가 자신의 일기를 모아 만든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라는 책에 보니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가끔 몹시도 피곤할 때면 기대서 울고 위로받을 한 사람이 갖고 싶어진다. 나는 생후 한 번도 위안자를 갖지 못했다. 고독이 가슴속에서 병균으로 번식했다. 꽃향기만 무섭게 공기에 얽혀 있는 밤, 온갖 겪지 못한 생과 격동과 회한이 나를 엄습한다. 다르게 살고 싶다

 

글만 읽으면 힘들게 살았나 싶습니다. 그러나 전혜린씨는 그 어려운 시절에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유망한 사람과 결혼해 독일에서 유학도 하고 20대에 서울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에서 교수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성과 외모를 갖춘 부족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대단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 그가 31세에 자살을 선택하였습니다. 저는 이런 분들을 보면서 왜 교회가 존재하는가? 왜 목회를 해야 하는가?’ 그 이유가 더 분명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 교회가 온갖 상황과 환경을 뚫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해야 한다는 확신이 생깁니다. 우리는 모두 연약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말씀 안에서 하나가 되고, 함께 하여 분명 해야 할 사명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오늘 오후에 남자 청년 모임을 처음으로 하려고 합니다. 남자 청년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앞으로 함께 기도하며 인도받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결혼한 젊은 집사님, 그리고 장로님 그룹 등 모임을 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을 나누려고 합니다. 저희 교회 첫 임직식을 할 때 제가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교회에서 일하는 중직자가 아니라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하는 중직자가 되길 기도했습니다. 그 비전은 매우 중요한 비전이라 생각합니다. 교회가 별 일 아닌 일에 갈등하고 싸우고 또 에너지를 쏟기도 합니다. 그러는 동안 세상에 나누어야 할 사랑을 놓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제가 마가복음을 설교한지 1년이 되어갑니다. 처음에는 본문에 충실하여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신앙생활 하도록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교회마다 성경말씀이 아닌 프로그램과 화려한 다른 시스템으로 사람들을 움직이는데 저는 여러분이 말씀으로 신앙생활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엄청난 시간표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한 시간 시간을 내서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 시간을 내가 내어드리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도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임을 알았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집이 조금만 잘 살았다면, 내가 배경만 조금 더 좋았다면.’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니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하심을 잊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가복음을 통해 다시금 예수님의 사랑을 회복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제가 무시 받아도 좋고, 인정을 못 받아도 좋습니다. 모든 일을 함에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할 때 생명과 평안이 있게 되었습니다. 배경이 없어서 평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육신을 좇기 때문에 평안이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도 불평이 계속되고 원망이 계속된다면 분명 그것은 사망의 생각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생각은 아무리 고상해도 하나님과 원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_이사야53:4-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_요한복음12:24’

 

교회가 무엇입니까?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의 목적입니다. 매일 그것이 목적이고, 인생의 목적도 그것입니다. 한 주간 목적도 한 달의 목적도 그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착각합니다. 교회가 대단한 프로그램을 돌려서 부흥했다 합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목적이 되어버리면 안됩니다. 그렇게 가면 은혜를 잃어버립니다. 예수님을 잃어버립니다. 성경을 잃어버립니다. 이 시대의 교회들이 그런 오류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수많은 프로그램들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말씀보다 예수님보다 우선되면 그것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발견되면 우리 삶은 놀랍게 변화됩니다. 신앙은 개선되는 것이 아닙니다. 새롭게 바뀌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별것이 있나 하는데 질문해보고 싶습니다. '정말 믿어보셨습니까?' 오늘 유다가 그걸 몰랐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그걸 몰랐습니다. 물론 십자가 사건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그런 인물들도 준비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종교지도자나 유다가 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3년을 예수님과 함께 했지만 그는 한 번도 신앙생활을 한 적이 없습니다. 똑똑해서 중요한 직분도 가졌고, 리더역할도 했지만 말입니다. 왜 그렇지요? 무엇을 놓쳤을까요? 예수님을 좇지 않고 육신을 좇았습니다.

 

. 육신을 좇는 자

 

칼과 몽치를 가지고_마가복음14:43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곧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_마가복음14:43’

 

그들은 칼과 몽치를 들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칼과 몽치는 예수님이 저항할까 하여 위협하려고 들고 온 것이겠지요. 그것이 육신을 좇는 자들이 가진 생각이고 믿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이 없으면 칼과 몽치를 가지고 신앙생활하려 합니다. 그러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정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칼과 몽치는 칼과 몽치로 망하게 될 것이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나누는 동안 저는 참 많이 회개하고 깨달았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성령충만을 받아, 제가 복음을 깨달아, 제가 기도를 많이 해서 그렇게 세상을 변화시켜보겠다고, 그렇게 세계복음화를 하겠다고 장담했었습니다. 가만 보니 그것은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장담하여서 그 장담을 지키려고 싸우고 이기려 하고 남을 누르고 그러다 안 되면 등을 돌리고 낙심하고 시험에 들었습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인가요? 칼과 몽치를 준비하며 살았습니다. 성공만이 살길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만 그럴까요? 지금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을 봅니다. 왜 그토록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데 세상에서는 매력을 잃어만 갈까요? 칼과 몽치를 바라보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것이 유다의 신앙이었습니다. 그것이 백성의 장로들의 신앙이었습니다. 그저 힘으로 누르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의로 살아가면 되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2. 군호를 짜고_마가복음14:44

 

예수를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 가라 하였는지라_마가복음14:44’

 

유다는 그들과 군호를 짰다 했습니다. 군호가 뭐지요? 서로 작전을 짠 것입니다. 계획을 이루기 위해 서로 입을 맞추고 손을 맞추었습니다. 예수님이 누군지 몰랐던 그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유다가 자신을 팔 자임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군호를 짜지 않아도 될 텐데 참 어리석지요. 세상이 이렇게 어리석습니다. 세상이 어리석은 것은 알겠습니다. 육을 좇아 사니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군호를 짜면 하나님이 모르십니까? 우리가 은밀하게 행동하면 모르실까요? 왜 세상에서 교회가, 그리스도인들이 매력을 잃어갈까요? 말은 잘하는 데, 복음을 암송해서 기가 막히게 설명은 하는데 삶은 변화되지 않은 채 죄와 타협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되는 척, 하는 척, 가진 척하면서 실제로는 관심도 없습니다. 어쩌면 저들처럼 온갖 세상적인 것들과 군호를 짜서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죽이는 것인지도 모른 채 말입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지 않길 기도합니다.

어떤 청년이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 교회 왔더니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아서 좋았다 합니다. 그 말은 교회에 가면 이상하게 쳐다봅니다. 왜 옷은 그렇게 입고 다니는 지, 왜 말은 그렇게 하는지 판단합니다. 자신들은 의롭기 때문에 남을 정죄합니다. 그것이 군호를 짜는 생활입니다. 저는 전도에 대한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습니다. 우리 자신의 삶이 곧 전도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자체가 전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면 됩니다. 하나님 앞에 진실한 것이 회개입니다. 진실할 때 비로소 살아날 것입니다.

 

3. 랍비여_마가복음14:45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_마가복음14:45’

더 놀라운 것은 유다가 3년이나 함께 했던 예수님을 랍비여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은 몇 번이나 제자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말씀하셨고 보이셨습니다. 그런데 육에 사로잡히니 영이 어두워졌습니다. 우리가 그렇습니다. 육을 좇으면 영이 어둡게 됩니다. 예수님을 랍비라 생각합니다. 별 볼일 없다 생각합니다. 그러니 구원을 못 받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지 못하면 다시 말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절대 변화는 없습니다. 아무리 착해지고 아무리 교회생활을 열심히 해서 아는 것이 많더라도 진짜 변화는 없습니다. 진짜 변화된 모습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는 것입니다. 다들 훈련을 많이 받고 오래 믿어서 아는 것이 많아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스스로 의롭다 하는데 그것은 변화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인생 중에 보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 예수님을 높이지 않습니다. 자신이 높아져야 합니다. 자신이 경배를 받아야 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저 예수님을 이용할 뿐입니다. 목회자가 그런 경우가 많지요. 저는 이것과 평생 싸울 것입니다. 어렵더라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사실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진짜 평안이요 안식일 것입니다.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_마가복음14:50’

 

결국, 그렇게 장담하던 제자들마저도 예수님을 다 버리고 도망합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있으라 했는데 결국 시험에 들었습니다. '? 왜 예수님이 저렇게 연약하게 잡혀가시지? 왜 예수님이 저들에게 칼을 휘두르지 못하게 하지?' 제자들은 싸울 수 있었는데 싸우지 못하게 하는 예수님이 이해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도 십자가 사건을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구원을 바라보지 못하고 삽니다. 아직도 인간이 어떻게 하면 구원받을 수 있을지, 가정이 어떻게 하면 살아날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오면, 자존심이 상하면, 뭔가 자기 뜻대로 안되면 도망갑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가정에 문제가 왔는데 그저 문제만 보았습니다. 구원을 보지 못했습니다. 정말 미운 사람이 있었는데 십자가 사건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저 싸우고 경쟁하고 그저 내 욕심 채우기 위해서는 언제 예수님을 믿었냐 하는 모습입니다. 말을 많이 하고, 큰 소리 치는 사람치고 제대로 믿는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그것이 심한 사람입니다. 제가 가스펠교회를 개척하고 정말 은혜가 되는 것은 하나님이 저를 바꾸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저를 바꾸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신앙생활을 해야 할까요?

 

. 영을 좇는 신앙_마가복음14:47-50

 

우리는 영을 좇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 저는 이것과 매일 힘겹게 싸우고 있습니다. 힘겹다고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 길이 생명의 길이요, 평안의 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알았는데 포기하면 진짜 알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육을 목적 삼아 살면 어떻게 될까요?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성경은 구원받지 못한다고 되어있습니다. 당연하겠지요? 그렇다면 영을 좇아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매일 기도원에 가는 것입니까? 산에 가서 주여 주여 외치는 것일까요? 그것을 영적인 것이라 오해하니 한국교회가 이렇게 문제가 많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더 육적인 것입니다. 영적인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영과 육은 사실 분리가 될 수 없습니다.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영을 좇아 살면 육도 살아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영을 좇아 사는 것은 무엇입니까?

 

곁에 서 있는 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_마가복음14:47-49’

 

영을 좇는 것은 십자가를 좇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나의 오늘 십자가를 붙잡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바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십자가는 바로 예수님의 눈물입니다. 우릴 사랑하시는 사랑이요, 우리를 위해 흘리신 눈물입니다. 그 십자가가 신앙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목적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가 무엇이지요? 살리는 것입니다. 우리를 살리는 것, 가정을 살리는 것이잖아요. 십자가를 붙자고 산다는 것은 살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될 때 내가 보입니다. 진실된 내가 보입니다. 내가 보여야 내 가족도 보입니다.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장담하지요? 아니요. 십자가를 품으면 장담이 사라집니다. 그렇게 죽일 것 같이 미워했던 사람이 귀히 보이거든요. 그것이 십자가 사랑입니다.

저는 제 인생이 이런 십자가 사랑의 인생이길 기도합니다. 그렇다면 십자가를 좇는 인생을 어떻게 어디서 확인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기 위해 성경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성경을 따라 인도받으셨습니다. 말씀을 따라 인도받으셨습니다. 우리가 힘겹게 십자가를 붙잡는데 어디서 위로를 받나요? 말씀에서 받습니다. 교회가 많은 프로그램에 현혹되면 안 됩니다. 프로그램을 해도 됩니다. 그러나 목적이 되어 그 프로그램으로 사람을 동원하면 안 됩니다. 그것에 속지 않으셔야 합니다. 교회는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성도는 말씀 안에서 힘을 얻고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으로 변화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안 되면 유다처럼, 백성들의 장로들처럼 될 확률이 높습니다. 말씀에서 안식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분노도 이기지 못하고 낙심과 불신앙도 감당이 안 됩니다. 왜 내가 잘되어야 하는데, 내가 성공해야 하는데, 내가 저 인간보다 잘되어야 하는데 그것을 이기지 못해 예수를 떠납니다. 내 상처도 오픈 못하고 늘 하는 척, 되는 척, 가진 척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평안이 없습니다. 늘 불안하고 걱정되어서 결국 세상의 유혹을 선택합니다. 말씀을 담아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저는 이 교회를 말씀으로 지킬 것입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전하겠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을 향한 진정한 사랑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은혜를 좇는 신앙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좇을 때 우리의 삶은 살아날 것입니다. 은혜는 우리의 연약함을 강하게 만들 것입니다. 마음에 기쁨을 주고, 감사함을 줄 것입니다. 은혜는 사람들을 섬기는 힘을 줄 것이고, 함께 할 수 있는 지혜를 줄 것입니다. 은혜는 가정도 살아나게 만들 것이고, 은혜는 그렇게 엄청난 힘이 되어 우리 삶을 이 어려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내도록 용기가 될 것입니다. 자기중심으로 살면 은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중심은 하나님 중심의 반대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오직 예수님 중심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은혜의 삶입니다. 신앙생활에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우리가 십자가로 구원을 받아 그 감사함으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고 읽고,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은혜로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변화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은혜입니다. 크고 작은 문제로 낙심되어 있거나 영적인 침체기를 겪고 계신가요. 다시 은혜를 좇으시면 됩니다. 그것은 부끄러운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은혜입니다. 은혜를 좇을 때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은혜를 좇을 때 우리 삶은 하나님의 구원에 쓰임 받게 됩니다.

 

주님 저는 예수님의 사랑을 정말 알고 있나요. 예수님의 사랑으로 구원받았으면서 그 사랑을 외면하고 살고 있네요. 참 어리석게도 세상과 타협하고, 아직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부르지 못하고 랍비라 부르고 있네요.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천국의 축복 안에 살도록 말씀을 주시는데 육신적인 선택만 하고 살고 있네요.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탈하여 신앙과 삶이 혼란스러워지고 어려워지고 있음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용서해주세요. 다시 십자가를 바라보게 해주세요.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길 원합니다. 말씀 안에서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주님은 나의 기쁨이시며 나의 즐거움이십니다. 주님은 나의 노래 나의 자랑 나의 전부되십니다. 은혜가 주는 이 고백 속에 살아 우리 삶이 축복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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