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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8-07-08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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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78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예수님을 모르는 죄

본 문 :

마가복음 15:1-15

오승주 목사

 

.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입니다._사무엘상6:12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 가니라_사무엘상6:12’

 

어미 소가 벧세메스로 향하는 대로로 갑니다. 그런데 가면서 울었다 합니다. 새끼소를 두고 가서 그렇습니다. 그러면서도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그렇게 갔습니다. 마치 어린양과 같았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죄악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고 언약궤를 블레셋이라는 이방 국가에 빼앗겼습니다. 언약궤를 빼앗아 간 블레셋은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언약궤를 이스라엘에게 돌려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두 마리의 어미 소에 언약궤를 실어 보낸 블레셋은 젖먹이 새끼가 있음에도 주저함 없이 벧세메스로 가는 소를 보면서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이 정말 하나님의 손에서 이루어진 일임을 인정합니다. 벧세메스는 그 당시의 레위지파인 제사장이 사는 곳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궤를 이스라엘의 품에 되돌려주심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어그러진 관계를 회복시키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의 백성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 때문에 값없는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은혜를 잘 몰랐습니다. 그렇게 다시 되돌아온 언약궤로 인해 벧세메스 사람들은 기뻐하며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호기심을 견디지 못해 언약궤 안을 들여다 본 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참사가 일어납니다. 이 비극은 언약궤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경솔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문제가 오면 하나님을 찾고, 문제가 해결되면 말씀을 여겨 우상을 섬기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그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눈물을 흘립니다. 가난하고 힘들고 어렵고 그래서 눈물을 흘립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많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언약궤를 잃어버려서 말입니다. 그런데 언약궤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언약궤가 없으니 괴롭습니다. 하는 일마다 안 됩니다. 정말 삶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상을 버리고 다시 언약궤를 돌려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언약궤가 왔는데 언약궤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신앙의 목적은 성공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행복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지시기 전에 많이 우셨습니다. 백성들이 못 깨달아서 우셨습니다. 백성들이 어둠에 사로잡혀 빛을 보지 못해서 우셨습니다. 가난해서 우신 것이 아닙니다. 힘들게 살아서 우신 것이 아닙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살지 못해서 우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겨 살고 있는 모습을 보시고 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가셨습니다. 그걸 모르니 문제가 오면 기도하고, 문제가 사라지면 다시 세상으로 향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마음이 답답합니다. 훈련도 받고, 교육도 받는데 마음이 답답합니다. 뭔가 풀리지 않습니다. 돈도 많이 버는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직접 오셨습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을 의지하는 사람은 항상 아버지를 찾습니다. 잘되고 못 되고의 문제와 상관없습니다. 그게 얼마나 행복한 삶인지 가슴 시원한 삶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을 위해 살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거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거룩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종교인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살아야 합니다.

 

. 예수님을 모르는 인생들의 죄

 

새벽에_마가복음15:1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로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주니_마가복음15:1’

 

예수님이 누구인지 모르는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새벽에 즉시 모였습니다. 어찌 그리 급했을까요? 어찌도 그렇게 부지런할까요? 이 말씀을 보는데 얼마나 눈물이 나는지요. 우리가 세상을 위해 살아가는데 그렇게 급하고, 부지런합니다. 죄를 짓는 일에는 그렇게 급하고 부지런합니다. 남을 미워하고, 정죄하는 일에는 그렇게 머리 회전이 빠릅니다. 적용도 빠릅니다. 마귀에게 속는 일은 속전속결입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속을 때가 많습니다. 목사여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저도 수치심을 느끼는 죄들을 많이 짓습니다. 마음속으로는 더 그렇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그런 일에는 엄청나게 신속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일에는, 그분을 만나는 일에는 얼마나 더딘지 모릅니다. 거룩을 위해서는 얼마나 더딘지 모릅니다. 얼마나 게으른지 모릅니다. 정말 저는 이 말씀에서 멈추어버렸습니다. '내가 저들과 다를 바가 없구나.'

 

2. 대제사장들의 모습_마가복음15:2-5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소하는지라 빌라도가 또 물어 가로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저희가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소하는가 보라 하되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_마가복음15:2-5’

 

예수님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고발에는 침묵하셨습니다. 방금 전 유대인의 왕이냐 에는 대답을 하셨던 예수님이 고발에는 침묵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했습니다. 왕이라 했는데 그렇게 확신했는데 고발에는 침묵하셨으니 놀랄 법도 합니다. 우리는 반대로 살잖아요. 믿음을 고백할 때는 확신이 없고, 이익과 손해 앞에서는 큰소리치며 살지요. 그것이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의 모습이고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니 세상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오직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예수님을 고발합니다. 수많은 거짓 증언들로 몰아세웁니다. 그러면 속이 시원한가요? 그렇게 기득권을 유지하면 마음이 평안한가요? 왜 교회가 이렇게 세상에서 힘이 없어졌나요. 십자가에는 확신이 없고, 반대로 불신자 속에서는 큰 목소리를 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요란한지 모릅니다.

 

3. 진리를 외면한 빌라도_마가복음15:6-13

 

명절이 되면 백성의 구하는 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민란을 꾸미고 이 민란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주기를 구한대 빌라도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이는 저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 앎이러라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는 내가 어떻게 하랴 저희가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_마가복음15:6-13’

예수님께서 총독 빌라도 앞에 섰습니다. 사실, 총독 빌라도는 정치인이지 종교인은 아닙니다. 종교적인 이슈가 정치까지 번진 것은 대제사장이나 백성들의 장로들이 그렇게 만든 것이지요. 그렇게 해야만 명분을 가지고 예수님을 처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가장 이유가 될 만한 황제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예수님을 고발한 것입니다. 그래서 질문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답변을 보세요. 네 말이 옳도다. 유대인의 왕이 맞으니까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고난도 만나고, 역경도 만납니다. 고난을 없애주는 것이 응답이 아니고 고난을 이길 힘을 주시는 것이 응답입니다.

그런데 왜 고난과 역경에 흔들리지요? 확신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확신이 없으니 다른 것을 기대하고 기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무엇에 대한 확신이 없지요?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가정을 변화시키고, 민족을 변화시킬 확신이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믿었는데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믿음이잖아요. 믿음은 사실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가 분명히 있기에 오늘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확신이 없습니다. 우리는 왜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 학교가 바뀌고 직장이 바뀌고 군이 바뀌고 사회가 바뀔 것이라는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까? 예수 믿는 가정, 예수 믿는 교회가 천국 같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예수 믿는 나 자신이 변화되었다고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왜 그렇게 세상이 힘이 들지요? 세상의 지도자들은 모두 다수의 의견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진리에 관심이 없습니다. 자세히 보면 그렇습니다.

다른 복음서에 보면 총독의 아내가 잠깐 나옵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을 아는가봅니다.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말라고 급히 사람을 보내어 알렸습니다. 총독이 재판석에 앉아 있는데 얼마나 급했으면 사람을 보내서 그 사실을 알렸을까요? 꿈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하나님은 기회를 주십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구원받을 기회를 주십니다. 그런데 총독은 바로 대제사장과 장로들과 대화를 이어갑니다. 잠깐의 시간도, 여유도 없습니다. 구원받을 기회가 없었을까요? 하나님이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돌아보지 않습니다. 정신을 빼앗겼고,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구석으로 계속 몰리게 됩니다.

저는 교회에서 많은 프로그램을 돌리지 않습니다. 만일 여러분을 프로그램 안에서 신앙생활하게 한다면 편할 것입니다. 프로그램에 맡기면 안됩니다. 강단 말씀을 매주 받고 매주 기도하고 매주 의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 말씀이 생명의 말씀이요, 지금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면 빼앗긴 하나님의 시간을 찾으셔야 합니다. 매일 구원을 확인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 있으셔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안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입니다. 매일 만나셔야 합니다. 다수의 의견, 무리들의 분위기에 속지 않으셔야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4. 어리석은 백성들_마가복음15:14-15

 

빌라도가 가로되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니라_마가복음15:14-15’

 

지도자가 틀렸다면 백성들이라도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더합니다. 자신들을 위해 오셨고 또 3년이나 백성들을 위해 많은 사역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저들이 백성들에게 작업을 다 해놓았기 때문에 진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은 그저 예수를 죽이면 자신들이 조금 더 혜택을 받거나 잘되거나 그럴 줄 알았겠지요. 예수님의 피 값을 자신들의 자손에게까지 돌리면서 맹세를 합니다. 어리석지요. 자신들만 죽으면 되지 자손들은 무슨 죄가 있습니까? 불신자들이 그런 맹세를 할 때가 많습니다. 절대 죽어도 예수님을 믿지 않겠다. 그렇게 핍박을 합니다. 모르지요. 사람 일을 알 수가 있습니까? 맹세를 함부로 하지 마세요. 결국 그들은 온 힘을 다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다 사용하셔서 구원사역을 이루고 계십니다. 안타깝지만 사실입니다. 우리가 타락하고 멸망한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이용해 또 다른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사용하시겠지요. 그래서 타락하고 살렵니까? 그래서 그 일에 쓰임 받으시렵니까? 아니지요. 신앙생활의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 신앙생활의 목적_시편143:3-4,이사야29:15,이사야55:3,6-7,시편91:1-3,14-16

 

1. 매일 은혜가 필요합니다.

 

원수가 내 영혼을 핍박하며 내 생명을 땅에 엎어서 나로 죽은지 오랜 자 같이 흑암한 곳에 거하게 하였나이다 그러므로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속에서 참담하나이다_시편143:3-4’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의 일을 어두운 데에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_이사야29:15’

 

아직 구원받지 못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여전히 죄악된 세상에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신앙은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실수를 하지 말고 완벽하게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실수를 해도 완벽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날마다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다들 이제 이정도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정도 재산을 모았으면 됐다. 이정도 살았으면 됐다. 이정도 신앙생활하고 이정도 헌신하면 됐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이제 필요 없습니다. 이제 제가 알아서 적당히 하면서 살게요.’ 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죄인이 아니라고 착각합니다. ‘이미 구원받았는데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모르니까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차라리 문제가 많아서 날마다 은혜를 구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교만은 진짜 무서운 죄이고 질병입니다. 어떤 교만입니까? 은혜가 필요없다는 교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종교지도자들을 보십시오. 목사라도 은혜가 없으면 저렇게 쓰임 받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셔야 합니다. 손에 무엇을 들고 계십니까? 그것에 영향을 받는 것이 인간입니다. 우상을 들고 있으면 우상의 영향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있으면 거기에 영향을 받습니다.

2. 매일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_이사야55:3,6-7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_이사야55:3’

 

예수님을 만나면 죄에서 돌이킬 수 있습니다. 돈 없이, 값없이 사먹으라 하십니다. 원래는 사먹어야 합니다.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예수님이 그 대가를 다 지불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말이지요. 중요한 것은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왜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들어야 하는지 모릅니다. 왜 회개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왜 말씀을 듣고 돌이켜야 하는지 모릅니다. , 금을 위해서 살아야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이해를 못합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해야지 교회 갈 시간이 어디 있냐고 질문합니다. 기도할 시간이 어디 있냐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렇게 열심히 은, 금을 위해 살면 저주와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_이사야55:6-7’

 

날마다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신앙의 목적은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자꾸 목적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것이 마귀의 전략입니다.

 

3. 교회를 세우는 축복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_시편91:1-3’

 

신앙이 좋다고 여겼던 사람들의 신앙이 단단하지 않았음을 여러 차례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앙은 예언하고 환상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자신의 경험으로 판단하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이 단단하다는 것은 삶을 말씀대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진짜 어렵습니다. 대학생 때 제가 신학생이었는데 자꾸 은밀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아니, 가정에 문제도 많고 미래를 답답하고 그래서 뭔가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데 이상하게 더 어둠으로 가는 것입니다. 수련회나 집회 가서 은혜 받고 오면 더 그러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유다가 뉘우쳤다 했는데 왜 자살을 했을까요? 왜 예수님이 아닌 대제사장을 찾아갔을까요?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것에는 머리가 잘 돌아가면서 영이 사는 일에는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삶이 크고 대단한 깨달음에 영향을 받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매주 예배는 그렇게 소홀히 여겼고 매일 은혜를 받는 일은 하찮게 여긴 것입니다.

저는 요즘 이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왜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려고 하실까? 아무것도 없는 우리를 통해, 배경 없는 우리를 통해, 능력 안되는 우리를 통해 왜 교회를 세우려고 하실까? 왜 저 밖에 능력 있고, 힘 있는 그들에게 세우라고 하시지 않고 우리에게 세우라고 하실까? 후대를 세우는 일에 왜 우리를 사용하시려고 하실까?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려고 작정하신 거예요. 우리 후대를 살리시려고 작정하신 거예요. 재앙이 다 끝날 때 까지 우리를 보호하시려고 그런 거예요. 지존자의 은밀한 곳, 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냥꾼의 올무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_시편91:14-16’

 

시편 기자는 매일 아침 확인했습니다. 처음부터 한 번에 다 주셨으면 감사했을 텐데 하나님은 광야에서 매일 확인하셨습니다. 불쌍한 인생을 보호해주시고, 인도하고 계심을 매일 확인했습니다. 아침마다 새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상이 아니고, 세상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매일 아침 도우셨습니다. 그리고 어떤 축복을 주셨나요? 사랑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셨습니다. 그의 이름을 알게 하셨고 그에게 간구할 축복도 주셨습니다. 매일이요.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건지셨습니다. 우리를 높이신다고 하십니다. 무엇보다 구원을 보여주신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에. 대부분의 교인들은 우상숭배 하듯이 말합니다. 예배 드려줬잖아요? 왜 이렇게 교회는 매일 일이 많아? 그것은 우상숭배 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교회는 아버지와의 관계지요. 전능자의 그늘입니다. 신앙의 목적은 예수님을 알고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왜 불러주셨나요? 교회를 세우라는 거예요. 우리 인생이 그래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자녀들에게, 이 시대에 계속해서 전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주님 우리의 관심은 성공과 실패에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세상의 기준에 있네요. 그래서 그런 일에는 무척이나 부지런하고, 지혜롭습니다. 그런 일에는 어찌 연합도 잘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나의 영혼을 살리는, 생명을 살리는 십자가에는 얼마나 게으르고, 핑계도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모든 관심인 예수님을 만나 거룩을 회복하는 일에는 얼마나 무관심한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알기 원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신앙생활을 회복하길 원합니다. 그저 불신자처럼 성공에 웃고, 실패에 슬퍼하는 인생이 아니라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살길 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높이며, 무엇보다 하나님께 간구하는 신앙생활을 회복하여 나의 삶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교회가 회복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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