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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8-07-15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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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715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생명의 십자가를 따르고 계시나요

본 문 :

마가복음 15:16-32

오승주 목사

 

. 시냇가에 심은 나무_시편1:1-3

 

신앙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 위에 있어야 합니다. 내가 내 마음대로 믿고 싶은 데로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하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알면 신뢰가 되고, 신뢰하면 즐거워하고 즐거워하면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오해하면 신앙은 자라지 않습니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해도 건강하게 성장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성품과 삶을 통해 그리스도를 온전히 드러내지 못합니다. 아집과 고집, 이기심이 가득하게 됩니다. 그것은 종교이지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세우신 교회를 함께 세워가지도 못합니다. 자신의 목적, 이해, 체험에서 비롯된 자기중심적인 하나님을 만들고 섬깁니다. 이건 우상입니다. 성경에서 계시한대로 믿어야 하는데, ‘나는 성공하고 싶다, 나는 부자가 되고 싶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잘되었으면 좋겠다라고 희망사항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한번이라도 정신 차리고 읽어봤다면 그것이 아니라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이것이 성경말씀이라고 생각하고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기 목적에서 비롯한 신앙은 틀린 것입니다. 또 있지요. 자기 이해에서 비롯한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내가 세상에서 배운 체험으로 하나님을 정의하여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생각하니 하나님의 공의, 심판, 진노도 설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다 제거해버립니다. 그것이 현대신학의 모습입니다. 자신의 경험에서 온 신앙도 있습니다. 내가 이런 체험을 했다고 누구에게나 이런 체험을 해야 한다고 강요합니다. 마치 코끼리를 만진 맹인 여러 명이 이건 기둥이야, 이건 벽이야 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앙은 그렇게 주관적이지 않습니다.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성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닥치고 묻지 말고 믿어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자기 목적, 자기 체험, 이것이 타락입니다.

예레미야 시대에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매일 성전에 와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너희들은 너희 목적 즉 자식이 잘 되는 것, 성공하는 것, 너희가 만들어 놓은 목적을 위해 구하는 구나! 나는 너희의 제사를 받지 않을 것이다. 이곳은 성전이 아니야! 너희들은 도무지 나를 알려고 하지 않구나! 너희가 진짜 자랑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줄 알아? 너희가 나를 아는 것을 자랑해야 해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은 너희 삶에서 나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아니 오히려 거짓말을 하고 불법을 하고 사람들을 넘어뜨리고 괴롭히면서 지금 성전에서 매일 제사를 지내는 구나! 그런데 더 나쁜 것은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타락해서 백성들이 원하는 것을 줬습니다.

여러분은 무슨 동기로 예배당에 모이셨습니까? 다윗은 생존의 조건이 다 끊어졌습니다. 3천명이나 되는 군대가 사울왕의 군대가 다윗을 쫓아다녔습니다. 자기가 바라는 것을 자기가 원하는 때에 주시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다윗이 뭐라고 하지요? 나의 반석이신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사랑이시오 나의 요새이시오 나의 산성이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 나의 방패이십니다. 사람은 헛것 같고 거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알아주시나이까 다윗이 원한 것은 성공이 아니었습니다. 부요하게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그가 하나님께서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신다고 할 때 주님 나는 승리가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고 싶습니다.’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길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길 원했습니다. 마틴 로이드존스 목사님은 이런 기도를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기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_시편1:3’

 

다윗은 이 시냇가를 발견했습니다. 은혜의 시냇가, 구원의 시냇가, 하나님 나라의 시냇가가 흐르고 있습니다. 거기에 뿌리를 내리면 철을 따라 열매를 맺고 잎사귀는 마르지 않고 그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됩니다. 어떻게 발견했습니까? 율법을 주야로 묵상했기 때문인가요? 아닙니다. 복 있는 사람 즉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있으면 기도를 해도, 성경을 많이 읽어도 자기 유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시냇가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마귀가 놓은 덫에, 올무에 걸리게 됩니다. 이 시냇가가 발견되길 기도합니다.

 

. 계속되는 악순환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_마가복음15:16-20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예수를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가니라_마가복음15:16-20’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되는 악순환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한번 거짓말을 하고, 한번 죄를 짓고 나니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이야기를 했음에도, 분명하게 보여주셨음에도 예수님을 향한 모욕이 더 심해집니다. 보통 분노는 낮은 자존감이 원인이라는 주장이 학계의 정설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로이 바우마이스터 교수가 위협받는 자부심 이론을 제안하며 이를 반박했습니다. 그는 부모가 자녀를 오냐 오냐 해서 자녀들의 자존심을 키워 놓았더니, 원하는 것을 갖지 못했거나 자기보다 잘하는 사람을 만나면 폭력을 휘두르더라는 겁니다. 히틀러나, 후세인 같은 사람들이 자신들은 고등인종이라는 자부심으로 다른 사람들을 학살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종교지도자들의 계략에 백성들마저 그렇게 멈추지 못했습니다. 이젠 그런 분위기가 되어버렸습니다. 마치 자신들이 심판자인양 흥분하였습니다. 교회에도 이런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마치 자신만이 신앙이 제일 좋고, 자신만이 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내가 하면 성령의 인도고, 다른 사람이 하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남을 헐뜯고 비난합니다. 자신을 살리려고 말입니다.

 

2. 계속되는 육신적인 일_마가복음15:21-27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_마가복음15:21-24’

 

그들이 하는 일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은 육신적인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이 신앙이 아니고 믿음이 아니고 육신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골고다에 세워야 하는데 그럴 힘이 없어 보이니 모든 것을 다 동원했습니다. 시몬이라는 사람을 동원했고, 몰약을 탄 포도주를 마시게 했습니다. 뒤에서 예수님의 옷을 나누어 입습니다.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육신의 이익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멈추지 못했습니다. 교회가 그렇게 타락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육적인 수단을 사용합니다. 그렇게 주의를 끌어 교회에 오면 그 사람들을 묶어두도록 더 육적인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만나 회심한 사람들이 아닌 육신적인 자들이 교회 안에 가득하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가 어떻게 되지요? 진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참으로 그리스도를 원하고 그분으로 변화되길 원하고 하나님이 필요한 사람들은 갈 곳이 없어집니다. 저는 그것이 목회자의 죄라 생각합니다. 회심한 사람들, 거듭난 사람들 그들은 예배를 원하고, 은혜를 원합니다. 변화를 원합니다. 매끄럽게 부드럽게 일이 잘 진행되는 것이 중요한가요? 그러면서 우리는 수많은 영혼들이 병들어 죽어가는 것을 그냥 두고 봅니다.

 

3. 죽음의 십자가_마가복음15:29-32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를 구원할 수 없도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_마가복음15:29-32’

 

이렇게 자기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여기에 갇혀버렸습니다. 자기들이 깨달은 복음, 자기들이 주장하는 것들이 신앙이 되어버렸습니다. 더 이상 성숙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음성도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구약 내내 십자가 사건을 말씀하셨는데 단한번도 그것을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구원이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저 잘 먹고 잘살면 되는 종교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구약 성경 내내 예언된 말씀입니다. 그들이 그 말씀으로 예수님을 조롱했지만 예수님은 그 말씀의 성취자셨습니다. 그래서 인내할 수 있었고, 견딜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인내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견디고 참는 것도 싫습니다. 쾌락과 순간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미래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필리핀에 갔더니 스타벅스에 사람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다 가난한 줄 알았더니 이렇게 비싼 커피를 어떻게 마시나 생각했습니다. 유학하는 친구들이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들은 어차피 돈을 모아도 희망이 없으니까 그날 벌어서 그날 쓰는 것이 문화라고 합니다. 늘 제도 탓만 하고, 부모 탓만 하고, 자기 인생이 왜 이렇게 되었나 신세한탄만 하고 살아갑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세상 탓만 하지 세상의 빛으로 살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조금만 불편해도 교회가기 싫습니다. 내게 손해가 된다 싶으면 그렇습니다. 아니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말씀을 들어야 구원을 받든지 말든지 하지요.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든지 말든지 하지요. 그 과정을 다 생략하고 그저 잘 먹고 잘 살기만 하려는데 어떻게 하나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이 제일이라고 해놓고 뒤에서는 쾌락을 탐하고, 온갖 종류의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러면서 재앙이 왔을 때 가장 먼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재앙이 왔는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수도 없이 말씀하셨고, 수도 없이 그들을 용서하시려고 인내하셨습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 죽음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 생명의 십자가를 따르고 계시나요?

 

1. 죽어야 사는 십자가 신앙_마가복음10:42-45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일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_마가복음10:42-45’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죽어야 하는 십자가 신앙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만나려면 반드시 자아가 죽어야합니다. 그 안에 비밀이 있습니다. 죽음의 십자가처럼 보이지만 생명의 십자가입니다. 제가 예전에 정말 어려운 지역에서 선교하시는 선교사님과 하루 밤을 함께 한 적이 있었습니다. 환경이 너무 좋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그 때 제가 질문을 한 가지 했습니다. ‘선교사님, 이곳에서 사역하면서 뭐가 제일 두려우세요?’ 제가 거기에 하루 밤 머물면서 모든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질문을 한 것입니다. 선교사라는 신분으로 살아가면서 위험하기도 했고, 너무 고달프기도 했고, 질병의 위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선교사님의 답변이 늘 마음에 있습니다. ‘질병의 문제, 목숨의 문제, 심지어 경제문제 그런 것은 선교사로 떠나올 때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준비시켜주셨기 때문에 두렵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단 한가지만큼은 너무나 두렵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주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때가 가장 두렵다.’ 주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 두렵다는 말은 주님의 임재를 경험해봤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임재를 경험해본 사람만이 주님의 임재가 떠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실제로 목회를 하면서 가장 어려운 대상은 주님의 임재가 떠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모르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은밀한 죄, 혈기, 미움, 싸움, 거짓말 등을 함부로 합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라고 하지만 그 사람에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임재가 떠나가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임재가 언제 임할까요? 십자가의 사랑, 그 은혜를 알고 자아가 죽을 때 임하게 됩니다. 그것은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지식적으로 압니다. 실제적인 체험이 없습니다. 아니 관심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가족들이 구원받기를 기도하고, 그러면서 관계가 회복되길 바라고, 그러면서 내 사업과 학업이 잘되길 바랍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걸 모르기 때문에 육신적인 방법만 계속 바꾸어가면서 살아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어리석었던 것은 그들이 왜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억울했겠지요. ‘하필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선택해서 이렇게 예배만 드리고 살아야해? 이렇게 말씀 안에서만 살아야해? 답답해.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이 답답해.’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 몰래 재물신을 섬겼고, 세상의 쾌락을 탐하였습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서 내가 잘못하면 그런 목회자가 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전혀 삶에 감사가 없고, 찬송이 없고, 기쁨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 수도 없이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달라집니다. 예수님을 믿었다는 말은 천국을 믿는 다는 말입니다. 내가 죄인임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밖에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분이 없다는 사실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부활도 믿는다는 말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삶이 어떻게 바뀌겠습니까? 그걸 모르고 교회를 다니니 결국 찾아오는 영적인 공허함은 해결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간 하나님 앞에 진실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여러분 인생의 주인이 분명하십니까? 그렇다면 어떤 신앙생활을 하게 될까요?

 

2. 십자가를 따르는 신앙생활_마태복음13:44,22:29-32,고린도후서5:13-19

 

십자가를 따르는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_마태복음13:44’

천국을 발견한 사람이 어떻게 행동합니까? 이것은 여러분의 집과 재산을 팔아 헌금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비유입니다. 천국을 발견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의 임재를 체험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다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_마태복음22:29-32’

 

그런 자들은 살아있는 자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내 삶에 죄가 있는데 죽어있는 사람처럼 괜찮으면 안 되겠지요? 내가 예배가 안 되는데 아무런 감각이 없다면 죽은 사람입니다. 살아 있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항상 살아있어야 합니다. 육신도 마찬가지잖아요. 살아있는 사람은 늘 배가 고픕니다. 아프면 병원에 갑니다.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살아있는 사람이 되면 은혜를 사모하게 됩니다. 예배를 늘 드리게 됩니다. 교회는 시스템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초대교회나 우리나라 초창기 때 시스템이 있었습니까? 오직 말씀을 듣고 은혜 받아 살아나니 그 사람 자체가 시스템이 되었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삶이 변화되어 모여서 기도했고, 서로 섬겨서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룬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했습니까? 영원을 살렸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_고린도후서5:13-19’

 

여러분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그 안에 모든 답이 다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 삼으셔야 합니다. 목사님 어떻게 하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세요. 우리 삶에 예수님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지요? 그러니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육을 위해 살게 되는 것입니다. 멈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멈추십시오. 우리 삶을 세상에 맡기지 마세요. 말씀에 맡겨야 합니다. 가장 낮은 자리로 간다는 것, 내가 죽어야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요? 구체적으로 여러분 매일 성경 읽으시나요? 매일 기도하시나요? 그것이 바로 내가 죽고 나를 주님께 맡기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내가 수준 높은 척 하면서 가장 기본이라고 하는 것을 안합니다. 가장 뛰어난 운동은 장비를 갖추고 스케쥴을 잡고 크고 화려하게 하는 운동이 아니라 매일 하는 운동입니다. 가장 기본이지만 그것이 우리 삶을 변화시킵니다. 우리가 죽는 것 같으나 절대 죽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의 십자가를 지셨으나 어떻게 되셨지요? 우리는 그 비밀을 가졌기에 우리 삶에서도 십자가를 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야 내 가정을 살릴 수 있고, 내 현장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살릴 수 있습니다. 매일 십자가를 따르면 길이 보입니다.

 

주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죄를 멈추지 못하고, 예수님을 죽게 만드는 우리의 모습을 회개합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죽게 만들고 있지는 않나요? 여태 육신적인 일에만 관심이 있었고, 육신적인 방법으로만 교회를 운영해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정말 구원 받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교회가 아니고, 구원 받은 사람들이 사모하는 예배가 아니었는지도 모릅니다. 주님 우리를 말씀으로 깨워주시길 기도합니다. 성령으로 인도해주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죽음의 십자가처럼 보이지만, 결국 모두를 살리는 생명의 십자가임을 깨 닫습니다. 그 십자가를 매일 붙잡고 따르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기도로 우리의 작은 삶의 살아 세상에 구원의 소망이 있도록 우리를 축복의 시냇가인 교회로 사용하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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