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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8-08-26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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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826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무엇으로 채워질 수 있을까요?

본 문 :

창세기 1:1-2

오승주 목사

 

. 창세기의 기록 목적과 우리의 신앙

 

우주 만물의 시작을 보여주는 창조 기사는 오직 성경에만 있습니다. 먼 옛날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라고 한다면 창조론이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우주는 스스로 있다는 자연발생론이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태초에가 아주 중요합니다. ‘태초에의 원어 베레쉬트는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 출발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첫 시간입니다. 요한복음에도 태초에가 나옵니다. 이 태초에는 엔아르케인데 이것은 시간이 흐르기 전의 시간, 즉 영원 이전의 시간입니다.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된 세상 이전에 거하셨는데, 시공간을 초월하시며 영원 전부터 불변하며 계셨습니다. 그래서 창세기와 성경의 최초 주어는 하나님입니다. 이방 신들은 결코 창조의 속성을 갖지 못합니다. 이 세상은 어떤 피조물이 창조한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그러므로 천지 창조는 믿음의 대상이지 분석의 대상이 아닙니다. 성경은 논쟁하거나 따지지 않고 계시된 사건들을 언급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계시된 사건들을 이해하려면 우리에게 지적 호기심이 아니라 믿음으로 인한 하나님과의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창세기 11절이 믿어질 때 성경 전체가 다 믿어집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모세를 통해 창세기를 기록하게 하신 목적이 분명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 가기 위해 광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여전히 애굽생활을 그리워했습니다. 늘 환경과 상황을 애굽과 비교하면서 불평하였습니다. 그래서 가나안으로 가야할 이유를 늘 망각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창세기(모세오경)를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우리의 존재를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것도 대단한데 그 창조 전에 이미 나를 선택하셨다고 합니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_에베소서1:4’

 

하버드대학의 총장이었던 킴 클라크 교수가 졸업식 축사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매일 아침 문을 나서는 저를 돌려세워서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낮추어 저와 눈을 맞추며 말씀해주셨습니다. 클라크, 너는 오늘도 나가서 리더가 되어야 한다. 옳거나 그르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물러서지 말고, 어떤 사람도 너를 함부로 대하게 허락해서는 안된다. 네가 누군지 늘 기억해라.’ 이 어머니의 당부를 여러분에게도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당부를 하시는 것입니다. 존재의 발견은 곧 자기 자신의 발견입니다. 존재의 다른 말인 에고는 외적인 조건에 비추어진 자신의 모습입니다. , , 성취, 명예의 획득을 통해서 결정되는 것이라면, 존재는 태어날 때부터 존귀하고 사랑받을 만한 자신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에고를 위해서 전진해도 그것이 우리를 살리지 못합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아는 사람만이 창조적인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존귀한 존재이며, 나는 사랑 받을 만하고 사랑 베풀기를 즐기는 존재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존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발견이 됩니다. 그 존재가 말씀 안에서 발견이 됩니다.

 

. 하나님의 일하심

 

1. frame’의 변화_창세기1:1,시편23: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_창세기1:1’

 

우리는 다 프레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다 그렇습니다. 지구 사진을 보면 그 경이로움 때문에 사람들이 다 변화된다고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이렇게 사진으로만 봐도 저기에는 경계선도, 다툼도, 서로 다르다고 싸우는 전쟁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미물에 불과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영적인 세계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믿어진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됩니다. 솔직하게 하나님이 계시다는 믿음도 은혜이지 이해가 되십니까?

우리는 치열한 우리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프레임에 갇혀서 살아갑니다. 잉그리드 버그만이라는 스웨덴 출신의 유명한 여배우가 있습니다. 유럽에서 유명해지고 할리우드에 진출했습니다. 두 번의 아카데미를 휩쓸었고 성공의 정점에 섰습니다. 멈추지 못할 만큼 모든 상황이 그를 성공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암으로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헐리우드여, 은막이여 이렇게 황량한가, 이렇게 허무한가그는 결혼을 많이 했는데 할 때 마다 파경을 맞았고 그의 딸이 계부를 죽이는 끔찍한 일도 당했습니다. 평생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그렇습니다.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 첫 번째 항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인생에 가장 큰 축복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만나 가장 행복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_시편23:1’

 

사람이 태어나 자기 이름, 자기 업적을 남기는 것은 죄의 본성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를 단절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자기중심의 삶을 살아갑니다. 각자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공허함을 채울 수가 없습니다.

 

2. 혼돈과 공허 그리고 흑암_창세기1:2,예레미야4:23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_창세기1:2’

 

창조이전의 상태를 기록한 말씀이지만 이 말씀은 우리에게 너무 딱 맞는 말씀입니다. 혼돈과 공허는 한 묶음입니다. 그리고 흑암입니다. 혼돈은 Formless입니다. Form이전의 상태를 뜻합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카오스가 아닙니다. 혼돈이라는 단어는 욥기12:24에 나오는 거친 들에서 방황하게 하시며에 거친 들과 같은 단어입니다. , 광야와 같은 단어입니다. 혼돈은 광야와 같습니다. 공허는 Empty입니다. 비어있음을 뜻합니다. 흑암은 빛이 없는 상태를 뜻합니다. 인간은 한줄기 빛만 있어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빛줄기도 없다는 뜻입니다.

 

보라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으며_예레미야4:23’

 

예레미야에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설명할 때 창조 이전상태인 오늘 말씀으로 설명을 했습니다. 혼돈, 공허, 흑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신들의 환경을 애굽 문명과 비교를 했습니다. 불평하고 불만족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나요? 우리는 하나님을 말씀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깊게 그리고 제대로 받아드리지 않습니다. 애굽에서 종으로 태어났고 종으로 죽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지 못하면 숨겨진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해서 혼돈과 공허, 흑암이 깊음 위에 있게 됩니다. 캄캄하고 앞길이 보이지 않고, 더는 참을 수 없다고 외치는 악과 불신이 있습니다. 한줄기 빛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둡습니다. 하나님이 떠난 인생은 그렇습니다.

 

3. 운행하시는 하나님_창세기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_창세기1:2’

 

여기에서 운행은 알을 품다의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품어주시는 것입니다. 창조적 영이 다 품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혼돈과 공허, 흑암 속에서도 알을 품고 있었던 것처럼 나를 품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하고, 우리가 기독교를 선택하고, 우리가 이 교회를 선택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착각입니다. 단지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을 은혜로 자각하는 것뿐입니다. 이것을 경험한 것을 은혜라 합니다. 참 이해할 수 없을 지도 모르지만 은혜는 고난을 통해 깊어집니다. 창조적 역사는 그렇습니다.

저에게 어른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은 오목사 때는 하나님께서 전략적으로 고난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아니 어릴 때부터 고난 속에 살아온 것 같은데 또 전략적인 고난이라니요? 그런데 믿음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고난을 적당히 주시고 고난과 함께 한 사람이 완주합니다. 가정에 문제가 없고 자녀도 잘되면 기도 절대 안합니다. 온도가 되면 썩어버리는 음식처럼 하나님은 그렇게 두지 않으십니다. 제자로 살길 원하십니까. 고난과 동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속에서 우리를 당신의 뜻을 이룰 인생으로 만들어냅니다.

고난을 어떻게 참습니까?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국가대표가 왜 힘든 훈련을 받습니까? 힘들다고 포기하는 것 봤습니까? 우리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고난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국가대표이기 때문입니다. 조기 축구회와 수준이 다릅니다. 혼돈과 공허, 흑암에서 주저앉는 분들이 있고 또 그것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여기는 분들이 있습니다. 부르심으로 알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무섭게 하나님께 헌신했습니다. 낙관도 하지 말고, 비관도 하지 말고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듣고 지속적인 주님을 향한 인격적인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거봐 내가 기도했잖아라고 하는 분들은 종교를 바꾸셔야 합니다. 그건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십대들은 부모님과 갈등이 많이 있죠. 그런데 언제 그 갈등이 해결되죠? 나이 들면 해결됩니다. 왜냐면 내 입장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 어렵고 다 고난이 있습니다. 그걸 진행해야 깨닫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품속에 있는 사람들은 고난이 하나님 앞으로 가는 길이 됩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길이 됩니다.

 

. ‘하나님에 대한 신앙_요한복음1:3,골로새서1:18,로마서8:28,갈라디아서2:20

 

신앙은 하나님을 회복하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나의 혼돈, 공허 그리고 흑암을 인정하고 가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도 함께 성장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인정하지 않으니 그것들이 올무가 되고 옥이 되어 사로잡힙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늘 과거를 이야기 하거나 미래에 대한 허황된 이야기를 합니다. 오늘이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철저히 오늘이어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고 우리의 신앙의 여정은 시작됩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의 가문을 통해 보여주시려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_요한복음1:3’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습니다. 그가 없이 하나도 지은 것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바로 성경입니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_골로새서1:18’

 

만물의 으뜸이 되는 것, 그것은 우리 인간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으뜸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인생의 존재의 이유를 찾게 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_로마서8:28’

 

혼돈과 공허, 흑암이 우리 인생 가운데 오랫동안 올무로, 감옥으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협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하십니다. 이 선은 하나님의 선입니다. 우리가 선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그때부터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개입이 시작됩니다. 놀랍습니다. 바보 같아 보이고, 멍청하게 보이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세상은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배우고 못 배우고, 가진 것이 많고 적고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선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입니다. 그것이 교회사의 증거가 아닌가요.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조건부 사랑은 하겠지만 온전히 하나님을 높이고 경배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전부 이유가 있고 핑계가 있습니다. 사랑에 그런 것이 어디 있나요? 사랑하는 사람은 나의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소망하고, 나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을 기대합니다. 다시 말해 나의 뜻을 이루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욕심을 채우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전에는 성경을 몇 장 읽었나? 기도를 얼마나 했나? 전도를 몇 명 했나? 훈련으로 필요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을 매일 사랑하는 사람은 그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오늘 사랑하고 있는데 말씀을 귀히 여기지 않을까요? 옆에 혼돈과 공허, 흑암으로 고통당하는 데 내가 사랑하는 하나님을 말해주지 않을까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_갈라디아서2:20’

 

왜 우리는 공허한가요? 무엇으로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우리의 호흡이 끊어지면 아무 쓸모없는 그것 때문에 진짜 하나님을 찾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닌가요? 그래서 오늘 만나야 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오늘 들어야 할 말씀을 듣지 못하고, 오늘 베풀어야 할 선을 베풀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닌가요? 우리의 신앙은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어떤 존재인가요? 하나님을 정말 높이고 계시나요? 오늘 나에게 그리스도가 되시는 믿음 안에서 살길 원합니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 곧 참 지식이 내 안에 정리되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고백하는 인생이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택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내가 그렇게 대단한 존재인 것을 알면서도 숨겨진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해서 혼돈과 공허가 있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습니다. 깜깜하고 앞길이 안 보이고, 더는 참을 수 없다고 외치는 저의 악과 불신이 있습니다. 그런 나를 선택하셔서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낮아지신 것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혼돈과 흑암 중에 있는 나를, 공허가운데 빠져 있는 나를 살리려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길 원합니다. 내 삶이 원망스럽고, 내 환경이 싫다 했는데 하나님은 거기에서 운행하고 계셨습니다. 크신 은혜로 주신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구원의 은혜를 깨달아 살길 원합니다. 수많은 별들이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를 지키며 영롱하게 빛나듯이, 내 삶의 터전에서 주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빛나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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