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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8-09-02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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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91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보시기에 좋았더라

본 문 :

창세기 1:3-8

오승주 목사

 

. 하나님의 마음: 보시기에 좋았더라.

 

우리는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나요? 정말 그분을 우리 삶에 모시고 살고 있나요? 저는 지난 5년간 성경을 강해했습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폴 트립목사님께서 진리를 선포할 때 두 가지 일이 벌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진리와 상관없는 자들이 떠난다고 합니다. 둘째, 진리를 들어야 할 자들이 몰려온다고 합니다. 진리에 목말라 있는가 질문하게 됩니다. 진리에 관심이 있는가.

우리는 삶을 이야기합니다. 삶이 되어야 예배가 회복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저는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며 하루를 시작합니까? ‘우리 삶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라고 생각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삶을 살까요? 예배에 대한 우리의 마음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늘 여러 가지 핑계와 이유들로 예배를 멀리하려고 합니다. 아니 하나님에게서 멀어 지려고 합니다. 그것이 죄의 속성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멀어지려는 이유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럴 존재가 되지 못합니다. 단 하루도 죄를 짓지 않을 힘이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단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삶이 회복되어야 예배가 회복된다고요? 예배가 회복되어야 삶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조금만 잘 먹고 잘 살아지면, 조금 살만하면, 딴 생각을 합니다. 우상을 섬깁니다. 우상은 바로 하나님이 아닌 다른 모든 것입니다. 저는 삯꾼목사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예배에 방해되는 모든 것을 다 차단하셔야 합니다. 예배에 방해되는 모든 것을 경계하셔야 합니다. 결단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다운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데 무슨 목회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면 교회가 성장한 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악순환일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의 기준이고 목표입니다.

 

. 창조사역의 시작_첫째 날

 

하나님이 이르시되_창세기1:3,디모데후서3:16-17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_창세기1:3’

 

하나님이 이르시되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의미는 굉장히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있습니다. 창세기 1장의 창조는 이르시되의 말씀으로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이르시되 는 그러자 말씀하셨다라는 뜻입니다. ‘허락하다, 지시하다의 뜻이 있는 이 말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말씀, 즉 지시와 허락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나의 혼돈과 공허는 그 어떤 것으로 채울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흑암이 깊은 것도 말씀으로 빛을 만나야 합니다. 즉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인생은 말씀을 듣는 인생입니다.

모세는 계시로 이 말씀을 기록하였습니다. 계시가 없는 신앙은 건강한 신앙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계시가 있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과거의 경험과 자신의 생각, 체질로 신앙생활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셔서 그것에 순종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고집과 아집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안됩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과 상관없는 신앙생활을 살 수 있습니다. 천국과 구원이 보장되었다고 하는 신앙교리 때문에 계시신앙을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합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_디모데후서3:16-17’

 

우리가 하나님을 믿겠다고 결심하지만 어떤 분인지 잘 모릅니다. 그런데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하나님의 주권만 강조하면 인간의 책임이 무색해질 것이고, 인간의 책임만 강조하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손상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조화가 어려울 때 언약으로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언약입니다. 아이가 어리면 아버지의 재산을 줄 수 없습니다. 그 눈높이로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렇죠? 아이가 철이 들면 아버지에 대해서 알게 됩니다. 내 말을 잘 듣고 훌륭하게 자라면 내 재산이 너의 것이고 그렇지 않고 망나니로 살면 줄 수 없다. 그것이 언약입니다. 주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온전케 하십니다. 우리가 온전케 되면 하나님께서 말할 수 없이 기뻐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약속의 말씀을 잘 알아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배우고 적용하는 것이 어려워 보여도 가장 시간 낭비하지 않는 비결입니다. 성경 한번 들여다보지 않고 신앙생활한다고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도 성경을 안 가르치고 복 받으려면 그냥 믿으라고 합니다. 그것이 기복신앙 아닌가요. 창조사역은 이르시되의 사역, 즉 말씀사역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사역을 하셨습니다.

 

2.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_창세기1:3-5,요한복음1:1-5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_창세기1:3-5’

 

그리고 첫 번째 창조가 바로 빛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사역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사역과 인간을 창조하는 사역입니다. 그 첫 번째 사역이 빛을 창조해서 흑암에 질서를 부여하십니다. 이 빛은 발광체로서의 빛이 아닙니다. 14절부터 하늘의 별들을 창조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빛은 혼돈과 공허, 흑암 중에서 하나님이 비추시는 은혜의 빛입니다. 요한복음의 말씀하신 그 빛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빛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라더라_요한복음1:1-5’

 

이 빛으로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면 내 인생이 해석되고 환해집니다. 물질의 세계에서도 빛이 중요하지만 영적인 세계에서도 빛이 중요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이 곧 빛입니다. 이 빛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셨습니다. 내 속에도 빛과 어둠이 공존합니다. 하지만 빛이 오면 어둠은 물러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속에 빛의 생각과 어둠의 생각이 있음을 나는 압니다. 삶이 혼란하고 불안한 것은 내가 빛 가운데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빛과 어둠을 분 한다는 것은 선택한다는 뜻입니다.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날마다 빛의 생각을 구별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100% 죄인인 나이기에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해야 합니다. 100% 죄인인 나이기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빛의 생각입니다.

내 중심의 생각은 어둠의 생각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늘 행복하고 다 편안한 것은 아닙니다. 말씀으로 충만하게 되면 갈등부터 옵니다. 하나님 앞에 갈 때까지 빛의 생각과 어둠의 생각을 나누며 영적인 갈등과 훈련을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_요한복음1:5’고 했습니다. 그런데 빛을 싫어합니다. 거부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이 죄성입니다. 자존심, 수치심 이런 거 절대 드러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말이지요. 그래서 더 어둠으로 갑니다. 예배 한번 두 번 빼먹어보셨나요? 말씀 묵상 한두 번 안 해보셨나요? 아무 일 일어나지 않아서 괜찮다 생각하고 안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떠나십니다. 빛으로 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배도, 기도처도 빛입니다.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곧 빛입니다.

3.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_창세기1:6-8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위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_창세기1:6-8’

 

하나님은 계속해서 분리를 통해 질서를 부여해 가십니다. 지구가 원래 물로 덮여 있었는데 깊은 물을 궁창 위의 물과 아래의 물로 나누시고 궁창을 만드십니다. 질서를 갖추시고 피조물이 안락하게 살도록 환경을 조성하십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노아의 홍수가 발생하자 이 물의 질서가 깨지고 궁창 위의 물이 쏟아져서 환경이 악화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 900세까지 살던 인간의 수명이 지금처럼 줄어든 것입니다. 궁창 아래의 물은 강과 바다이고, 궁창 위의 물은 구름 가운데 내재된 물입니다. 하늘 위에 그렇게 엄청난 양의 물을 저장해 놓으신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요. 태양이 작열할 때 수증기가 하늘로 올라가고, 때에 맞게 비로 내리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가요.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야 하겠지요.

궁창이 하늘답게 틀을 갖추어갑니다. 하늘은 이렇게 궁창의 하늘이 있고 우주의 하늘이 있고 천상의 하늘이 있습니다. 바울이 경험한 하늘을 셋째 하늘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엿새의 창조사역 중에 늘 빠지지 않는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유독 이 궁창에만 빠져있습니다. 가장 멋지고 높은 하늘에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빠진 것입니다. 우리는 파랗고 높고 깨끗한 하늘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땅도 높이 있으면 높이 있으면 보기에는 아름다울 것 같지만 산소가 부족하여 살기 힘듭니다. 맨 아래, 온갖 오물과 쓰레기를 다 받아내는 땅이 옥토이고 보시기에 좋은 땅입니다. 높은 것이 얼마나 사탄의 밥이 되기에 좋은지 모릅니다. 어떤 학자들은 그 궁창에 사탄이 거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를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높은 곳에는 스스로 하나님 같이 되려는 자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높이 있으려는 사람들 때문에 사회나 가정에서나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런 사람들은 절대 빛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결코 진짜 하늘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모든 삶에 영향을 받습니다. 매일이요, 그런데 우리는 교만하면 진짜 하늘을 쳐다보지 않고 허황된 하늘을 쳐다보고 삽니다. 거기에는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없습니다. 나이가 들고, 직분을 가졌다고 해서 하늘을 쳐다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보시기에 좋았더라 의 인생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 은혜: 하늘을 보고 사는 것이 보시기에 좋은 인생입니다.

 

저는 어릴 적에 혼돈과 공허, 흑암에 살았습니다. 그런 집이었습니다. 그런 배경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운행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찾아와주셨습니다. 빛을 비추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을 나누어주셨습니다. 청소년 시절부터 저는 말씀을 듣고 하루도 빠짐없이 묵상을 했습니다. 그것은 은혜였습니다. 공부도 못하고 가난한 집의 꿈도 없었던 농부의 자식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일 설교도 중고등부 예배, 주일 오전 예배, 오후 예배 다 드렸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수요예배 금요예배도 드렸습니다. 행여 잊어버릴까 깨알같이 기록하고 집에 가면 다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도할때마다 말씀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제일 먼저 변화되는 것이 생각입니다. 그전에는 그냥 생각했습니다. 내 생각만 한다하지요. 그런데 말씀으로 생각합니다. 혼돈과 공허, 흑암 같은 내 생각이 아니라 빛의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말하고 행동하는데 궁창이 아닌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는 낮은 곳으로 가는 말과 행동을 합니다. 하나님이 그걸 보시기에 좋으셨다고 생각합니다. 저보고 예배 때마다 왜 우냐고, 기도할 때 마다 왜 우냐고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 은혜가 고맙고 감사해서 웁니다. 그 은혜를 잊지 못해 웁니다.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되었지 않습니까? 연약해서 매일 죄를 짓고 또 짓는 저에게 구별된 인생을 살도록 소망을 주셨지 않습니까?

저는 고등학교 때 이미 하나님께 서원했습니다. 전 세계에 나 같은 사람, 나 같은 가정에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겠다고 그런 전도자가 되겠다고 서원했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나아지지 않습니다. 대학교에 갔더니 돈이 없어서 막노동을 해야 하고, 친구들 다 신는 나이키도 못 신었습니다. 그때부터 말씀이 들렸습니다.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거기에 인생을 걸게 됩니다. 그것을 비전이라고 합니다. 저는 단 한 번도 저를 위해서 산적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복도 저를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제가 복을 다스리지 복이 저를 어찌 하지 못합니다. 물질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물질을 다스리지 물질이 저를 다스리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항상 하나님을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인생이 됩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사랑하는 인생이 됩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누려야 할 복입니다.

예배 처소를 옮겨야 합니다. 제 수준으로 안 된다는 것을 아시고 강제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또 고민입니다. 교회 살림 고민, 성도들 입장 고민, 그렇게 고민만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저에게 기도는 왜 안하냐고 하셨습니다. 왜 성도들에게 기도를 말하지 않느냐. 왜 이 귀한 축복을 나누지 않느냐고 하셨습니다. 저는 일주일에 몇 번씩 교회에서 기도하고 잠을 잡니다. 청소년 때부터 그렇게 기도해왔습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좀 산다고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멍청한 짓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항상 한결 같아야 합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 깊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떠나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 빛을 향해 가지 않는 사람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입니다. 교회 처소를 위해 온 가족이 같이 기도해보세요. 하나님이 어떤 은혜를 주시나, 어떤 간증을 주시나 같이 기도해보세요. 우리가 교회를 하나 세우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평생 살아가면서 교회 하나 제대로 세우면 자녀가 복을 받고, 선교와 전도의 축복이 누릴 수 있습니다.

저는 이번에 하나님 앞에서 두 가지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첫째, 믿음의 그릇입니다.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하시는데 그릇이 작아졌습니다. 제 동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역자들 사례 줘야 하니까 이런 동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저는 진짜 가난한 전도사 때 제 사례를 다 드렸습니다. 그때 믿음은 하나님 살아계시잖아요.’ 였습니다. 그리고 한 달 내내 교회에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좀 사용해주세요. 그런데 정말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셨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믿음의 그릇을 키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금 수도권에 복음전하라고 세운 교회 아닌가요. 직장마다 말씀 운동해야 하는 기도제목이 있지 않나요. 무너진 가정들 다 회복해야 하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저는 그리고 비브릿지와 함께 교육에 비전이 있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학교사역을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복음 심는 유치원, 청소년 사역할 대안학교 세울 것입니다.

두 번째, 말씀운동입니다. 저는 하반기 사역의 방향을 말씀확인으로 잡았습니다. 지금 설교를 하면서도 궁금합니다. 저 집사님은 말씀을 어떻게 받고 적용하고 있을까?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시간표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만 다니고 말씀과 상관없으면, 진리와 상관없으면 그것은 정말 삯꾼 목사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다 확인하여야 합니다. 소그룹을 담당하고 계시는 리더들에게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모여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강단 말씀이 어떻게 이해되고, 마음에 담고 기도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셔야 하는데 말씀을 듣지 못하면 무슨 소용인가요? 주일 말씀을 듣기 위해서 토요일 밤도 갱신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이 아니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습니다. 어둠도 떠나지 않고, 궁창에서 내려오지도 못합니다. 말씀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하늘을 보십시다. 은혜를 보십시다. 체면 아니고, 직분 아니고 하나님 앞에 서십시다.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쓰임 받는 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인생이 되기 위해 마름을 들어야 하는데 아직도 듣기 싫어 귀를 막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독생자의 영광을 봐야 하는데, 말씀이 육신이 되지 못합니다. 빛과 어둠을 갈라내지 못합니다. 여전히 궁창에 있어 교만합니다. 주님 보시기에 좋은 것이 하나도 없는 인생이 될까 두렵고 떨립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생명의 말씀을 들어 내 인생에 빛과 어둠이 구분이 되어 빛으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궁창에서 내려와 진짜 하늘을 바라보며 소망하며 사모하며 살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진리가 내 삶에 드러나는 축복된 인생이 되길 원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비전을 주옵소서. 사명을 주옵소서. 죽는 날까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인생이 되도록 우리의 믿음을, 우리의 기도를 멈추지 않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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