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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8-09-23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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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923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하나님의 안식

본 문 :

창세기 2:1-3

오승주 목사

 

. 은혜가 곧 인생의 차이입니다.

 

제가 신학교를 다닐 때 다들 공부도 잘하고, 배경도 좋아보였습니다. 그때는 정말 저희 집이 너무 가난해서 책을 사 볼 수 없었을 정도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교회사 교수님이셨던 이상규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이런 간증을 해주셨습니다. ‘정말 많이 가난하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성경은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매일 읽다보니 목사도 되었고, 지금은 이렇게 유명한 신학교 교수가 되었다그때 아차 싶었습니다. 제가 환경과 상황에 속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당에 기도하러 가서 가만 생각해보니까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돈이 조금 모자란 것은 막노동을 하면 되었습니다. 책은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서 보면 되는 것입니다. 부족한 공부는 매일 하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여러분은 매일 한 장씩 성경을 읽는 것이 내게 무슨 도움이 될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예 포기하고 살아가시지요? 그런데 저는 매일 한 장씩 읽었더니 1년이면 365, 10년이면 3650, 20년이면 7300장입니다. 제가 성경을 예로 들었지만 사실 이것이 전부입니다.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달에 한 권이 뭐 별거냐 생각하지만 10년이면 120권입니다. 그때는 차이를 매우기가 쉽지 않게 됩니다. 불신자 가정이 예수님을 믿으려면 제법 오랜 세월이 걸립니다. 그런데 대부분 예수님을 실제로 믿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하고 복음만 전하려고 합니다. 전도지 한 장 주면 되는 줄 아는 모양입니다. 물론 그것도 하나님은 귀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우리가 영적인 세계를 정말 믿는다면 매일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몸과 영혼은 분리가 아니기 때문에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게 된다면 몸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막힌 곳을 뚫기 위해 바늘을 사용하면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뚫립니다. 우리가 매주 예배시간에 은혜를 받는다면, 그 은혜가 매일 우리 삶에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느끼지 못하지만 변화될 것입니다. 은혜의 차이가 인생의 차이이기 때문입니다.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_사무엘하3:1’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은 차이가 많았습니다. 차이가 많은 정도가 아니지요. 그런데 하나님을 오로지 사모했던 다윗과 세상의 강함을 쫓았던 사울은 점차 그 차이가 반대로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사울의 집이 다윗의 집을 좇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항상 은혜의 삶을 살았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했고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그 삶이 바로 안식의 삶입니다.

 

. 안식의 의미

 

솨바트_이사야40:28, 고린도전서3:16, 출애굽기15:17, 에베소서2:19-22,요한복음5:17

 

오늘 본문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다 이루시고 그날 안식하셨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여기서 쓰인 안식은 솨바트라고 하는데 단순히 일을 하다가 피곤해서 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피곤치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솨바트는 무슨 의미일까요? 솨바트는 휴식하다라는 뜻 이외에 어떤 일을 마치다, 경축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섯째 날까지 천지 만물을 다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까지 만들어 놓으신 후에 심히 좋으셨습니다. 유독 여섯째 날에만 심히 좋다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인격적인 존재인 하나님의 백성, 인간이 만들어짐으로 해서 그 창조가 비로소 하나님의 의도대로 완벽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천지 만물이 인간의 다스림 속에서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었기에 하나님은 그 속에 충만히 거할 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안식이라는 것은 단순히 일을 쉰다는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다른 말로 하나님의 능력과 성품과 지혜가 충만하게 드러나고 발휘되어서 모든 만물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며 그 분께 순복하는, 하나님께서 충만하게 거하실 상태가 되어 우리를 보호하고 유지하시면서 만족하게 그 처소에 거하시는 상태를 하나님의 안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 쪽에서 설명하면 인간이 자신을 처소 삼아 거하고 계신 그 하나님의 영광에 정상적으로 반응하여 그 분께 순종하며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맡기는 상태를 안식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쉼 곧 안식입니다. 그래서 안식은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최선을 다해 행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 쉼을 얻습니까? 정신노동을 많이 하는 저는 정리정돈을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으면서 쉼을 얻습니다. 좋은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쉼이 됩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_고린도전서3:16’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_출애굽기15:17’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하나님의 처소를 삼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 안식을 하십니다. 그런데 그 처소가 아직 완성이 되지 않았습니다. 영적으로는 이미 완성이 되었지만 가시적인 역사 속에서는 계속 지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가느니라_에베소서2:19-22’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제자들에게 이제 내가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지금 주님께서 우리가 거할 천국을 짓고 계신다는 말이 아니라 당신이 올라감으로 성령 하나님께서 내려 오셔서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를 하나님이 거하실 온전한 처소로 완성하실 것임을 말씀 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_요한복음5:17’

 

그래서 하나님은 참 안식을 위해 지금도 열심히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죽이시면서까지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신 그 안식을 누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안식이 곧 우리에게 최고의 안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2. 안식을 위한 삶: 은혜의 삶_요한복음20:14-15,히브리서11:5, 창세기4:19-24,창세기6:7-8

 

안식을 위한 삶은 곧 은혜의 삶입니다. 은혜의 삶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며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사는 삶은 내 중심으로 살면 결코 할 수 없는 삶입니다. 하나님과 교회 중심이 될 때만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 때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고 또 하나님의 최고의 계명인 사랑도 지킬 수 있게 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예배라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 인간은 원래 그 예배에 초대되어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은 그 안식 곧 예배를 스스로 차버렸습니다. 그리고 자기들 힘으로 스스로의 안식을 만들기 위해 문명과 문화를 만들고 담을 쌓고 남의 것을 탈취하는 악을 자행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깨져버린 하나님의 자녀들의 안식을 반드시 회복하실 것임을 창세기의 일곱 날들을 통해 힌트를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저녁이 되며 어둠이 오겠지만 반드시 아침을 맞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이 창세기의 일곱 날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의 안식이 깨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최종 목적인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참 안식이 완성되는 과정을 성경에서 창조와 타락과 구원과 심판으로 설명해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일곱째 날의 안식은 궁극적인 안식이라기보다 희미한 빛줄기가 우리 삶에 비치는 저녁 같은 안식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 나라의 아침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6일 동안 창조를 하셨을까요? 능력이 부족해서 일까요? 하나님은 지금 자신의 백성들에게 친절하게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루하루마다 의미를 담아서 말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셨습니다. 그것이 구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게 그들을 안식으로 불러드리셨습니다. 그런데 그 안식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 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켰을 때에만 유효한 것입니다. 그 명령은 하나님의 계명을 상징합니다. 무죄한 아담이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켰을 때 그것이 그의 의가 되어 안식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그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내지 못했고 타락을 함으로 그 안식을 빼앗겼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완전한 창조가 인간에 의해 뭉개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분이 아니시겠지요.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인간의 나약함을 확연하게 구별을 해줌으로서 하나님의 안식은 인간의 힘으로 절대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즉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주어질 수 있는 것이라는 걸 납득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시험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자율성과 이성과 인격을 가지고 언제든지 기고만장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실패한 그 선악과의 시험을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통과해 내시고 그 시험 결과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가시켜주심으로 그 백성들이 참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악과는 인간에게 주어지는 안식에 있어서 인간 쪽에서의 기여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하나님의 장치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교만할 때 즉 하나님을 타고 넘으려고 할 때 이성과 인격 속에 주지시키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고 의존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가르치십니다. 인간들이 순종해야 할 그 하나님은 사랑과 은혜와 긍휼이 흘러넘치시는 참 좋으신 분이시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 성경이며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렇게 선악과는 인간의 힘으로 지켜낼 수 없는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애초부터.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의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_요한복음20:14-15’

 

그 첫 번째 동산인 에덴동산에서의 첫 번째 아담의 실패가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두 번째 동산에서 회복됩니다. 그 동산이 십자가이며 복음입니다. 아담은 동산을 다스려야할 왕이 되어야 했고, 하나님이 거하시게 하는 성전으로서의 에덴을 지켜야 할 제사장이었으며, 하나님의 뜻을 동산에 전달하는 선지자의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역할을 충실하게 해 낼 때 인간은 비로소 안식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참 왕이요, 참 제사장이요, 참 선지자로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동산지기는 죽어야 할 죄인의 상징적 여자, 창녀 막달라 마리아를 위해 그녀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 창녀를 안식할 수 있는 자로 바꾸시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저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_히브리서11:5’

 

우리는 어떻게 안식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에녹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에녹은 믿음으로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은혜로 받았다고 합니다. 에녹은 하나님의 은혜로 심판을 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여 가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 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_창세기4:19-24’

 

또 한 인물이 있는데 가인의 후손인 라멕입니다. 라멕은 동철로 날카로운 기계를 만들고 수금과 퉁소를 잡는 자의 조상이 되고, 가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됩니다. 한 마디로 인간이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낸 세상의 힘을 말합니다. 우매한 인간들은 그러한 문명과 과학의 힘으로 자기들에게 안식을 주어질 것이라 착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죄인인 라멕의 후손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미련하고 약해빠진 노아라는 바보 같은 아들이었습니다. 참 신기하지요. 노아의 이름은 안식을 뜻합니다. 그는 자기의 힘이나 꾀로 세상을 살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120년 동안 세상 사람들의 조롱을 받으며 산 위에다가 배를 만들었습니다.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_창세기6:7-8’

 

.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_히브리서3:17-18,4:1-11

 

안식은 하나님은 창조기사를 통해 하나님의 안식이 언약의 저녁에서 출발해서 캄캄한 투쟁의 시간을 지나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것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_히브리서3:17-18’

 

우리 성도님들은 참 된 안식은 하나님의 선물로만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분 앞에 항복하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분께 우리의 모든 삶을 의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조금 바보 같아 보이더라도 올곧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 삶이 바로 에녹과 노아와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며 은혜의 삶입니다. 그리고 바로 안식의 삶입니다. 가인의 후손들처럼 세상의 힘을 좇다보면 안식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하노라_히브리서4:1’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_히브리서4:4-6’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_히브리서4:11’

 

매일 은혜의 삶을 사는 것이 어쩌면 가장 큰 은혜이고 또 실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쉬울 것 같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고 또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지 못하면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교회 공동체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지체들을 주셔서 서로 이끌어주고 권면하며 위로하며 함께 가게 하셨습니다.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의 인생을 다 살고 나면 드디어 안식입니다. 하나님은 하루하루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고 또 인간을 창조하시고 심히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안식 때는 복되고 거룩하게 하셨고 그것을 안식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은 하루하루가 중요합니다. 은혜를 사모하며 좇아야 합니다. 말씀을 가까이하고 순종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영원한 안식을 선물로 주십니다.

 

주님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려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인간이 교만하여 세상의 것으로 살려하나 거기에는 안식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안식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만 얻을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기 위해 일하고 계심에 감사드립니다. 그 은혜의 삶을 살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인생을 살다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길 원합니다. 연약하고 미련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음을 깨달아 그 은혜를 매일 사모하며 살게 하옵소서. 그때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안식을 선물하셔서 감사와 찬송, 예배의 축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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