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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8-10-07 주일예배


2018-10-07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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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7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생령이 되어야 흘러갑니다

본 문 :

창세기 2:4-17

오승주 목사

.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_창세기2:4-6

 

창세기 1장에서는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라고 명령하십니다. 2장에서는 인간의 창조만 따로 떼어 언급합니다. 삼위 하나님이 함께 의논하셔서 인간을 지으셨는데, 인간의 타락의 단초가 2장에 나옵니다.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_창세기2:4-6’

 

그동안 창조주 하나님만 언급하다가 하늘과 땅의 내력이 나오면서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이 모든 일을 스스로 이루셨고 그러한 창조의 기사 뿐 아니라 인류의 역사는 모두 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우시고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열심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인간의 창조에 대해 반복 설명이 시작되는 창세기2:4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 문장에서 강조하는 것은 이 천지 만물 중에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는 존재가 아직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다스리고 경작해서 풍성한 수확을 할 밭과 들의 초목과 채소가 존재치 않았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초목과 채소 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들은 인간의 다스림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도록 지어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서 스위치 역할을 하는 인간이 없는 초목과 채소는 그 존재 자체가 무의미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_창세기2:7’

 

그런데 진짜 놀랄만한 일은 그 사람을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흔한 티끌과 먼지인 흙으로 지으십니다. 흙은 아프르 민 하아다마라고 하는데 땅의 티끌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사람을 티끌로 지으셨다는 것을 밝힘으로 해서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력이 끊기고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자가 될 때 그저 티끌에 불과한 존재라는 것을 주지시키고 있습니다. 다이아몬드도 있고, 금과 은도 있는데, 바람만 불어도 훅 하고 날아갈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흙과 인간은 화학적인 조합이 같다고 합니다. 다 티끌로 지음을 받았고 별 인생이 없기 때문에 돈과 명예, 권세를 자랑하는 인생은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죄를 짓자 네가 흙으니 필경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티끌인 인간이 하나님과 의로운 관계가 있을 때만 생령이 되지만 하나님의 생명력이 떠나버린 인간은 그저 티끌입니다. 그래서 별과 같은 인생이 되게끔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으십니다. 영적인 존재가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끊임없이 공급되어야 할 하늘의 복과 차단되어 땅에 갇혀버린 상태를 지옥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사람들이 그 지옥을 자각하지 못하도록 달콤하고 짜릿한 것들을 많이 만들어 놓고 사람들을 바쁘게 해 놓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어느 날 사람들이 그토록 오매불망 추구하던 그 달콤한 신기루들이 져버렸을 때 그 때 비로소 하나님과 관계없는 상태인 지옥이 실감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미 이 땅에서 하나님과 관계없는 삶이 얼마나 공허하고 허무하고 고통스러운 삶인지를 알게 된 자들입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믿음 안에 거하려고 힘을 쓰는 것입니다. 아무리 엄청난 부를 쌓고 어마어마한 명성과 인기를 누렸어도 그 코에서 숨만 멎으면 그 사람은 며칠 안가서 티끌로 변해버립니다. 우리는 그 이후의 삶을 준비해야 합니다.

 

.에덴동산에 담겨진 복된 소식

 

1. 생명나무와 선악과나무_창세기2:17,요한계시록2:7,창세기3:22,요한복음15:5-6,9-10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_창세기2:17’

 

에덴동산에 관한 묘사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후 따로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인간을 그 곳에 두셨습니다. 에덴은 기쁨의 동산이라는 뜻입니다. 동산은 울타리라는 뜻인데 외부와 차단된 그런 곳입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백성들만 들어갈 수 있는 울타리가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합니다. 그곳에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가 심겨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울타리가 쳐진 동산과 두 나무의 그림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원리에 의해서 완성될 것이며 어떤 원리로 움직이게 될 것인지 보여주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선악과나무는 하나님의 계명을 의미합니다. 선악과 열매는 단순히 먹어서는 안 되는 금단의 열매가 아닙니다. 만일 그런 것이라면 왜 중앙에 심어놓으셨을까요? 생명나무는 말 그대로 생명의 발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최초의 하나님의 백성에게 첫 명령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최초의 인간에게 하나님의 계명을 주시고 그 계명을 어길 시에는 죽이시겠다고 말씀을 하셨다는 것은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리에서만 살아있는 존재라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주님도 사람이 떡으로면 사는 것이 아니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면서 살아있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 분께 자신의 전부를 의뢰하는 방법밖에 없는 것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_요한계시록2:7’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을 수 있는 자는 이기는 자라고 나옵니다. 다시 말해 생명나무의 과실은 선악과나무의 시험을 이긴 자만이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티끌에 불과한 인간은 도저히 그 선악과나무의 시험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그걸 아시고 선악과의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런데 왜 복잡하게 선악과나무를 에덴동산에 두셨을까요? 하나님은 이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티끌에 불과한 인간은 도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생명을 얻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닌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만드셔서 반드시 안식을 주시고야 마시겠다는 복음을 그 두 나무에 담아 두신 것입니다. 선악과나무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티끌인지 만 천하에 폭로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생명나무가 언제 필요하지요? 언제 의미가 있지요? 인간이 선악과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발생하는 죽음 앞에서입니다. 티끌(죄인)에 불과한 자들이 어떻게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거할 수 있나요? 바로 은혜입니다.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그저 아무것도 아닌 티끌, 먼지라고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가 가르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티끌들을 어떻게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아들로 만드시는 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과 두 나무 이야기를 통해 흙은 흙일 수밖에 없다고 폭로하시고 그 땅이 어떻게 하늘을 덧입게 되는 지를 성경 전체를 통해 설명해주시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 이야기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_고린도전서15:48-49’

 

그런데도 인간은 어리석게 생명나무를 붙잡지 않습니다. 우매한 티끌들은 세상이 말하는 힘을 가지고 생명나무에 도달하려고 합니다. 종교와 이데올로기, 윤리와 도덕, 과학과 교육 같은 것입니다. 선행체계와 지식체계를 가지고 하나님이 되어 행복을 창조해내겠다고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나라의 삶의 원리인 사랑으로 독생자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은혜를 주십니다. 십자가에는 죄를 상징하는 선악과와 생명을 상징하는 생명나무가 다 들어있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품고 선악과나무의 시험을 통과하시고 생명나무의 열매를 드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티끌이었던 아담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참 생명을 가진 자들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봐야 할 것은 인간은 선악을 알면 좋다고 생각하는데 인간이 선악을 아는 존재가 아닐 때 생명나무의 열매를 언제든지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생명나무가 아닌 선악과나무에 관심을 가집니다. 하나님처럼 되려는 것입니다. 선악과나무를 따먹는 순간 선악을 알게 되었다고 착각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솔직하게 우리가 알고 있는 선과 악이 정말 선과 악인가요? 이미 죄에 물 들어서 죄인이 되어버린 인간의 선악 구분은 결코 올바르지 않습니다. 자기의 배를 불리기 위한 몸부림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은혜로 생명나무의 열매를 필요하게 하신 것입니다. 생명나무의 열매는 바로 말씀입니다. 그래서 선악과나무가 율법이라면 생명나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그렇게 인간이 하나님께만 의존하며 그 분께 꼭 붙어 있을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나게 되는지 성경은 설명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_요한복음15:5-6’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_요한복음15:9-10’

 

우리는 대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의존하여 그분께 붙어 있을 때에만 비로소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했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고도 살 수 있었는데 타락을 하는 바람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만 하는 존재가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은혜로만 존재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는 것을 타락과 심판과 구원과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을 통해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계십니다.

 

2. 에덴동산의 제사장_창세기2:7-8,15-17,요한일서2:3-6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_창세기2:7-8’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_창세기2:15-17’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다스리며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담은 에덴의 제사장입니다. 그런데 뭘 어떻게 다스리며 지키라는 말일까요? 다스리며 지키라는 명령과 함께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이 함께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피조물을 다스리며 지키는 일의 내용이 바로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물의 제사장으로 세우시고 그들을 다스리고 지켜서 인간에게 떨어진 하나님께 순종하고 계명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한다 라는 에덴동산의 삶의 원리 안에서 그들이 떠나지 못하게 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생기를 받아 생령이 되었다면 다시 말해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복음을 살다가 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우리의 삶 속에서 깊이 경험되면 될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언제든지 선악과를 따먹을 수밖에 없는 티끌 같은 존재라는 것에 대해 깨닫게 되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안 되기에 늘 말씀 속으로, 예배 속으로 들어와서 은혜를 간구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왜 다스리며 지키는 삶이냐? 그렇게 사는 것이 내 가정을 지키고 내 자녀들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 때 세상에서 세상의 논리로 저들처럼 살지 않고 예수님처럼 사랑으로 저들을 살리기 위해 애쓰며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무슨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것이 복음을 사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_요한일서2:3-4’

 

에덴동산의 제사장으로 회복시키시려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시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얼마 전에 한 성도님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가스펠 교회에 온지 오래 되었는데 그동안 말씀이 잘 들리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사실 예배를 계속 드리는데 뭘 자꾸 말씀이 들려야 한다고 하는지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창세기 설교를 듣는데 갑자기 예수 그리스도가 들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먼지 같은 내 인생에 예수 그리스도가 찾아오셨구나. 그것을 믿게 하고 그 믿음으로 세상에서 승리하게 하시려고 매주 말씀하고 계시는구나! 그러고 보니 내 삶이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았구나! 정말 은혜와 상관없이 살았구나! 이중적으로 살았구나!' 처음으로 회개를 했다고 고백합니다.

 

3. 에덴동산의 흐르는 네 강과 보석들_창세기2:10-14,요한계시록22:1-2,요한복음7:38-39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_창세기2:10-14’

에덴동산의 강이 네 줄기로 갈라집니다. 성경에서 4라는 숫자는 네 방위 즉 온 세상을 의미합니다. 어떤 특정한 지역만 적시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향해 흐르는 강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강은 에덴동산에서는 이름이 없었는데 밖에서부터는 이름을 가집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성자 하나님이신데 세상에 오셨을 때 이름을 가집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비손은 풍성하다, 기혼은 터져 나가다, 힛데겔은 화살처럼 빠르다, 유브라데는 달콤하다의 이름을 가집니다. 이 강이 바로 요한계시록에 이렇게 묘사됩니다.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_요한계시록22:1-2’

 

요한은 그 강이 하나님과 예수님의 보좌로부터 나와 만국을 소성케 하는 생명수의 강이라고 합니다. 창세기의 에덴동산의 강,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흐르는 생명수의 강은 정확하게 같은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풍성함과 달콤함을 화살처럼 빠르게 터져나가게 해서 만국을 소성하게 하고 생명을 주는 존재를 성령이라고 가르칩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_요한복음7:38-39’

 

에덴동산에서 발원하여 사방으로 갈라져 흐르게 되는 그 강물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유대인들만이 아닌 온 세상에 퍼져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생명을 주고 소생시키게 될 성령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강물이 흐르는 곳에 금과 베델리엄과 호마노 같은 보석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렇게 보석과 같이 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들어갈 때 흉패에 열두 보석을 달고 들어가는 제사의식이 있습니다. 그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대제사장께서 보석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품고 하나님의 나라로 입성하시는 모습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흙과 같은 우리가 언제 보석이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살 때 우리는 제사장이 될 수 있습니다.

. 생령이 되어야 흘러갑니다_이사야2:22,에스겔47:1-12

 

에스겔이 성령의 감동으로 강물을 봅니다. 그런데 그 강물은 성전의 성소에서부터 흘러나옵니다. 그 강물이 지나가는 곳마다 생명이 살아나고 만물이 소성하며 번성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는 에덴동산의 그 네 강물, 요한 계시록의 그 강물과 같은 장면으로 더 밝게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천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천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 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내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_에스겔47:1-12’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 나무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다시 찾아오셔서 우리를 구해주셨습니다. 생기를 불어넣어주셔서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생령이 되니 부끄럽습니다. 생령이 되니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나의 상처가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선포하는 도구가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구속사의 주인공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제사장으로 축복하시려고 합니다. 그런데 자꾸 선악과를 따먹고 선악의 개념으로 살려고 합니다. 여러분 세상의 문제를 어떻게 선악의 문제로 다루겠습니까? 제정신이 아닌 사람에게 선악의 개념으로 공자 왈 맹자 왈 한다고 돌아오겠습니까? 생기도 없는 인간에게 무슨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습니까? 옳고 그름과 잘잘못을 따지며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 문제 때문에 생명나무로 가는 길이 보여야 합니다. 생명의 강이 흘러오는 것을 봐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이스라엘백성들처럼 우리의 인생을 의지하려고 합니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_이사야2:22’

 

하나님은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호흡은 코에 있습니다. 호흡을 거두어 가시면 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세를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명나무를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주님 흙으로 창조된 우리는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면 다시금 티끌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어 하나님의 대리자로 다스리며 하나님의 것들을 지키어 살도록 축복하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죄로 타락하여 스스로 하나님처럼 선악을 안다고 교만한 우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친히 생명나무가 되어주셔서 십자가의 복음으로 보잘 것 없는 우리를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시켜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성령을 보내주시어 세상에 종노릇하며 사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을 살리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보석같이 존귀한 자로 살아 세상을 살리는 축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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