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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8-12-02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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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2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그러나 노아는

본 문 :

창세기 6:1-10

오승주 목사

 

. 우리 삶은 예수 믿는 증거여야 합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받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결과도 그것에 따라 달라집니다. 요즘은 종교적으로 회심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종교적으로 회심했다는 말은 형식과 절차에 따라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성령을 통해 은혜를 받고 회심한 사람들이 적습니다. 그것이 바로 차이입니다. 은혜가 소멸되어 버리면 노아 시대처럼 될 수 있습니다.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 있었던 족보가 어떻게 타락할 수 있는지 오늘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주의 깊게 잘 살펴야 합니다.

본문은 노아시대의 상황 같아 보이지만 지금 상황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한국교회를 그냥 두시고 우리들을 그냥 두신다면 소돔과 고모라에게 미안하셔야 합니다. 지금 시대가 더 타락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닌가요? 저부터 그렇습니다. 과연 나는 오직 예수인가요? 오직 감사와 기쁨이 있는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신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는 감사와 기쁨 보다는 더 주시지 않아서 불평하고 더 얻어내지 못해 아쉬워하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그것이 너무 고민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만나는데 은혜가 없습니다. 구원의 감사가 안 느껴지고, 기쁨이 안 느껴집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고 하지만 과연 진짜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됩니다. ‘은혜가 느껴지지 않는데 그의 실질적인 삶이 정말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을까?’ 그래서 저는 무진장 고민이 됩니다. 목회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을 만큼 고민이 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에둘러 말씀드리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직설적인 사람이 못되기 때문입니다. 가스펠편지도 그렇고, 설교도 그렇습니다. 실제로 만나면 더 심합니다. 토요일 밤이면 여러분의 이름들을 놓고 이 자리에서 기도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그것 밖에는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은혜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목사에게 은혜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진짜 감사한 것은 심방을 하면서 말씀에 은혜를 받고 뭔가 방향을 잡고 계시다는 것을 느끼면 진짜 기쁩니다. 힘이 거기서 다 나옵니다. 되게 힘든 상황인데, 되게 어려운데 방향을 바르게 잡고 가는 분들을 만나면 마음이 너무 흐뭇합니다. 은혜를 받고 계시는 분들을 만나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예배조차 드리지 못할 만큼 마음이 상한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영이 아픈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은 더 좋은 것을 위해 삽니다. 더 성공해야지, 더 인정받아야지, 그런데 그 끝을 우리는 알지 않습니까?

 

. 그러나

 

1. 하나님이 보시는 세상_창세기6:1-7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_창세기6:1-3’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합니다. 그런데 번성은 누가 했지요? 가인의 후손들입니다. 그들에게서 딸들이 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가인의 족속 모든 여자들을 아내로 삼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은 셋의 후손들입니다. 천사가 타락했다는 학계의 주장이 있지만 그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단지 결혼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되어 거룩하게 살아야 할 셋의 후손들이 가인의 문화에 젖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때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들이 육신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던 마음이 세상을 향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가 세상과 타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이었더라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_창세기6:4-6’

그래서 네피림이 있었다고 합니다. 네피림은 나팔이라는 동사에서 나오는 말인데 타락한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용사라고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성공해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자만과 교만 오만이 하늘을 찌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과 타협하고 대단한 열매를 맺었다고 좋아합니다. 성공했다고 좋아하고 행복하다고 좋아합니다. 쾌락이 관영했으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이제는 하나님이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상관없어져버렸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복음의 말씀을 들을 때가 생생합니다. 정말 행복했습니다. 교회 가는 날만 기다리면서 살았고 예배드릴 때 찬양을 할 때 말씀을 들을 때마다 은혜가 넘쳤습니다. 그러면 또 그 은혜가 우리 가정에, 학교 친구들에게 전해지는 꿈을 꾸며 또 설렜습니다. 그런데 신학교에 입학하고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특별한 사역을 맡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니 그때부터 예배 시간에 항상 앞자리에 앉다가 뒷자리에 앉기 시작하고 은혜를 받는 횟수도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점차 난 잘한다 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기 시작했습니다. 혼자 똑똑하다고 하면서 공동체에서 헌신하고 수고하는 일도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이상하게 유혹의 손길이 찾아옵니다. 절묘하고 교묘합니다. 딱 그때입니다. 넘어가면 자기 합리화에, 더 은밀하게 숨어들어갑니다. 삶에 비밀 공간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자기 삶을 오픈하지 못하는 분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저는 그때 생기는 문제가 경제문제인줄 알았습니다. 환경의 문제인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날 저에게 물어보셨습니다. 정말 이것이 문제이더냐? 저는 대답을 못했습니다. 제가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있었고 그것이 문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보통은 다 안다고 생각합니다. 안다 안다 하면서 더 세상으로 갑니다. 사람들이 세상으로 간다는 말을 잘 이해 못합니다. 자기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행동만을 지적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했는데 그 죄악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악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마음이 세상으로 가버렸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죄입니다. 그들은 나는 성공해서 하나님께 드려야지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것입니다. 지금 은혜받지 못하면 그것은 틀린 것입니다. 마음의 진실한 목표가 하나님께 있지 않다면, 하나님께 드린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감동이 되거나 이익을 주는 선에서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고 감사하다고 합니다. 문제를 해결해주거나 어떤 상황을 모면해줄 때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고 합니다. 속으로는 영웅이나 명성이 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발전된 네피림이 있어야만 하겠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전하고 나을 것이라고 합니다. 좋은 아파트가 있으면, 좋은 직장이 있으면 괜찮다고 합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마음은 기도하기 싫어서, 엎드리기 싫어서, 말씀으로 들어가기 싫어서 아니 내가 원하는 것을 해야 하는데 지금 그런 거 신경 쓸 시간이 어디 있냐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우리의 마음과 중심을 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어떤 계획을 세우는지 알고 계십니다.

 

2. 그러나 노아는_창세기6:8,요한계시록21:1-8,요한계시록7:9-10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_창세기6:8’

 

그런 상황에서 그러나라는 단어를 기록하여 성경은 소망을 표현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은 다 쓸어버리겠다, 모두에게 실망했다, 끝이다 라고 하셨지만 그러나의 상황을 만들어주셔서 인간이 구원받을 길을 열어주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그러나란 단어가 적용되는 축복이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나다들 하니까 나도 해야지가 아닙니다. ‘다들 은혜 받으니까 나도 받아야지가 아닙니다. 단 한사람도 은혜를 받는 사람이 없는데 그러나입니다. 노아가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습니다. 성경에 은혜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은혜를 설명해주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잘 들어보셔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가 무엇입니까? 아니 지금 우리는 은혜를 받고 있습니까? 교회는 자꾸 새로운 것을 알려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 교회에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가 날마다 새로운 것은 우리가 날마다 죄악 속에서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영적으로 타락한 세상에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날마다 새롭게 만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는 한 가지 은혜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구원의 은혜 같은 거 받을 라고 매주 예배드리고 매일 성경 읽고 기도하라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구원에서 멀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노아가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에서 입었더라뻬에네, 이라는 뜻입니다. NIV성경에 보면 ‘But Noah found grace in the eyes of the LORD’라고 기록합니다. 다른 하나님의 아들들의 눈에는 이 세상의 아름다움과 즐거움과 성공과 명성이 눈에 들어왔지만 노아의 눈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사람들의 특징은 보는 것이 전부다 욕망이지만 구원 받은 자의 눈은 은혜입니다. 그러니 타락한 자와 구원받은 자의 바라봄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노아는 무엇을 바라보았을까요?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_요한계시록21:1-8’

 

하나님은 지금 구원을 위해서 일하고 계십니다. 그것을 우리가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그 구원을 위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구원받을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주셔서 믿게 하시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그것이 택정교리입니다. 인간 측에서 보면 그렇기 때문에 은혜를 사모하고 은혜를 향하여 가는 것입니다. 이상하게 은혜를 못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말 은혜를 받아야 할 사람인데, 은혜를 받아야 살 사람인데 아무리 말해도, 사역을 해도, 아무리 해도 은혜를 못 받습니다. 이상하게 불편하다고 환경 탓을 하고, 또 불평하고 짜증내고 포기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런데 진짜 은혜 받는 사람들은 말씀만 들어도 충분하다고 합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은혜의 자리를 사모하고 또 자신이 부족하다고 감사하고 기쁨으로 섬기고 헌신합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_요한계시록7:9-10’

 

노아는 본 것입니다. 확실하게 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과 타협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바라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구원하심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과 어린양 곧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매일 매순간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교회는 은혜 말고 아무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오늘 예배를 끝으로 새 성전으로 이사를 갑니다. 그런데 은혜가 없다면 저 성전 의미가 없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은혜를 더욱 사모한다면 저 성전은 귀한 방주의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3. 은혜의 삶_창세기6:9-10, 고린도후서5:17-19, 히브리서10:38-39, 12:14-16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_창세기6:9-10’

노아 역시 자신의 믿음의 조상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당대에 완전한 자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완전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은 자는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보이니 완전하게 보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_고린도후서5:17-19’

 

노아는 날마다 은혜를 사모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어떻게요? 하나님께서 말씀을 부탁하셨습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화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노아와 동행한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 필요한 한 가지가 바로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은혜가 우리 삶과 인생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쉬운 가요? 어렵습니다. 어렵기 때문에 노아의 자손들이 그 축복을 받아놓고 전부 악한 길로 가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믿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즘은 믿음이 우리 인생을 다르게 할 용사가 되거나 명성을 얻게 하는 추진력 같은 것으로 이해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은 은혜를 향하게 하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은혜가 하나님께서 인간을 볼 때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은 자와 동행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_히브리서10:38-39’

 

은혜의 삶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_히브리서12:14-16’

 

은혜를 위해서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은혜를 놓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은혜를 팔아버립니다. 에서가 왜 팔았죠? 먹을 것에 눈이 멀어서, 성공에 눈이 멀어서, 자존심 때문에 팔아버렸습니다. 매일 은혜를 받는 시간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기준선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제가 요즘 사는 삶입니다. 신앙의 기준선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은혜받는 것을 위해 포기하는 기준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은혜를 위한 삶을 위해 거절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병든 내 마음과 영혼이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 은혜가 모든 것을 바꿉니다_히브리서12:28-29, 요한일서4:1-6

 

은혜가 모든 것을 바꿉니다.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 불쑥 튀어나오게 합니다. 제가 왜 예배시간에 앞자리에 앉아서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고 그런지 아시나요? 은혜가 저에게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왜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가요? 은혜가 제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은혜로 하루를 살기 위해서입니다. 수많은 교회사역을 풀어가는 기준 역시 은혜입니다. 그러나 그런 삶은 조금 답답할 수 있습니다. 노아가 그랬습니다. 사람들이 오죽 바보 같다고 손가락질 했을까요? 너 왜 그렇게 사냐? 라고 했을 것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학교에 가서 성경을 읽는데 눈물이 나오잖아요. 친구들이 놀렸습니다. 군대에 가서 그 피곤한 시간에 휴게실 가서 성경 읽는데 울고 있으니까 동료들이 놀렸습니다. 그 사람들은 절대 평생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_히브리서12:28-29’

우리 인생은 언젠가 다 소멸합니다. 900년이든 120년이든 다 소멸합니다. 그래서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의 주인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꾸 세상에 속습니다. 세상이 좋다. 세상이 전부다. 세상을 따라가자. 엄청나게 논리적이고 멋진 말처럼 보입니다. 은혜 받고 사는 것이 하찮게 보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삼아 사는 것이 어리석게 보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_요한일서4:1-6’

 

영웅을 만들고 싶은가요? 명성을 얻고 싶은가요? 그래서 세상과 섞여 살고 계신가요? 그곳의 끝은 심판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라.’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 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속하여 세상에 속한 말을 듣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라고 하십니다. 말씀에 은혜를 받으시지 않고 계시다면 그것이 곧 미혹의 영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셔야 합니다. ‘그러나의 역사가 우리 삶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은혜를 받으셔야 합니다. 힘들고 어렵든지, 잘나가고 좋든지 상관없습니다. 은혜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이 노아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메시지입니다.

 

주님 말씀을 통해 은혜를 잃어버린 노아의 시대를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마치 우리의 시대와 같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리를 듣고 용사를 만들어야 하고, 명성을 얻어야 하고, 네피림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바라보던 눈이 세상을 향하기 시작합니다. 세상과 타협하고 연합합니다. 세상에서 우리는 선지자로, 제사장으로 살아야 하는데 그것이 싫다 합니다. 명성을 얻고 싶고, 용사가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인간의 마음을 악하다고 하셨습니다. 구별되어 거룩하여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할 마음이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과 동행하지 않으셨습니다. 동행을 멈추셨습니다. 그러나 주님만을 바라본 노아는 그러나였습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입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당대에 의인이었고 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신분으로 살았고, 선지자로 살았고, 제사장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기쁘셨을까요? 주님 우리가 그런 삶을 꿈꾸게 하옵소서. ‘그러나의 삶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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