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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5 주일 2부 예배

< 주일 2부 예배 >

일시:  2014년 5월 25일

제목 : 죽이는 성도, 살리는 성도

말씀 : 사도행전 9 :36-43

설교 : 오승주 목사



2014-05-25 주일2부예배.hwp




아래 링크를 통해 음성 메시지를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https://db.tt/n7xjp2a2


아래 링크를 통해 영상으로 메시지를 다시 볼 수 있습니다.

http://vimeo.com/96415012



가스펠교회 주일2부예배 20140525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사도행전 말씀은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오전예배 말씀이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게 하는 내용이라면 오후예배 말씀은 세상에 도전하는 말씀입니다.

 

. 욥바의 그리스도인 - 다비다(도르가)

 

오늘 욥바는 베드로가 있었던 룻다의 인근 도시로 예루살렘에서 약 50km 정도 떨어진 항구도시입니다. 구약의 선지가 요나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다시스로 도망하기 위해 배를 탔던 항구도시이기도 합니다. 욥바의 그리스도인 다비다에 관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 여인은 히브리식 이름인 다비다와 헬라식 이름인 도르가를 동시에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도르가라는 이름만 썼다면 몰랐을 것이나 다비다라는 이름을 통해 헬라파 유대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히브리파 유대인이 아닌 헬라파 유대인을 통해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사람을 선택하고 사용하시는데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다비다와 도르가 모두 영어로 ‘gazelle', 우리말로는 영양 혹은 암사슴이라고 번역되는데 유대인들은 이것을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다시 말해 다비다라는 이름 자체가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이름입니다. 이름은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실 그 이름의 뜻대로 사는 것은 어렵습니다. 다비다는 아름다운 이름에 걸맞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다비다가 병이 들어 죽었습니다. 욥바의 그리스도인들은 다비다의 시신을 깨끗하게 씻은 뒤에 다락방에 안치하였습니다. 마침 그때 욥바에서 약18킬로미터 쯤 거리인 룻다에 사도 베드로가 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곧장 두 사람을 보내어 욥바로 와줄 것을 간청했습니다. 베드로는 욥바의 그리스도인과는 전혀 모르는 관계였지만 같은 그리스도의 지체였기에 지체 없이 욥바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다락방으로 곧장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많은 과부들이 다비다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베드로가 나타나자 다비다가 살아 있을 때에 손수 만들어준 자신의 속옷과 겉옷을 모두 보여주었습니다. 속옷과 겉옷이 의미 없이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다비다의 선생과 구제의 대상이었던 여인들이었습니다. 2천년 전 가난하고 물자가 귀한 이스라엘에서 속옷과 겉옷은 단순한 의복의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옷은 일종의 재산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당시 빌려준 돈을 되받지 못할 경우 고발을 통해 채무자의 옷을 가져가는 법적인 제도도 있었습니다. 다비다는 불쌍한 과부들에게 옷을 만들어 주되 속옷이나 겉옷 가운데 하나씩만을 나누어 주지 않았습니다. 각 사람에게 재산 개념의 속옷과 겉옷을 나누어 준 아름다운 심성과 신앙의 여인이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단순히 자신이 못 입는 옷을 나누어주는 것 아닌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든 새 옷을 나누어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비다의 가족도 아닌 사람들이 다비다의 시신 앞에서 슬피 운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은 다비다가 그들에게 베푼 사랑의 결과였습니다.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_사도행전9:36’

. 살리는 성도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죽음 앞에서 의미 있는 삶에 대해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1. 흘러넘치는 사랑_(심히 많더니, 플레레스;충만하다)

 

우리 말로 심히 많다라고 번역된 헬라어 플레레스는 충만하다는 의미로 한글 사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충만은 가득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헬라어 플레레스는 가득찬 상태에서 계속 흘러넘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한글 성경이 본문의 플레레스를 충만하다고 번역하지 않고 심히 많다라고 번역한 것은 원문의 의미를 제대로 옮긴 탁월한 번역입니다. 심히 많다는 것은 적정한 정도를 넘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비정상적인 것입니다. 말이 심히 많은 사람은 비정상적으로 말이 많다는 것이고, 고통이 심히 많다는 것은 고통의 정도가 인내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선행과 구제가 심히 많다는 말은 적정한 정도를 넘어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속옷만 준 것도 겉옷만 준 것도 아닌 두 가지를 다 나누어준 것입니다. 지금처럼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렇게 하기 위해 물질과 시간을 얼마만큼 사용했을까요? 이 심히 많다는 것을 표현하기 좋은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낭비입니다. 낭비는 재물이나 시간을 헛되이 마구 사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산낭비, 물자낭비, 시간낭비, 인생낭비는 모두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다비다는 낭비가 심한 무절제한 여인이었을까요? 이 부정적인 단어가 유일하게 부정적이지 않게 쓰일 때가 바로 사랑과 합쳐질 때입니다. 사랑은 가득 찬 상태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가득 차 있어도 나누어 주다보면 비어버리기 때문에 사랑은 계속 흘러넘쳐야 가능합니다. 다시 말해 사랑의 본질이 낭비인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고서도 낭비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다비다가 그렇게 재물과 시간을 심히 많이 사용한 것은 낭비가 아니고 흘러넘치는 사랑이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_마태복음5:3’

 

2. 사랑의 원천

 

그 흘러넘치는 사랑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요? 다비다가 태어날 때부터 위대한 자선사업가로 태어났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에 보니 다비다는 주님의 제자였음을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인임을 강조합니다. 다비다가 불쌍한 과부들을 위하여 자신의 재물과 시간을 포함하여 자신의 인생을 낭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믿는 주님의 사랑으로 인함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살려 주시기 위해 주님 당신을 송두리째 낭비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죄인을 살리기 위해 당신 자신을 십자가의 제물로 내어놓으셨다면 하나님입장에서 그것보다 더 큰 낭비가 어디 있을까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값으로 우리가 마음속으로 은밀하게 지은 죄까지 용서받게 되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주님의 사랑은 이처럼 흘러넘치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_로마서8:37-39’

 

 

 

3. 욥바에 일어난 기적

 

사실 다비다가 살아나서 사람들이 주를 믿는 것도 기적이지만 다비다의 흘러넘치는 사랑으로 욥바의 많은 과부들이 그리스도인된 것이 더 기적입니다. 다비다는 주님의 사랑을 깨달았기에 주님의 자기 낭비의 사랑을 힘입어 다비다 역시 주님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녀에게 그 낭비는 계속 흘러넘치는 주님의 사랑의 원천 때문에 축복된 낭비였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 온 욥바의 과부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생명의 역사로 승화된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다비다 인생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시대에 복음을 받지 않는 온 욥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베푸는 작은 것들이 나중에는 큰 응답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위대하기 때문에 그 사랑을 체험한 저와 여러분이 흘러넘치는 사랑으로 사람들을 도울 때 하나님의 계획과 맞아 큰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다비다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계획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다락방이라는 장소도 의미가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생명 걸고 기도한 곳이 다락방입니다. 우리가 구별된 마음, 구별된 생각, 구별된 목표, 구별된 가치관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생명 살리는 일에 앞장 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랑을 베푼다면 우리 인생에 있어 수많은 다비다가 살아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비다 같은 참 제자 한 사람의 낭비, 즉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는 그 삶으로 인해 그런 기적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기적은 크고 놀라운 사역이 아닌 주님을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일어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다비다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했을까요? 그러니 과부들을 사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시절의 과부들은 지금보다 더욱 천시 받았습니다. 돌로 쳐 죽여도 되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_사도행전9:42’

 

. 가스펠 교회의 성도

 

저는 오늘 가스펠 교회 성도님들에게 몇 가지 당부를 드리고 다짐하기 원합니다. 사실, 현장에 수많은 상황들을 겪으면서 죽이는 성도로 살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저부터도 그렇습니다. 어떤 상황이 생겨서 그 상황을 벗어나야 할 때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 가치관, 그것이 설사 합리적일 지라도 가스펠교회 성도님들은 한 번 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살리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교회나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 안에서만 적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죽이는 삶을 사는지도 모릅니다. 다비다가 어떻게 주님의 사랑이 그리 흘러넘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까? 그녀는 심령이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이 넘치게 흘러 천국행복을 가지고 산 것입니다. 이 말씀은 저에게도 많은 도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어 성도가 되었지만 기준은 불신자와 같을 때가 많습니다. 흘러넘치는 사랑을 베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다른 눈, 다른 가치관, 다른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보이지 않는 삶에 말씀으로 회개가 일어나고 변화가 일어나기 바랍니다. 우리마저 그들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 땅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없어질 것입니다. 행정도 맞고, 재정도 중요하고, 우리의 모양새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영적인 과부들이 너무 많은 이 시대에 여러분 다비다처럼 축복된 낭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을 사랑하기를 네 자신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_갈라디아서5: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