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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4-06-29 주일 2부 예배

< 주일 2부 예배 >

일시:  2014년 6월 29일

제목 :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말씀 : 사도행전 11:19-30

설교 : 오승주 목사


2014-06-29 주일2부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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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다시보기 http://vimeo.com/99445690


가스펠교회 주일2부예배 20140629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사도바울이 죄와 악의 노예로 살려는 자신과, 하나님의 말씀을 좆아 살려는 자신 사이에 언제나 싸움이 있음을 토로한 말씀입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도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_로마서7:19-24’

 

위대한 전도자가 자신의 지체 안에 두 법이 싸운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저희는 어떠하겠습니까? 저도 목사이면서도 이러한데 여러분들은 직장, 학교, 가정 현장에서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사도행전 8장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해방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굳건한 마음으로 주님께 붙어 있을 때만, 자신이 주님 안에 있을 때에만, 주님의 생명과 능력을 힘입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초대교회에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거의 무명의 존재였습니다. 사도바울 말고는 대단했던 사람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유명한 사람들을 전도하려 하지만, 주님은 무명인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보잘 것 없는 무두장이나 정말 병들어 버린 애니아, 늘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보잘것없는 무명의 존재였을망정, 그들을 붙잡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한 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지니고 있느냐가 아니라, 누구의 손에 사로잡혀 사느냐는 것입니다.

똑같은 종이 한 장이라도 그 종이가 누구의 손에 쥐어져 있느냐에 따라 쓰레기가 될 수도 있고, 위대한 예술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화가는 도화지에 그냥 붉은 색을 칠해 놓았는데 그 작품이 200억이라는 가격에 거래되기도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언젠간 썩어 문드러질 육신 속에 아무런 소망 없는 장차 망할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 세상을 의지하고 사느냐 영원하신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에 사로잡혀 사느냐에 따라 나의 인생이 쓰레기처럼 묘지에서 썩어질 수도 있지만, 반대로 하나님의 영원한 작품으로 승화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선택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신앙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는 것은 주님 손 밖에 없음을 아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 비로소

 

1. 주님 안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드디어 알게 된 것입니다. 보잘것없는 인생이 주님께 붙들리니 전혀 다른 인생이 된 것입니다. 사도바울 역시 늘 갈등 속에 있지만 점차 깨닫게 된 것입니다. 주님 안에 있으면 살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늘 곤고한 사람이고 갈등이 있는 사람이지만 주님 안에 있으면 된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능력으로 죄와 사망의 올무에서 벗어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위대한 사도바울마저도 주님 안에 있음으로 죄와 악을 좇으려는 자신을 이기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주님 안에 있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야만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주님 안에서를 무려 164회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가 아니면 자신과의 싸움에서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이 그런 고백을 했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에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으이라_로마서 8:1-2’

 

2. 굳건한 마음으로

 

주님 안에 있으려고 하니 세속의 것이 너무 좋고 손해 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 성도들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주와 함께 머물러 있는 것이 굳건한 마음이 아니면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세상의 많은 유혹과 기준으로 살다보면 금세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잊어버리고, 죄인이었던 과거를 잊어버립니다.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일까요? 흔들림 없는 마음으로, 주님을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주님께 붙어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런 중심이 아니고서는 말씀을 많이 듣고 알아먹어도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지식 혹은 정보 이상일 수가 없습니다.

굳건한 마음으로 붙어 있는 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되고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바나바나 바울 역시 처음부터 굳건한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는 온전한 제자는 아니었습니다. 처음 그들 역시 주님을 따른다 했지만 자신의 사상과 전통, 심지어 선입견과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 말은 몸은 주님을 따랐는지 모르지만 마음이 따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내 동기, 야망으로 따랐다는 것입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이 생각과 마음을 고쳐먹어 굳건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니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현장도 변했지만, 놀라운 것은 자신들이 변화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울의 고백이요, 베드로의 고백입니다. 그 변화들로 인해 그들의 삶이 움직인 것입니다. 그전에는 로마군대가 두려웠고, 유대전통과 관습이 두려웠고, 무엇보다 선입견과 편견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 머무르기 시작하니 모든 것이 바뀐 것입니다. 그들의 가치관도 바뀌었습니다. 모든 것이 새로워졌습니다. 일을 하는 이유도 바뀌고 삶의 수준도 달라졌습니다. 무엇보다 복음을 위해 핍박을 당했으나 그들은 기뻐했다고 하였습니다.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하는 순간부터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받은 것입니다. 굳건한 마음으로 주님께 붙어계시기 바랍니다. 잘 안되고 어렵지만 내 체질을 바꾸고 마음을 고쳐먹는 것입니다.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_사도행전11:23’

 

 

. 그리스도인이라

 

세계 최초의 이방인 교회로 세워진 안디옥교회를 위해 예루살렘교회가 파송한 목회자가 바나바입니다. 그런 그가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안디옥성도들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님께 붙어 있을 것을 권했습니다. 그러니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교회가 부흥하니 이방인 사역을 해본 적 없는 바나바가 생각한 인물이 사울입니다. 그래서 다소까지 가서 사울을 데리고 온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협동목회를 하게 된 것입니다. 본문 25-26절에처럼 1년 동안 둘이 함께 큰 무리를 가르쳤는데 그제야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도대체 1년 동안 무엇을 나누었을까요?

1. 하나님 사랑

 

바울이 주님을 다메섹에서 만나고 긴 시간동안 제자들과 함께 있어 훈련을 받아서 간 첫 사역지입니다. 과연 1년 동안 무엇을 안디옥교회에 가르쳤을까요? 짐작하건데, 그 심한 박해 속에서 안디옥교회 성도들이 제자가 되어 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받았다는 것은 유대종교와 완전히 분리된 새로운 종교의 탄생과도 같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곳저곳에서 기적같이 일어난 복음에 대한 열매가 나타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그리스도인이라 불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핍박이 시작되었습니다. 로마제국입장에서는 사회질서를 뒤흔들고 체제를 위협하는 신흥종교같이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불법과 기존 기득권의 질서 속에서, 다시 말해 그릇된 삶을 살고 있는 자신들이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의와 진리를 좇아 바른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박해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써의 삶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임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정체성을 고수하기위해 심한 박해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박해자와 로마황제보다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께서 더 크신 분이심을 믿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그들과 1년 동안 나눈 것은 다른 것들이 아닌 버림받아 죄인으로 살아 죽어야 할 인간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택함 받아 우주만물보다 더 크신 하나님께 접붙여 사는 그리스도인 된 것을 나눈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사랑을 일 년간 체험 한 것입니다. 저는 가스펠교회가 그런 교회되길 원합니다. 여러분이 크신 우리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여 다른 것이 보이지 않길 원합니다. 아니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길 원합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_고린도전서2:2’

 

2. 이웃 사랑

 

더욱 놀라운 것은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은 것입니다. 제가 요즘 고민하는 것은 교회의 이웃사람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복음을 전해야 할까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안디옥교회 교인들을 보고 주변의 갈급한 이웃들이 그리스도인이라 부른 것입니다. 여러분은 직장에서 혹은 가족들이 뭐라고 부릅니까? 이름을 부를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 마음속에 , 저 친구는 그리스도인이야.’ 진짜인지 가짜인지 마음에 계산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분명합니다. 아무리 교회를 욕하고 비난하여도 그들 역시 사람인지라 지켜보고 있습니다. 더욱이 자기들은 답도 없는 어두운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에 빛이 비치는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을 유심히 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 사람들도 의지하고 답을 얻어야 하는데 주변에 그리스도인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1년간 배우고 나서 받았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 역시 이 부분을 참고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배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굳건한 마음으로 주께 붙어있기 위해 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뭐든지 쉬운 것은 없습니다. 높은 산에 오를수록 더 많은 준비를 하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성도로, 성전으로 살기 위해 우리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세속의 것을 정리하고 두 마음을 섬기는 것을 결단하여 오로지 주님의 사랑 안에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도전해야 합니다. 진짜 성도라면 그러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는 것, 기도를 하는 것, 우리 삶을 성령께 맡기는 것, 무엇보다 사람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바울도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고 제자들과 훈련을 받았습니다. 첫 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받은 그네들도 1년을 훈련 받았습니다. 우리는 요리를 하려고 해도 거듭 실패와 반복을 해서 터득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뭐든 가만히 있으려 합니다. 말씀이 들리지 않아 가만히 있고, 복음전해야 할 영혼이 보임에도 가만히 있습니다. 안디옥의 성도들은 그냥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_고린도전서4:1-2’

 

우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충성입니다. 교권, 목회자에 대한 충성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답게 살기 위한 말씀에 대한 충성입니다. 하나님이 복음을 주셨는데 우리는 이를 위해 충성하며 살고 있지 않지 않습니까? 말씀에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굳건한 마음으로 주님께 붙어있길 바랍니다. 비로소 응답이 우리 삶에, 가스펠성도의 삶에 시작되길 소망합니다. 그것만이 유일한 길입니다. 지름길은 없습니다. 우리교회가 바른 성도들, 곧 그리스도인들로 차고 넘치길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님과 함께 머물러 사는 자들이 되길 원합니다. 그것을 위해 말씀에 충성하여 작은 것부터 바꿀 수 있는 힘을 주세요. 그래서 우리 현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칭함 받는 응답이 시작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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