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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4-07-13 주일 2부 예배

< 주일 2부 예배 >

일시:  2014년 7월 13일

제목 : 복음을 위하여

말씀 : 사도행전 12 : 1-19

설교 : 오승주 목사

 

2014-07-13 주일2부예배.hwp




음성 다운로드  https://db.tt/zzpuz0ML

영상 다시보기  http://vimeo.com/100636837




가스펠교회 주일2부예배 20140713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 헤롯 왕이 손을 들어_사도행전12:1-3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헤롯은 예수님 때의 헤롯왕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 1세입니다. 헤롯대왕은 정통 유대인이 아닌 이두매인, 다시 말해 이방인으로 로마에 아부를 통해 세움 받은 분봉왕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성전을 짓기도 하였습니다. 그것 때문에 또 다시 무교절이 끝나자마자 바로 야고보 사도를 처형하게 됩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환심을 사고자 계산하였고 그의 계산은 적중하여 유대인들은 더없이 기뻐하였습니다. 그 사실을 확인한 헤롯 아그립바는 사도들의 대장격이었던 베드로마저 투옥시켜 그까지 죽임으로써 유대인들의 마음을 확실하게 붙잡으려고 하였습니다. 헤롯과 헤롯 아그립바는 자기 욕망을 위해 죄 없는 사람을 함부로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자기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서슴없이 행할 수 있고, 자기 욕망의 기쁨에 사로잡힌 그는 선과 악, 의와 불의조차 분간치 못한 우둔한 인간인 것입니다. 그의 인생이 비참하게 끝났음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욕망을 위해 살면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다윗은 시편에 여호와를 기뻐하라고 여러 번 강조하였습니다. 하지만 헤롯 아그립바는 결국 자신의 욕망을 위해 손을 들어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까지 죽이려 하는 무서운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목적이 욕망이기에, 그의 모든 관심이 욕망의 궁전을 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장사꾼은 돈을 기뻐하고, 술꾼은 술을 기뻐하고, 도박꾼은 도박을 기뻐할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장사꾼은 자신이 얼마나 바르게 돈을 벌었는지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는 무슨 수를 쓰든 긁어모은 돈 자체를 기뻐합니다. 그의 목적이 돈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술꾼과 도박꾼 역시 바른 사람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가족을 속이고 물질적,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히면서까지 술을 마시고 도박을 기뻐합니다. 헤롯대왕과 그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는 진리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기 욕망을 위해 어린아이들을 살해하고,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고, 야고보의 목을 치면서까지 권력을 지키려 하였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로 욕망의 성을 짓기 시작하면 똑같아 질 것입니다.

베드로나 야고보, 사도바울 역시 원래 그들과 같은 부류였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죽은 용품에서 벗어나 생명의 용품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을 찾아온 주님 앞에 엎드려 모든 것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으며, 주님을 얻었습니다. 세상의 것들을 포기하여 실패한듯하나 그는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생명의 전도자가 되어 아마 이 땅에 사는 사람들 중 가장 가치 있게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 돈을 벌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겠다고 합니다. 그것이 진심일까요? 돈이 목적이지는 않는가요? 그것이 진심일지라도 돈으로만 하나님을 기쁘게 하겠다는 것은 하나님을 돈에 걸신들린 거지로 오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돈 자체를 필요로 하거나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돈 자체를 기뻐하신다면 은행장이나 재벌들만 상대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선한 양심으로 바르게 번 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바르게 쓸 줄 아는 중심을 기뻐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성공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겠다고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공을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고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성공하기 전이나 후나 동일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중심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헤롯 아그립바처럼 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행여나 그런 상황이 온다면 오늘 말씀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복음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 복음을 위하여

 

복음을 위해 산다는 것이 무슨 말일까요? 그것은 복음을 위해 살면 하나님이 어떤 축복을 주실까?’가 아닙니다. 이미 그것은 복음을 위한다는 중심이 아닐 것입니다. 주님은 주님의 의를 위하여 살 때 박해가 올 것을 말씀해주셨습니다. 복음을 위해 산다는 것은 그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 박해와 비교할 수 없는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가 천국입니다. 천국을 안내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1. 베드로의 기도

 

베드로가 옥에 갇혀서 있을 때 밖에 있는 성도들이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베드로를 보니 옥에서 잠을 잤다고 했습니다. 평안해서 잔 것인지 아니면 포기하고 잠을 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그 열악한 환경에서 잠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웃긴 것은 본문 11절에 천사가 와서 감옥에서 꺼내주는 것을 그가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을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묵상한 것은 베드로의 기도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방향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모여 통성으로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듣지 않았다고 한다면 어떻게 합니까?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해도 방향이 틀리면 그 기도는 안하는 것보다 못할 때가 많습니다. 기도를 많이 해서 내 의가 되면 도리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옥에 갇혔지만, 그는 이미 죽은 용품이 아닌 생명의 용품으로 바뀐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두려워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감옥에 갔다고 해서 낙심하거나, 포기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가 죄를 지어 감옥에 간 것이 아니고 온전히 의를 위해 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위해 살다가 문제가 온다면 그대로 받아드리면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살면서 오는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낙심하며 포기하려 합니다. 죽은 용품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방향입니다. 베드로의 인생의 방향이 복음을 위한 방향이 되었기에 그를 위해 기도해준 사람들도 복이 되며, 그가 행여 기도를 놓쳤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2. 성령이 하시는 일

베드로가 전혀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그에게 성령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욕망으로 기뻐하는 삶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성령께서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임하셨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문제들로 인해 어찌하다가 복음을 들은 것이고, 또 그 복음을 듣고 믿어진 것이며, 또 믿음으로 하나님을 삶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참수형을 당하기 전날 밤 감옥에서 평안히 잠을 잤던 것처럼 우리 역시 어떤 상황에서든지 참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복음을 위해 사는 자들을 위해 역사하고 계십니다. 저는 그것을 너무나 확실하게 믿고 있습니다. 저는 정말 복음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헌금을 많이 한 것도 아니고 봉사를 많이 한 것도 아니며, 심지어는 오히려 부족한 것들로 인해 복음의 누가 되지 않았나 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이 너무 좋아 제 인생 주님께 맡긴 것 그것 하나뿐인데 성령께서는 가정의 문제, 제 인생길 그 어느 것 하나 인도하시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때론 앞뒤가 안보일 만큼 문제도 왔지만, 결국 지나고 보니 얼마나 완벽한 성령의 인도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대학생 때, 젊을 때 복음을 위해 헌신하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너무 행복한 것임을 맛보아야 합니다. 저는 방학 때면 철야예배든 새벽예배든 열심이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복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공부를 게을리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일을 열심히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가만 보면 요즘 기독청년들은 핸드폰이든, 뭐든 정말 많은 것에 마음을 빼앗기면서 주님을 예배하는 자리에는 미래를 준비해야한다며 바쁘다고 합니다.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수 있습니까? 성령께서 일하시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3. 너를 위하여

 

이것이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우리는 신앙생활 하는 것을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은 남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흔히 교회를 위해, 목사님을 위해 이렇게 이야기하는 분들을 보았습니다. 복음을 위한다면서 진정 그것이 내 것이 되지 않아 이중생활, 삼중생활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요? 야고보의 순교와 베드로의 고난이 과연 헛된 것일까요? 이 땅에 와서 순교하여 양화진에 묻힌 그분들의 인생이 헛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최고의 보상을 받았습니다. 천국의 축복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문과 후대는 말할 수 없는 축복의 가문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주셔서 그들이 또 이 복음을 위해 선교를 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면 그처럼 축복이 어디 있을까요? 우리가 복음을 위한다고 하는 것은 결국 나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며 너를 위해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기적인 것인 기독교 신앙입니다. 복음을 위하는데 피해의식 같은 것이 생긴다면 멈추시길 바랍니다. 복음을 알고 복음을 위해 사는 자는 그런 피해의식 같은 것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 복음을 위하여 사는 자

 

왜 그렇습니까?

 

1. 복음을 아는 자

 

복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죄와 저주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모르고 사람들이 교회에서 상처받고 떠납니다. 복음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을 모르고 복음을 위해 산다는 것은 자꾸 문제를 만들뿐입니다. 베드로 역시 오랜 시간 복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식적으로 복음을 알 수 있겠지만, 그 복음이 내 것이 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 방법이 무엇일까요?

바로 말씀입니다. 말씀은 생명입니다. 말씀을 통해 복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다른 방법으로도 역사하실 수 있지만, 대부분 말씀을 통해 복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베드로 역시 말씀으로 그를 인도하셨습니다. 사도바울 역시 말씀을 통해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가까이 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아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2. 복음으로 사는 자

 

제가 부교역자로 있을 때 항상 중고등부예배에 오신 어떤 남편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남편분이 제게 그런 말을 했습니다. 자기 와이프가 너무 싫어서 교회를 절대 안 다니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들에게 문제가 와서 말씀을 들어보니 자기 문제에 대한 답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는 말이 우리 와이프가 왜 이런 말씀을 듣고도 저렇게 변화되지 않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교회를 매주 가는 데 다녀오면 똑같다는 말을 합니다. 신경질적이고, 남을 배려하지 않고 그래서 절대 자기는 예수 안 믿으려고 했답니다. 복음으로 사는 자는 점차 복음을 위해 자기 삶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다면 분명 어딘가 결려 있는 것입니다.

 

3. 복음을 위해 사는 자

 

복음을 위한 다는 것은 우리 인생의 방향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는 데 한참 걸렸습니다. 복음은 이 땅의 유일한 답입니다. 우울증, 정신문제와 같은 많은 문제들이 가정에 와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니 그들이 복음을 들을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곧 주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곧 복음입니다. 당연히 주님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이 말이 이해가 되는데 한참 걸린 것은 수도 없이 반복되는 죄 속에서 복음을 위해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럴 수 없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복음을 붙잡고 있으니 내 인생 주님이 복음을 위해 사는 자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나를 붙잡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복음을 위해 사는 것은 중심을 이야기합니다. 그 중심을 하나님이 아시는 것입니다. 그 중심이면 하나님이 나를 어떤 현장에 보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 중심이면 하나님이 당연히 계획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베드로를 감옥에 왜 보냈을까요? 베드로만이 그 현장을 살릴 복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야고보가 순교를 당했나요? 그가 그럴만한 복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 이 말을 전하라

 

수년전에 저와 친분이 있는 장로님이 새로 집을 장만하였습니다. 그분은 원래 경제 문제가 많아 작은 사글세에 사셨습니다. 자녀들이 항상 저에게 와서 한탄을 하고 갔습니다. 교회에서는 믿음이 좋다하여 직분도 받고 교회일도 열심히 하셨습니다. 그런 분이 집을 장만했다 하니 저도 좋았습니다. 그 집을 장만하면서 저에게 가장 먼저 연락이 오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축하한다고 인사를 드렸는데 장로님께서 저에게 목사님이 아니었으면 이런 일을 꿈도 못 꾸었을 것입니다.’라고 하시는데 제가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저는 그분이 집을 장만하는 데 돈 한 푼 보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그분은 예수를 믿으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많았습니다. 말 못할 가정문제와 특히 해결되지 않는 경제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문제로 고민하던 그 자녀가 저에게 상담을 해 와서 제가 시간을 내어 집사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집사님께 몇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집사님이 진짜 주님을 섬긴다면 복음을 위해 산다면 과거 불신자일 때의 모습을 버리시고 새로워지셔야 합니다. 제가 제안 드리는 것을 해보시렵니까? 그것은 장로님이 결단하셔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면서 제가 몇 가지 제안한 것에 집사님이 순순히 응하셔서 그날부터 변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몇 년이 흘러 가정문제도, 경제문제도 해결되었음은 물론이거니와 교회에서 인정받는 장로님도 되셨습니다. 그런데 그뿐 아니라 자녀들까지도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 집사님이 그전과 같이 살아간다면 그것은 죽은 용품이요 그 영향은 자녀들에게 전달되어 지금쯤 자녀들이 어찌 살고 있을까요? 그런데 지금 교회에서는 아름다운 말, 최고의 말, 어쩌면 욕망을 채우게 만들어 교회에 나오게 만드는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숱한 말들이 세상을 변화시키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교회가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며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복된지 다른 결과가 없습니다. 단지 그 자체가 최고 복된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_빌립보서 4:18

 

주님 우리는 복음을 위해 산다 하면서도 실상은 내 욕망을 위해 살았습니다. 복음을 위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큰 축복인지 깨닫는 한주가 되게 해주세요. 무엇보다 내 인생이 죽은 삶이 아니라 산 사람이 되어 이 복음 전하는 그리스인이 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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