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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31 주일 2부 예배

< 주일 2부 예배 >

일시:  2014년 8월 31일

제목 : 올바른 기도와 응답

말씀 : 사도행전 14:8-18

설교 : 오승주 목사



2014-08-31 주일2부예배.hwp




음성 다운로드 http://bit.ly/1neMp1b

영상 다시보기 https://vimeo.com/104836190



가스펠교회 주일2부예배 20140831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저는 한 주간 '여명원'이라는 곳을 생각했습니다. 저희가 후원을 함으로써 도울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왜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이런 현장을 주셨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선교를 많이 다니면서 봤기 때문에 그냥 나온 기도제목은 아닐 것입니다. 저를 영적 지도자로 여기고 함께 신앙생활을 한다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인생을 마무리하고 하나님나라에 갈 때 '보람되다.'라는 것을 주고 싶습니다. 20, 30대를 지나면서 그런 소원을 가지고 있었는데 만들어 내지는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개척을 하면서 NGO를 설립하여 선교를 하고자 생각했습니다. 목회자를 통한 선교시대는 지나 이제는 NGO와 같은 단체나 지역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을 통한 선교가 이뤄져야 하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선교지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모습들 또한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 가지를 가지고 있다면 아직 한 가지도 펼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만약 그 중의 한 가지가 있다면 여명원이 그것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를 (경제적으로) 돕는 것에서 하나 더 나가 우리가 그 현장에 직접 가서 재능을 기부하고 돕는 사역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이를 두고 함께 기도했으면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개척한 이후 한 번도 헌금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헌금은 여러분이 중심을 가지고 드리는 예물일 것입니다. 하지만 여명원을 돕는 것은 헌금과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한 나라를 살릴 수도 있고, 자녀에게 무언가를 남길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명원은 우리에게 들어온 복덩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성령의 인도

 

인도의 성자라 불리는 간디는 기독교인을 향해 이렇게 쓴 소리를 했습니다. ‘당신들이 믿는 그리스도는 너무 좋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싫다. 당신들 기독교인들은 당신들이 믿는 그리스도와 너무 다르다.’ 간디가 싫어한 기독교인들은 주로 그가 인도나 영국에서 직접 체험한 영국 성공회 신자들이었습니다. 일본의 신학자인 우치무라 간조나 동시대를 산 중국의 석학이자 카톨릭 신자였던 우징숑박사는 '기독교 성직자나 교인의 언행을 보면 도저히 주님을 믿을 수 없지만, 성경으로 돌아가면 주님을 믿지 않을 수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한국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깨지 못한다면 아무리 우리끼리 좋은 교회라 해도 세상이 볼 때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여러분의 인생이 변화되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교를 하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인생의 의미를 찾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이 이고니온에서 쫓겨나고 그 다음 행선지로 찾아간 곳이 루스드라입니다. 그곳에는 그가 거쳐 온 다른 성읍들과 달리 유대인 거주자가 많지 않아 유대인 회당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처음으로 건물이 아닌 거리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은 제우스와 헤르메스를 신봉하는 지역인데 그곳에서 복음을 전한 것이었습니다. 만약 바울이 유대인 회당에서 복음을 했다면 이를 듣지 못한 사람도 있었을 텐데 야외에서 복음을 전하게 되어 만난 사람이 8절에 나온 걷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_사도행전14:9’

 

태어나서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앉은뱅이를 보고 바울은 그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어떻게 보았고, 알았을까요?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진짜 믿음은 10년이 넘는 긴 시간 말씀을 듣고, 또 듣고, 또 들으며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러니 그의 남은 인생은 믿음으로 사는 인생이었을 것입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믿는 자를 찾아다닌 것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믿음이 보이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사도바울의 믿음을 살펴보고자 하며 우리가 어떻게 올바른 기도와 응답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을 준비해야하는 지 그 응답을 확인하려 합니다.

 

. 믿음

 

1. 사도바울의 각인_사도행전14:9-10

 

본래 바울은 주님을 등지고 교회를 짓밟던 어둠의 자식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은 이단이었고, 사이비였습니다. 세상에는 진짜 사이비도 있고 진짜 이단도 있지만, 그렇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면 항상 이단누명을 쓰는 것이 교회의 역사였습니다. 그것이 사단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울은 그런 이단들을 잡아 죽이는 것이 그의 사명이라 생각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 그 말씀의 빛에 사로잡혀 어둠의 족쇄에서 풀려난 뒤 참수형을 당하기까지 그는 단 한 번도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는 자기 교만의 어리석음을 범치 않았습니다.

그는 살아생전에 신약성경의 4분의 1, 4복음서를 제외한 신약성경의 3분의 1을 기록하였습니다. 그가 당시 교인들에게 쓴 전도편지, 양육편지가 모두 성경이 된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매일 말씀을 먹고, 묵상하며, 따르고자 하는 믿음 즉 말씀의 지배 속에 산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바울에게 무엇이 각인되었는지 찾아야 합니다. 쾌락에 각인되어 있으면 늘 쾌락을 쫒고 돈에 각인이 되어 있으면 늘 돈을 쫒게 됩니다. 습관도 그러합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습관을 만들지만 나중에는 습관이 우리를 이끌게 됩니다.

말씀을 매일 묵상하는 그리스도인을 세상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말씀으로 내 인생을 확인하는 시간을 꼭 가져야 합니다. 그것을 매일 해야 합니다. 그것이 시대를 뒤집는 힘 입니다. 사도바울의 인생은 그것으로 각인 되어 있었습니다. 위대한 다윗도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할 때 한순간에 어둠의 나락으로 내팽개쳐졌습니다. 신앙생활의 길고 짧음과 관계없이 일용할 양식, 말씀을 계속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기 바랍니다. 믿음은 주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납니다. 그것에서 신앙생활이 시작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잘못된 것으로 시작하여 그것이 각인되면 안 됩니다. 봉사로 시작하거나, 인간관계로 시작하거나, 기복신앙으로 시작하거나, 신비나 율법으로 시작면 안 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하여야 하고 그것은 매일 말씀을 듣고 먹어 말씀이 자신을 지배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바울은 그렇게 말씀에 각인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_로마서10:17’

 

2. 사도바울의 은혜_사도행전14:11-12

 

사도바울을 실제로 대면한다면 여러분은 그에게 전혀 호감을 느끼지 못하실 것입니다. 많은 자료에 보면 작은 키에 대머리였고, 매부리코를 가지고 있었다 합니다. 사도바울의 외모는 정말 빈약하고, 말도 어눌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추남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평생 지병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더욱 볼품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를 루스드라 사람들이 만사를 제쳐놓고 자신들이 믿는 최고의 신 헤르메스라고 하며 엎드려 절하려 한 것입니다. 루스드라 사람들이 앉은뱅이를 일으킨 모습을 보고도 그랬겠지만, 저는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바울에게 있는 은혜를 보았습니다.

그는 못나고 볼품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평생 잊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평생 주님의 말씀을 놓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약함을 너무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편지는 늘 약함을 자랑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힘입어 죄와 사망의 어둠을 이기는 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라 루스드라에 있든 이고니온데 있든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루스드라 사람들이 그의 외모를 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은혜의 복음과 그가 아무도 돌보지 않고 버려진 사람 앉은뱅이를 일으켜 말씀으로 도움을 주는 것을 보고 감동받은 것입니다. 그것이 사도바울에게 임한 은혜였습니다.

 

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_고린도후서10:10’

 

3. 사도바울의 믿음_사도행전14:12-18

 

그런 바울이 사람들이 자신을 우상이라 여겨 절을 하려 하자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우리도 당신들과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똑같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주님을 소개하고 높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을 그들에게 전해 그들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가져야할 믿음입니다.

우리는 그런 능력과 역사가 일어나면 꼭 내가 기도해서 그런 것처럼, 내가 능력 있어서 그런 것처럼 교만합니다. 한국교회 많은 목사님들이 교회가 부흥하니 그런 착각을 하시는 듯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물질이 생기고 풍요로워지니 그것을 놓친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항상 주님을 높였습니다. 그는 그의 남은 인생이 그렇게 주님을 소개하고 말씀을 나누는 것이 너무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야 어찌되든 상관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느 날 코끝에서 호흡이 멎으면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연약한 존재일 뿐입니다. 우리 역시 매일 죄의 유혹 속에서 살아가는 똑같은 죄인입니다. 그런데 먼저 주님을 만나 말씀으로 매일 새롭게 되는 삶을 사니 루스드라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사는 길을 안내해준 통로의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절대 생색내지 않습니다. 절대 자기 것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자랑하고 내게 임한 말씀의 은혜를 자랑합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세상에만 집착합니다. 하지만 진짜 믿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은 금세 지치고, 피곤하고, 처량하게 만듭니다. 좋다가도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소멸할 세상이 아닌 영원한 하나님을 섬기고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영원한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위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_고린도후서4:18’

 

. 올바른 기도와 응답

 

여기에서 우리는 올바른 기도와 응답을 찾아내야 하겠습니다.

 

1. 믿음과 삶이 하나된 기도_마태복음8:5-13

 

믿음과 삶이 하나된 기도가 올바른 기도입니다. 사실 기도는 여러 가지 형태이며 오전에 말씀 나누었듯이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로 되어지는 모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도전해야할 기도는 우리의 보이지 않는 믿음이 삶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는 그 믿음이 삶과 하나가 되는 그때가 진짜 기도가 되는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_마태복음8:10b'

 

여러분 자신의 하인을 고친 백부장 이야기를 아십니까?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지나갈 때 백부장이 자신의 하인이 중풍병으로 쓰러져 있는데 고쳐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 했더니 백부장이 '아닙니다. 주님이 제 집에 오시는 것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주님이 말씀만 하시면 낫겠으니 말씀만 하여주세요. 저도 백부장이라 부하에게 가라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는데 주님이 말씀하시면 되어질 줄 믿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그만큼 믿고 있습니까?

 

2. 기도의 시작, 결단

 

그래서 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 기도의 시작은 결단입니다. 왜 바울은 항상 깨어서 기도를 했을까요? 사도행전을 따라 바울의 행적을 보니 이해가 됩니다. 그는 갈수록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리고 갈수록 주님이 드러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사실 하늘의 별 하나 딸 수도 없고, 우리의 능력으로는 정작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가뭄 혹은 기근에 물 한 방울, 쌀 한 톨을 만들 수 있습니까? 퍼 붇는 비를 막을 수나 있습니까? 자기 몸에 치명적인 죽음의 병균이 침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도 말할 것 없고, 자기 이마에 패는 눈에 보이는 주름조차 막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언젠가 비수처럼 죽음이 날아올 때 이 세상 그 누가 그것을 막을 수 있습니까?

이 사실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강함, 잘났음을 자랑하려는 어리석음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생활하는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결단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믿음이 우리의 삶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처럼 자신의 모든 과거를 배설물로 여기고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고 따릅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지 말고 그 말씀을 먹어 오장육부에 채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을 지배하도록 하십시다. 하나님의 말씀의 빛으로 우리를 속박하는 온갖 어둠의 족쇄를 깨뜨려 우리 삶을 통해 저들을 살리는 바울과 같은 삶을 살자고 권고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중국 땅, 3세계, 소외계층, 병든 선교현장을 살릴 수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믿음을 고백하기 바랍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_에베소서6:18’

 

바울의 기도처럼 우리의 기도가 새롭게 시작되길 기도합니다.

 

주님 더 이상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막상 내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등지고 살지 않게 해주세요. 그것은 내가 잘났다는 착각이요 하나님의 말씀보다 나의 능력을 더 신뢰하는 어리석음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이 시간 다시 확인시켜주시니 감사합니다. 바울처럼 평생 주님의 말씀을 먹어 그 말씀의 빛으로 살게 해주세요. 그리고 자신의 약함을 알아 항상 깨어 기도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해주세요. 우리가 보잘것없고 못났지만 주님의 도구로 남은 인생 쓰임받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