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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5 주일 2부 예배

< 주일 2부 예배 >

일시:  2014년 1월 5일

제목 : 가스펠 교회의 근원
말씀 : 사도행전 1:1-8

설교 : 오승주목사


2014-01-05 주일2부예배.hwp





아래 링크를 통해 음성 메시지를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https://db.tt/9cn6HeE1

 

아래 링크를 통해 영상으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http://youtu.be/z3WFZkDQtFQ



1936년. 약 80년 전에 우리나라가 공식적으로 신사참배를 수용하였다. 1938년에 장로교마저 신사참배를 받아들였다. 우스운 것은 그들이 ‘우리들 목사는 신사참배가 종교 문제도 아니오. 교리에 어긋나지도 않기 때문에 정치적인 문제로 신사참배를 허용한다’라고 하였다. 이 때 한 목사님이 나타났다. 주기철 목사님이다. 감옥에 있을 때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옆에 있는 사람들이 한명씩 처형을 당할 때마다 괴로웠다고 한다. 그런데 ‘예수의 삶은 남을 위한 것이요 십자가의 죽음도 남을 위한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자기가 죽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 그 숭고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가. 그것처럼 거룩한 행위는 없다’라고 말한다.

Ⅰ. 교회를 오해하고 있는 신자와 불신자

교회의 본질을 오해하면 안 된다. 그런데 신자도 교회를 오해하고 있다. 지금 강남역 앞에서 피켓을 들고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라고 하면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복음이 아니다. 기독교인이 복음을 오해하고 있으니 불신자들도 오해를 하게 된다. 렘넌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디 교회는 연애가 자유롭다더라. 어디는 안 된다더라’ 하고 이야기 하였다. 우리 교회는 할 때가 되면 마음껏 하면 된다. 신자들이 교회를 오해하고 있다. 불신자가 문제가 있어서 교회를 오지 않는 것인가. 우리는 불신자들의 마음이 강팍하고 황폐해서 교회에 오지 않는다고 한다. 불신자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의 잘못이다. 신자의 잘못이다. 우리가 조금만 말씀을 따라 바르게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실 것이다. 본질을 조금만 회복하면 3000제자가 일어날 것이다. 그것이 교회의 본질이다.

쉽게 이야기 하면 신자가 신자다우면 교회가 교회다우면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증거를 주신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을 탓하고 어렵다고 한다. 세상이 위기라고 하지만 위기가 아니다. 신자들이 그렇게 느끼면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주기철 목사님은 모두가 신사참배를 할 때 위기 중에 기회라고 고백했다. ‘내 몸이 밀알처럼 순교할 수 있다면, 민족을 구원할 수 있다면 하나님 나를 데려가옵소서’ 라고 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순고한 행위라고 한다. 믿는 자가 그런 축복을 받아야 한다. 그러면 불신자가 가진 오해도 사라질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근원을 놓치고 이상하게 살아가니 세상이 손가락질 하는 것이다. 목사들이 잘못한 것도 있다. 하지만 목사의 잘못뿐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도가 잘못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수천, 수만의 성도가 잘못하기 때문이다. 목사들은 불신자들과 함께할 시간이 없다. 그런데 왜 불신자들이 목사들을 욕하는가. 목사들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신자가 교회를 오해하면 불신자들도 교회를 오해하게 된다.

이 땅의 교회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다시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수 있다. 렘넌트들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근원을 회복하면 가능하다.

Ⅱ. 하나님의 교회는 어떤 곳인가

근원이 무엇인지 오늘 생각해 보아야 한다. 가스펠 교회의 근원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교회는 무엇인가. 교회의 본질은 무엇인가. 질문해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전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를 놓치고, 잘 모르고 하찮게 생각한다. 기독이라는 단어는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것이 하찮게 되었다. 얼마 전 캐나다에 갔더니 merry christmas가 아닌 happy holiday라고 하였다. 원죄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1. 그리스도 = 예수

원죄는 무엇인가. 왜 지옥에 가고 사단의 종노릇 하게 되는가. 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너무 착한데 우리 집은 왜 어려운지 내게 왜 고난과 질고가 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제가 너무나도 착했는데 왜 우리 집은 되지 않는지 몰랐다. ‘무슨 죄를 지었길래’ 가 아니다. 원죄를 몰랐기 때문이다. 가스펠 교회 성도들은 원죄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살도록 창조되었는데 하나님을 떠난 것이 원죄이다. 그 때부터 인간에게 고난과 저주, 재앙이 찾아온 것이다. 하나님이 나쁘시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다. 물에 빠지면 고통스럽듯이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저주, 재앙이 찾아오는 것이다.

창세기 3장에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창세기 3장 문제라고 한다. 이를 인지해야 한다. 복음이 소중한 것임을, 유일한 복음을. 죄 때문에 사단이 대장노릇 하고 있고 우리를 천국에 가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 지옥에 끌고 가려고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사단의 머리를 깨는 왕, 길을 인도하는 선지자, 죄를 해결하는 제사장으로 오신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소중한 것이다.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인생 최고의 것이다. 그 비밀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이다. 그 비밀을 가진 여러분이 곧 교회이다. 건물이 중요하지 않다. 초대교회는 지하에서 예배를 드렸다. 어쩌면 우리는 평생 건물을 빌려 예배드릴지도 모른다. 조금 힘들더라도 이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우리 건물은 있어야지 하고 서운하다면 그것이 종교이다. 건물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렇게 강하게 이야기 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초대교회가 건물을 짓고 교권을 형성하면서부터 복음이 희미해졌다. ‘진짜 초대교회’는 늘 동굴에서 지하에서 다락방에서 목숨을 걸어가며 사람들을 피해 모여 성 만찬을 하고 하나님께 예배하고 포럼하고 교제했다. 가스펠 교회가 그러길 원한다. 그래서 어색하지만 서로 눈을 보며 찬양하는 것을 훈련할 것이다. 진심이 나올 때까지. 진심이 나와서 진짜로 축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 힘이 있거나 교회에 도움이 되어야지 하고 오지 않는다. 지쳐있고 공허한 상태로 오게 된다. 진짜로 이들을 축복하고 보듬어 줄 수 있어야 한다.

이 복음을, 그리스도를 가로막는 야망과 싸우려 한다. 그래서 비전헌금을 만들었다. 후대에게, 소외계층에 3세계에 복음 전하기 위해서 시작부터 못을 박은 것이다. 베드로가 고백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_마태복음16:16’

2. 하나님의 나라

모든 인간은 원죄문제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그런데 이를 가로막는다. 삶을 보면 하나님을 만나길 가로막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물을 떠난 고기에게 아무리 좋은 지렁이를 줘도 죽게 된다. 뽑힌 나무에 햇빛을 비추고 물을 주면 더 빨리 마르고 썩게 된다.

부자가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면 그 돈은 저주이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주인으로 모신 곳이 교회의 본질이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신 자들이 찾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여러분의 가정, 직장, 학교, 삶의 영역이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곳이 하나님 나라가 되길 바란다. 하나님 나라는 지키는 것이 아니다. 교권으로 지킬 수 없다. 교회의 프로그램으로 지킬 수 없다. 그런 것들로 교회에 오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가려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이다. 성전이 늘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늘어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다. 이를 위해 수고도 하고 연합도 할 것이다.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_마태복음13:24b'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고 한다. 여기서 사람이 천국은 사람을 말한다. 좋은 씨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복음이다. 뿌려야 한다. 그래야 천국이 확장이 된다. 언제까지 하면 되는가. 땅끝까지 하면 된다.

3. 땅끝까지

하나님의 소원은 땅끝까지 전하는 것이다. 그 그릇이 예배이다. 예배를 소홀히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 성령을 예배 때 부어 주신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할 지니라. 고 하였다. 그리스도를 만나고 예배 때 복음을 들으라는 것이다. 그것을 할 수 있는 힘은 성령의 충만이다.

Ⅲ. 성령의 충만

성령의 충만은 무엇인가. 이를 오해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계속 이야기 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사모하는 것이 성령충만이다. 자꾸 거룩해 지라고 이야기 하는데 우리가 거룩해 질 수 없다. 불교방송을 보면 정말 도움이 된다. 중국의 스님이 설법을 하는데 1억명이 시청을 한다. 선에 대하여 강의 하는 것을 들었는데 마음이 맑아 지는 것 같았다. 목사가 스님이 하는 이야기를 그것도 통역으로 듣고 맑아 지는 것 같았다. 자기들에게는 단계가 있는데 고행을 거쳐서 자기 마음이 다 비워지면 깨끗하게 비워지면 세상이 깨끗하게 보인다고 하였다. 욕심이 사라지면 그제 서야 세상이 보인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한가지를 모른다. 원죄를 모른다. 인간이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모른 것이다. 그게 맞다면 사람들이 서로 베풀면서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살 수 있다고 하여 고되게 훈련을 하지만 끝에 가서는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을 많이 보았다. 성령충만은 무엇인가. 의지하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생명의 근원이신 그리스도를 날마다 붙잡는 것이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것은 이것이다.

만약 내일 아침에 죽는 다고 하였을 때 온갖 방법을 써도 답을 못 찾아서 이제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답이 되는 약을 찾아냈다면 그냥 있겠는가. 어떻게 해서든지 이 약을 먹이려 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런 것이다. 그래서 전도를 하는데 불협화음이 있을 수도 없다. 지혜가 없으면 입을 벌려서 먹이려고 할 것이다. 바울은 ‘그렇게라도 복음이 전해지면’ 이라고 하였다.

우리의 행위보다 그리스도가 전달되는 것이 훨씬 값어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릇을 준비하자는 것이다. 그 그리스도를 놓치지 않는 것이 성령충만이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라’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은혜 받는 시간으로 가라는 것이다. 그래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1. 개인 전도도표

성령 충만의 첫 번째는 개인의 전도도표를 만드는 것이다. 기독교인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많지만 성경은 먼저 개인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내가 변화되면 된다. 모든 것의 이유가 개인에게 있다. 은혜를 사모하는 삶으로 바꾸면 전도현장이 보이게 된다. 그 때 전도도표가 나오게 된다.

사도 바울은 늘 민족을 생각하고 복음을 전했다. 늘 그곳으로 향했다. 어쩌면 그 방법이 우리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시대가 그때와 조금 다를 수도 있다. 지금 시대의 회당이 어디에 있는가. 모른다. 조금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심은 같아야 한다. 항상 복음을 생각하고 복음 들어야 할 영혼이 생각난다면 전도도표를 갖춘 것이다. 그렇다면 전도도표가 만들어졌을 때 마음의 결정이 났을 때 작은 도전을 하기 바란다.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_ 사도행전17:2a'

사도행전 17:1, 18:4, 9:8-9

2. 거룩한 모임

성령 충만의 두 번째는 거룩한 모임이다. 사도바울의 사역의 정점 이었다. 거룩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예배 가운데 임재하시기에 거룩이라 찬양할 수 있는 것이다. 법당이 거룩할 수 있는가. 공자가 거룩할 수 있는가. 철학자들이 가능한가. 불가능 하다. 마음을 비우는 것은 공허이다. 거룩은 거룩한 분이 임하셔야 하는 것이다.

사단은 물러가라 해서 물러나지 않는다. 굿을 한다고 되지 않는다. 잠시 후에 다시 오게 된다. 사단은 끈질긴 존재이다. 수 천년 동안 역사 내내 믿는 자들과 더불어 싸우고 있다. 불화살을 쏘고 있다. 거룩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가정의 주인으로 모실 때 그 가정이 거룩할 수 있다. 성령충만은 그런 것이다. 성령을 모시기 바란다. 성령이 내주 인도 하도록 모시는 것이 성령충만이다.

교회는 누구나 올 수 있다. 복음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마저도 이렇지 않다. 교회에 가면 왠지 소외감을 느끼고 내가 올 곳이 아닌 것 같다고 느낀다. 여러분들이 사투리도 쓰지 않았으면 한다. ‘여기는 특정 지역 사람들만 오는가 보다’ 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누구나 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갱신했다. 모일 때마다 떡을 떼고 교제하기를 주력 했다. 성 만찬을 계속했다. 매주 구원받을 사람이 왔기 때문이다. 세례를 계속 한 것이다.

새가족이 계속 온다면 세례를 계속 해야 할 것이다. 그런 교회가 될 것이다. 생명 살리는 기준으로 모든 것이 진행되어야 한다. 모든 중심이 여기에 있어야 한다. 저는 마음을 담고 있다. 하나님이 경제축복을 주시는 것은 ‘이곳에 올인 했을 때’ 라고 생각한다. 헌금이야기를 하지 않겠지만 중요한 순간에 이야기 할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거룩한 마음이 올 때 헌금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저는 인생의 성령충만이 절정이었을 때 하나님께 다 드렸다. 첫 전도사 사례비를 전부를 하나님께 드렸다. 두 번째 까지도 그랬다. 계속 그러고 싶었지만 먹고 살아야 하기에 그러지 못했다. 생명 살리는 기준으로 방향을 맞춘다면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 교회 때문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하나님이 그것을 준비하지 않고 저희를 부르셨겠는가. 이 생명에 마음을 담는다면 진짜 섬김, 사랑이 있을 것이다. 그게 우리의 그릇 준비이다. 성만찬을 매주 할 수는 없지만 점심도 같이 먹으며 그렇게 할 것이다. 점심도 맛있게 먹어야 한다. 그런 것 때문에 시험 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은혜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은혜 받는 곳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같이 그림을 그렸으면 한다. 현장에서의 모임을 그림 그리기 바란다. 가족이 다 함께 예배드리는 것을 그림 그리기 바란다. 그림을 그린 것은 성취된다. 하나님께 기대하고 소원하기 바란다. 직장에서 그런 모습을 그림을 그리기 바란다. 학교, 직장, 지역마다 생명 살리는 소통의 모임이 일어날 것이다. 그것 때문에 지금 우리의 상태를 점검 할 수 있어야 한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_ 행2:46’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_히10:25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_요한복음4:23’

지금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신다. 교회의 본질을, 그리스도인의 본질을 회복할 때 하나님이 응답의 문을 열기 시작 할 것이다. 어려움, 갈등, 고민 속에 이 자리에 왔다면 그럴수록 본질을 회복하고 근원을 붙잡기 바란다. 2014년도 우리 교회가 함께 가야 할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