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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4-11-09 주일 2부 예배

< 주일 2부 예배 >

일시:  2014년 11월 09일

제목 : 자신의 관례대로

말씀 : 사도행전 17:1-9

설교 : 오승주 목사


2014-11-09 주일2부예배.hwp




음성 다운로드 http://bit.ly/1qy4RDN

영상 다시보기 http://vimeo.com/111339227



가스펠교회 주일2부예배 20141109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 세상 방정식의 위력

 

우리는 오전에 너무 중요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영적인 힘이라 생각합니다. 말씀을 듣고 삶에서 실천하는 힘이 있는 사람이 영적인 힘이 있는 것입니다. 내 의를 내세우고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힘이 있는 사람은 낮은 자리로 갈 수 있습니다. 이를 적용하는 과정이 묵상입니다. 그래서 그 묵상을 나누는 곳이 미션홈입니다. 모여서 나누셔도 되고, 전화로, 카톡으로 나누셔도 됩니다. 그 나눔이 교회를 건강하게 할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의 연약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드러내기 위해 연약함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연약한 나를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묵상의 대가가 구약에는 다윗이며 신약에는 바울입니다. 바울은 엄청난 위기 속에 예수님을 만나 새로운 길을 갔습니다. 그런데 그것에 대해 아쉬워하거나 전혀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진짜 만나면 그렇게 됩니다. 사실 바울은 세상방정식으로 보면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히려 그것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합니다. 세상 방정식이 얼마나 대단한지 사람들이 그것을 놓지 못해 예수님을 못 만나고 혹 예수님을 만나도 그것을 버리지 못합니다. 세상방정식이 대단하긴 합니다. 요즘 목사님들을 보니 그렇습니다. 요즘 그리스도인들을 보니 그렇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아직도 바울처럼 믿는 목회자가 많으며 건강한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많습니다. 아직 소망이 있고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구원받았다고 하지만 쉽게 신앙을 포기할 만큼 세상방정식이 대단하다고 젊은이들이 말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일행이 데살로니가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는 장면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는 삶, 또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는 삶으로 응답 받길 바랍니다.

 

1. 거짓평안, 거짓안전 _데살로니가전서5: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_데살로니가전서5:3’

 

그들은 이야기합니다. 세상방정식대로 사는 사람들이 이야기 합니다. 평안하다, 안전하다 이야기합니다. 자신들이 가진 것으로 안심합니다. ‘나는 재물이 있으니, 힘이 있으니, 젊으니, 명예가 있으니 괜찮아라고 합니다. 자신들이 이룬 것으로 평안하다 합니다. 하지만 멸망이 갑자기 옵니다. 그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악인에게는 반드시 결과가 있습니다. 심판앞에 서게 됩니다. 그것은 해산하는 여자의 고통이 이름과 같다고 합니다. 멀쩡하다가 아이가 나올 때에 갑자기 아픈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멸망이 찾아옵니다. 그것이 세상방정식입니다. 여러분의 형제, 여러분의 친구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면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그것은 거짓평안이며, 거짓안전입니다. 사단이 주는 것은 절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 평안은 진짜 평안이 아닙니다. 하나님 떠난 인간은 절대 안전하지 않습니다.

 

2. 대적하는 자_데살로니가후서2:4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_데살로니가후서2:4’

 

그들은 그렇게 안전하다 평안하다 하고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듭니다. 거짓 평안과 거짓 안전 뒤에 숨어서 인간을 유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의 뱀을 통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것처럼 지금도 인간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처럼 될 수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가장 큰 유혹입니다.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것이 죄입니다. 그 죄를 이기지 못해 사단의 올무에 걸립니다. 모두가 재물을 모으고, 모두가 명예에 집착하며, 모두가 선하게 살고자 하는 것이 무엇 때문입니까? 나누며 베풀고 살면 좋으련만 자꾸 바벨탑을 쌓듯이 살면서 결국 중요한 것을 놓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놓치고, 가족과의 사랑을 놓치고, 인간답게 사는 것을 놓치지 않습니까? 결국 예배를 놓쳐버립니다. 주일날 예배 빼먹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중심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3. 사단의 위력_데살로니가후서2:9-10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_데살로니가후서2:9-10’

 

성경은 그 배후가 무엇이라고 밝히고 있습니까? 사탄의 활동이라고 합니다.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 모든 속임으로 사람들을 멸망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진리의 사랑을 받지 못하여 구원함도 없다고 합니다. 그런 대단한 위력 앞에 불신자들은 알지도 못하고 속아 삽니다. 놀라운 것은 믿는 자 역시 그렇게 속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이 그 사단을 이길 수 없습니까? 그 사탄의 올무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까?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바울이 그것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신앙은 사탄의 위력보다, 세상의 방정식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것을 아시길 바랍니다.

 

. 신앙의 위력

 

1. 능력 있는 삶의 위력_고린도전서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_고린도전서1:18’

 

무엇 때문에 우리 삶에 능력이 있습니까? 저는 신앙인들이 능력 있게 사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그것은 교만하라는 것이 아니요 광신도처럼 살라는 것도 아닙니다. 진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세상에서 믿는 자로 서야 합니다. 우리가 올바르게 신앙생활 한다면 그 위력은 가정도, 이웃도, 국가도 살리게 될 것입니다. 재앙도 막게 되고, 위기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십자가를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능력 있는 삶은 십자가를 붙잡는 삶입니다. 예수님을 붙잡는 삶입니다. 모든 우선순위, 모든 선택에서 신앙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능력으로 우리 삶을 사는 것이 아닌 주님의 능력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럴 때 위력이 나타납니다. 우리 삶이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귀히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2. 날로 새로워지는 비밀_고린도후서4:16-18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_고린도후서4:16-18’

 

나이들어서 신앙생활을 한다해서 젊은 사람과 다른 것이 없습니다. 영원 속에서 볼 때 다를 것이 없습니다. 어떻게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사실 이렇게 여러분에게 말씀을 선포하지만 저 역시 고민이 있습니다. 믿음을 선택하고 신앙을 선택하며 산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세상이 비웃으며 세상의 수준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세상방정식 뿐인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환난이 오나, 세월이 흘러 우리가 낡아지나 더 능력 있게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비밀은 보이는 것을 붙잡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을 붙잡는 것입니다. 영원을 바라보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며, 예수님이 바라보는 것을 우리도 바라보고 사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살 때 우리가 나이가 들어도 우리는 건강하며, 우리가 환난이 있어도 건강하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됩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핍박 속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참고 견디며 핍박자들을 사랑하여 결국 그들을 주님께 인도한 것은 이 비밀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불신자 가정에서 예수를 믿어 불신가정을 섬기면서 인내하였던 것도 이 비밀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입에서 찬송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찬송하는 나그네인생을 살았기 때문이죠.

 

3. 새로운 인생관_사도행전20:24

그래서 바울은 새로운 인생관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_사도행전20:24’

 

그의 인생관을 보시지요. 그는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사는데 남은 인생 은혜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가 오늘 데살로니가 지역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관례대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 자기의 관례대로

 

여러분 신앙생활에 관계가 있으십니까? 저는 귀가 얇은 편입니다. 사람들이 말을 하면 금방 속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고집 있는 사람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수도 없이 노력했습니다. 그러면서 관례가 생긴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매일 만나고 매일 증거하는 여러분의 신앙관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1. 그들에게로_사도행전17:2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_사도행전17:2’

 

바울의 첫 번째 관례는 그들이었습니다. 항상 그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로 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만나지 못해 유리방황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것이 바울의 첫 번째 관례였습니다. 사람이 모여 있는 곳, 특별한 사람들, 문제 있는 사람들을 항상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가는 지역마다 회당을 찾았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유심히 봐야 합니다. 왜 봐야하냐고 물으십니다. 예수님의 마음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탄의 종노릇하는 것을 보시고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삶에서 만들어낸 결과물에 관심이 없습니다. 오로지 인간에게만 관심이 있습니다. 위기 때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인간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생명이 있다면 바라보게 되어있습니다. 내 남편을 다른 눈으로 볼 것입니다. 내 자녀를 다른 눈으로 볼 것입니다. 내 상사와 직장동료를 다른 눈으로 볼 것입니다. 이웃을 다른 눈으로 볼 것입니다.

 

2. 성경을 가지고_사도행전17:2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_사도행전17:2’

 

바울의 두 번째 관례는 성경입니다. 그는 항상 성경을 가지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한번도 말씀을 놓친 적이 없습니다. 바울이 엄청 똑똑하다는 것을 여러분도 아십니다. 바울이 얼마나 지식이 많은 줄도 아십니다. 그가 모든 것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가지고 주님을 전했습니다. 참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가지고 신앙생활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말씀을 가지고 신앙생활해야 합니다. 말씀을 놓치지 않기 바랍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아무리 재물이 많고, 아무리 신앙의 경륜이 깊어도 말씀을 놓친다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셔야 합니다. 주일 설교말씀이 하나님 말씀으로 들려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말씀이 머물러 모든 상황 속에 적용되고 인도받아야 합니다. 그러니 바울은 다른 전도자와 다르게 헷갈리거나 유혹당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따라 가니 그런 것입니다. 반대로 베드로는 전통에 헷갈렸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말씀은 우리 인생의 나침판이요 우리 인생의 지도입니다.

 

3. 증언하고_사도행전17: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_사도행전17:3’

 

바울의 세 번째 관례는 증인이었습니다. 증거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에게 증언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크리스천들이 증언을 할 수 없습니다. 증언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낮아지지 못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쉽게 말합니다. 쉽게 내 생각, 내가 느낀 것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런 말들은 아무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합니다. 말씀을 따라 살면 증거가 오게 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면 증거가 옵니다. 그런 증거를 말하는 것입니다. 말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살리는 말을 해야 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말이 무엇입니까? 부모에게 못을 박는 자녀가 있습니다. 반대로 자녀에게 못을 박는 부모님도 있습니다. 성도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서 자꾸 못을 박습니다. 그것은 정말 악한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증언해야 합니다. 잘 안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것이 능력 있는 삶입니다. 내가 아는 것, 내가 만난 예수그리스도만 전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을 믿었다면 오늘 아는 만큼만 전해도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묵상에서 깨달은 바를 나누시길 바랍니다. 그것을 이웃, 불신 친구들과도 나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이 변화된 것은 오직 말씀 안에서만 가능하니 그것을 증언하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전한 증언으로 경건한 헬라인, 귀부인도 돌아오게 됩니다. 그 당시 최고 고위층, 지식인층 이었습니다. 아무리 가진 것이 많아도 증언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의 증언을 들을 때 하나님이 마음을 움직이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그들이 귀부인, 헬라인이었기 때문에 말씀을 전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말씀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써 떳떳하게 살아야 합니다. 왜 실력 있는 사람들 앞에서 쩔쩔매는 것입니까? 그러니 그런 사람들이 교회에 오고 신앙이 희미해진 것입니다. 성경은 종교인들, 엘리트들에게도 전하라 합니다. 우리가 증언을 한다면 누구에게도 답이 될 것입니다. 지식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뜻을 논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만난 예수님, 내가 매일 만나는 예수님, 내가 바라보고 사는 저 천국을 증언하는 여러분 되기실 바랍니다.

바울은 이 세 가지의 관례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세상 속에서도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방정식이 대단해도 흔들리지 않은 것은 이 관례의 비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이제는 세상 방정식을 벗어나 하나님의 새로운 신앙관을 가지고 여러분만의 관례를 가지고 승리하길 바랍니다.

 

주님 우리가 세상에 살지만, 올바른 신앙관으로 살 수 있도록 믿음을 주세요. 바울처럼 복음으로 멋진 나만의 관례를 가져 우리의 인생이 생명을 나누는 축복된 인생이 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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