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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3 주일 2부 예배

< 주일 2부 예배 >

일시:  2014년 11월 23일

제목 :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

말씀 : 사도행전 17:32-34

설교 : 오승주 목사



2014-11-23 주일2부예배.hwp




음성 다운로드 http://bit.ly/11KvxdM

영상 다시보기 http://vimeo.com/112609732





가스펠교회 주일2부예배 20141123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 아덴에서의 바울

 

1. 우상이 가득한 성, 아덴_사도행전17:16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_사도행전17:16’

 

바울은 베뢰아에서 마음이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그런지 아덴에 와서는 그의 마음이 격분하였다 합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생각 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덴에는 우상이 가득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런 상황을 많이 겪습니다. 우상이 많은 지역, 곧 사람들의 마음이 너그럽지 못해서 복음을 잘 받아드리지 않는 지역에 가면 마음에 분노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복음을 받지 않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혹은 자신에게 주어진 현장에 문이 열리지 않는 것에 대한 답답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런 마음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이 본문을 보면서 많은 분들이 바울의 잘못된 전도라 설교를 하지만 개인적으로 우상이 가득한 성을 보면서 분노가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제자의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형제, 가족이 복음을 듣지 않을 때 분노와 격분함, 안타까움이 없으면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단지 마음에 분노를 가질 이유는 없습니다.

 

2. 날마다 만나는 사람과_사도행전17: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_사도행전17:17’

 

바울이 분노한 이유를 보니 제 예상이 맞는 듯합니다. 그가 그 전에는 가는 지역마다 하나님의 예비된 자들을 만났고, 또 그가 전하는 복음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아 어떤 핍박도 상관없이 기쁘고 감사했었습니다. 그런데 아덴에서는 회당에 가도, 경건한 사람들을 만나도, 또 그것도 여의치 않자 장터에까지 나가서 날마다 사람들을 만나지만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사도바울이 답답할 만도 합니다. 그러니 변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주 말씀처럼 먼지를 떨어버리면 되는데 바울의 자존심이 보통이 아니었나봅니다.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_사도행전17:18’

 

그런 바울이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까지 만나 쟁론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바울을 보고 그들은 이방신을 전하는 말쟁이인가 보다.’ 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바울이 전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을 준비가 전혀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이 답답할만 했겠습니다. 많은 제자들이 이 부분에서 기다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덴을 떠나려던 찰나였습니다.

 

3. 아레오바고에서의 복음전파_사도행전17:19-31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_사도행전17:19’

 

누군가 바울을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아레오바고라는 언덕으로 바울을 데리고 갔습니다.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아덴이 어디지요? 지금의 그리스도 아테네지요. 아테네 시내가 보이는 작은 언덕입니다. 더불어 그 언덕위로는 아크로폴리스라는 신전이 있는 곳입니다. 아덴이란 지역, 즉 아테네가 온갖 신화와 철학의 중심도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새로운 것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법도 합니다. 너무나 복잡하고 많은 철학과 신화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아덴 지역에서 바울은 그들의 요청으로 복음을 전파합니다.

 

.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

 

1. 조롱하는 사람들_사도행전17:32a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을 하고 어떤 사람은 이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_사도행전17:32'

 

그렇게 복음을 전파하니 가장 먼저 조롱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저는 지식이 많은 사람들이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보다 더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믿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는 것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자신들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장 믿기지 않았던 것은 바로 부활이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어떻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냐.’ 라고 조롱했을 것입니다.

 

2. 다시 듣겠다는 사람들_사도행전17:32b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을 하고 어떤 사람은 이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_사도행전17:32'

 

그런데 어떤 사람은 다시 듣겠다고 하였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데 예비된 사람은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정말 오래전에 대만에 캠프를 진행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제 후배가 통역을 해주어서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학생들이 한참 듣더니 영접하자니까 싫다고 다들 그냥 갔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런가보다 하고 돌아오려 하니 그때 옆에서 다른 아이들이 와서 자신들이 영접할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 전에 그 아이들을 보았지만 복음을 전해도 들을 것 같지 않아 보였기에 다른 아이들에게 전했던 것입니다. 제 후배와 저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아덴으로 인도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성, 어떤 고을이든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우리는 실패라 생각하고, 우리는 안 된다 하지만 하나님은 항상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3. 믿는 사람들_사도행전17:34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 하여 믿으니 그 중에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아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_사도행전17:34’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고 나니 믿는 사람들이 남았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가까이 합니까? 도움을 받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을 가까이 하는 분들이 계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복음을 전해주는 사람이 될 때 누군가는 여러분을 가까이 할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고, 항상 은혜를 나누어주면 가까이 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여러분 주위에 지금 누가 가까이 하고 있습니까? 사기꾼이 가까이 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늘 돈을 자랑하거나 그럴 것입니다. 주변에 늘 문제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들이 복음이 필요해서거나 아니면 여러분이 그 문제 있는 분들과 통하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복음을 전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성령이 너희에게 말하게 하실 것이라 하였습니다. 아덴과 같은 직장, 가정에 있더라도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를 점검하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해주는 제자들입니다. 그러니 주변에 그 복음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붙게 마련입니다. 그것이 만남의 축복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오늘 말씀은 바울이 한 지역, 한 지역 전도하는 여정 중 한 곳에서의 모습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교훈삼아야 하고 또 우리가 새겨야 할 하나님의 음성은 어떤 상황과 환경에 낙심하거나 분노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경쟁하다가도 다 양보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칭찬과 명성을 얻는 자리에 세울 것입니다. 만일 바울이 회당과 시장통에서 수많은 철학자들과 변론하고 쟁론하고 끝났다면 힘이 빠졌을 지도 모릅니다. '내가 이렇게 복음을 전했는데도 이게 뭐냐.' 이런 식으로 원망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은혜 받은 사람의 모습이 아닙니다. 바울은 예수님과 그의 부활을 증거한 사람입니다. 그 일에 있어서는 끝이 없으며 낙심과 좌절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는데 허송세월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식이 많은 사람이든, 철학자든, 어찌 보면 조롱하는 사람들이든 복음을 전파했음에 결과로 낙심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 일에 구원의 섭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들이 모든 것을 다 가진듯하고, 그들이 가장 똑똑한 척 하지만 그것이 사라질 때, 그것이 무너질 때 우리가 전한 복음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듣겠다고 도움을 청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항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_고린도후서4:1-2’

 

이 말씀을 반대로 보면 아마 바울 또한 조금 낙심을 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진리만 전해도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양심에 하나님은 역사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한 주 동안 세상에 파송 받은 제자로써 복음을 전파하는 증인으로 살기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 형제, 부모, 자식, 무엇보다 불쌍한 지식인들이 주께 돌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우리가 무엇 때문에 낙심이 되나요? 예수님을 매일 만나 증인으로 살고자 합니다. 그렇게 살지만 세상이 이해해주지 못하고, 또 아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하여 낙심할 때가 많습니다. 주님만 바라보길 원합니다. 주님의 신실하신 인도하심을 신뢰하길 원합니다. 그러할 때 내 가족이 내 현장이 변화되어질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