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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30 주일 2부 예배


< 주일 2부 예배 >

일시:  2014년 11월 30일

제목 : 생명용품

말씀 : 사도행전 18:1-4

설교 : 오승주 목사





음성 다운로드 http://bit.ly/1vYzIB9
 
영상 다시보기 http://vimeo.com/113190460  



2014-11-30 주일2부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 인생의 두 갈래길

 

여러분 인생은 두 갈래길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신앙인으로 살던지 아니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로 사는 것입니다. 성경도 두 갈래길을 설명하고 있고, 역사도 두 갈래길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생명용품의 길_시편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_시편23:3’

 

우리의 영혼이 소생된다는 것은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 존재이기에 나무가 땅에서 뽑히면 죽듯이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면 죽게 됩니다. 저는 예수님을 만나고 생명용품이 되었습니다. 제 인생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 때에는 그저 세상의 것 바라보며 동경하며 살면서 주어진 운명에 이리저리 치이면서 마지못해 살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서 제 심령에 당신의 생명으로 채우시는 작업을 통해 당신의 필요에 따라 저를 준비하셨습니다.

심하게 부식된 쇠파이프 안을 보신 적 있으십니까. 온통 녹덩어리로 가득할 것입니다. 그 녹덩어리를 제거하지 않고서야 물이 채워진들 그 물이 생명수가 될 수 있을까요? 녹을 비우지 않는 파이프는 자신과 타인을 동시에 죽이는 죽음용품이 될 따름입니다. 자신을 비워 주님의 생명수로 채울 때에라야 자신과 타인을 모두 살리는 생명용품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 저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시인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또 그것이 말뿐이 아닌 삶이되기 위해 날마다 제 안에 녹을 제거할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 인생이 다 끝나고서도 그 일을 못 끝낸다면 내 자녀에게, 이 교회에게 그 일을 성실하게 하도록 교육하고 가야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셨는데 이 일을 하지 못한다면 다른 종교생활과 다를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 생명용품이 되길 바랍니다. 다윗이 그리 하였고, 수많은 믿음의 선조들이 그리하였습니다. 조선의 주먹이었던 김익두 목사는 허구한 날 사람을 패고 다녔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나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도하려 길거리에 나가도 사람들이 자신을 깡패로 생각하고 도망가니 그가 기도했답니다. ‘주님 제가 이제 주님의 종이 되어 생명의 말씀을 전하고 싶은 데 어찌 해야 합니까?’ 주님이 그의 마음에 말씀해주셨다고 합니다. ‘옷부터 바꿔 입어라. 욕 좀 그만해라. 이제 깡패가 아니고 주님의 종이 되려거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라.’ 예수님을 영접하고도 하나도 바뀌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때부터 자신이 가진 것을 팔고 나누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말씀을 듣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2. 죽음용품의 길_마태복음16:26

 

사람이 만인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_마태복음16:26’

 

여러분 장래식장에 가보셨습니까? 아무리 좋은 옷, 아무리 좋은 나무, 아무리 좋은 물건들이라도 죽은 사람을 위해 쓰임 받는 것은 죽음용품입니다. 아무 의미 없이 같이 땅에 묻히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만 죽으면 되는데 온 가족을 죽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형제도 부모도 자식도 죽이는 사람말입니다. 자신의 마음닫힘으로 내 자식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처럼 비참함이 또 있을까요? 누구일까요? 세상방정식으로 살려는 자입니다. 그들은 죽음용품이 되어버립니다. 그것을 쫓다보니 자신도 보이지 않고, 하나님도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저 성공하려고 달리다 보니 어느새 신앙도 놓치고, 감사도 놓치게 됩니다. 그래서 있는 척 가진 척 하는 척해야 하지만, 그로 인해 가족들은 병이 들게 됩니다. 영적인 병에 걸리면 세상은 해결책도 없습니다.

 

. 생명용품으로 살아간다는 것

 

우리가 생명용품으로 살아가는 것은 축복입니다.

 

1. 예수님을 만나는 선택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저 역시 목사여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만나도록 돕는 자이지만 어떤 사람은 그 도움을 싫어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들의 특징은 어떤 문제를 만나서입니다. 그것이 죽음이 아니더라도 거의 비슷한 심정을 가져야만 예수님을 만나려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축복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만일 평생 부자로 살아서 예수님이 필요없다 하여 만나지 못하고 지옥가면 그 부유는 저주가 아니겠습니까? 만일 너무 똑똑하여 박사, 교수와 같은 것을 평생 하여 예수님을 만나지 못해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한다면 그 또한 저주가 아니겠습니까? ,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죽음을 자각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죽음을 자각해서 살아있는 동안 마음껏 즐겨보자는 쾌락주의자 또는 세속주의자가 되거나, 그와는 반대로 허무주의자 또는 염세주의자에 빠지는 사람도 부지기수입니다. 죽음을 알기에 죽음 너머를 생각하는 자, 죽음의 자각을 통해 영원한 생명의 필요성을 절감한 자가 영원하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고,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자신을 생명용품으로 일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는 선택을 하는 것은 인생의 최대의 은혜라 생각합니다. 죽음을 자각하고 큰 문제 앞에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만날 기회입니다.

2. 자기 비움으로 시작되는 주님의 채움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생명용품으로 살아가는 비결은 자기 자신을 비움으로 시작되는 주님의 채움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브리스길라 부부는 원래 군납을 하던 천막 장사하는 사업가입니다. 군대에 납품을 하니 돈이 보장이 되었습니다. 그가 천막장사를 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을까요? 로마 군대가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땅을 차지하여 황제가 더 영화롭게 되는 일에 자기의 업이 쓰임 받는다는 것을 알았을까요? 그저 돈을 벌어 로마시민권을 유지하고 호화롭게 사는 것이 인생의 낙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죽음용품의 삶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바울 사도를 통해 전해들은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 얼마나 회개 하였을까요? 그래서 바울사도와 함께 천막 만드는 일을 계속 하였습니다. 이제는 똑같은 업인데 주님께 쓰임받기 위해 생명용품으로 쓰임 받도록 변화된 것입니다. 똑같은 일이지만 로마를 복음화 하기 위해 그 업이 사용되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훗날 가장 중요한 도시 고린도에 교회를 세워 수많은 유대인들과 헬라인들, 로마인들까지 주님을 만나게 하는 생명용품으로 쓰임 받은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비움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자기를 비워내야 주님이 채우십니다. 언제부턴가 교회가 자기 비움 없이 자기 욕망 채움을 최우선 목표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부턴가 교회가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 세상방정식으로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생명용품이 되지 않고 죽음용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3. 흘러넘치는 은혜

 

자기 것을 비우고 하나님으로 채우기 시작하면 은혜가 흘러넘치게 됩니다. 내리사랑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무조건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주로 누가 대상입니까? 부모의 사랑을 그렇게 표현합니다. 사랑은 생명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생명은 곧 사랑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두 단어가 주는 어감은 다르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곧 생명이고, 그 생명이 곧 사랑을 만들어냅니다. 부모의 사랑이 내리 사랑인데 자녀를 살게 만듭니다. 온갖 범죄를 저지른 자녀라도 부모는 내 자식이기에 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자기 목숨을 내어놓아 그 자식 살려보려 합니다. 생명은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 생명과 사랑은 곧 하나님의 은혜이기도 합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모든 것 드려 그분께 쓰임 받는 생명용품이 될 때 우리 내면으로부터 은혜가 흘러넘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그러기 위해 저 역시 제 동기, 욕망, 모든 권리를 내려놓아 오로지 주님이 주인 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5년도에 몇 가지 내려놓을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 마음에 확신이 생겨 가장 확실한 것 한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교회의 재정에 관여하지 않으려 합니다. 모든 싸인은 여러분이 하도록 할 것입니다. 만일 재정을 담당하는 분이 은혜를 받지 못해 문제를 일으킨다면 저는 그분과 같이 사임을 하겠습니다. 목회자가 말씀으로 은혜를 끼치지 못해 벌어진 일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목회자가 교회재정에 관여하기 시작하여 마치 교회의 재산이 자기재산인양 착각하기 시작한다면 생명용품이 아니라 죽음용품이 되는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은혜가 흘러넘치는 목회자이고 싶습니다. 저의 부족함, 연약함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 안의 녹덩어리를 제거하고 은혜가 흘러넘치기를 원합니다.

 

. 견딤 안에 있는 참 소망

 

왜 직장 생활을 하며 견디는 것입니까? 자녀를 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머니가 왜 그렇게 버티며 살아왔는지 몰랐습니다. 너희들 때문이라고 한 마디를 하셨습니다. 그렇게 생명용품이 되면 먼 시선을 가지게 됩니다. 시대의 변증가이자 우리시대의 가장 위대한 기독교 작가인 C.S. 루이스는 어릴 적 꿈이 만들기였습니다. 온갖 재료를 동원하여 배나 집, 엔진 같은 것들을 만들기 위해 무단히 애썼지만 그는 매번 실패하였습니다. 타고난 엄지손가락 상부 관절불구였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실패나 좌절을 단 한번이라도 경험해본 자라면, 절망적인 실패에서 눈물을 흘리며 뒤돌아섰다는 고백의 고통과 괴롬을 알 것입니다. 루이스는 예수님을 만나 모든 것을 받아드렸습니다. 자신의 손가락이 불구여서 만들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자기 욕심을 위해 고집피우지 않았습니다. 혹시 고집을 피워 계속 노력했다면 그저 잘 만드는 장인정도가 되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무신론시대에 숱한 영혼을 살리는 작가가 된 것은 그가 실패의 눈물 속에서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만들기를 포기하고 서재로 들어가 그 손으로 글을 읽고,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가스펠 가족여러분 여러분이 살아가는 동안 숱한 실패를 경험할 것입니다. 쓰라린 아픔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의 생명용품이 될 수 있는 선택을 하시길 바랍니다. 지금 우리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심지어 종교까지고 부패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그야말로 총체적 부패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진리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혹 여러분은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온 세상이 진흙탕인데 나 혼자 진리를 따른다고 대체 무슨 소용이 있나요?' 사실 그 말이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살아계시기에 언젠가는 증거를 주시기 않겠습니까. 우리가 자녀를 세상교육이 아닌 신앙교육을 시킨들, 직장에서 신앙인으로 바르게 직장생활을 한들 당장은 아무 소용이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불이익이 돌아오기가 더 쉬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세상을 두려워해서 되겠습니까? 우리는 먼 시선을 가져야 합니다. 견딤 안에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진리의 씨앗을 심어 우리 후대가 일어날 100년 뒤를 보고 200년 뒤를 같이 보기 원합니다.

오늘 사도바울의 발걸음이 200년 뒤에 로마를 새롭게 하였고, 부패하고 타락한 도시 고린도를 브리스길라 부부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100년 뒤에 신앙의 대표적인 도시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이 생명용품으로 쓰임받기 위해 결단하였을 때 대표적인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소망합니다. 그것을 믿습니다. 그것이 재창조의 역사가 아닐까 합니다. 당장 가정의 문제가 있을 지라도 불신자의 방법을 선택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주님의 말씀으로 진리를 선택하기 바랍니다. 그것이 사도바울, 브리스길라 부부를 통해 주시는 교훈입니다. 우리의 생업, 기능, 학업이 그렇게 쓰임받기 원합니다. 우리는 생명용품입니다. 그것이 사단을 꺾을, 이 시대의 재앙을 꺾을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_히브리서11:39-40’

주님 우리가 죽음용품이었는데 예수님을 만나 생명용품이 된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요. 이제 남은 생이 주님께 쓰임 받는 생명용품이 되도록 우리의 삶을 주님께 드리는 믿음을 허락해주세요. 비우지 못하고, 버리지 못하고, 아직도 세상의 방정식을 추구하며 살고 있다면 주님이 주신 생명의 말씀을 들음으로 영적인 눈이 열려 하나님의 계획을 보는 은혜가 있게 해주세요. 우리가 참 소망을 가지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