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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5-02-01 주일 2부 예배

 < 주일 2부 예배 >

일시:  2015년 02월 01일

제목 : 마지막이라면

말씀 : 사도행전 20:7-12

설교 : 오승주 목사


2015-02-01 주일2부예배.hwp




음성 다운로드 http://bit.ly/1yXGrWE

영상 다시보기 http://vimeo.com/118385248



2015-02-01 주일 2부 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 떡을 떼려는 모임_사도행전20:7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 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_사도행전20:7’

 

그 주간의 첫 날은 무교절 후 안식 후 떡을 떼는 모임으로 부활절입니다. 부활절에 떡을 떼는 예식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행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의 예언대로 이루신 역사를 깨닫지 못한 제자들에게 축사한 떡을 떼어 주셨습니다. 이를 내 몸이니 먹으라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영안을 열어 당신을 알아보게 하셨습니다. 이후 제자들은 매년 부활절에 떡을 뗌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영안을 열어주심을 기념했습니다. 부활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 운명하신 후 사흘 만에 부활하신 행적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이 땅에 육체로 임재하셨던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들도 예수님과 같이 부활할 수 있다는 소망을 갖게 해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먹어 영의 눈이 열려야 함을 가르치시기 위해 부활절에 떡을 떼는 모임을 만드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모임에서 많은 답들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마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_에베소서4:15-16’

 

떡을 떼는 부활절 행사를 통해 내가 하나님 나라의 자녀가 됐음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부활절에 떡을 떼려고 모였습니다. 떡을 먹는 것이 의식에서 그치면 안 됩니다. 떡은 말씀을 의미합니다. 말씀을 먹어 눈을 열어 우리의 신앙이 자라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한 모임에 사도바울은 자신의 일정이 내일 떠나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강론한 것입니다.

 

. 드로아에서의 사역

 

1. 등불을 많이 켰는데_사도행전20:8

 

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_사도행전20:8’

 

드로아 지역이 마지막이기 때문에 밤을 새워가며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 모임에서 바울이 밤늦께 까지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등불을 많이 켰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는 전기가 없었기 때문에 등불을 켰습니다. 새벽까지 말씀을 전하는데도 등불이 준비되었다는 것은 말씀을 받을 준비가 됐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또 등불을 많이 켰다는 말은 사람들이 제법 많이 모였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부활절에 떡을 떼려고 모였지만, 바울사도에게 말씀을 듣기 위해 그들은 이미 준비를 잘 하였다는 의미입니다. 그 자리에는 누가도 있었습니다. 이 성경을 기록한 의사 누가가 우리가 모인이라고 하는 것을 보니 확실한 추측을 할 수가 있습니다.

 

2. 유두고라 하는 청년의 졸음_사도행전20: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_사도행전20:9’

 

그러다 사고가 납니다. 황당한 사고입니다. 부활절에 떡도 떼고 말씀도 듣는데 사고가 터지니 얼마나 놀랐고 황당했을까 생각합니다. 유두고란 청년이 창에 다락방의 창문틀에 걸터앉아 있다가 깊이 졸면서 떨어진 것입니다. 그것도 3층이었습니다. 아마도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오랫동안 전하니 그 피곤함을 이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를 보니 죽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 기록했습니까? 의사 누가가 있었으니 그것은 확실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상황이 오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달콤하지 않으면, 말씀이 내게 은혜가 되지 않으면 누구의 잘못일까요? 목회자의 잘못일까요? 성도님의 잘못일까요? 둘 다 잘못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말씀이 자신과 맞는 곳을 찾아다닙니다. 순례자들도 아니고 말입니다. 물론 이상한 선지자, 거짓 선지자를 피해 사도바울과 같은 복음을 전해주는 목회자를 만나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강론할 때 여러분이 영적으로 졸고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으신가요? 그렇다면 내 밭을 좋은 밭으로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이 여러분 삶에 행함으로 부딪히는지 궁금합니다.

이어령씨의 딸 이민아씨의 책 땅 끝의 아이들이란 책을 읽어보셨습니까? , 마약, 폭력의 구덩이에서 희망을 잃은 아이들이 주님을 만나기 위해 감당해야 할 고통이 크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그 이야기는 자신의 이야기라고 합니다. 자신과 부모님이 천국을 얻기 위해 너무 큰 대가를 치렀다고 처음엔 생각했답니다. 갑상선 암에 걸렸고, 큰 아들은 버클리대학을 다니다가 갑자기 돌연사로 죽었고 둘째 딸은 자폐아였습니다. 그런 대가로 인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평생 한국의 대표 지성인으로 살던 그의 아버지 이어령씨도 그렇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이 천국을 보며 살길 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천국을 보기 전에 문턱에서 멈춰버립니다.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 무서워 신앙생활을 포기합니다.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 기쁨이 돼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 삶을 살게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 속으로 들어가는 기도가 시작되어지길 바랍니다. 그 대가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선택받은 사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3. 바울의 침착함_사도행전20:10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_사도행전20:10’

 

바울이 얼마나 침착한지 볼 수 있습니다. 저 같으면 심장이 뛰었을 것입니다. 부활절 집회 중에 사람이 3층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소란이 일어났으니 얼마나 큰일입니다. 그런데 사실 큰일이 아닙니다. 그날은 부활절이었습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던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큰 계획이 있으심을 알았던 것입니다. 바울이 무슨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안수기도를 한 것도 아니요. 집중기도를 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바울이 유두고의 몸을 들고 보니 그에게 생명이 붙어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죽었다고 했지만 아직 죽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들,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시작하면서 찾아오는 문제들이 두렵습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았고 자신이 고난 속에서 순례의 길을 행하며 무슨일을 하고 있는지 알았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에 확신했습니다. 왜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고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예배를 포기합니까? 예배를 포기한다는 말은 이 길을 가지 않겠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 문제들이 두려워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길로 들어서면 모든 문제는 문제가 아닙니다. 바울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사실 저는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나중에는 유두고가 죽었어도 상관없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문제가 증거가 되게 하셨습니다. 부활절에 진짜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런 침착함이 있길 바랍니다. 문제가 올 때 당황하지 않고 가만히,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 마지막이라면_사도행전20:11

 

올라가 떡을 떼어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_사도행전20:11’

 

참 바울도 대단합니다. 유두고가 죽었고(또 살아났지만) 그런 소요가 있었는데 다시 올라갑니다. 저 같으면 이쯤 하자, 그만 하자, 아니 여러분 같으면 그만 합시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과 말씀을 받았던 그들은 다시 올라 가서 날이 새기까지 말씀을 나누고 포럼을 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직 다 하지 않은 것입니다. 다 전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완벽하게 전할 때 까지는 문제가 와도 괜찮고 위기가 와도 뛰어 넘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을 다하는 동안 문제가 와도 뛰어 넘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도 직장에서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겨내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신앙은 그만 두는 것입니까? 천국을 아직 보지 못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마지막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다음 주에 살펴보겠지만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면 자신이 그 이후에 로마로 잡혀갈 것을 예상했습니다. 여러 가지 정황상 다시는 이 길을 가지 못할 꺼라 생각했던 바울은 예루살렘까지 서두르면서 갔지만 이렇게 중요한 곳에 머무르면서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먹이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곳 드로아를 마지막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는 유두고의 사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모인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 전하고자 다시금 다락으로 올라간 것입니다.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말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무엇이 중요한지 붙잡아야 합니다. 인생의 마지막이라 생각했을 때 무엇을 붙잡겠습니까? 천국을 본다면 기쁘게 대가를 치르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문제가 오거나 신앙생활을 하기 위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금 말씀 듣는 자리, 예배의 자리로 되돌아오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그렇게 해야 살게 됩니다. 사탄이 가라지를 뿌려 문제를 주기도 하지만 문제 삼지 말고 침착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소망삼아 살아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신앙생활을 입구에서 멈추거나 입구에서 서성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실 신앙생활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_히브리서10:19-25’

 

하나님의 앞으로 가는 것은 그냥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길이 살 길임을 아는 자들이 가는 것입니다. 말세 때에는 예배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임을 중요하지 않게 여깁니다. 교회들이 고민이 많은지 새가족 초청잔치 이런 것을 하면 연예인을 부르거나, 특별한 프로그램을 많이 합니다. 이해는 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예수 믿게 하자 이런 마음일 것입니다. 부활절에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하는 모임에 우리는 함께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날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나누는 거룩한 공회 곧 교회에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그 안에 들어가도록 대가를 치르십시오.

진욱집사님은 술을 못 드십니다. 그래서 회사에서 늘 회식을 하면 운전을 다 해준다고 합니다. 그럼 손해잖아요. 제가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참 좋아하겠다. 술 안 먹고 열심히 일하니까. 속으로는 안주도 드시지 마세요라고 생각했습니다. 안주를 먹었으면 계산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좋아하지요. 저는 이러한 것이 즐거운 대가라 생각합니다. 손해 보는 것이 신앙생활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대가를 치르면 반드시 다른 응답이 있습니다.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을 봐야 합니다. 대가 없이 가정복음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대가 없이 자녀를 복음엘리트로 키울 수 없습니다. 자신에게 거룩한 모임에 함께 하도록 말씀을 듣는 자리에 함께 하도록 권하시기 바랍니다. 예배를 회복하고, 은혜 받는 자리에 가는 것을 회복할 때 또 다른 응답을 하나님이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이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권하십시오. 서로 돌아보고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하여 예배로 안내하시길 바랍니다.

 

 

주님 우리가 하는 신앙생활이 마지막이라는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게 해주세요. 우리의 신앙생활은 다른 사람을 살리는 모든 삶속에서 이루어지게 해주세요. 생명의 말씀을 전하여 영혼을 살리는 일에 우리 인생이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그 일에 대가를 치르는 신앙을 주셔서 하나님의 역사 속에 들어가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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