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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8 주일 2부 예배

< 주일 2부 예배 >

일시: 2015년 03월 08일

제목 : 바울의 관심

말씀 : 사도행전 21:27-40    

설교 : 오승주 목사


2015-03-08 주일2부예배.hwp




음성 다운로드 http://bit.ly/1ASbswe

영상 다시보기 https://vimeo.com/121582886



2015-03-08 주일 2부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 문제

 

지금 세상은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작은 문제 하나 이기지 못하는 성도와 교회가 되었을까요? 제가 이전에 광주에 살 때 어떤 집에 심방을 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갔는데도 계속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아들이 수학시험을 잘 못 본 것을 가지고 싸우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신앙은 바르게 아는 데서 시작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사람이 싸웠을 때 누군가에게 가서 좋지 않은 감정으로 이야기 하는 것을 듣고 한명이 잘못했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한쪽 이야기만 듣고 상대방을 평가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아는 만큼만 마음을 정하고 가게 됩니다. 한 가지 조심할 것은 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기억하는 것을 가지고 다 알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기억과 아는 것은 다릅니다. 더구나 기억이 정확한 것도 아닙니다. 기억조차 내가 기억하고 싶은 데로 기억할 때가 잦습니다. 그것이 사람마다 서로의 기억이 다른 이유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르게 아는 것이야 말고 신앙의 바른 기초가 됩니다. 잘못 알면 얼마나 큰 화근이 되는지 모릅니다. 차라리 몰랐으면 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으로 알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연구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산속에서 혼자 명상한다고 알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특별한 사람이 특별한 훈련을 통해서 깨달았고 알았다 치더라도 그것이 진리인줄 누가 알 수 있습니까? 제 신앙은 하나님께서 누구나 알 수 있도록 말씀을 주셨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알도록 예수님이 오셨고, 모든 사람이 듣도록 말씀을 주시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문제가 계속 된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내안에 내 삶에 내 현장에 흘러들어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신앙생활을 하면서 잘못된 앎을 가지거나, 착각하면 큰 화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올바른 교회, 올바른 신학, 올바른 설교가 중요합니다. 성경은 문제를 당하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생각하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_로마서8:18’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며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_로마서8:24-25’

 

이 말씀이 왜 중요한지 본문을 살펴보려 합니다.

 

. 유대인의 분노

 

오늘 말씀은 유대인들이 분노하는 장면입니다. 절제할 수 없어 바울을 죽이려 하는 장면입니다. 도대체 유대인들은 무엇에 그리 분노했을까요?

 

1.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_사도행전21:28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_사도행전21:28’

 

유대인들의 사상을 이해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스스로 선민이라 생각했습니다. 자신들만 하나님께 선택받았다고 확실하게 믿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구약시대 내내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또한 예수님을 그들이 기다린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지만, 예수님이 그들의 율법과 다르게 행동하셨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나고 이방인을 전도하여 그들이 구원받았다 하니 이제는 그들이 분노를 넘어서서 완전히 흥분상태까지 이릅니다. 그런 배경 속에서 오늘 바울일행이 예루살렘교회의 장로들의 지도를 받아 율법에 따라 성전에서 제사를 지내기까지 머물러 있으니 그 모습을 보고 분노한 것입니다.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는 것입니다.

 

2. 그들의 오해와 착각_사도행전21:29

 

이는 그들이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시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이러라_사도행전21:29’

 

그들이 분노하여 오해하였고, 착각하였습니다. 드로비모라는 인물은 에베소의 이방인으로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로서 에베소교회의 평신도사역자였습니다. 드로비모는 에베소에서 예루살렘을 후원할 때 직접 헌금을 가지고 간 인물이기도 하고, 바울을 따라 아시아까지 전도여행을 함께 한 제자였습니다. 그는 두란노에서 훈련을 받았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런 드로비모가 바울이 성전에 들어가서 예식을 행할 때 성전주변에서 서성였습니다. 그런데 그걸 오해하여 바울을 고발하였습니다. 드로비모는 이방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은 성전에 들어가면 사형에 처하였을 만큼 중죄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드로비모가 성전 주변에 서성인 것을 보고 그가 성전에 들어갔다라고 착각할 만큼 흥분한 것입니다.

 

3. 그를 죽이려 할 때에_사도행전21:31-34

 

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그가 급히 군인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그들이 천부장과 군인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 지라 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그가 누구이며 그가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니 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는 이런 말로, 어떤 이는 저런 말로 소리치거늘 천부장이 소동으로 말미암아 진상을 알 수 없어 그를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니라_사도행전21:31-34’

 

결국 유대인들은 그들의 법대로 바울을 죽이려 했습니다. 정확하게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분노와 흥분 속에서 바울과 일행들을 죽이려 한 것입니다. 얼마나 상황이 급박했던지 예루살렘이 요란하여 군대의 천부장에게까지 소동이 들릴 정도였습니다. 아마 군대가 막지 않았다면 그를 죽였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이 분노하고 흥분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구속사적 관점으로 볼 때 이해가 됩니다. 바울이 로마에 복음을 전해야 하기 때문에 그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고발을 당하고 로마법정에 서게 되는 절차임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사건에 이유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 바울의 관심

 

1. 바울의 침묵_사도행전21:35-36

 

바울이 층대를 이를 때에 무리의 폭행으로 말미암아 군사들에게 들려가니 이는 백성의 무리가 그를 없이하자고 외치며 따라 감이러라_사도행전21:35-36’

 

하나님의 이유를 알았던 바울은 그들의 분노와 흥분, 심지어 그들의 폭행에도 침묵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의 분노와 흥분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분노하고 흥분하여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이러 다녔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유대인 중에서도 지도층이었으며 그도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죽일 만큼 율법에 있어서 최고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주님을 만나니 모든 것이 뒤바뀐 것입니다.

제가 억울한 일을 당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누가 저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왜 가만히 계셔요?’ 사실 주님께 받은 사랑에 비하면 이 정도 억울함은 참는 것이 아니라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그때 싸우지 않았던 것은 그것으로 인해 관련된 사람들이 훗날 복음을 받지 못할까 하여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마음으로 참기도 하였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의 분노와 흥분, 그리고 그들의 폭행을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렵다 그래서 억울해서 불신자스럽게 살면 안 됩니다. 은혜, 구원을 받았기에 당연히 우리는 핍박도 즐거운 일이고 약간의 고난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바울의 준비-사도행전21:37

 

바울을 데리고 영내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 이르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_사도행전21:37’

 

그렇게 침묵했던 바울이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 언제입니까? 바울을 데리고 영내로 들어가기 직전입니다. 이제 들어가면 저들을 영원히 보지 못한다는 생각에 바울은 천부장에게 부탁을 합니다. 바울은 가장 중요한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슨 때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때입니다. 바울의 소원은 그 시대의 가장 강대국인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로마로 갈 방법이 없었고 로마의 법정에 서기 위해 죄인으로 서는 것 밖에 없다 확신했습니다. 그냥 가기에는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며, 또한 갈 길이 너무 멀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 사실을 알기에 너무나도 침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은혜로 배려하고 양보하지만 내적으로는 철두철미해야 합니다. 때를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아주 멋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불신자 가정에서 신앙생활하십니까? 너무 힘들고 어려운 직장에서 신앙생활하고 계십니까? 그곳에서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써 무엇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이니 그냥 침묵하고 기다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를 준비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관심-사도행전21:39-40

 

바울이 이르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시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말로 말하니라_사도행전21:39-40’

 

바울의 마음에는 온통 하나님의 관심으로 가득 차 있었음이 틀림없습니다. 깨닫지 못한 유대인들과 수많은 이방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간증하기 위해서 로마가 가장 빠른 방법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유대인들의 착각으로 인한 분노와 심한 폭행에도 침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불쌍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주님을 만나지 못해서 예전의 자신처럼 그렇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바울은 하나님의 관심이 그들을 살리는데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 그림이 엄청나게 크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희생하여 로마에 가는 것이 더 유익함을 알았습니다. 그것을 안 바울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에게 설교를 합니다.

여러분의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도대체 한국교회는 왜 싸우고 있습니까? 도대체 그리스도인들은 다 어디에 있습니까? 관심이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 아닌가요? 하나님의 관심인 영혼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면 우리는 침묵하며 준비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 때가 오면 담대히 선포해야 할 것입니다.

가정을 복음화하기 위해 20년이 걸렸습니다. 물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언젠가는 하시겠지. 언젠가는 하시겠지.’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언젠가 하셨습니다. 저는 가스펠교회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나 항상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여러분이 증인이 되어 우리교회가 준비가 될 때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셨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최고이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아무것도 문제되지 않습니다. 다 양보할 수 있고, 또 어떤 문제가 와서 꿈적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을 안다면 분노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기 바랍니다. 가스펠 교회의 주역들이 되기 바랍니다. 이 교회의 주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스스로 로마 복음화의 주역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그렇게 해서 무엇을 하려고 합니까? 한국교회를 살릴 것입니다. 우리 후대들에게 교회가 소망이라는 것을 말해줄 것입니다. 여명원을 통해 많은 후대들을 살릴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직 떠나지 않으셨다는 것을 증거 하려 합니다. 교회는 이 땅의 희망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을 받는 가스펠 성도님과 우리교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주님의 관심은 어디에 있나요? 우리는 주님의 관심에는 관심이 없었고 저들처럼 세상의 것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주님을 우러러 보길 원합니다. 그때라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관심이 있는 곳이라면 억울해도, 문제가 와도, 때론 손해가 되어도 침묵하고 견디렵니다. 아니 견디는 것이 아니지요. 이미 주님께 모든 사랑을 다 받았기에 기꺼이 가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