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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9 주일 2부 예배

< 주일 2부 예배 >

일시:  2015년 03월 29일

제목 : 담대하라

말씀 : 사도행전 23:1-11

설교 : 오승주 목사


2015-03-29 주일2부예배.hwp



음성 다운로드 http://bit.ly/19uRMZe

영상 다시보기 https://vimeo.com/123529814



2015-03-29 2부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 양심이 공격받는 세대

 

1. 깨끗하고 선한 양심_사도행전23:1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에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_사도행전23:1’

 

복음을 알게 되면 깨끗하고 선한 양심을 생깁니다. 이것은 엄청 힘들거나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 선한 양심을 갖는 것이 힘들까요? 하나님을 떠나 죄인으로 사단의 종노릇하니 깨끗하고 선한 양심으로 살기가 힘듭니다. 그런데 죄인임을 깨닫고 말씀을 따라 살면 사람이 됩니다. 인간답게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는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신학에는 값싼 구원론이 흐르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죄를 짓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돌이키고 회개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괜찮아'라고 합니다. 예수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 가장 인간답게 바뀌는 게 정상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신앙생활하면서도 왜 정상적이지 않게 될까요? 복음을 잘못 들어서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세례요한으로 아니까, 예레미야로 아니까, 선지자 중에 하나로 아니까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 전통을 따라 살려하고, 사두개인처럼 세상의 것을 좇아 사는 것입니다. 바울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따라 살았습니다. 엄청 힘듭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다 비정상이니 정상으로 사는 것이 엄청 손해 보며 사는 것 같습니다. 멍청해 보이고, 바보 같아 보입니다. 예배드리고 사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미련해보입니다.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고 선교를 위해 헌금을 하니 멍청해 보입니다. 돈을 더 모아야 잘 살 것이라 가르치는 세상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그렇게 말합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똑똑했던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 변화됩니다. 하나님께 다 드려도 갚을 수 없는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께 내 인생을 다 드려도 그 사랑을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 인생 다해 주를 위해 살아도 내가 받은 구원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양심에 질문만 제대로 해도 구원받을 길이 열립니다.

 

2. 세상의 방식과 견딜 수 없는 분노_사도행전23:2-5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 바울이 이르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 곁에 선 사람들이 말하되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 바울이 이르되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 줄 알지 못하였노라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성의 관리를 비방하지 말라 하엿느니라 하더라_사도행전23:2-5’

 

그런데 예수님이 직접 가르쳐도 깨닫지 못했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바울의 간증을 듣겠습니까? 예수님이 그들을 떠나라 했습니다. 세상 방식을 따라 사는 그들을 떠나야 합니다. 그들을 스승삼아 사는 자들은 늘 분노합니다. 조금만 손해를 봐도 견딜 수 없어합니다. 조금만 자존심상해도 화를 냅니다. 대제사장이라 자존심이 더 상합니다. 더 분노가 납니다. 사람이 자리가 위태로우면 그런가봅니다.

사실 저도 그랬습니다. 내 모습을 먼저 봐야 하는데 늘 남의 잘못만 보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한 양심이 없으니 그렇습니다. 세상권력을 가진 자들은 그것을 이용해 양심을 공격합니다. 그렇게 막으면 막히는 줄 아나봅니다. 오늘 말씀은 1부 예배와 비슷한 상황입니다. 예수님을 그렇게 막으면 자기들이 승리한 줄 알았습니다. 바울을 이렇게 막으면 이기는 줄 알았나봅니다. 그러나 진리를 권력으로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선한 양심을 공격하지만,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는 세상은 참 미련하고 어리석은 세대입니다.

 

. 미련하고 어리석은 세대

 

1.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의 다툼_사도행전23:6-7

 

바울이 그 중 일부는 사두개인이요 다른 일부는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어지니_사도행전23:6-7’

 

그들은 선한 양심이 아닌 종교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잘못하다가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붙잡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어 예방주사를 맞아야 합니다. 오늘 오전 말씀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바리새인은 구별되고, 분리된 자들이란 뜻입니다. 경건한 자들의 무리인 이들은 말씀을 거룩하게 지키고 살겠다고 분리되어 나왔습니다. 시작은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거룩하게 살고자 분리되니 자기들이 너무나 거룩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천사, 천국, 부활, 성령을 믿고 하나님이 순전하고 거룩하심을 믿는 자들이었는데 자신들이 너무나 특별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에게는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칭찬보다는 사람의 칭찬을, 내용보다는 형식을, 사람보다는 전통을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자들입니다.

사두개인은 다윗 시대 제사장 사독의 후손들입니다. 정통파 출신으로 부와 지위를 모두 거머쥔 사람들로 천년동안 살다보니 이 세상이 너무 좋습니다. 그래서 부활을 부인하게 되고, 천국도 없고, 성경을 윤리규범정도로만 여기게 되었습니다. 영혼도, 초월적인 하나님도 부인하고 예정론에 반대해 인간의 자유의지를 주장하는 세속주의자이자, 합리주의자가 사두개인입니다. 당시 기득권과 지식층은 거의 사두개파였고 사두개파에 속한 것이 큰 자랑거리였습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진리보다는 큰 교회, 좋은 직장 같은 것이 중요하고 성도보다는 성장, 가족보다는 돈이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사독의 후손이 사두개인이 되고, 율법을 진실되게 지키려던 바리새인이 변질되는 것을 보며 장담할 인생이 없음을 묵상했습니다. 제 자신부터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으로 예방주사를 맞습니다.

 

2. 자신이 주장하는 것을 위해서라면_사도행전23:8-9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이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크게 떠들새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니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냐 하여_사도행전23:8-9’

 

왜 다툽니까? 원래 두 분파는 힘을 모아 바울을 공격했었는데 갑자기 바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바리새인들이 중 똑똑한 서기관이 일어나 이야기합니다. '바울의 말이 맞지 않는가?' 바울과 싸우다가 생각해보니 사두개인들이 더 나쁜 것입니다. 그래서 또 다툽니다. 자신이 주장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상황도 환경도 상관없습니다. 세상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교회라도 그렇게 되지 않으란 보장이 있습니까? 말씀을 놓치면 이렇게 됩니다. 예배를 놓치면 이렇게 됩니다. 자신의 주장이 다 옳다고 합니다. 그것을 위해 양심을 팔아버리는 세대입니다. 이런 세대는 답이 없습니다.

 

3. 답이 없는 세대_사도행전23:10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은 바울이 그들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인을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내로 들어가라 하니라_사도행전23:10’

 

두 분파가 싸웁니다. 크게 싸웁니다. 로마의 천부장이 보니 웃기는 일입니다. '저들이 바울을 죽이라 할 때는 언제고 서로 싸우네?' 지금 교회가 그런 모습입니다. 누가 옳은지 상관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도 상관없고, 현장에 죽어가는 영혼들도 관심이 없습니다. 오로지 자신들의 주장을 위해 합쳤다가 나누어졌다가 힘을 모았다가 싸웁니다. 그러니 우리 후대들은 교회가 가기 싫습니다. 교회에서 젊은이를 이해 못해줘서 안 가는 것이 아닙니다. 젊은이들의 문화를 못 만들어줘서 안 가는 것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답을 줘야할 교회가 답을 안줘서 그렇습니다. 젊은이들은 진리에 목말라서 교회를 가는데 기껏해야 열린 예배니 젊은이 예배니 해서 수준 낮은 문화를 보여주거나 전문성 같은 것을 준다고 하니 웃기는 것입니다. 사람 모으려고 만든 프로그램이 사람을 떠나게 만듭니다. 저는 우리교회 젊은이들에게 부탁드립니다. 예배를 회복하십시오. 예배외에 교회는 다른 것이 필요치 않습니다. 성경을 읽으십시오. 진리를 목말라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일에 소홀히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것을 해낼 때 여러분이 미래의 주역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늘 우리 기준으로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앙고백을 제대로 하는자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답도 없는 세대에 답을 줄 수 있습니다. 안그러면 천부장 같은 불신자들에게 웃음거리밖에 안됩니다. 결국 웃음거리가 되어 바울을 데리고 빠져나갑니다. 수준 낮은 종교인들을 보니 대책도 없습니다.

. 담대하라

 

우리는 담대해야 합니다. 무엇에 담대해야 합니까? 여러분은 복음을 알고 있는 진정한 크리스천입니까? 그렇다면 정말 담대하십시오. 세상에 대해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바울처럼 영적인 실력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실력일까요? 바울을 보시지요.

1.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곁에 서서_사도행전23:11a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_사도행전23:11’

문제를 만났을 때 사람들은 자기 주장을 하다 싸움을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침묵하고 침묵하고 하나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바울은 그날 밤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곁에 서서 이르시되' 이정도로 신앙생활하셔야 합니다. 매일 밤, 매일 아침 여러분의 시간 속에 주님이 곁에 서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그 정도로 신앙생활하셔야 세상에 대해 담대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하루종일 말씀을 묵상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손해 볼지라도 그렇게 하렵니다. 그런데 손해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사람들은 말씀에 갈급해합니다. 돈도 있어봤는데, 성공도 해봤는데 영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고통 받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한테 전문성이야기하고, 성공하는 방법이야기하면 웃습니다. 말씀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포럼을 나눠야 합니다. 처음에는 부끄럽다 생각했습니다. 저희 가정이야기가 부끄럽고, 제 무능함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간증이 되었습니다. 문제가 있기 때문에 말씀묵상도 되었습니다.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이처럼 신앙생활하기 바랍니다. 가스펠교회에 가면 말씀묵상하고 포럼하는 것을 꼭 해야 한다는 소문이 나야 합니다.

2. 담대하라_사도행전23:11b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_사도행전23:11’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저와 여러분보고 담대하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부끄러워합니다. 무엇을 부끄러워합니까? 내가 믿는 예수님을 부끄러워합니다. 그것은 내 삶이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요? 선한 양심을 가지지 못해서 그런 것 아닙니까? 저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부끄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알아줍니다. 담대하십시오. 크리스천답게 살면 담대할 수 있습니다. 왜 담대하지 못합니까? 무엇이 두렵습니까? 담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3.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하여야 하리라_사도행전23:11c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_사도행전23:11’

 

왜 담대하라고 하십니까? 로마에서도 간증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만난 예수님을 로마에서도 간증하라는 것입니다. 이번 주 말씀을 묵상하여 받은 은혜를 여러분의 로마에서 간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루살렘에서 할 수 있어야 로마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교회입니다. 말씀을 묵상하여 깨달은 바를 교회에서 포럼하셔야 여러분의 현장에서도 간증할 수 있습니다. 그를 위해 매일 주님이 곁에 서서 말씀하시듯이 말씀을 부여잡고 묵상하고 그리고 세상에서 선한 양심을 가지고 담대하게 믿음의 사람으로 살길 바랍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현장에서 그 은혜를 간증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증인으로 살기 바랍니다.

 

주님 우리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길 원합니다. 올바른 말씀과 올바른 기도로 우리 삶이 하나님 앞에 선한 양심으로 살길 원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 담대하게 살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