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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1 주일 2부 예배


2015-10-11 주일 2부 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2015-10-11 주일2부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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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신앙생활의 목적

여러분은 신앙생활의 목적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많은 성도님들이 복음의 기본은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가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자가 구원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고백 자체가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쉽게 하 수 있는 고백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고백이 삶으로 연결되는 믿음을 가지기까지 쉽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신앙‘생활’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중요합니다. 사악한 존재가 마음에 왜곡된 진리를 심어주면 그 다음에는 성경 말씀을 들어도 이해가 안 된다고 하고, 받아들여지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파멸로 가버리고 맙니다. 무섭고 악한 자가 마음을 사로잡기 전에 우리는 성령에 의하여 생명의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사실, 한국교회는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들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중에 가장 큰 문제가 이단이었습니다. 온갖 이단들이 일어나니 그때부터 복음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시다. 나의 생명이시고, 나의 주님이시고, 나의 왕이시다.’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복음의 기본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지식으로, 입의 고백으로만 끝나버립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믿음이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님들이 세상에 당하고 살게 됩니다. 그들의 먹이가 됩니다. 어쩔 때보면 속수무책일 때가 있습니다. 왜 그렇지요? 분명히 머리로도 알고, 입으로도 하나님을 시인하지만, 문제는 삶으로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시인하면서 삶에서는 불법을 행하고, 성공을 위해, 세상 복을 위해 불신자와 같은 선택을 합니다.

여러분은 아무도 없을 때 참 그리스도인이 맞으시나요? 요즘 저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고, 저희 교회에 가장 많이 하는 질문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정말 많은 사역을 하지만 불법 곧 세상적인 기준, 세상적인 방법을 이용하여 가고 있습니다. 에이 목사님 정말 그렇습니까? 라고 물어보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경은 형제를 미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위선자라 요한일서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교회에서는 편을 가르고, 불쌍한 사람들을 외면하지요? 영적으로 힘든 사람들을 외면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교회에 와서 신앙의 과정도 필요 없이 대단한 사람으로 편견을 가지게 만듭니다. 교회는 본래 그 사랑으로 하나 되도록 만드셨습니다. 교회는 주님과 친밀해야 합니다. 성도는 주님과 친밀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그런데 주님과 친밀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과도 갈등이 있고, 교회에 와도 적응이 안 된다 합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이 무엇이냐? 믿음입니다. 어떤 믿음이냐? 예수님을 삶에서 믿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사는 삶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자유입니다.

Ⅱ. 진정한 자유

1.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는 것_로마서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_로마서8:1-2’

그런 믿음을 가지면 진정한 자유가 생깁니다. 그런데 자유를 오해합니다. 마음대로 사는 것을 자유라 착각합니다. 마음대로 산다고 살아지면 너무 좋겠는데 타락한 인간이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바울은 인간이 죄를 이길 수 없다고 로마서에 밝히고 있습니다. 죄의 종노릇 하고 있는 인간이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요? 심지어 어린 아이들도 가르치지 않는 거짓말을 하고, 이기적이고, 악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인 성경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자유는 무엇인가요?

첫째,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절대 우리 인간 스스로 해결 할 수 없는 문제가 바로 죄와 그 대가인 사망입니다. 그것이 법으로 묶여있을 정도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잘나간다 해도, 대단한 일을 한다 해도 이 부분을 해결 받지 못하면 인생이 끝날 때 지옥에 가게 됩니다. 여러분이 믿지 않더라도, 전 세계 인구가 다 믿지 않더라도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죄의 종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온갖 교육, 사회제도, 정치 모든 것을 다 해보지만 재앙과 저주는 막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부정부패 지수가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그뿐 아니라 자살, 마약, 가정문제, 윤락 등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교육이 문제인가요? 정치가 문제인가요?

영적인 눈을 떠야 합니다. 저는 신앙생활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이렇게 목회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 목회자이지만 정말 다른 걱정이 없습니다. 저는 이 시대 목회자들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걱정이 들지 않습니다. 왜인 줄 아시나요? 저는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이 제 삶에서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일 감사가 나옵니다. 돈이 있든 없든, 누가 알아주든 말든, 능력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이 은혜를 누립니다.

2.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_로마서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_로마서8:3’

두 번째, 진정한 자유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십자가고난을 당하시는 것이 두려워 3번이나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기도하시는 모습이 무능해보이나요? 연약해보이십니까? 십자가를 지시는 것은 그 당시에 사람들에게 조롱거리였고, 부끄러움이었겠지만 결국 그렇게 조롱하고 부끄러운 존재라 생각했던 자들을 살리는 능력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절대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믿으면 어떻게 되느냐면,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자가 됩니다. 다시 말해, 낮아집니다. 낮아져야 살릴 수 있습니다. 아니 낮아져야 자신도 살 수 있습니다. 아무리 척 해도 그건 사실이 아니잖아요. 옷 잘 입고 좋은 데 산다고 해도 그건 진실이 아니지요. 예수님을 만나야 하는데 연약함을 인정할 때 만나주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고백할 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3. 말씀의 요구를 이루는 것_로마서8: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_로마서8:4’

세 번째, 말씀의 요구를 이루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진정한 자유는 부모님을 떠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학생의 진정한 자유는 선생님을 떠나고, 학교를 떠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건강은 좋은 음식과 좋은 생활습관을 떠나서 얻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진정한 자유는 말씀을 떠나서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좋은 것임을 깨닫지 못하면 부모님이 싫고, 학교가 싫고, 좋은 생활 습관, 좋은 음식이 싫습니다. 늘 투덜거리고, 짜증내며 삽니다. 그러나 철이 들면 깨닫습니다. 부모님의 헌신을 깨닫고, 학교에서의 교육이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힘들지만, 좋은 생활습관을 가지면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복음을 알고 꼭 하는 영적인 습관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여러분과 나누는 묵상일기를 쓰는 것입니다. 그 시간에 말씀을 내게 적용하여 하나님 앞에서 바른 생각, 바른 선택을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저를 얼마나 올바르게 인도하는지 모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말씀이 들리지 않는 사람들, 말씀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안타깝지만 사실입니다. 그러니 방종을 하고, 세상을 아까워하여 믿음을 선택하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절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맛볼 수 없겠지요.

4. 영의 생각을 하는 것_로마서8:5-6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_로마서8:5-6’

네 번째, 영의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라 하셨습니다. 반대로 영의 생각은 생명이고 평안입니다. 오전에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영의 생각이 무엇이지요? 산에 가서 기도 많이 하는 것이냐? 그렇게 해놓고 뒤돌아서서 자기 방식대로, 자기 의를 위해 삽니다. 그것은 영적인 삶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는 세상에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빛과 소금이 되라 하셨습니다. 생명이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그들에게 예수님을 설명할 수 있나요? 영의 생각은 그런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셨듯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_로마서8:7-8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_로마서8:7-8’

다섯 번째, 진정한 자유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이 정말 많이 와 닿습니다. 육신을 좇아 사는 자들은 절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관심도 없습니다. 우리 먹고 살 것, 우리 잘되는 것, 우리 성공하는 것, 우리 알아주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다윗은 항상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자 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하루 종일 묵상했습니다. 다윗은 진정한 자유를 누렸습니다. 광야에 있든지 위기에 처해있든지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좋아했습니다. 그런 다윗의 인생에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6. 그리스도의 영과 함께 하는 것_로마서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_로마서8:9’

마지막으로, 진정한 자유는 그리스도의 영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은 성령입니다. 우리는 성령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마귀가 우리를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오신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이 복음인지, 무엇이 살길인지, 무엇이 진리인지를 알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성령 받은 성도님들은 다 분명한 복음을 알게 됩니다. 마귀가 역사하고 우리를 미혹하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무방비상태로 내보내실까요? 우리는 세상에 가야 합니다. 교회에 계속 머물면서 예배만 드리고 살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능히 지키시고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힘을 공급해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나는 죽고 예수는 사는 십자가 복음입니다.

Ⅲ. 죽을 몸도 살리시는 하나님_로마서8:10-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_로마서8:11’

그 십자가 복음을 붙잡는 자를 하나님은 살리십니다. 여기서 우리의 죽을 몸도 살린다는 것은 마지막 때의 부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분명하게 우리는 예수님과 부활하게 됩니다. 그러나 저는 이 말씀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서도 적용되는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죽을 몸이 살아나게 된다는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으면 삶이 변화된다고 믿습니다. 미워하던 삶이, 원망하던 삶이 변화되어 사랑하고 용서하는 삶이 될줄 믿습니다. 세상 유혹에 빠져 쾌락을 추구하고, 중독되어 살던 삶이 말씀을 의지하고 예수님을 가까이 하는 삶으로 바뀌게 될 줄 믿습니다. 사람을 의지하고, 돈과 명예를 바라보고 살던 사람이 예배가 좋아 예배를 드리기를 즐겨하고 그 안에서 참 자유를 좇아 사는 신앙생활로 바뀌게 될 줄 믿습니다. 죽을 몸이 살아 하나님을 예배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자유가 아니겠습니까?

✔ 주님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해주세요.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함으로 구원받았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지만, 거기서 머물지 않고 우리의 죽을 몸까지도 살리는 은혜가 있게 해주세요. 죽을 가정, 죽을 현장까지도 살리는 은혜가 있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