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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2 주일 2부 예배



가스펠교회 주일2부예배 20151122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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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_로마서9:1-2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_로마서9:1-2’

오늘 본문의 바울은 큰 근심이 있다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바울같이 믿음이 좋은 사람이 어찌 저런 근심과 고통이 있다고 했을까요? 바울의 근심은 좋은 집, 좋은 환경, 병이 낫기를 구하는 육신의 근심이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갖고 싶어서 조바심 내는 야망의 고통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끊임없이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그럼 진정으로 값진 것을 원하고 있는지 그 내용을 우리는 봐야 합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정말 원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였냐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목숨과 바꾸어도 아깝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로마서는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이후에 쓴 것입니다. 다시 말해, 바울이 전도를 시작한 후 20년이 지났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그가 항상 전도여행을 다니면서 먼저 찾아간 곳이 유대인의 회당입니다. 사실 바울에게는 딜레마였을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자신이 전한 복음을 듣고 믿어 돌아오는데 20년이 지나도록 자신의 혈육인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바울이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제가 봐도 에베소서나 골로새서의 결혼이야기를 보면 그가 결혼하지 않고 그렇게 잘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는 20년 전도여행을 하는 동안 늘 혼자였습니다. 아마도 그가 예수를 믿자 명문 가문이었던 그의 가족들을 그를 외면했을 것입니다. 바울이 얼마나 자괴감이 들었을까요? 지금 가스펠 교회에도 아직 돌아오지 않는 가족들이 있는 가정들이 많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 역시 가정을 위해 기도하던 지난 시절이 떠오릅니다. 가족들을 생각하는 바울의 근심과 고통을,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가족구원을 얼마나 기도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Ⅱ. 내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1.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_로마서9: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_로마서9:3’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인 전도자였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온 일생을 바친 사람입니다. 그런 바울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까지 고백하면서 간절히 원했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요? 바로 자신의 형제 골육의 친척들이 예수님을 만나는 것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울의 간절함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만나고 영적인 세계에 대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무엇보다 성경에 대해 눈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인 가족들이 누구보다 안타까웠습니다. 예수님을 죽인 것도 모자라 핍박하고, 틀린 신앙을 가지고 있었으니 얼마나 안타까웠을까요?

저희 큰누나가 있습니다. 저희 가정에 제일 먼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사실 누나가 나이도 있고, 배우지도 못했고, 가난했기 때문에 다르게 내세울 것은 없습니다. 다시 말해, 복음을 동생들에게 전하는데 가끔 문제도 있었습니다. 저희 셋째누나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받고 가까운 교회에 나갔습니다. 사실, 그래도 문제는 안 됩니다. 그런데 큰누나는 그 교회에 가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갈등도 있었습니다. 교회라도 다 같은 교회가 아닙니다. 복음을 말해주는 교회를 가야합니다. 지혜가 없었다고 합니다. 관계도 잘못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 말입니다. 만일 그런 관계나 수준 같은 것을 따졌다면 우리 가정은 예수님을 믿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간절함이 부족함을 다 뛰어넘게 하였습니다.

2. 구원은 인생의 최종 성공여부를 결정하는 기준_로마서9:4-5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_로마서9:4-5’

이렇게까지 바울이 가족구원을 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구원이야말로 인생의 최종 성공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가족들이 돈을 벌면 뭐하고, 학벌이 있으면 뭐합니까? 자녀들이 잘되거나, 건강하시면 뭐합니까? 구원이 없으면 다 망하는 겁니다. 구원이 없다는 것은 회복될 수 없는 멸망입니다. 여러분 누군가의 인생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최종 기준은 바로 구원입니다. 구원을 얻지 못하면 어떤 인생도 실패한 인생입니다. 반대로 구원을 얻으면 어떤 인생도 성공한 인생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는 것입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가 그 안에서 해결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바울의 가문은 대단한 가문입니다. 여러분 너무 잘 아시지요? 히브리인중의 히브리인이요 베냐민 지파요,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요 무엇보다 로마 시민권자였습니다. 대단한 배경을 가진 가문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습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은 폐하여지지 않습니다_로마서9:6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_로마서9:6’

사람들은 육신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쉽게 말씀이 폐하여졌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부족한데 저 대단한 가문을 보면 마치 말씀이 맞나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꾸 저들에게 맞추어가려고 합니다. 우리는 다 양보해도 말씀은 양보하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였다고 성경 말씀이 폐하여집니까? 로마의 식민 치하에서 300년 동안 지하 공동묘지 카타콤에서 생활했던 그리스도인들도 정말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면 우리를 이렇게 내버려 두시겠는가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폐하여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툭하면 말씀이 폐하여졌다고 합니다. 잘되면 잘되는 대로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 하고, 안되면 안 되는대로 하나님이 계시면 이럴 수 있느냐고 합니다. 예배드리면 밥이 나오나? 말씀을 묵상하면 가정이 변화되나? 참 어리석은 것이 우리들입니다. 저는 저희 큰누나의 신앙을 보았습니다. 한결같이 부족한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예배 앞에 세웠습니다. 그것이 비밀입니다. 가족들의 원성과 원망도 있었지만, 결국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붙잡는 내 신앙이 되어지면 가족들도 돌아옵니다. 그것이 안 되고 가족들과 어울린다고 되어 질까요?

4. 육신의 자녀가 아닌 영적인 자녀가 있어야 합니다_로마서9:7-8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김을 받느니라_로마서9:7-8’

아무리 훌륭한 목회자라 해도 자녀가 구원받지 못하면 실패한 가문이 될 것입니다. 부모가 교회를 많이 세워서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도 가족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면 실패한 가문이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자신들이 다윗의 자손이라고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딜레마입니다. 신앙은 부모의 것으로 대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는 육신적인 자녀로 키우실 것입니까? 영적인 자녀로 키우실 것입니까? 우리는 종종 내 욕심과 기대 때문에 자녀를 행위로 판단합니다. 행위로 판단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공부 좀 잘하는 자녀가 있으면 온 집안이 그를 우상 섬기 듯 합니다. 공부 못하고 속 썩이는 자녀가 있으면 저런 애가 왜 우리 집에 태어났지? 하면서 무시합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면서 그걸 놓치면 안 됩니다.

Ⅲ. 구원은 믿음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1.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_로마서9:9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_로마서9:9’

구원은 먼저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 믿음이 확실해야 합니다. 저는 불신자들을 전도한다고 그들이 하는 것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보았는데 틀린 것입니다. 술도 같이 먹어주고, 그들의 행위를 같이 옹호해주는데 틀린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더 그런 신자를 신뢰하지 않을 것입니다. 최소한 우리는 그들에게 '저 사람이 정말 믿음이 있구나!' 그것을 보여야 합니다. '정말 말씀으로 살아가는구나!' 그것도 없이 자꾸 이러 저리 바뀌고 흔들리고 마치 답을 모르는 것처럼 방황하면 절대 가족은 돌아오지 못합니다. 답은 말씀에 있습니다. 그렇지요? 아브라함과 사라가 그것을 믿어야 하는데 못 믿고 하갈을 얻어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구원은 육신을 따라가면 절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회개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게 될 것입니다.

2. 모든 것을 넘어서는 사랑_로마서9: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_로마서9:12’

구원은 모든 것을 넘어서는 사랑입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는 것입니다. 리브가에게 에서와 야곱이 있었습니다. 에서는 성실하고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구원받느냐? 아닙니다. 야곱처럼 거짓말 잘하고 문제가 많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은혜의 본보기입니다. 에서처럼 똑똑해도 그리스도를 모르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기준이 어디에 있냐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러한 관점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인간적으로 해석하면 이해가 안 됩니다.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자기주장이 강하면 그것이 안됩니다. 손양원목사님은 아들을 죽인 학생인 안재선을 양자로 삼았습니다. 반란사건이 진압된 뒤 사형 선고를 받은 그를 석방시켜달라고 간청하였고 석방되자 바로 입양했습니다. 사실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다들 미쳤다고 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관심은 구원에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 적용한 것입니다.

진정으로 구원을 원하는 자만이 인간의 모든 가치관과 능력과 죽음까지도 넘어서는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곧 십자가 사랑입니다. 교회를 다녀도 집집마다 해결되지 않은 부끄러움의 문제가 다 있습니다. 우리 집만 콩가루인 것 같고, 나만 그런 것 같아서 다들 속에다가 쇳덩어리를 안고 살아갑니다. 수치와 정죄의 덩어리 때문에 숨을 못 쉴 지경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 쇳덩어리를 녹입니다. 어떤 부끄러운 사연이라도 말씀으로 그것이 해석되면 모든 것이 풀립니다. 부끄럽기로 말하면 바울보다 더 하겠습니까? 그는 예수님을 핍박했고, 예수님을 믿는 자를 죽이려 했는데요.

믿음은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구원을 위해 쓰임 받으라고 저는 그런 환경을 주셨다고 믿습니다. 여러분 가정과 가문의 구원을 두고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육신적인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 앞에 우리를 먼저 세울 때 가능할 것입니다.

✔ 주님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구원이길 기도합니다. 구원보다 소중한 것이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안다면 내 골육의 친척을 두고 기도를 시작하게 해주세요. 육신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 말씀 앞에 나를 세우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길 수 있도록 축복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