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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1 주일 2부 예배


2016-02-21 주일 2부 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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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믿음이 연약한 자_로마서14: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_로마서14:1’

믿음이 연약한 자가 있습니다. 믿음이 연약하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의 의견은 틀릴 수가 있습니다. 그것을 받아드리지 못합니다. ‘왜 그런 믿음 없는 소리를 하냐’ 핀잔을 줍니다. 심지어는 비판까지 합니다. ‘아직도 복음을 깨닫지 못했냐’ 그래서 그들을 받아드리지 못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줄 아셔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주를 위하여 사는 것에 대해 정확하게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주를 위해서 사는 것인가? 우리는 말로만 주를 위해서 산다고 합니다. 주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드린다고 합니다.

지난주에는 선교대회가 있었습니다. 이번에 조금 힘이 들었습니다. 몸이 힘든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마음이 힘이 들었습니다. 다들 주를 위해 산다 해놓고 실제로 보면 자기 마음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이 힘이 듭니다. 제가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정말 많이 배웁니다. 분명히 선교대회 때 하나님은 말씀을 주시기를 인본주의를 쓰지 말라고, 완전 복음을 붙잡으라 말씀하셨고 모두가 아멘 했는데 나와서 싸웁니다. 싸우는 이유가 기가 막힙니다. 내 맘대로 하지 못하게 한다고, 내 뜻대로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전부 내 이익, 내 교회, 내 선교지 위해서 싸웁니다. 제가 보면서 많이 배웁니다. 과연 주를 위해서 사는 것은 어떤 삶일까?

Ⅱ. 너희가 받되

1. 비판하지 말라_로마서14: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_로마서14:1’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를 위해서 사는 것하고 비판하지 말라는 것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엄청난 상관이 있습니다. 연약한 자가 있습니다. 연약한 자를 받을 정도면 어느 정도 강한 사람이겠지요. 믿음이 좋아서, 은혜를 먼저 받아서, 축복을 받아서 하나님은 연약한 자를 붙이십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 방법입니다. 우리 교회도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신앙이 자라면 혼자 마음대로 더 즐기며 사는 것은 죄입니다. 그렇겠지요? 나는 누군가의 도움과 기도로 신앙이 자랐는데 나는 신앙이 생겨서 새신자나 연약한 자를 외면하면 될까요? 그렇게 연약한 자를 받았는데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들이 믿음이 없기 때문에 불신앙을 이야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2. 업신여기지 말라_로마서14: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_로마서14;3’

비판하지 않을 뿐 아니라 업신여기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연약한 자는 실수가 많습니다. 실수가 보이는 사람은 능숙한 사람입니다. 그렇겠지요. 저도 내가 잘하는 것이 있다면 그 일에 대해 누군가 실수하면 바로 보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기도를 많이 하면 기도 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게 마련이고, 내가 사역을 많이 하면 사역 잘 하지 않는 사람이 보입니다. 그것을 업신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헌금을 많이 했다고 해서 헌금을 작게 하는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전도를 많이 한다고 전도를 못하는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의 하인이 넘어지는데 그것을 업신여깁니다. 그를 일으켜 세워줄 것도 아닙니다. 남의 하인이니까요. 그를 누가 일으켜 세우지요? 주인이 일으켜 세웁니다. 우리는 쉽게 업신여깁니다. 가난하다고, 능력 없다고, 모자라다고 그런데 아십니까? 가스펠 교회 안에 연약한 자를업신 여기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가스펠 교회로 그들을 부르셨을 때는 구원하시기 위해 일으켜 세우시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3.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라_로마서14:5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_로마서14:5’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하시길 바랍니다. 사람들은 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마음이 다릅니다. 심지어 수준이나 시각도 다릅니다. 그래서 믿음은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기 마음대로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뜻대로 신앙생활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뭐지요? 각각 자기의 마음을 단속하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연약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어떻고 하게 마련입니다. 그 일에 휘말리지 말고 마음을 확정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면 반드시 저의 기준이 있습니다. '나도 저 사람처럼 부족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바뀌었다. 그래서 저 사람도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저 사람을 위해 기도하자.' 오히려 도우려합니다. 그것은 저에게 주신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확정하셔야 합니다.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확정하셔야 합니다.

Ⅲ. 주를 위하여

1. 자기를 위해 사는 자_로마서14: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_로마서14:7’

사람마다 자기를 위해 사는 자는 없습니다. 자기를 위해 죽는 자도 없습니다. 다들, 자기를 위해 사는 것 같지만 실제는 단 한명도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속해있거나, 마귀에게 속해있습니다. 다시 말해, 천국백성이냐 지옥백성이냐 둘 중 하나입니다. 죄인이냐 죄에서 해방된 하나님의 백성이냐 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위해 사는 것 같아도 결국은 하나님을 위해 살거나, 마귀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이왕 사는 것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자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주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이 주의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확신은 어디서 왔습니까?

2. 심판대를 벗어나는 길_로마서14:10-11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_로마서14:10-11’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믿음으로 심판대를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십자가의 사랑으로 완전한 죄인이었던 우리가 구원받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공로가 얼마나 포함되어있습니까? 손을 들 수 있나요? 기도 좀 하셨다고? 헌금 좀 하셨다고? 착하게 살았다고? 잘 모르는 소리입니다. 틀린 믿음이지요. 우리의 공로는 전혀 쓸모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 다 하나님을 떠난 완전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벗어나 거듭난 인생을 살게 된 것은 기적중의 기적이요, 은혜중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형제를 업신여기고 비판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구원을 못 받았다는 말입니다. 업신여기고 비판하는 사람은 분명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고 강력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런 것과 같습니다. 죄를 짓고 감옥에 갔는데 누군가 죄를 대신 해결해주어서 먼저 감옥에서 나가놓고 감옥 안에 아직 있는 사람들을 업신여기거나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니 구원받은 사람은 그럴 수 없다고 합니다.

3. 주를 위하여_이사야6:5-7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_이사야6:5-7’

주를 위하여 삽시다. 주를 위해 산다는 것은 우리가 은혜를 힘입지 않고는 불가능한 삶입니다. 부정한 우리의 입술이 거룩한 숯불로 지져 지는 것입니다. 숯불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제물을 태울 때 죄를 함께 태우는 것이 제사입니다. 우리의 죄를 태워버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완악한 마음, 남을 업신여기고 비판하는 입술을 태우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사입니다. 우리의 삶은 어떤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까? 주를 위해서 산다는 것은 매일 정말 주님의 은혜가 내게 머물러 있는지 정말 주님을 기준삼아 사는지 주님을 바라고보 사는지 확인하는 삶입니다. 그러면 누군가도 나와 같이 주를 위해 살도록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삶입니다.

✔ 주님 주를 위하여 산다고 하면서 사실은 나를 위해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바라보며 살게 하옵소서. 주를 위하여 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