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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9-01-13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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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3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세상의 도시, 하나님의 도시

본 문 :

창세기 11:1-9

오승주 목사

 

. 교회에 대한 가치_요한계시록12:13-17

 

교회에 대한 가치에 대하여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부분을 우리는 찾아보고 있습니다. ‘교회가 어떤 곳이다.’ 라는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성경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는 갱신하고 개혁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기준은 성경이며, 모든 길은 말씀입니다. 그것을 벗어나는 것은 생사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늘 주의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렇게 조직이 많습니다. 모두가 다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이해가 되지 않으면 신앙생활은 한계가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입성해야 합니다. 그 나라의 것을 훔쳐서 세상에서 잘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살려고 준비해야 합니다. 그 길이 교회 공동체입니다.

저는 정말 많은 교회들을 가보았습니다. 어떤 교회는 예배당이 콘서트 장 같았습니다. 정말 화려했고 멋졌습니다. 또 어떤 교회는 외형이 창고 같았습니다. 이유는 계속 성장하기 때문에 허물고 짓기 편하게 지었다고 합니다. 또 어떤 교회는 지교회가 수백 개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원하는 사역을 집중적으로 하였습니다. 전부 특색이 있고 배우고 싶은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교회로 부르심을 받았을까요? 저는 주님의 종으로 주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위해 심부름하는 목사입니다. 물론 저의 캐릭터나 인격, 신앙을 사용하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경을 넓히고 지혜를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교회는 그런 것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세상의 교회들은 불안정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성령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으로 개혁하고 갱신해야 합니다. 그래서 본질적인 교회에 대한 이해를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_요한계시록12:13-17’

 

요한계시록에 교회에 대해 명확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용 곧 사단이 여자를 박해한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여자는 교회입니다. 거룩한 신부를 상징합니다. 교회를 통해 구원받은 자들을 낳고 또 양육을 받습니다. 그런데 뱀 곧 마귀의 졸개들이 여자를 물에서 떠내려가게 합니다. 그런데 땅이 도웁니다. 물은 재앙을 상징합니다. 땅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합니다. 교회는 이렇게 중요한 영적인 싸움 속에 있습니다. 교회를 이해하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교회를 이해하지 못하면 계속 교회와 상관없이 교회의 겉만 맴도는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감당해라가 아닙니다.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개인 같아 보이지만 결코 개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세상의 도시

 

동방으로 옮기다가_창세기11:1-3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_창세기11:1-3’

 

오늘 바벨탑기사는 족보를 다루는 창세기 10,11장에서 셈의 두 계통 사이에 놓여있습니다. , 이 이야기는 셈으로부터 에벨, 욕단으로 이어지는 한 계통과 셈으로부터 에벨, 데라로 이어지는 두 번째 계통 사이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 바벨탑기사 전에는 에벨의 첫째 계통인 욕단 이후에 놓여져 있고 바벨탑기사 이후에는 두 번째 계통인 데라의 족보가 기록이 되어 아브람으로 연결이 됩니다. 다시 말해 셈의 후손들은 에벨의 두 아들에 의해 두 계통으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바벨론에, 하나는 언약의 땅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여기에서 바벨이라는 단어의 뜻은 하나님의 대문이라는 뜻도 있지만 동시에 혼돈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것은 히브리문학적인 표현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영적인 의미도 설명하는 실마리이기도 합니다. 신앙은 참 이중적입니다. 신앙과 불신앙이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노아의 후손들은 이제 바벨론의 고대 명칭인 시날로 왔습니다. 이곳은 약속의 땅 동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방 곧 동쪽은 하나님으로 멀어짐을 뜻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의 동쪽으로 가서 집을 세웠고, 가인도 에덴의 동쪽에 거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동쪽으로 갔습니다. 동쪽으로 간 사람마다 모두 바벨론과 소돔을 세우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모두 번영을 쫓아서 동쪽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그렇지 않습니까? 교회에서, 신앙에서 멀어진 이유가 편리함이나 윤택함이나 개인의 성공 때문이지요. 그러나 동쪽으로 간다는 말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하나님의 복에서 멀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 시절 사람들은 오직 하나의 언어만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추측으로는 히브리어를 사용하지 않았나 추측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놀랍게도 벽돌과 역청을 사용하였습니다. 벽돌은 인류 역사상 건축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발명입니다. 그만큼 그들은 발전하였습니다. 그들이 만든 건물은 전문적으로 지구라트라고 합니다. 이것은 피라미트처럼 삼각형으로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중앙에 계단을 만들어서 꼭대기에 오르게 하며 그 위에는 조그만 신당을 만들어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들인 신들이 이 신당에 내려와 잠깐 동안 만난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대의 사람들이 이렇게 뾰족한 건물을 만든 것은 하나됨을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언어도 하나였고 또 도시를 건축하고 높은 성을 지어 하나됨을 추구했다는 것입니다.

 

2. 우리 이름을 내고_창세기11:4-5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_창세기11:4-5’

 

그들이 성을 세운 이유입니다. 그들은 흩어짐을 두려워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뜻을 거스리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흩어지지 않고 자기 자신의 동질성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이것을 성곽심리라고 하는데 자기 자원으로만 생존할 수 있다는 교만이고 하나님의 거룩한 간섭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자기의 명성을 위해 하늘을 찌르는 성을 세우는 자들입니다. 자기의 이름을 내기 위해서 성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성을 뾰족하게 만든 이유는 하늘을 향한 전쟁을 선포하는 의미라고 고대 문헌에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나 올라가보자. ‘우리가 엄청난 기술과 능력으로 이렇게 도시를 세우고 위대한 건축물을 만들었는데 지금 이런 시대에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냐?’ 라는 것입니다. 바벨탑은 단지 고대의 대성전이라기보다 인간 교만의 상징이었고, 인간 제국이 추구하는 거만과 자족의 화신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내려오셔서 그들이 하는 것을 확인하시고 심판하셨습니다.

 

3. 바벨이라 하니_창세기11:6-9,요한계시록18:1-2,8-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_창세기11:6-9’

 

이 도시는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 세웠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습니다. 사실 한 가지 이해할 것은 바벨탑을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그들의 언어를 무너뜨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과 소통이 사라지고 인간끼리의 소통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어를 흩으신 것입니다. 그들이 악으로 하나 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사람들이 하나 되도록 도우십니다. 언어를 뛰어넘어 복음의 말씀으로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임하실 때, 우리의 언어는 조화를 이루고 서로를 참으로 이해하고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그들이 세운 바벨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 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_요한계시록18:1-2’

 

이 바벨은 한 지역의 도시 이름, 나라 이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교만함을 상징하는 나라, 그 배후에 사단이 역사하는 사단의 나라, 세상 나라를 상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나라에 대해 심판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라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한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_요한계시록18:8-10’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나라 바벨론을 우리는 사모하고 흠모합니다. 그것이 죄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는 너무 중요한 언약을 확인해야 합니다.

 

. 영광스런 하나님의 도시_요한계시록19:9-10,21:1-8,22:6-21

 

하나님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도시를 건설하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사실 그런 도시를 어디에 건설하겠습니까? 존 칼빈은 제네바시를 그런 도시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실패했습니다. 세상에 그런 도시를 만들 수 있을까요? 서울을 변화시키고 서울이 하나님의 도시가 되게 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말하면 아니오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소망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인가요? 바로 천국입니다. 너무나도 분명하고 또 분명합니다.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하더라_요한계시록19:9-10’

 

하나님은 우리를 바벨에서 건져내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성, 하나님의 도시, 천국으로 우리를 초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부르심에 대답하여 그 길을 가는 것을 신앙이라 합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을 순례자라 하지요. 여러분 시간이 되시면 천로역정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천성을 향해 가는 사람들입니다. 아멘!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_요한계시록21:1-8’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보게 됩니다. 천국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십니다. 다시는 사망도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없습니다. 처음 것들 즉 육신의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지나가고 새롭게 됩니다. 누가 이 천국을 상속받습니까?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들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에게 상속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목마른 자입니다. 목마른 자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에 목말라야 합니까? 생명수 샘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두려워합니다. 세상에서 버림받을까봐, 혹시 성공하지 못할까봐, 두렵습니다. 그래서 믿지 않고 흉악하게 되고 살인자가 되며 음행하고 점술가, 우상숭배, 거짓말하는 자들이 됩니다. 이것이 바벨의 모습입니다. 도시의 모습입니다. 도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을 수 있는 아브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_요한계시록22:6-7’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말씀을 듣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화답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신앙생활의 실제가 무엇인가요?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부르심에 화답한다고 생각만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해, 영혼을 사랑해, 그러나 전부 말뿐이고 생각뿐이지 실제로 사랑하거나 실제로 믿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화답하는 것은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말씀을 지킨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_요한계시록22:10-19’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덮지 말라는 것입니다. 잠그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말씀을 잠그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도덕적이 되려고 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타락하는 것의 정의가 도적적이다 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난 도덕성 역시 타락으로 간주합니다. 타락한 도덕성은 상대주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언어로 서로 비방하고 비난합니다. 그들의 배경은 교만과 거만입니다. 자신들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 도덕성을 사용할 뿐입니다.

예수님이 마음에 없다면, 예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없다면, 예수님을 높이려는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신앙이 아닌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말씀을 다시 오픈해야 합니다. 작은 일이라 생각하시나요? 지난 일주일 말씀에 대해 어떤 행동들을 하셨나요? 그것이 쉽던가요?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교만과 낙심이 반복적으로 우리 삶을 흔들고, 쾌락과 우울이 우리 삶을 짓눌렀을 것입니다. 그것에서 벗어나는 길은 빛 되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반짝 반짝 빛나려고 할 때는 사단의 배경이 되지만 우리 안에 빛 되신 예수님을 모실 때는 천국이 배경이 됩니다. 진짜 빛나는 것은 빛 되신 예수님을 모실 때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을 어떻게 만나고 교제하고 사모하는 가에 대해 말씀을 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매우 구체적입니다. 신앙은 구체적으로 해야 합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도시에 입성하기 위해서 말씀을 열어야 합니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과 실제로 말씀을 읽고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 설교에 대해 은혜를 받도록 애쓰시길 바랍니다. 우리교회의 모든 프로그램은 그것을 위해 존재합니다. 소그룹이든, 모임이든, 행정이든, 모든 부서 사역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주일날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아야 하고 그 은혜를 우리 삶에서 지속하기 위해 메모하고 그 말씀을 다시 듣고 힘을 얻을 개인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두 번째 성경을 매일 읽으십시오. 매일이 힘들면 한주에 한번이라도 읽으십시오. 그것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한주에 한 장을 읽어도 일 년이면 52장입니다. 복음서 한권은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에 중요한 열매를 맺게 할 것입니다. 말씀을 읽을 때 지혜가 생기고 명철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행하지 않습니다. 생각만 합니다. 생각으로는 늘 교만으로, 낙심으로 갑니다. 생각은 늘 불신앙으로 가려고 합니다. 죄로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생각을 지켜야 합니다. 그 방법이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2월 말에 바이블스쿨을 하게 됩니다. 그때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삶에 적용하는 방법을 나누려고 합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도시를 향해 걸어가길 원합니다. 그럴 때 우리 삶에도 하나님의 도시의 향기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벨에 사는 사람들에게 도시를 설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시, 천국이 우리 마음에 있나요? 우리 삶에 있나요?

 

주님 바벨에서 찾아와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죄악된 도시에 아무것도 모르고 바벨이 제시하는 헛된 성공과 번영을 쫓아 살아야만 했던 불행한 인생이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하나님이 계시는 도시, 천국을 향하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화답하며 살길 원합니다. 천성을 향해 가는 인생이길 원합니다. 혼자 갈 수 없어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도록 복음의 길을 열어주시니 감사합니다. 매일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예수님과 교제하여 우리 마음이 바벨에 빼앗기지 않고 천국의 영향 아래 살아가게 하옵소서. 그래서 세상에 천국의 소망을 나누는 아름다운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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