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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9-01-20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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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예수를 나의 구주삼고

본 문 :

창세기 12:1-9

오승주 목사

 

. 하나님의 일하심

 

전략, 방법, 시스템, 그릇, 그것들이 한때 유행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많은 책을 통해서 그것들을 공부했고, 또 배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결과도 경험하였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열심히 하고 노력해서 결과도 얻었는데 내 안에 기쁨이 없습니다. 내안에 감사와 찬송이 사라집니다. 결과에 대해 낙심하고 교만하기도 합니다.

내 마음이 이상합니다. 그렇습니다. 놓치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놓쳤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겉모양은 티가 나지 않지만 마음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빼앗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쁨이 없었고, 감사와 찬송이 사라진 것입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빛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_호세아6:1-6’

 

신앙생활은 여호와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갈 때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 돌아갈 때 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주님께 돌아갈 때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가 아니라 인애를 원하고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십니다. 신앙생활은 빛 되신 주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일이고 영적으로 성장할 때 우리 안에 은사, 달란트, 우리의 인생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물론 그릇도 준비해야 하고, 더 좋은 시스템을 갖추기도 해야 하며, 전략도 연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이유가 아닐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이유는 하나님을 주인삼아 경외하는 일임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화답하는 일이며 또 그때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여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이 중요합니다. 부르시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부르심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복이 될지라_창세기12: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희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_창세기12: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서 떠나라고 한 도시는 하란이라는 도시입니다. 하란은 당시에 번창한 도시, 꽤나 큰 도시였습니다. 큰 도시에 사람들이 몰려오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복을 받기 위해서 아닌가요. 잘먹고 잘살고 번성하기 위해 도시로 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람을 부르셔서 너는 복이 될지라 하시면서 하란을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란을 떠나 어디로 가라고 하시나요? 바로 가나안입니다.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_창세기11:30-32’

 

참 성경은 놀랍지요.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가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으로 임하시기 전에 이미 데라에게 임하셨음을 암시합니다. 그 암시는 어떤 사건으로 임하였나요? 사래가 임신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어떤 결핍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결핍으로 데라는 우르 즉 우상을 만들어 파는 직업과 땅, 문화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서 멈추어버렸습니까? 하란입니다. 하란을 지나서 가나안을 가야 하는데 하란에 거류해버린 것입니다. 우리 역시 그리스도인으로 성공도 해야 하고, 축복도 받아야 합니다만 그것을 지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실 땅, 곧 이 땅의 도시가 아닌 천국, 주님의 도시로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복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2.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_창세기12:4-6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_창세기12:4-6’

 

하란에 머물러 살고 있는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따라 아브람은 온 가족을 데리고 떠납니다. 이것이 믿음의 여정입니다. 서울을 떠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을 떠나라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여정을 떠라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여정을 갈 수 있습니까? 말씀이 임할 때입니다. 말씀이 임할 때 그 일이 벌어집니다. 서울은 다른 도시들과 다르게 종교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세속적이고 탈 기독교적이라고 느낍니다. 점차 유럽의 모습으로 되어가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일에 교회에 오는 많은 분들의 이면을 주의 깊게 봐야 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지만 종교적인 그리스도인인지, 복음적인 그리스도인인지 살펴봐야합니다.

흔히 목사들이 설교를 준비할 때 가지는 오류는 예배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복음적 그리스도인이라고 가정한 채 교회의 성장을 위해 설교를 합니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으로부터 성장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체념한 채 복음을 단지 전도용으로만 가르치게 된다면 아마 이 도시는 더욱 유럽처럼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살아있는 관계 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복음의 은혜를 통해 거듭난 경험도 없는 종교적 그리스도인들을 계속해서 양성해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시기, 분노, 지루함, 상처, 갈등에 얽매여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만나면 마음으로 하나님의 실재를 감각하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더 강하고 가깝게 확신합니다. 죄에 대한 새롭고 깊은 깨달음이 오면서 행동의 죄 뿐만 아니라 마음의 태도까지 회개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친밀함과 사랑하심에 대한 강력한 확신도 생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더욱 경외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겸손한 동시에 담대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좇는 삶이 됩니다. 천국을 향해 가는 삶은 곧 하나님의 뜻을 좇는 삶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것을 시작해야 합니다.

 

3. 여호와께서 나타나신 그곳에_창세기12:7-9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_창세기12:7-9’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라고 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이번 청소년 수련회를 섬기고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주시고 장로님 권사님들께서 기도해주셔서 3,5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조금 놀란 것은 몇몇 지도자들의 반응입니다. 이분들은 아이들이 은혜를 받는 일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기도회가 이렇게 길면 아이들이 지루해한다, 여호와께 돌아가자는 메시지에 이미 복음을 받았는데 굳이 또 그럴 필요 있냐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날 수백 명의 아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하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복음적인 그리스도인인가요, 종교적인 그리스도인인가요. 그것이 주는 결과는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몇 가지 중요한 것을 시작해야 합니다. 첫째, 말씀을 들으십시오. 설교가 아닌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듣기 위해 준비하십시오. 어떤 준비인가요? 보통 설교를 듣기 위한 준비과정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일날 허겁지겁 와서 앉아있다 그냥 가기 마련입니다. 하필 주일은 복잡하기 까지 합니다. 아이들 챙겨 나오랴, 주차하랴, 예배드리러 오는 과정만 해도 얼마나 복잡하고 힘든지 모릅니다. 그런데 또 예배 끝나고 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쉬기도 해야 하죠, 놀기도 해야 하죠, 밥걱정, 일 걱정 그러다 보면 예배 시간에 계속 그런 것들이 머리에 맴 돕니다. 정작 말씀을 듣지 못합니다. 들리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하란에 머물러 있게 되는 것입니다. 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축복된 가나안으로 가지 못하는가? 그것은 말씀을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주일날 들은 말씀을 꼭 주중에 한 번 더 듣기를 권면합니다. 이것은 상식입니다. 공부도, 일도 그렇지 않나요? 운동도 그렇지 않나요? 하다못해 친구들 만나는 약속도 그렇잖아요. 확인하고 점검해야 합니다. 놓친 것은 없나, 다시 확인하고 확신해야 합니다.

두 번째, 성경을 펼쳐야 합니다. 말씀을 인봉하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을 하셔야 합니다. 성경을 펼쳐야 하나님이 임하시든 말든 하시잖아요. 성경을 펼치지 않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임하실까요? 말씀을 묵상하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셨던 그곳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제단을 쌓는다는 의미는 많겠지만 제일 중요한 의미는 표시를 한다는 것입니다.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이곳에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표시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섬기고 따르겠다는 결단입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사람은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요즘 그리스도인은 결단이 없습니다. 결단이 없기 때문에 가볍고 약합니다. 결단이 있으면 유혹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믿음의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어렵습니다. 힘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단을 합니다. 저는 언제나 결단합니다. ‘예수를 나의 구주삼고!’

 

. 예수를 나의 구주삼고_히브리서11:1-12,12:1-29

 

사실, 저는 진짜 문제가 있으면 꼭 책상 앞으로 갑니다. 앞이 깜깜할 때 주로 그렇습니다. 적은 문제는 그냥 엎드려 기도하지만 큰 문제가 싶으면 책상 앞으로 갑니다. 그리고 성경을 앞에 두고 노트를 옆에 두고 눈을 감습니다. 그럼 제 문제와 연관된 성경구절이 생각납니다. 가물가물 할 때는 인터넷에 치면 어디 말씀이다 나옵니다. 그럼 성경을 열고 읽고 그리고 노트에 옮겨 적습니다. 옮겨 적고는 계속 읽다보면 길이 보입니다. 그렇겠죠? 그럼 어떻게 될까요? 더 깜깜해집니다. 왜 그렇죠?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이 틀리기 때문입니다. 그때 결단을 합니다. 내 생각대로 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살아왔습니다. 단 한 번도 하나님께서 틀린 적이 없으셨습니다. 저의 인생 표어(?)는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입니다. 개척할 때도 저의 결단은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였습니다. 예수님을 구주요 주인 삼으면 망해도 좋고, 틀려도 좋다 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망한 적 없고 틀린 적 없습니다. 예수님을 구주 삼았으니 늘 예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_히브리서11:1-3’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계가 지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니 말씀을 의지해서 살아갑니다. 우리도 말씀을 따라 갔던 믿음의 선진들처럼 아브람처럼 갈 수 있습니다. 말씀을 따라가면 하나님께서 우리도 그렇게 인정하시는 것이고 증거를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며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_히브리서11:6-10’

 

그런데 결단이 필요합니다. 믿음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을 경외하여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결단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을 받을 땅으로 나아갔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다고 합니다. 저는 다음 주에 네팔에 봉사활동을 갑니다. 봉사활동을 가면 사실 별거 없습니다. 아이들 학용품 좀 사다주고, 사탕 좀 나누어주고 사진 좀 찍고 옵니다. 그렇다고 그 땅이 변화되겠습니까? 70개가 넘는 민족과 언어가 있고, 흰두교를 섬기면서 수백만의 우상을 섬기고 부패한 정치인들 때문에 한 달에 7-8만원이 평균소득이어서 세계에서 최고 빈민국가인 그들이 그런다고 변화되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비브릿지를 시작하면서 결단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눈물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아들, 딸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이 바로 구원의 역사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그것을 모르고 자란다면 우리는 실패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직도 미전도 종족 국가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계시고 그곳에 교회가 세워져 수많은 영혼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시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신실한 계획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전문인이 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미래 같지만 꿈을 꾸며 또 결단하고 결단합니다. 네팔에 우리와 같은 교회가 세워지길 꿈꿉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_히브리서12:1-3’

 

그래서 말씀이 임재하여 결단을 하고 이제 보이지 않지만 가기 시작하면 무거운 것도, 얽매이기 쉬운 죄도 벗어 버리게 됩니다. 비전이 없으면 꿈이 없으면 세상의 무거운 짐, 얽매이기 쉬운 죄에 속고 또 속습니다. 그리고 하란에 주저 않아 거기에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를 바라보면 곧 예수를 나의 구주 삼으면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이끌어 가십니다. 그리고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처럼 우리도 우리 후대에게 그런 존재가 됩니다.

얼마 전 제 모교의 선배가 교회에서 사임을 하고 시골 교회로 부임을 하였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골 교회에서 주는 사례가 너무 작아서 집도 구하기 힘들다고 선배의 친구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저도 어렵지만 그래도 하루 세끼는 먹고 사니까 그동안 한빈이 공부하는데 쓰려고 모아두었던 돈을 보내었습니다. 제가 신학교 2학년 때 인도에 단기선교를 갈 때 돈이 없어서 가고 싶어도 못가서 기도만 하고 있을 때 그 선배가 손에 쥐어주었던 5만원을 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알고 봤더니 일주일 점심 사먹을 돈이었다고 며칠 굶었다고 저 때문에 그랬다고 합니다. 저는 그 돈의 수십 배를 보내주었지만 아깝지 않았습니다. 그때 인도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보았고 꿈을 꾸었기 때문입니다. 그 선배가 제 전화번호를 수소문해서 찾아 연락이 오셨는데 말도 제대로 못하셨습니다. 이번에 대학교에 입학하는 자기 딸 학비가 없어서 고민하며 기도하고 있었는데 너무 고맙다고 울기만 했습니다.

아브람이 변화된 시작은 아브람에게 임한 하나님의 임재였습니다. 그 임재가 아브람에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전달하는 믿음의 조상이 된 시작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의 건강성은 건강한 대인관계로 증명해야 한다고 마틴 로이드존스 목사님의 책에 기록되어있습니다. 내가 받은 은혜의 감격을 이웃을 향해 흘러 보내야 합니다. 교회는 그런 사람들이 모여 이루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니 의지적으로 결단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말씀의 은혜를 받았사오니 생명을 살리는 자리로, 이웃을 향한 섬김의 자리로 가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다 가슴 벅찬 복음의 감격을 회복하여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자리에서 벗어나는 소극적인 변화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남을 살리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가길 원합니다.

 

주님 하나님의 말씀의 임재가 있는 신앙생활을 하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말씀의 임재가 멈추어 우리 인생도 하란에 머물러 버리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 속에 있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신앙생활이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주님의 도시인 천국으로 향하는 축복된 인생이 되길 원합니다. 그 축복을 또 자녀들과 이웃들에게 나누는 참된 증인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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