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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9-02-03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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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3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아브람과 롯의 차이

본 문 :

창세기 13:1-18

오승주 목사

 

. 처음 제단을 쌓은 곳_창세기13:1-4

 

하나님이 명령하신 땅에 가서 예배드리고 제단을 쌓았는데 기근을 만나서 애굽 땅으로 내려갑니다. 풍요가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하지요. 신앙은 이렇게 부침을 겪습니다. 아내를 잃어버릴 위기를 겪기도 하기도 합니다. 애굽은 바로의 땅이구나. 경험하게 된 사건입니다. 여기서는 내 생명을 잃어버릴 수도 있구나.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돌이켜 다시 가나안땅으로 다시 올라가는 장면이 오늘 본문입니다.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_창세기13:1-4’

 

지금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가 시작된 아브람은 이제 다시 은혜를 향하고, 예배를 향하게 되었습니다.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했지만 그것에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가 처음 제단을 쌓았던 곳, 벧엘로 올라갑니다. 하나님의 집 거기가 곧 살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예배드리면서 얼마나 감격이었을까요? 우리는 참 많은 방해를 받습니다.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에 대한 방해를 받습니다. 우리는 늘 처음 제단을 쌓은 곳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돌아왔구나. 안도감을 느꼈을 것이고 내가 잘못을 했지만 하나님이 인도하셨다는 깨달음을 얻었을 것입니다. 벧엘에 다시 돌아와서 감사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살집을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하지만 세상에 살지 않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바로의 집에 차고 넘치는 부와 명예를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전에 살도록 결단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새로운 결단을 하고 가나안에 들어왔는데 또 다른 갈등이 생깁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이렇게 갈등이 있습니다.

 

 

. 아브람과 롯의 차이

 

소유가 많아서 생긴 갈등_창세기13:5-7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_창세기13:5-7’

 

그런데 보십시오. 조카 롯에게도 재산이 생겼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부터 데리고 온 조카입니다. 고아였는지 자녀처럼 생각하고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도 식솔이 생겼고 재산이 생겼습니다. 그랬더니 아브람의 소유와 롯의 소유가 충돌합니다. 없으면 충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재산이 생기더니 롯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삼촌과 조카라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형제라고 갈등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가까이 있어서, 그리고 소유가 생겨서 생기는 갈등입니다. 당연한 갈등입니다. 구원받지 못하는 백성,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이 없으면 같이 있으면 싸웁니다. 가까이 있기만 하면 갈등이 옵니다. 아브람입장에서 보면 괘씸하지요. 아마도 롯은 아브람을 질투하였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삼촌 때문에 더 번성할 수 있는데 못한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가 삼촌 때문에 더 성공할 수 있는데 못한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삼촌이 방해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나 때문에 잘된 것 같고 내가 있어서 그런 것 같은 것입니다. 이 불편한 관계를 눈치를 챕니다. 아브람의 종이, 롯의 종이 다투고 무엇보다 가나안 사람들이 눈치를 챕니다. 믿음의 사람들도 갈등을 겪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아브람과 롯 때문에 엄청 불편했을지도 모릅니다. 제단을 쌓기도 하고 엄청난 재산이 불어나더니 이제 싸우기까지 합니다. 불신자들 입장에서 믿음의 사람들을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의 이야기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왜 싸운데? 재들은 왜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세상 사람들이 다 보고 있는 이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2. 비전이 생긴 아브람_창세기13:8-13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_창세기13:8-13’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갈등을 덮고 없는 것처럼 외면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믿음이라는 것은 갈등,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정상 아닌가요. 갈등을 외면하면 곪아가고 썩어가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적극적으로 나섭니다. 먼저 아브람은 롯을 찾아갑니다. 세상을 보십시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찾아가지 않습니다. 믿음이 확실한 사람이 믿음이 연약한 사람을 찾아가야 합니다. 큰 사람이 작은 사람을 찾아가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큰 믿음은 자존심을 작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커진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보다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카 롯은 아직 하나님을 직접 만나지도 못했고 믿음의 땅도 보지 못했고 그냥 아브람을 따라왔을 뿐입니다. 그래서 자존심을 내려놓고 먼저 롯을 찾아갑니다. 여전히 믿음이 있다면서 자존심을 내세우고 그러면 어딜 가나 문제를 키웁니다. 그리고 뭐라고 합니까? 너와 나는 한 혈육이다 여기서 문제를 풀려고 시작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다. 우리가 천국백성이다. 이걸 모릅니까? 몰라서 싸웁니다. 몰라서 갈등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실을 제대로 알면 안 싸웁니다. 우리는 싸우기 위해서 만난 것 아니다. 싸우려고 우리가 교회 왔습니까? 전 싸우기 싫습니다. 가장 가까운 지체가 하나 되지 못하면 어떻게 열방을 얻겠습니까? 그리고 아브람은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기득권을 내려놓고 롯을 찾아간 것입니다. 목사 장로가 싸워서 성도가 피해를 겪으면 안됩니다. 지도자들이 싸워서 후대가 피해를 겪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아브람에게는 비전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갈등을 푸는 방법이 달랐습니다. 이제 헤어지자고 합니다. 그가 겪은 믿음의 여정을 통해서 비전의 사람이 되어갑니다. 사방을 둘러보면 싸울 것이 없는데 저 멀리 보면 다툴 일이 없고 천국을 보면 더더욱 달라질 것인데 세상은 보이는 것으로 싸웁니다. 세상 사람들은 보이는 것으로 다툽니다. 그들에게 복은 땅입니다. 아브람에게는 롯이 생각하는 복과 다른 복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복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복입니다. 그래서 롯과 갈등을 풀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믿음으로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아닌가요? 정말 멋진 신앙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틀에 갇히면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은혜를 받지 못하면 결코 그 틀을 벗지 못합니다. 세상이 다 끝난 것 같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브람은 더 큰 가치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담대한 믿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정말 멋진 말입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리라. 그러나 롯은 갈등을 일으킵니다. 롯은 현실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삼촌이 가진 은과 금만 보이고, 나는 이것밖에 못 모았나 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저 같으면 너 아무것도 없었어. 너 지금 나 때문에 장막도 있고 재산도 생긴 것 아니냐? 그만 까불어라. 그렇게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롯은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좋은 땅, 번성할 수 있는 곳, 요단을 선택합니다. 애굽 같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비전 곧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면 제 멋대로 살지 않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전혀 다른 복을 가진 아브람이 곧 복입니다. 세상을 부러워하면 절대 세상을 못 이깁니다. 세상이 부럽지 않아서 세상을 가져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아브람이 복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복이고, 임재가 복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장면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모여서 싸우고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보고 어떻게 저렇게 갈등을 푸는지 신기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정상 아닌가요. 성경 말씀은 한구절도 기억 못하면서 싸우면서 감정 상한 것은 평생 기억하는 괴물 같은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많은가요? 롯을 떠나보내는 믿음의 결정을 합니다. 기쁘게 보냅니다. 그래야 또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롯의 가장 큰 실수는 아브람을 떠난 것입니다. 떠나기로 한 것입니다. 아브람이 찾아와 말할 때 은혜를 받은 롯이라면 나도 삼촌처럼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에서, 애굽에서 그랬던 것처럼 나도 하나님의 임재를 따라 살겠습니다. 나도 말씀을 따라 살겠습니다. 그러나 롯은 애굽을 생각했습니다. 삼촌 따라서 간 애굽이 비전으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그것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는 삼촌이 애굽을 떠날 때 아쉬웠을지도 모릅니다. 여기가 좋은데 또 가나안을 왜 가나? 재산, , 땅이 삶의 기준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소유 때문에 생긴 갈등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보는 것마다 재산, , 땅이 기준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보는 대로 사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잘 보셔야 합니다. 늘 도박을 쳐다보고 있으면 어느 날 인생은 도박장에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늘 보는 것이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이끌려가요. 에덴 땅 같고, 애굽 땅 같은데 사실은 소돔과 고모라예요. 하나님을 떠난 도시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입니다. 롯이 진짜 믿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삼촌이 바라보는 제단을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고, 그래서 임재 속에 있어야 합니다. 저희 교회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다가 언제 가스펠 교회 가보나 그렇게 오십니다. 그것이 축복입니다. 그러나 롯이 좋은 땅을 선택하고 남은 땅 가나안땅에 거주하기로 결정합니다. 척박한 땅이지만 나는 하나님이 임재하신, 약속하신, 하나님의 집에 살겠다고 결단합니다.

 

3.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_창세기13:14-17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_창세기13:14-17’

 

그렇게 떠나자마자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임재 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갈등을 믿음으로 해결했더니 하나님이 다시 찾아오십니다. 이것이 신앙의 복입니다. 롯을 떠나보내면 마음이 좋을까요? 뒷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을 것이며 진심으로 잘되길 기도했을 것입니다. 허탈한 마음, 외로운 마음으로 있는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다시 찾아 오신 것입니다. 신앙은 끝까지 하나님과 둘이 살아있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누구를 붙여주셔도 그것은 섬겨야 할 사람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계시는 분은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한분만으로 족하다고 고백하고 찬양하십시오. 신앙은 그래서 때로 고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약속하십니다. 아파트, 차가 아니라 열방입니다. 네팔을 갔습니다. 하나님이 문을 열고 계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갈등을 풀면 그것이 보이는 것입니다. 돈이 하나도 없을지라도 영혼을 바라봐야 하고, 아파트하나 없을지라도 온 땅을 바라봐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길 원합니다.

 

 

. 그리스도인이 살아야 할 삶_창세기13:18,골로새서2:1-5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_창세기13:18’

 

그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 그는 어떤 행동을 했습니까? 이것이 아브람과 롯의 결정적 차이입니다. 아브람은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습니다. 열방을 준다고 하는데 열방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제단을 쌓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살아야 할 삶은 바로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입니다. 그것이 세계복음화로 우리를 안내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단을 쌓는 삶이 아니면 그것은 허상이 됩니다.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_골로새서2:1-5’

 

우리는 세상이 해결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푸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풀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깨닫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소원은 그리스도를 깨닫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문제, 갈등을 해결하는 길이 바로 그리스도를 깨닫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구원이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 곧 그리스도를 깨달은 사람이어야만 세상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깨달은 사람이 고백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우하면 나는 좌하고 세상이 좌하면 우하는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랬지 않습니까? 세상과 반대로 십자가를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깨닫는 삶을 시작하셔야 합니다. 거기에 모든 질서가 회복되고 우리의 믿음을 굳건하게 할 것입니다.

 

주님 믿음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를 가지길 원합니다. 아브람처럼 제단을 쌓는 삶을 살아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 주시는 말씀으로 살길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는 삶을 살길 원합니다. 세상에 살면서 생긴 갈등, 문제를 그들과 같이 모른 척, 세상의 방식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리라,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할 수 있는 믿음으로 풀길 원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는 축복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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