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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9-03-03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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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33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흔들리는 믿음

본 문 :

창세기 15:1-21

오승주 목사

 

. 흔들리는 믿음_창세기15: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_창세기15:1'

 

아브람이 큰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그돌라오멜이 연합한 군대를 치고 조카 롯을 구하고 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더 멋진 행동을 합니다.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리고, 소돔왕에게는 그의 소유를 다 되찾아줬습니다. 그럼에도 아브람은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무엇이 그를 두렵게 했을까요? 마음 중심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믿음의 말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시고 찾아오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의 방패고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돈이 방패고, 권력이나 지식이 방패겠지만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방패가 되십니다. 시간이 지나보면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의 상급이라고 하는 분들이 이 길을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믿음의 길 끝에 하나님이 계시잖아요. 그래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상급이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명예입니까? 아닙니다.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주시길 원하십니다. 인간은 기적을 요구하고 응답을 요구하는데 그것은 더 큰 기적을 요구하고 더 큰 응답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자체를 바라보는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아브람을 흔들립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 아브람을 이끄시는 하나님

 

아브람의 진짜 두려움_창세기15:1-3,창세기16:16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_창세기15:1-3’

 

아브람의 신앙의 현주소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의 상급이다 라고 하셨는데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라고 불만의 말을 합니다. ‘나는 자식이 없습니다. 10년이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왜 아들을 주시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이 아들 주시지 않아서 내가 대책을 세웠습니다.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데리고 오려고 합니다. 그것이 내 계획입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돈이 좀 필요하지 않습니까? 좀 안정적인 직업도 필요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이런 아브람을 혼을 내지 않으십니다. 왜 그렇죠? 우리 믿음의 수준을 하나님이 아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은 엘리에셀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냥 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 털어놓는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목사라고 막 살아도 괜찮지만 내 가족은 그러면 안되잖아요. 그런 두려움이 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아브람에게 믿음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점점 더 믿음의 사람으로 키워 가시는 것입니다.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_창세기16:16'

 

아브람은 나중에도 하인 하갈을 통해 결국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인간이 이렇게 연약합니다. 아브람의 가장 큰 두려움이었고 약점이었습니다. 밖에서 대단한 사역을 하지만 실제로 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아무리 믿음의 조상이 되고 열국의 아비가 되겠다고 해도 그것이 믿어졌습니까?

 

2. 뭇별을 보라_창세기15:4-7,갈라디아서3:16,로마서4:1-8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_창세기15:4-7’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꾸짖지 않고 밖으로 데리고 가서 다시 반복해서 말씀을 하시는데 이번에는 더 자세히 말씀을 하십니다.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정확하게 말씀하십니다. 아니라. 하나님은 대충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된다. 그러면서 밖으로 데리고 나가 뭇별을 보여주십니다. 셀 수 있나 보라. 뭇별은 많은 별이잖아요. 그런데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여기서 자손은 단수입니다. 이상하죠? 아브람이 의아했을 것입니다.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_갈라디아서3:16’

 

아멘. 그 자손은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왜 뭇별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를 힘입어 구원의 역사, 섭리를 펼쳐 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으면 많은 자손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빛을 받을 때 우리 모두가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을 때 우리 인생이 빛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사귐이 될 때 우리는 뭇별처럼 세상에서 반짝반짝 빛나게 됩니다. 뭇별이 되어 세상에 흩어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가 바로 성경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지금 아브람의 믿음을 키워서 뭘 깨닫게 하시려고 하시는 것인가요? 지금 아브람은 다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6절에 보니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로 결정하니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보고 의로 여기셨다고 합니다. ‘믿다는 히브리어로 아만입니다. 여기에서 나온 단어가 아멘입니다. 아만은 확실성입니다.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이 없고 확실하고 흔들림이 없습니다. 믿음은 흔들림이 없는 말씀에 대한 나의 태도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의로 여기시는 것입니다.

 

'그런즉 육신으로는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_로마서4:1-5'

 

내가 도덕적이 되면 그래서 남보다 나으면 그것을 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의는 쓰레기 같은 의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때는 아무런 의가 아닙니다. 오직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의롭다 여기시는 믿음입니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고 고백하여야 합니다. 하박국 말씀을 사도바울이 인용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말씀을 믿음에, 받아들임에, 온전히 의지하는 태도를 보시고 우리를 의롭다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의로움입니다. 우리는 수도 없이 넘어집니다. 갈등도 많습니다. 그래도 이 믿음의 길을 갑니다. 가는 사람이 승리합니다. 어떤 대단한 이유나 변명이 있어서 이 길을 가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때를 보라_창세기15:8-21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_창세기15:8-21'

 

그런데 아브람의 수준을 보십시오. 아들을 주시겠다고 하시고,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하시는데 무엇으로 알리이까이렇게 다시 질문합니다. 저는 이 과정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원합니다. 믿음 좋은 척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제일 싫어하십니다. 그것이 영적인 교만입니다. 그렇다보니 아예 교회를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 의를 키우다 무너지면 창피하니 떠나는 것입니다. 왜 부끄럽고 왜 회복하지 못합니까? 믿음을 내가 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로 와야 합니다. 신념이 아닙니다. 능력이 강해지면 신념이 강해지겠지요 그러나 믿음이 연약해집니다. 우리가 연약해질 때 믿음이 자랍니다. 믿음이 자라면 승리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절박한 상황으로 몰아넣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족보를 만드시려고 그러십니다. 구원의 사람, 구원의 족보를 만들려고 그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믿음을 키우시려고 하십니다. 그래서 솔직하게 질문하고 우리의 모습을 인정하고 거기서 다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옛날에 뭐 했다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지금 자신에게 정직하세요. 내가 하나님의 입장을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의 뿌리는 영적인 교만 아닌가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말씀도 해석이 되고 믿음이 있어야 믿음의 길도 가지요.

하나님이 증거를 주십니다. 고대 근동지방에서 계약하던 방식입니다. 아브람의 수준으로 약속을 맺습니다. 저주계약이지요. ‘네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나도 둘로 쪼개질 것이다.’ 동일하게 하나님은 이 시대를 사용하십니다. 로마의 군사도로를 따라 복음을 전했듯이 인간의 모든 문명을 구원사의 섭리를 위해 사용하십니다. 선한 목적으로 우리도 사용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아브람이 다 가지고 와서 쪼갰습니다. 새는 안 쪼갰네 어쩌네 하는데 레위기에 보면 새는 안 쪼개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약속입니다.

해질 때 흑암과 두려움이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애굽에서 종노릇하리라 하필 애굽입니까? 애굽은 세상입니다. 거기에서 영성을 키우시고 믿음을 연단하십니다. 그래서 믿음의 족보가 시작되길 원하십니다. 종교적 틀에서 쉽게 자라는 것은 영성이 아니라 강력한 종교성입니다. 영성은 세상에서,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아브람이 재단을 쌓았듯이 하나님과 친히 교제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으로 가라 가서 제자 삼아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약속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 뭇별이 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종교성과 복음을 구분하실 것입니다. 바리새인, 율법학자들과 복음을 사모하는 사람들을 예수님은 구분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은 저주하셨지만, 간음한 여인은 저주하지 않으셨습니다. 종교성이 아닌 복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종교적 틀 안에 갇히면 그들이 원하는 것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종교기관이 되어버립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기관이 되어버립니다. 거기에는 돈과 조직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내가 함께 하겠다고 하십니다. 애굽이라고 하는 혹독한 삶의 현장에서 믿음을 키우시겠다고 하십니다. 여러분의 현장에서 복음을 회복하고 주님을 의지하고 거기에서 복음의 공동체를 세우십시오. 그것이 우리 교회가 하고자 하는 지교회입니다. 그들이 400년동안 그 일을 겪습니다. 거기에서 나올 때 어떻게 나왔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경험하고 엄청난 인원과 재물을 가지고 나옵니다. 패배자로 애굽을 나오지 않았습니다.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_창세기15:15-16’

 

하나님이 믿음의 족보를 만드시는 시간이 400년인데 이때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차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직 아모리 족속에게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죄악이 가득차면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한쪽은 믿음이 성장하고 한쪽은 죄악이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준비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준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나오라 말해줘야 하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 하나님은 이 계약서를 읽고 싸인 해 버리셨습니다. 일방적으로 하셨습니다. 이 계약이 지켜지지 않으면 하나님이 쪼개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언약을 지키지 못합니다. 아브람은 지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쪼개지시는 것입니다. 그렇게까지 하시면서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겠다고 합니다.

 

. 임재와 말씀으로 사는 믿음의 여정_신명기8:11-20,10:12-22

 

그래서 우리가 믿음의 길을 가기로 한다면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고 따라간다면 순종한다면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알려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바이블스쿨을 하는 것이고 예배 때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길을 가게 하시는데 방법이 무엇입니까?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니라_신명기8:11-20’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는 것입니다. 내 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의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아브람을 보십시오. 하나님과 대면하는 시간들이 많아집니다. 처음에는 대답도 못하고 그냥 따라갔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설명도 하시고 꾸짖기도 하십니다. 임재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임재가 있어야 합니다. 마음에 복음이 담겨지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닐 것이 아니냐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여호와께서 오직 네 조상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들의 후손인 너희를 만민 중에 택하셨음이 오늘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오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니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의지하고 그의 이름으로 맹세하라 그는 네 찬송이시오 네 하나님이시라 네 눈으로 본 이같이 크고 두려운 일을 너를 위하여 행하셨느니라 애굽에 내려간 네 조상들이 겨우 칠십 인이었으나 이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하늘의 별 같이 많게 하셨느니라_신명기10:12-22’

 

그리고 무엇입니까? 말씀입니다. 얼마만큼 말씀이어야 하냐?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를 지니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왜 말씀을 지니지 못합니까? 경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경외하지 않기 때문에 말씀을 하찮게 생각하고 내 생각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꾸며도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뇌물도 받지 않으십니다. 하는 척, 되는 척 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믿음의 여정을 가는 길에 방패가 되고 상급이 되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별 같이 많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조상이 되어 우리 가문에 혹은 우리가 베푼 사랑으로 이웃들에게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작은 일인가요? 여러분 삶이 힘들고 지치면 내년에 저랑 네팔가십시다. 가셔서 보시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을 밖으로 데리고 가셔서 뭇별을 보게 하신 것처럼 봐야 합니다. 구원받을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봐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임재와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는 임재와 말씀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말씀으로 믿음의 여정을 가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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