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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9-05-12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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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2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막벨라 굴

본 문 :

창세기 23:1-20

오승주 목사

 

. 하나님의 약속과 믿음_창세기12: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_창세기 12:1-3’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처음 부르실 때 내가 너를 복의 근원 삼겠다. 너를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는 자를 저주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부르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 아브라함이 막베라 굴을 사다

 

사라의 죽음과 가나안 땅 헤브론_창세기23:1-4

 

사라가 백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가 누린 햇수라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_창세기23:1-4’

 

오늘 본문에 보니 사라가 백이십칠 세를 살고 죽습니다. 시신 앞에서 아브라함이 애통하고 슬퍼하였다고 했습니다. 저도 부모님이 안 계시는데 어버이날이 되면 마음이 허전합니다. 부모님도 그러는데 아내를 잃은 슬픔은 얼마나 슬플까요? 우리는 언제나 이런 시간을 맞이합니다. 떠나기도 하고 태어나기도 하고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산다면 짐승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짐승은 창조의 원리에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다. 땅의 재앙이 내려 죽게 되면 죽어야 하고 먹잇감이 없으면 죽어야 하고 햇빛이 나면 일어나서 먹을 것을 찾아다닙니다. 때가 되면 먼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사실은 예수그리스도를 못 만나면 그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슬프다가 애통하다가 인생이 끝나는 것입니다. 다윗은 내 영혼아 성축하라고 시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신학교를 다닐 때 교수님께서 강의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신학이라는 도구가 은혜 받은 자에게 갔을 때에는 세상을 살릴 무기가 될 수 있지만 은혜가 없는 사람에게 가면 사람을 죽이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신학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돈도 올바르게 사용하는 사람에게 가면 가치가 있지만 악한 일에 사용하려고 가면 이 돈은 엄청난 재앙이 됩니다. 모든지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여정을 보고 아브라함의 인격을 다루고 계십니다. 그전에는 지식으로 하나님을 믿었는데 이제는 삶을 인격으로 하나님을 믿는 단계가 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영적으로 성숙한 삶을 사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열려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이삭이 죽을 때,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마다 아브라함이 하는 행동은 마므레 상수리 나무 앞에서 하나님께 마음을 열어 하나님으로부터 공급을 받았습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복을 항상 공급 받았습니다. 그래서 항상 그 위기를 돌파해가고 그 고난과 역경을 지나가고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이 인격으로 드러나는 삶이 되었습니다. 성화가 없는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그래서 욥기가 가장 강력한 메시지가 그 것입니다. 욥이 다 고난을 겪고 나서 내가 그 전에는 하나님을 알기만 했지만 이제 눈으로 주님을 봅니다.’ 신령한 교제를 원하시고 친밀하기를 원하시고 산 교제를 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십니다. 수많은 역경 속에서 살아가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역경을 돌파하도록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언약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구원하겠다.’ 그것을 붙잡는 사람, 그것을 붙잡고 가는 것을 믿음입니다. 그래서 지나갈 수 있습니다. 내 경험, 인간의 욕심과 동기를 가지고는 절대 하나님의 것에 도달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하고 이루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신앙생활은 단 기간이 아니에요. 신앙은 우리 인생의 여정이에요. 큰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40, 50, 60대가 되고 부모가 되고 어른이 되었을 때를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통해 당신의 복음의 은혜를 삶의 인격으로 드러내길 원합니다. 옛 틀을 버리고 새 틀을 입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포도주를 담아야 하는데 낡은 부대는 안 되고 새 부대를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갱신하고 개혁하기 위해 중요한 것입니다. 차를 사자. 집을 사자. 가 아니라 내 속 사람 내면이 바뀌어야 합니다. 내 인격이 변화되어야 진짜 변화입니다. 이제는 이 은혜가 삶으로 이해된다는 것입니다. 삶으로 이해된다는 것은 삶이 은혜와 접속되었다는 것입니다. 복음에 대해서 훈련 때 양육 받아서 다 압니다. 그런데 막상 내 삶에 찾아오는 위기나 세상에서 오는 소리에 우리 삶이 되돌아가 버립니다. 내 삶이 믿음이 되었다는 것은 어떤 뿌리내렸다는 것입니다. 흔들림이 없다는 것입니다 삶이 된 것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독서하는 습관은 힘듭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독서를 시작 한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책을 읽다보니 책에 힘이 되고 깨달음이 되어서 읽기 시작했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군대에 들어갔을 때 책을 200권을 읽고 나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억지로 읽어야지 생각하고 읽었는지 체크하고 노력을 했습니다. 군대에서 제대할 때 가방에 책 200권 담아 나왔습니다. 이제는 그런 계획을 세우지 않습니다. 내 삶 주변에 책이 있습니다. 습관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서 모시고 오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있으면 신앙의 선배들이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향해 열려있는 신앙을 한다는 것은 내 삶이 복음의 은혜가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가 자연스럽게, 예배가 자연스럽게 내 삶에 별 쇼를 마귀가 다 해도 흔들림 없이 아브라함처럼 재단을 쌓고 마므레 상수리 앞으로 나아가고 이것이 약속을 믿는 믿음의 사람이 가야할 길이라는 것입니다.

 

사라가 헤브론 땅에서 죽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헤브론에 그냥 사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헤브론을선택한 것은 땅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깨달았습니다. 헤브론은 교통이라는 뜻입니다. 교통은 길, 서로 통한다는 뜻입니다. 헤브론이 신약에 와서 예루살렘 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헤브론을 거치지 않고는 예수살렘에 입성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의미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알고 여기에 정착해서 살았습니다. 헤브론으로 돌아오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 인생은 실수 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하나님 앞에 나오시고 그런 것에 대한 이질감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몇 개월, 몇 년 안 나올 수 있습니다. 지난주에 나온 것처럼 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교회에 많은 분들이 회복해서 올 수 있습니다. 예배 앞에, 헤브론 앞에 다시 돌아오는 아브라함은 이런 신앙이 있었습니다. 갑갑해도 다시 헤브론으로, 삶에 역경이 있고 고난이 있어도 다시 헤브론으로. 헤브론이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38년을 사라가 죽고 더 살았습니다. 이삭이 다 커서 지도자가 될 때까지 아브라함에게 생명을 주셨는데 누군가를 이별하고 다시 얻는 삶을 우리도 삽니다. 인생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이 우리 인생에 남아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그것을 아는 것입니다. ‘천하 만민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약속을 믿고 이 헤브론까지 왔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 천국입니다. 이 땅의 예루살렘은 왕이신 하나님이 주인 되신 천국입니다. 모든 성의 상징은 천국을 상징합니다. 이 헤브론은 그 천국으로 가는 어귀입니다. 십자가의 사건을 여기에서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헤브론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루살렘의 문, 천국의 문 예수 그리스도 헤브론의 축복을 은혜로 받으시길 바랍니다.

 

2. 그의 막벨라 굴을 사는 아브라함_창세기 23:5-13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_창세기 23:4’

 

헤브론의 주인은 헷 족속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방인, 거류하는 자였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상징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 땅의 나그네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 죄인은 다 나그네입니다. 거류하는 자입니다. 천국 밖에 있는, 예루살렘 밖에 있는 거류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나그네입니다.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_창세기 23:5-6’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헷 족속이 아브라함을 얼마나 존경했는지 내 주여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나그네요. 거류자요. 라고 합니다. 자기 스스로를 높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헷 족속은 당신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세운 지도자인데 매장지 아무 곳이나 쓰세요.’ 그 당시에는 묘를 굴로 미리 준비하는 때입니다. 그래서 묘실을 사용하겠다고 하면 우리 가운데서 그것이 자기의 묘 자리라고 해서 거절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 이야기를 합니다. 굉장한 의미가 있습니다. 인격이 성숙하고 불신자에게 인정받으라는 메시지일까요? 하나님의 백성이 그런 삶을 살아야 해요. 그러나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당신의 그 은혜가 복음이 아브라함의 인격과 삶으로 드러나는 삶을 살았을 때 하나님이 이런 환경을 이 헤브론에서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는 은혜를 주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기독교는 거룩해야 해. 불신자에게 잘 보여야 해.’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바리새인이 잘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은 그것이 아니어야 합니다. 달라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사랑했더니 그런 삶이 사라지는 것이지 그런 삶을 위해서 애쓰는 종교생활은 안되는 것입니다. 복음과 종교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과 동행하고 흠모했더니 주님의 사랑과 공의가 삶에 묻어나기 시작 하는 것입니다. 결과가 다릅니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가 그의 밭머리에 있는 그의 막벨라 굴을 내게 주도록 하되 충분한 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 당신들 중에서 매장할 소유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 하매_창세기23:9’

 

막벨라 굴의 주인은 에브론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그 것을 지명했습니다. 그런데 충분한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다고 합니다. 에브론이 헷 족속이 했던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어떻게 대가를 받냐, 가져다가 써라.’ 이방의 아브라함이 불안 해 하는 것을 눈치 챘는지 우리 종족이 다 보고 있고 준 것을 확인했다는 뉘앙스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아니다. 나는 이 땅을 사겠다. 얼마냐.’ 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은 사백 세겔을 바로 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당시 법에 사람의 목숨으로 대신 지불하는 값이 오 세겔입니다. 지금 그런데 아브라함이 부자고 권력을 가졌다고 나오지 않고 얼마나 겸손했는지 신실하게 살았는지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 막벨라 굴을 이렇게까지 왜 사려고 했을까요? 아브라함은 알았습니다. 헤브론의 가치를 알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더 좋은 매장지를 찾은 것이 아니라 자기가 거주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막벨라 굴을 사려고 했습니다. 왜 샀습니까? 영원히 후손에게 상속해주기 위해서. 나중에 다 죽고 이 땅을 돌려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냐. 어떤 신학자는 은 사백 세겔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애굽 땅에서 마지막 조상 요셉 때 노예로 갑니다, 하나님이 400년 동안 이스라엘을 준비시켜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사백 세겔이라고 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요셉이 이야기합니다. 내 유골을 가지고 가서 막벨라 굴에 묻어라. 막벨라 굴이 예수그리스도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구약을 관통하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복음에 대해서 마음에 새기셔야 합니다. 우리 삶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막벨라 굴을 산 이유를 보려고 합니다.

 

3. 막벨라 굴을 산 분명한 이유_창세기23:14-18,49:29-32,사무엘하2:3-4,히브리서11:13-16,13:12-15,베드로전서1:1-5,18-19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의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_창세기 49:29-32’

 

요셉의 유언입니다. 400 후를 내다보고 요셉이 아브라함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내가 죽으면 헷 사람 막벨라 굴에 장사하라. 돈을 주고 샀으니 장사 할 수 있습니다, 야곱, 요셉이 다 이런 유언을 했습니다. 막벨라 굴에 사라, 아브라함, 이삭, 이삭의 아내, 야곱, 나중에 요셉의 유골까지 돌아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이 믿음의 증거로 아브라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붙잡았습니다. 어려운 말씀이지만 이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진리 안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진정한 감사, 강 같은 평화는 못 알아먹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은혜를 주시길 원합니다. 오늘 아브라함이 은 사백 세겔을 주고 막벨라 굴을 사야할 이유가 언약으로 심겨지지 원합니다. 아브라함이 막벨라 굴을 사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언약을 전달하게 했습니다. 막벨라 굴을 사야 합니다. 대가를 치루고 사야합니다.

 

또 자기와 함께 한 추종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다윗이 다 데리고 올라가서 헤브론 각 성읍에 살게 하니라 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으로 삼았더라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을 장사한 사람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니이다 하매_사무엘하 2:3-4’

 

거기는 헤브론 땅입니다. 다윗은 자기의 가족과 자기 추종자를 다 헤브론 땅에 살게 하고 기름을 부어 왕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_히브리서 11:13-16’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_히브리서 13:12-15’

 

예수님도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우리에게 막벨라 굴은 항상 찬송의 제사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삶입니다. 바리새인이 장악하는 예루살렘 건물 도성이 아니에요. 이것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_베드로전서 1:1-5 ’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_베드로전서 1:18-19’

 

1절에 보면 계속 나그네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가 이 땅의 나그네 같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유업을 받을 수 있습니까? 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영원한 예수살렘 성으로 들어가서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찬송하는 찬송의 제사. 그 곳이 막벨라 굴입니다. 교회가 막벨라 굴이 되길 원합니다.

 

.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_창세기23:19-20,여호수아14:12,마태복음13:44-50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_마태복음 13:44-50‘

 

천국은 감추인 보화와 같고 진주와 같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이지만 약속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복이 재물이 아니구나. 무덤을 준다는데 왜 대가를 치룹니까? 아브라함이 알았습니다. 내 자녀가, 이삭이, 그 후손들이 이 막벨라 굴에 묻혀서 이곳에서 천국의 복음, 우리를 구원하시고 죄악에서 자유롭게 하시고 인생의 굴곡과 같은 고통과 아픔에서 우리에게 소망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곳에서 배우길 원했습니다. 이 언약을 잃어버린 시대는 재앙의 시대였습니다. 언약을 잃어버렸기에 그 자체가 어두운 시대였습니다. 이것을 모르니 중세시대에는 화려하게 건물 짓고 권위를 가지려고 했는데 개혁교회 시대에 루터, 칼빈 통해 다시 믿음을 회복했습니다. 그 때는 외향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천국이었습니다. 우리는 대가를 치뤄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기도로 말씀을 묵상하고 천국 복음의 말씀을 깨닫는 시간입니다. 시간을 드리고 삶을 드려야 합니다. 내 맘대로 사는 삶을 사면 결코 막벨라 굴을 얻을 수 없습니다. 내 뜻대로 살면서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이 사백 세겔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가나안을 가기위한 준비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간다는 의미를 기독교가 세속화가 되어서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사는 것으로 가다보니 천국이 희미해졌습니다. 그러나 엣 선조들이 불신지옥 예수천당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닙니다. 불신지옥 예수천당 밖에 표현 못했기에 애절한 마음으로 외쳤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천국 백성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다 그물에 담아 마지막 때에 의인과 악인을 가린다고 했습니다. 이 대가를 치른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으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까? 제자로 살고 있습니까?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것입니다. 삶으로 들어가고 인격이 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_여호수아 14:!2’

 

그래서 이 역경의 때를 지나 갈렙이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갈렙이 얼마나 언약을 정확했는지 그 산지가 막벨라 굴이 있는 헤브론 산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다윗도 다 헤브론 산에 살게 하였습니다. 언약 백성들은 다 놓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정확한 복음의 의미가 자자손손 전달되길 원합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이 산지가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위해서 사랑과 공의가 이루어진 십자가의 사건. 막벨라 굴이 있는 산지에서 벌어졌습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되고 기도제목이 되길 원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매일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매일 잃어버리고 얻고 하는 인생을 살지만 그런 인생 가운데 항상 막벨라 굴을 살 수 있는 준비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막벨라 굴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대가를 치를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이 되고 인격이 되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전달 될 수 있는 믿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향해 항상 열려있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해서는 항상 열려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을 향해 열려있는 가정이 되어라. 그냥 결혼하고 그냥 신앙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공급될 때 단점이 감춰지고 장점이 드러나고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가치 있는 가정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열러있어야 합니다. 닫혀버리면 우리가 막벨라 굴을 살 수 있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막벨라 굴을 사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우리 중직자, 장로, 안수집사, 청년, 리더들은 막벨라 굴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십자가 복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매일의 삶속에 그런 신앙생활을 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세상에 복음을 말해 줄 수 있는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행사로 전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짜 신앙생활을 꿈꿔야 합니다. 매일 하나님 향해 열려있는 하나님이 주신 힘과 위로를 얻는 축복된 삶을 살 수 있기를, 막벨라 굴을 살 수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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