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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9-10-13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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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3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꿈꾸는 자

본 문 :

창세기37:18-36

오승주 목사

 

. 형들에게 배반당한 요셉_창세기37:12-13,34,요한일서4:10,요한복음1:11,마태복음15:24,요한복음3:17,창세기37:7, 마가복음7:8

 

지난주에 이어서 같은 본문이 중복되지만 연결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영상을 만들어주니까 지난주 설교가 정리가 되어져서 참 좋다.

형들에게 배반을 당하는 요셉은 유대인들에게 배반당하는 예수님을 상징한다. 유대인은 예수님을 오랫동안 기다리던 선택받은 민족이며, 정확히 말하면 예수님의 가문이고 예수님의 족보이다. 유대인은 예수님의 가족이자 친척이다. 예수님이 오셨는데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배반을 당하셨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지셔야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알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을 하셨을까 라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 우리의 삶에 찾아오는 위기와 사건들, 이 문제가 찾아오고 나면 또 다른 문제가 찾아오는 우리의 인생이다. 계속해서 문제가 찾아오는데, 전도서에서는 우리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찬스이며 테스트라고 밝히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를 받은 존재가 아닌 짐승과 똑같은 존재라면 우리에게 찾아오는 문제나 사건은 사실 별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왜 우리에게 자꾸만 문제가 반복되나? 하나님을 떠난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시간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영원한 시간,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와 조우할 수 있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와 조우할 수 있는 하나님께서 열어놓으신 살 길이다. 과연 우리가 문제나 어려움이 없었다면 하나님을 믿었을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을까?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_요한일서4:10‘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의 죄를 속하시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다. 화목제물은 불태워 죽이는 것이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_요한복음1:11‘

 

이 일이 얼마나 원통한 일인가? 인간의 육신을 입고 왔는데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고 등을 돌렸다. 요셉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 요셉을 야곱 가문에 보내서 형들을 구원할 자로 보냈는데,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하고 배반하려고 했다. 참 아이러니하다. 형들이 요셉 같은 게 나를 구원할 수 있을까? 저 어린 것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생각을 했다. 예수님이 어떻게 오셨나? 말구유에 오시고 가난한 목수의 집에 오셨다. 예수님의 사역은 볼품이 없었다. 가난한 자들을 만나고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세리나 유대인들이 보기에는 저게 무슨 메시야야 라고 생각을 했다. 메시야이고 그리스도일거라고 생각도 못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_마태복음15:24‘

 

예수님의 마음이다. 예수님의 잃어버린 어린양은 유대인을 상징한다. 예수님은 자신을 배반한 유대인들을 향해 또 가셨다. 요셉이 이것을 상징한다. 형들이 있는 세겜은 세상을 상징한다. 요셉이 세겜까지 갔는데 형들이 없으니 그냥 돌아와도 되는데, 요셉은 물어물어 도단까지 형들을 찾아갔다. 예수님은 한번 배반당했으면 그냥 돌아서면 되는데, 또 찾아가고 계속 찾아가셨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_3:17‘

 

이미 심판은 결정되어있다. 심판은 예정되어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심판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 받게 하시려고 오신 것이다. 구원받게 하시려고 또 찾아가신 것이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_37:7‘

 

요셉이 이런 꿈을 꾸었다. 그리고 형들에게 찾아가 철없이 이야기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요셉은 당연히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이었다. 형들이 요셉의 꿈을 듣고 분노하고 짜증내고 싫어했다. 이 꿈은 사실 요셉의 형들을 구원할 꿈이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였다. 선교학자들은 선교의 끝은 유대인이라고 하며 이스라엘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이 우리를 위해서지만 이스라엘 백성,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위함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기들을 위한 것임에도 짜증나고 분노했다. 왜 유대인이 이렇게 되었나?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_마가복음7:8‘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 계명 안에 있는 언약 백성이다. 유대인들이 타락했다는 것은 술 먹고 담배 피는 타락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잃어버린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전통을 붙잡았다. 요셉이 꿈에서 형들의 단이 나의 단에게 절한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형들에게 있어서는 질서 상 기분이 나빴다. 축복권, 장자권, 사랑도 다 빼앗긴 형들은 기분이 나빴다. 예수님은 계명대로 말씀대로 그리스도로 메시야로 오셨다. 그런데 유대인들,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종교지도자들, 율법학자들은 전통을 더 중요시 여겼다. 전통이 무엇인가? 우리가 하나님을 실존적으로 만나고 회복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고 그 말씀이 회복될 때만 하나님을 실존적으로 만날 수 있다. 최근에 후배 전도사들과 대화를 하는 기회가 많은데, 대화의 내용에 굉장히 위험한 내용이 많았다. 하나님을 어떤 틀 안에 제한 시켜놓았다. 사랑의 하나님이 맞으시지만, 공의의 하나님이기도 하고 능력의 하나님이기도 한다. 하나님을 어떠한 틀에 가둬놓고 더 이상 하나님에 대해서 공부하려고 하지 않고 제한 한 채 사역을 하려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딱 그런 상황이다. 나라는 속국이 되고 질병과 재앙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데, 유대인들은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살았다. 사실 이것은 전통이 아니었다. 변질되어 버린 전통이었다. 사실 구약에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 이미 다 있다. 하지만 말씀보다 전통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신앙공식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중요시 되어서는 안 된다. 공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신앙공식이 하나님을 제한시켜서는 안 된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예수님은 로마 군대를 한방에 없애고 강력한 군대로 이스라엘을 강하고 강한 나라로 만들어 줄 거라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겨우 그 정도였다. 예수님은 사단의 저주, 지옥에서 건지실 어마어마한 섭리를 가지고 오셨는데,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잘 먹고 잘사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유대인들, 종교지도자들이 보기에는 예수님이 볼품없이 보였다. 자신들의 전통 때문에 예수님을 외면했다.

 

. 꿈꾸는 자가 오는 도다_창세기37:19-20,마가복음15:29-32,요한복음3:36,창세기37:23,마태복음27:27-28,요한복음19:23,요한복음6:41,10:30-31

 

 

- 우리에게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_요한복음3:36’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 드리지 못하는 유대인들의 태도 그리고 우리의 태도

 

요셉이 형들에게 갔다. 형들이 요셉을 보고 비웃으며 꿈꾸는 자가 온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우리에게 찾아오신 예수님이 꿈꾸는 자이다. 예수님의 비전, 예수님의 꿈, 우리에게 찾아오신 예수님은 엄청난 것이다. 꿈꾸는 자가 형들에게 오지 않았다면 그 가문은 기근에 고통에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인생에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까?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_마가복음15:29-32‘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놓고 비웃으며 희롱한다. 남들은 구원하면서 자신은 구원하지 못한다고 희롱한다. 우리는 모두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보고 등을 돌리고 욕하고 비웃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보고 그렇게 욕했다. 네가 꿈을 꾼다고? 여러분은 요셉이십니까? 꿈을 꾸십니까? 저는 꿈이 있다. 복음을 받고 꿈이 많이 생겨 일이 많다. 저는 꿈을 꾼다. 수도권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 교회에 와서 예수님을 믿고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교육을 받는 꿈, 우리 교회에서 느헤미야와 같은 정치인들, 다니엘과 같은 학사, 에스라와 같은 지도자들이 나오기를 꿈꾼다. 믿음의 증인이 되고 싶은 꿈이 있다. 그것 때문에 노력을 한다. 저는 우리 교회 청년들, 대학생들, 젊은이들이 진짜 꿈꾸길 원한다. 진짜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선한 영향력을 가지고 빌 황 총재처럼 복음의 모임들, 복음을 전할 실력을 갖추길 원한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요셉은 왜 형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그런 상황을 맞으면서도 꿈을 지켰을까? 만약 저였으면 이 꿈이 가짜 꿈이었다고 번복을 했을 것이다. 두려웠던, 무서웠던 상황이지만 요셉은 번복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 꿈은 인간의 꿈이 아니었고 하나님이 주신 꿈이었다. 예수님의 꿈은 우리가 이야기하는 세상적인 꿈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꿈이며 하나님의 꿈이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_3:36‘

 

하나님의 꿈은 영생이다. 그래서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시는 것이다. 그 길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전통은 무엇인가? 전통은 인간이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은 흔들림이 없다. 물이 몇 도가 되면 끓는데 그 밑에서는 절대 끓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창조해놓으셨다. 하나님의 임계점은 이미 정해져있다. 그것이 계명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계명대로 구원받을 수 있다. 개혁신학에서는 이것을 분명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그러한 임계점에 도달해서 하나님이 주신 꿈, 비전은 영생이기 때문에 흔들림이 없다. 얼마나 흔들림이 없나?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_창세기37:23‘

 

옷을 왜 벗겼나? 옷은 신분을 상징한다고 했다.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_마태복음27:27-28’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_요한복음19:23‘

 

예수님은 그냥 겉옷만 벗기지 않았다. 이 당시 군인들은 굉장히 월급이 적었다. 그래서 죄수들의 옷을 벗겨 팔았다. 이러한 수치심이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는 흔들림이 없었다. ?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믿음은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실현되는 것이다. 말씀을 주시고 성취하시는 것이다. 단순히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주셨기 때문에 인도받는 것이며 예정된 길을 가는 것이다. 신앙은 이렇게 해야 한다. 옷을 벗기는데도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너무 확실하고 사실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흔들림이 없다.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하여 수군거려_요한복음6:41’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_요한복음10:30-31’

 

어떤 장면인가? 떡이라는 표현은 구원의 양식이라는 표현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예수님에게 유대인들은 돌로 치려고 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꿈이 확신 정도가 아니라 사실이었다. 그리스도인이 왜 실패하냐면 살펴보면 신앙에 대한 확신이 없고 사실이 없다. 믿음이 좋은 척, 신앙이 좋은 척하지만 문제 생기면 신앙 다 팽개치고 등을 돌린다. 힘들다고 하시는 분들을 만나보면 아무것도 없고 고민의 흔적도 없다. 신앙은 말씀을 따라가는 것인데 자신의 꿈을 가지고 교회를 다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러한 것을 구분하지 못하지만 하나님, 사단, 마귀는 구분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신앙에 대한 내용이 아무것도 없다. 정말 구원자로 믿나? 정말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실 분이라고 믿나? 그렇지 않기 때문에 돌로 치려하며 흔들리고 수군거리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결국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형들도 결국 요셉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우리도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전통인가? 자존심인가? 이번 주 사역을 하면서 한 청년을 만났는데, 어렸을 때랑 상황이나 처지가 저랑 비슷했다. 그래서 마음이 더 가서 만나게 되었다. 3시간동안 이야기를 하면서 그 청년에게 이야기를 했다. 겪고 있는 어려움은 영적인 어려움인데 그래서 예수님을 받아들일 것이냐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냐? 그 문제는 계속 반복될 것인데 예수님을 받아들일 거냐?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계속 반복해서 이야기를 한다. 제가 어려워서, 믿기는 하는데, 바쁜 상황이어서. 미국에 있는 유명한 햄버거 가게 여사장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마약문제도 겪고 영적인 공황도 겪고 결혼을 했는데 결혼을 3번이나 실패했다. 이 여회장은 결혼 3번 실패하고 예수님밖에 없다는 고백을 하였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예배가 자기의 생명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포장지, 컵에 성경구절을 써놓고 장사를 했는데 장사가 되겠나? 신기하게 장사가 되었다. 장학금을 주고 자기가 겪었던 어려움을 돕는 재단을 만들어 사람들을 돕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의 태도를 돌아봐야한다. 이것은 단지 상황이나 환경의 문제가 아니다. 영적인 부분이다. 성경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악한 영적인 존재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 구원의 소식을 꿈꾸라!_시편24:1-10,창세기50:15-21

 

- 누가 이 아름다운 꿈을 꾸지 못하게 하는가?

- 구체적인 구원의 꿈을 꾸라!

- 구원의 기쁨이 있는 삶, 교회를 세우는 삶, 그리고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셀라)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셀라)_시편24:3-10’

 

1) 구원의 기쁨이 있는 삶

우리는 여호와의 산에 올라야 한다. 반대로 이야기를 하면 누군가는 뜻을 허탄하게 두게 하고 전통에 사로잡혀 살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고개를 들고 문을 열고 만왕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데 예수그리스도가 누구냐? 전쟁에 능하신 예수 그리스도, 강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싸우시겠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게 만드시겠다는 것이다. 이 비밀이 없으니까 많은 크리스천들이 요셉의 삶을 시작하지 못한다. 꿈이 없다. 우리는 꿈을 꾸어야 하는데, 구원의 소식을 꿈꾸어야 한다. 제일 먼저는 우리의 머리를 들어 영광의 왕을 맞이해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예배가 없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짐승과 똑같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예배가 없는 것은 허망한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영광의 왕을 맞이하는 것이다. 매일 아침 예배를 드렸으면 좋겠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을 하면서 운전을 하면서 주님, 오늘도 나의 삶이 당신의 것입니다. 나는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성령께서 찾아오셔서 나를 인도해주세요, 십자가의 구원의 감격과 감사로 하루를 시작하게 해 주세요이런 작은 감사와 고백이 다 예배이며 여기서 꿈이 나오고 비전이 나온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에서 이러한 것들이 사라져버렸다. 교회 다니는 전통만 남아있는 것이다. 신앙생활은 예배생활이다. 구원의 꿈은 구체적으로 꾸는 것이다. 요셉은 훗날 하나님이 주신 꿈을 이루고 이렇게 고백했다.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_창세기50:15-21’

 

2) 교회를 세우는 삶

많은 백성을 구원한다고 되어있는데 이것이 교회이다. 많은 백성을 구원하는 것이 교회이다. 교회가 없으면 복음을 전할 곳이 없다. 만약 이 나라에 어떤 선교사가 꿈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러 오지 않았으면, 또 복음을 전했는데 누군가가 온갖 핍박과 고난 가운데서 교회를 세우지 않았다면 우리는 복음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전 세계에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을 살리고 돕기 위해서 비브릿지를 세운 것이다. 요셉은 형들을 위로하고 고백했다. 요셉은 일단 인간적인 복수를 하지 않았다. 교회를 세우는 꿈이 구체적으로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 가정복음화, 민족복음화. 우리가 이 꿈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인간관계를 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인가? 꿈이 없이 대학교수가 되고 대통령이 되고 정치인이 되면 무엇을 할 것인가? 교회가 꿈이 아니면 그리스도인에게 우리의 삶은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의 인생, 가정에 교회가 없다고 생각해보자, 우리의 자녀들 세대에 교회가 없다고 생각해보면 복음을 전해주는 사람이 없기에 다 지옥에 가게 된다. 교회 내부, 외부에 영적으로 교회를 무너뜨리는 존재가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교회를 세우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교회는 종교기관이 아니다.

 

3)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

우리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준비해야 한다. 요셉이 애굽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왜냐면? 요셉은 사실을 가지고 있었다. 꿈이 사실이었다. 말이 아니었다. 목회자들, 후배들을 만나면 다들 말은 잘한다. 힘들고 어렵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구체적으로 실력을 준비하지 않는다. 한 영혼을 구원하고 신실한 제자로 만드는 준비를 하지 않는다.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기 위해서 죽도록 기도해 본적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성도들을 만나도 말뿐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실력이다. 실력이 있으면 외부의 세력에 별로 가치를 두지 않는다. 내용이 있고 실력이 있기 때문이다. 내용이 있으면 세상이 두렵지 않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폭언과 폭력이 두렵지 않았고 꿈은 실력이 있어야 한다. 꿈은 허황된 실력이 아니다. 꿈은 만유의 주를 받아들이는 꿈, 교회를 세우는 꿈이다. 정말 작은 것이지만 에스더와 같은 인물들, 기생 라합과 같은 인물들, 로마서 16장의 인물들 전부 비전과 꿈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건 대학생들이 이야기하는 스펙과 다른 것이다. 잘 들었으면 좋겠다. 먼저는 구원의 기쁨이 실력이어야 한다. 예배가 구원의 기쁨이 되어야 한다. 시험기간에 예배를 들이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집안 살림에 도움은 되겠지만 하나님께는 끝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역사하고 계신다. 성공한 크리스천들을 보면 꿈쩍도 안하고 흔들리지 않고 타협도 안한다. 두 번째 꿈은 교회를 세우는 꿈이다. 영혼구원을 향한 꿈이 있다. 이러한 눈으로 가난한자들을 돌보고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는 자들은 빛과 소금이 될 수밖에 없다. 세 번째 꿈으로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실력일 겸비해야 한다. 교회를 이야기하고 교회를 소개해도 전혀 부끄럽지 않을 만큼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거룩한 곳,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꿈이고 실력이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세상의 하나님의 꿈을 이야기하고 세상을 살릴 수 있다. 날마다 구원의 기쁨이 있는 삶, 교회를 세우는 삶,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실력을 갖춘 삶이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꿈을 전하기 위해서 요셉처럼 예수님처럼 전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한다. 꿈을 가지며 준비를 하는 가운데 추수감사절 특별새벽집회 때 인물들을 가지고 설교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어떻게 그들이 하나님의 꿈을 가지고 살았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저는 우리 교회를 향한 꿈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교회를 지키고 복음을 지켜야 한다. 우리에게 이러한 시야가 열려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자녀들이 이 속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체면과 전통을 조금씩 벗겨 내야한다. 우리는 교회화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삶이 교회화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구원의 소식을 열방가운데 전할 수 있는 되기를 원합니다. 다른 교회를 살펴보는데 주일 아침 8시부터 사람이 가득하고 불같은 느낌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때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우리 성도님들이 이 교회가면 성령의 체험을 받고 뜨거움을 느낄텐데, 가스펠 교회 와서 미지근하게 신앙생활 하는 것을 보며 나중에 얼마나 후회하고 하나님께 혼날까라는 생각을 한다. 성경은 사실이고 구원은 진실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에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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